2014. 11. 16. 15:25ㆍ들꽃다회
강화 전등사 역대조사 다례재(茶禮齋) - 셋(完)
/ 20140928 일요일, 맑음
이제 전등사 조실 스님, 주지 스님 등 스님들이
역대조사님들께 올리는 다례재가 계속된다.
한편 괘불대 뒷편에서는 가루차 공양 보살님들의
찻설거지가 바삐 진행된다.
괘불 부처님과 역대조사님 제단 앞에 올려진 다완들 .....
전등사 조실 세연선사님의 헌다례(獻茶禮)
전등사 주지 범우스님의 헌다례
대웅보전 뒤안 삼성각 가는 길섶에 있는
들꽃화단에서....
며느리배꼽
쑥부장이
미역취
맥문동 열매
- 모든 익어가는 씨앗들은 그 열매가 대부분 보석을 닮아 있다.
비록 말못하고 다닐 수 없는 식물들이지만 삶의 정성을 다하여
후손을 퍼뜨릴 씨앗을 갈무리하기 때문이다.
긴담배풀
- 어린순은 식용, 성숙한 것은 약용
늘 관욕(灌浴)하시는 삼성각 앞 샘터의
작은 부처님상
이질풀
- 전초는 약용(이질 , 설사의 증상에)
삼성각 탱화
강화 전등사에서 삼성각의 탱화를 주목하는 연유는 전등사가 단군의 세아들인
부여, 부우, 부소가 쌓았다고 전해지는 삼랑성 안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각은 독성인 나반존자, 치성광여래보살, 산신 등을 모시는 당우를 별도로 짓기 어려울 때,
이 세분을 한곳에 모시는 전각으로 보통 산지 사찰에서는 후원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한다.
산신상(단군상)
전등사 삼성각의 산신(山神)은 단군할아버지 상(像)이 모셔져 있다.
익선(翼扇)은 손에 드신채, 두명의 선녀의 시중을 받는다.
선녀가 든 바구니에는 서왕모의 천도복숭아와 불로초인 영지가 담겨 있다.
단군할아버지의 오른편에 있는 호랑이는 우리 민족의 기원이
파미르 고원에서 기원한 유목생활의 맥족(貊族)과
발해만의 산동반도에서 기원한 농어업생활을 하던 예족(濊族)이
서로 요하근처에서 만나 형성한 예맥족(濊貊族)임을 상징하는 것이고,
맥족과 예족의 동화 사실은 중국고대사서에서 많이 나타난다.
한국설화 인물유형
단군
분류 | 문학 > 초월적 인물형 > 창세(創世)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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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갈래 : 신화
• 시대 : 삼국이전
• 신분 : 왕족
• 지역 : 관동
• 출처 : 삼국유사 (권1)
• 내용 :
환인(桓因) 서자 환웅이 세상에 내려가 인간 생활을 원했다. 부친 환인이 그 뜻을 알아,
널리 인간을 유익하게 하기(弘益人間)에 알맞은 삼위태백(三危太白)에, 천부인(天符印)
세 개를 주어 내려가 인간을 다스리게 했다. 환웅은 무리 3.000을 거느리고 태백산정(妙香山)의
신단수(神檀樹) 아래 신시에 내려와 환웅천황이 되어, 풍백 · 우사 · 운사 등이며,
곡식 · 생명 · 질병 · 형벌 · 선악 등과 인간 생활 360여 가지의 책임자를 거느리고 사람들을
교화해 다스렸다. 이때 같은 굴속에 사는 곰과 호랑이가 와서 환웅에게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빌었다. 이에 환웅은 신령스러운 약인 쑥 한 묶음과 마늘 20개를 주면서,
“100일간 태양을 보지 않고 이것을 먹고 있으면 사람이 된다.”고 말했다.
곧 곰은 3·7일간 환웅이 시키는 대로 잘 근신해 여자의 몸으로 되었지만, 호랑이는 견디지
못해 사람이 되지 못했다. 웅녀(熊女)가 결혼할 상대가 없어, 늘 신단수(神檀樹) 아래에 와서
임신하게 해달라고 빌어, 이에 환웅이 사람의 형상으로 나타나 웅녀와 결혼해 임신하게 했다.
