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고분벽화의 조성시대 구분

2013. 6. 4. 09:15우리 역사 바로알기

 

 

 

    현재 고구려의 수많은 무덤 가운데 벽화가 남아있는 것으로 확인된 무덤은 대략 100여기 이상이며, 4세기에서 7세기 사이 약 300년 동안에 집중적으로 축조되었다고합니다. 비슷한 시기인 위진수당의 700년 동안(3~10세기) 그 넓은 중국 지역에서 발견된 벽화고분이 80여기인 점을 감안하면 대단한 수량이라 할수있어요.. 그런면에서 본다면 고구려는 분명 다른나라와 다른 천하관을 가지고 있었다 할수 있을것 같습니다.


    고구려의 벽화고분은 크게 두 지역에 나누어져 있습니다. 하나는 고구려 전반기의 수도 국내성이 자리하였던 압록강 중류 집안시 지역에 현재까지 30기가 발견되었고. 집안은 고구려의 두 번째 수도인 국내성이 위치한 곳으로, 2대 유리왕 22년(서기 3년) 겨울 10월에 고구려의 건국지였던 홀본(졸본)의 오녀산성에서 이곳으로 천도하여 424년간 국가를 경영하던 곳이라 합니다. 오녀산성이 있는 지금의 환인지역에서 미창구장군묘라 불리는 벽화고분이 1기 발견되었으므로, 만주의 집안과 환인 일대에 모두 30기가 있는 셈이다. 다음 장수왕 15년(427년)부터 241년간 고구려 후반기의 수도였던 평양 일대에 안악 지역 13기를 포함한 73기가 발견되었습니다.



    고구려의 벽화 중에서 축조 연대를 명확히 알 수 있는 고분은 겨우 두 개 정도에 지나지 않다고 합니다. 375년의 묵서명을 지닌 안악3호분과 역시 408년의 묵서명을 지닌 덕흥리고분이 그것이고요. 나머지는 절대 편년을 알 수는 없기 때문에 무덤의 구조와 벽화의 주제 등을 비교하여 추정하게 됩니다 ...대부분 이렇게 고분의 이름이 지어지는데요..


    고구려의 벽화고분은 주제의 변화 추이상 크게 세 시기로 나누는 것이 일반적이다. 제1기는 인물과 생활풍속도를 위주로 그린 벽화들인데, 3세기말에서 5세기초에 걸치는 기간으로 고구려의 영토가 크게 확장되는 시기와 맞물리고. 제2기는 5세기 중엽에서 6세기 전반에 걸치는 시기로 생활풍속 주제에다 집안지역은 장식무늬 주제가, 평양지역은 사신도 주제가 가미됩니다. 제3기는 6세기 중엽에서 7세기 고구려의 망국시기까지이며, 널방만 있는 외방무덤에 사신도 주제를 주로 그렀다고 합니다.



제1 벽화시대 (3세기말-5세기초) : 인물생활풍속도 주제

:동명왕릉, 안악3호묘, 감신총, 집안12호무덤, 씨름무덤, 안악1호묘, 연꽃무덤, 덕흥리벽화묘, 용강대묘, 수산리벽화묘, 안악2호묘, 만보정벽화묘, 평양역전벽화묘, 태성리2호묘, 복사리벽화묘, 태성리1호묘, 마선구1호묘, 집안산성밑 무덤떼 332호묘, 거북잔등무늬묘(귀갑총), 산련화총, 고산동7호묘, 고산동10호묘, 동암리벽화묘 등



제2 벽화시대 (5세기 중엽-6세기 전반) : 생활풍속도 + 사신도(평양) /장식무늬(집안) 병행
:약수리벽화고분, 춤무덤(무용총), 팔청리벽화고분, 둥근무늬무덤(환문총), 세칸무덤(삼실총), 장천1호분, 별무덤(성총), 천왕지신총, 대안리1호분, 쌍기둥무덤(쌍영총), 사냥무덤(수렵총), 덕화리1호분, 덕화리2호분, 진파리4호분(평강공주와 온달장군묘로 추정) 등



제3 벽화시대 (6세기 중엽-7세기 중엽) : 사신도 중심 주제

:호남리사신총, 개마총, 진파리1호분, 통구사신총, 집안5회분 4호묘, 집안5회분 5호묘, 내리1호분, 강서중묘, 강서대묘, 요동성총, 장산동1·2호분, 집안산성하 고분군 983호분, 고산리9호분, 고산리1호분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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