이렇게 해 단군왕검이 태어났고, 이때는 중국 요(堯) 임금 즉위 50년 경인(庚寅)이며, 평양성에
도읍하고 나라 이름을 조선이라 했다. 그 뒤 도읍을 백악산 아사달로 옮겼고, 1,500년 동안
나라를 다스렸다. 뒤에 중국 주나라 무왕이 기자(箕子)를 조선에 봉(封)하게 되니, 단군은 장
당경(藏唐京)으로 옮겼다가, 후에 아사달에 돌아와 숨어 산신(山神)이 되었는데, 나이 1,908세였다.
참고자료
문화콘텐츠닷컴 원문보기
[네이버 지식백과] 단군 (문화콘텐츠닷컴 (문화원형백과 한국설화 인물유형), 2005, 한국콘텐츠진흥원)
치성광여래상(칠성상)
치성광여래는 우리 고유 선도(仙道)의 칠성신을 불교식으로 부르는 말이다.
칠성(七星)은 북두칠성을 의미하며,<치성>은 칠성을 우리말 음(音)으로 순화하여 부르는 말이다.
십방세계(十方世界)를 시방세계로 발음하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
<광(光)>은 별(星)이기에 그 빛나는 형상을 훈차(訓借)하여 붙인 것이다.
치성광여래의 좌우협시는 일광보살(대일여래)와 월광보살이다.
일광보살과 월광보살은 해와 달을 불교식으로 여래화한 것이다.
유목민들은 드넓은 초원지대에서 밤낮으로 해와 달 그리고 별자리를 기준으로
방향을 잡아 목초지를 찾아서 이동한다.
우리 고대 천문학이 이 치성광여래의 탱화에 녹아들어 있다.
고구려 고분벽화나 고구려계 도래인이 만든 일본의 키토라 고분벽화에서
칠성은 흔히 삼태성(三台星)으로 나타난다.
이 삼태성은 인간과 만물의 생명을 주관하는 별자리로 북두칠성 아래
마치 사슴 발자욱 3개쌍이 뛰어간 형상의 여섯개의 별이다.
이 삼태성의 서양 이름은 사슴의 한 종류인 가젤의 발자욱인 것으로 보아
고대문명교류의 증거가 고천문학에도 오롯이 남아있는 셈이다.
이 삼태성은 북두칠성 보다 밝기가 희미하여 쉽게 찾기 어려워서
밤하늘에서 누구나 찾기 쉬운
북두칠성을 찾아서 기원하는 풍습이 칠성신앙을 낳았다.
아래 칠성탱에서 제일 가운데에 서계신 분이 바로 독성(獨聖)이라는 나반존자이다.
나반존자는 우리 고대신화에서 인류의 조상이라고 하는 환인상(桓仁像)의 불교식 표현이다.
환인 좌우에 홀을 들고 협시하여 있는 분들이 단군조선의 역대왕들인 단군이시다.
북두칠성과 삼태성
나반존자 탱화
불교에서 홀로 깨치셨다고 전해지는 독성(獨聖) 즉 나반존자는 우리 고대신화에서
인류의 조상이라고 여겨지는 나반(那般)이다.
아래 독성탱에서 좌협시는 당연히 그의 부인이신 아만(阿曼)이다.
다만 이 탱화의 주인공이신 나반존자에 비하여 그 크기만 작게 그렸을 뿐이다.
이 독성탱에서 주목하여야 할 그림은 나반존자의 우축에서
차를 달이고 있는 다동상(茶童像)이다.
진흙덩이를 둥글게 뭉쳐 쌓아올린 화로에서 파랗게 녹쓴
청동주전자에다 차를 달이고 있다.
찰흙을 둥글게 뭉쳐서 쌓아 올리는 것은 요즘에도 장작가마를 쓰는
전통도요에서 쓰고있는 망댕이요를 만드는 방법과 그 기법이 동일하다.
다른 사찰의 독성각이나 삼성각에서는 이 나반존자 대신에 환인천제상을 모셔두고 있는
경우가 많아 아래에 환인에 대한 자료를 인용한다.
이렇게 다신교적인 요소가 다분하고 각 민족의 기층신앙까지도
포용하는 불교의 통섭성이야 말로 유일신 신앙의 기독교나 이슬람교가
갖고 있지 못하는 큰 장점이자 이것이 곧 우리 한민족의 포용성과 통섭성을
키워주는 용광로가 된다. 이 용광로에 녹은 우리의 기층신앙과 원형질인
유목민 성향의 민족성은 세계 어느 곳을 가던지 다른 나라 사람들과 쉽게 소통하고,
그 문화를 받아들일 수 있는 융통성을 갖게 한다.
우리 대한불교도 이러한 통섭성을 활용하여 교민 위주의 해외 포교에서 벗어나
세계 곳곳에 , 특히 민종 고유종교가 많이 남아있는 아프리카나 남미 각국에까지
포교의 영역을 점차 넓혀가야할 것이다.
한국설화 인물유형
나반과 아만
분류 |
문학 > 초월적 인물형 > 창세(創世)형 |
---|
• 갈래 : 신화
• 시대 : 삼국이전
• 신분 : 왕족
• 지역 : 기타
• 출처 : 편집부 ()
• 내용 :
인류의 조상을 나반(那般)이라 한다. 처음 아만(阿曼)과 서로 만난 곳은 아이시타라고 하는데,
꿈에 천신의 가르침을 받아서 스스로 혼례를 이루었으니 구환(九桓)의 무리는 모두가 그의 후손이다.
이것이 무슨 말인가 광명족의 환국의 9환족은 바로 인류의 시조인 나반과 아만의 후손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인류의 시조인 한 남자(나반)와 한 여자(아만)가 바이칼 호에서 서로 떨어져 살다가 꿈에
천신의 가르침(神敎)을 받고 바이칼호를 건너 바이칼호 부근 아이시타에서 만나 결혼했다는 것이다.
나반과 아만 이 두 분이야말로 유대민족이 말하는 약6천 년 전의 아담과 이브보다도 수천 년이나
앞선 현 인류의 진정한 시조인 것이다.
참고자료
문화콘텐츠닷컴 원문보기
[네이버 지식백과] 나반과 아만 (문화콘텐츠닷컴 (문화원형백과 한국설화 인물유형),
2005, 한국콘텐츠진흥원)
한국설화 인물유형
환인천제
분류 |
문학 > 초월적 인물형 > 창세(創世)형 |
---|
• 갈래 : 신화
• 시대 : 삼국이전
• 신분 : 왕족
• 지역 : 기타
• 출처 : 편집부 ()
• 내용 :
옛날 환국(桓國)이 있었나니 백성은 부유하였고 또 많았다. 처음 환인(桓仁)께서 천산(天山)에 올라
도를 얻으시사 오래 사셨으니 몸에는 병도 없었다. 천신(天)을 대신해서 널리 교화하시니 사람들로
하여금 군대를 동운하여 싸울 일도 없게 하였으며, 누구나 힘껏 일하여 주리고 추위에 떠는 일이
없게 되었다.
다음에 혁서환인(赫胥桓仁), 고시리환인(古是利桓仁), 주우양환인(朱于襄환인), 석제임환인(釋帝壬桓仁),
구을리환인(邱乙利환인)에 전하고, 지위리환인(智爲利桓仁)에 이르더라. 환인은 혹은 단인(檀仁)이라고도
한다. ... 옛글에 말한다. 파나류산(波奈留山) 밑에 환인(桓仁)의 나라가 있으니 천해(天海) 동쪽의 땅이다.
파나류의 나라라고도 하는데 그 땅이 넓어 남북이 5만리요, 동서가 2만여리니 통틀어 말하면 환국(桓國)이요,
갈라서 말하면 비리국, 양운국(養雲國), 구막한국(寇莫汗國), 구다천국(句茶川國), 일군국(一群國),
우루극(虞婁國, 혹은 필나국(畢那國)), 객현한국(客賢汗國), 구모액국(句牟額國), 매구여국(賣句餘國,
혹은 직아다국(稷兒多國)), 사납아국(斯納阿國), 선비국(鮮裨國, 혹은 시위국(豕韋國) 또는
통고사국(通古斯國)), 수밀이국(須密爾國)이니 합해서 12국이다. 천해는 지금 북해(北海)라 한다.
7세에 전하여 역년 3,301년, 혹은 63,182년이라고 하는데 어느 것이 맞는 말인지 알 수가 없다.
참고자료
문화콘텐츠닷컴 원문보기
[네이버 지식백과] 환인천제 (문화콘텐츠닷컴 (문화원형백과 한국설화 인물유형),
2005, 한국콘텐츠진흥원)
고마리
육우의 <다경>에 나타난 동이족의 옛 차생활
육우의 <다경>에는 제7장 차의 옛일(칠지사 七之事)을 기록한 장(章)이 나타난다.
현재 사단법인 국어고전문화원장이자 원광대학교 디지털대학 석좌교수이신
행원 윤경혁(杏園 尹庚爀) 선생님께서 쓴 그의 저서 <행원차문화고전>중에서
차경(茶經) 제7장 차의 옛일의 서문부를 그대로 인용하여 본다.
" 본 장은 육우(陸羽) 당시까지 전하던 차(茶) 고전을 망라한 48고사(故事)인데
동이(東夷) 연원의 진(晉)이 대종을 이루고 있다.
차는 동양의 공통문화이다. 또한 우리 문화의 조감에 있어서나
민족사의 광정(匡正)에 있어서도 놓치지 말아야 할 전통문화이기도 하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육지음(六之飮)까지 몇 한자의 음(音)을
원주(原註)에 밝힌 바 꼴, 소리, 뜻(形, 音, 意)글자를 음성문자(音聲文字)로
맞추려는 저자의 고충(苦衷)이 보인다.더우기 본 장에서는 동양의 공통문화인
음차역사(飮茶歷史)가 중국문화(前·後漢 , 隋 , 唐 등 ) 영역에서는
허술하게 취급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민족문화의 연원(淵源)으로 볼 때에 이는 당연하다.
아직도 초기문자(初期文字)까지를 있지도 않았던 중국한자(中國漢字)로 강변하거나,
중국문화사를 중국만의 역사영역으로 생각하는 피식민 사관(被植民 史觀) 세력이
엄존(儼存)하고 있어서 반도사관으로 순치(馴致)시킨 이러한 배류(輩類)는
자폄자폐주의(自貶自蔽主義)의 잔당들이랄 수 밖에 없다.
본 장은 동방의 음차 생활문화에 관한 문헌들이 가장 많이 인용하는 고사들이다.
<다경 茶經>이 저술되기 약 10년 전, 안휘성 청양현에 신라승 김지장(金地藏)이 심어
이름을 공경차(空梗茶)라 했다는 명차효시(名茶嚆矢)의 다사(茶史)가
결재(缺載)됨을 첨언한다. "
- 윤경혁 역저 <행원차문화고전 - 역대 주요 고전 발췌>2006.12월 간행.홍익재.
99쪽에서 인용
위의 글에서 행원 선생님은 한자가 우리 동이족이 만들었던 상형문자라고 주장하고 있다.
육우 <다경>의 제7장 차의 옛일의 고사들도 대부분 동이족이 세운 나라인
진(晉)나라의 차의 고사들이 많이 수록되어 있다하여 다시 제7장을 읽어보니
틀림이 없는 일이다.
지나친 국수주의적 민족주의는 경계함이 마땅하나,우리 한민족의 우수한 문화유산을
폄하하는 자폐주의에서는 우리가 하루 빨리 벗어나야 한다.
헌식대와 인동덩굴
거미고사리
거미고사리와 부싯깃고사리(잎이 말린 것)
-부싯깃고사리는 건조한 것을 비벼서 말린 쑥, 수리취 등과 같이
부싯돌 발화용으로 사용됨.
대조루(對潮樓)와 범종루
전등사 경내로 들어서 가장 먼저 만나는 아담한 2층 건물이 대조루이다.
대웅전으로 오르는 문루 역할을 하고 있으며, 2층에 '傳燈寺'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이곳에 오르면 서해바다의 조수가 한눈에 들어온다 해서 대조루(對潮樓)라 한다.
목은 이색이 누상에 올라 읊은 시가 액자에 담아져 걸려 있는데
그의 호쾌함 속에 잠겨든 스산한 마음이 잘 나타나 있다. 전운이 끊이지 않았던 탓이리라.
제목이 「누각에 올라」[樓上韻]이다.
나막신 신고 산에 오르니 흥은 절로 맑고
전등사 노승은 나의 행차 인도하네
창 밖의 먼산은 하늘 끝에 벌였고
누(樓) 밑에 부는 바람 물결치고 일어나네
세월 속의 역사는 오태사(俉太史)가 까마득한데
구름과 연기는 삼랑성에 아득하구나
정화궁주의 원당(願)을 뉘라서 고쳐 세우리
벽기(壁記)에 쌓인 먼지 내 마음 상하게 하네
대조루는 영조의 시주로 대웅전과 함께 중수(영조 25)했으나, 헌종 7년(1841)에 다시 지었다.
그 후 두 번의 중수를 거쳐 오늘날의 건물로 남아 있다.
대조루 안에는 지금도 『조선왕조실록』과 왕실의 족보를 보관하던 보각(譜閣)의 현판인
선원보각, 장사각(藏史閣), 추향당 등의 편액이 걸려 있다.
이 대조루가 언제부턴지 기념품 판매 가게로 변해 있어 찾는 이의 마음을 안타깝게 한다.
인천광역시 문화재자료 제7호이다.
- [네이버 지식백과] 전등사 (답사여행의 길잡이 7 - 경기남부와 남한강,
초판 1996, 15쇄 2012, 돌베개)
표주박형 수곽
범종각 옆에 있는 느티나무에 새긴 달마상
범종각
전등사 범종
보물 제393호
전등사에 소장된 높이 1.64m, 밑지름이 1m인 중국 송나라 때 동종이다.
종몸의 아래 위에 8개의 사각형 구획을 마련하고 그 안에 새긴 뚜렷한 명문이 남아 있다.
명문 내용으로 이 종이 북송(北宋) 철종 소성(紹聖) 4년(1097)에 제작한
하남성 백암산(百巖山) 숭명사(崇明寺)의 종이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에 전래된 경위는 알 수 없다.
다만 일제 말기 군수물자 징발에 전등사 범종을 강제 공출당했다가
우연찮게 지금의 동종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범종을 잃어버린 전등사 주지스님은 해방이 되자마자 일제 때 빼앗겼던 종을 찾기 위해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인천 항구를 뒤지고 다녔다고 한다.
그때 누군가가 부평 군기창 뒷마당에 큰 동종이 하나 있다고 일러주어
달려갔더니 전등사 종은 아니었다.
주지스님은 어떻든 임자 없는 이 종을 가져가야겠다며 운반해왔다고 전하는데,
전등사 범종보다 큰 대종이었다.
국내에는 중국종이 몇 있으나 그 중 가장 우수한 것으로 꼽힌다.
이 종은 우리나라 범종과는 달리 음통이 없다.
쌍룡이 등을 마주해 꼭지를 이루고, 용두 주위에는 16잎의 연꽃이 둘러져 있다.
종몸을 상중하로 나눠 띠를 두르고 매화문을 새겼으며,
띠 윗부분에 8괘를 배치한 것도 특이하다. 종몸 아래로 4개의 당좌(撞座)가 있다.
전체적으로 큰 무늬 때문인지 장중한 맛이 있으며, 또한 소박한 솜씨도 엿보인다.
종소리도 맑고 청아하다. 보물 제393호이다.
- 네이버 지식백과] 전등사 (답사여행의 길잡이 7 - 경기남부와 남한강,
초판 1996, 15쇄 2012, 돌베개)
극락암
종각 뒷 편에 있습니다.
전등사 조실 서운스님과 상묵스님이 머물던 곳입니다.
수행공간이라 일반인의 출입을 금한다고 해 놓았더군요.
- 네이버브로그 <Rockyu 205님의 블로그>
[출처] 강화도 진강산에서 정족산 전등사까지 연계산행(5/6편)| 작성자 산신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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