名言 名詩 P-1,000.

2014. 12. 2. 00:21들꽃다회

 

 
 
名言 名詩 P-1,000.
蘆原叟 2011.07.23 00:00
  

 

 

#4,374.동각(東閣) 오세문(吳世文) 고원(誥院) 여러 학사(學士)에게

              드린 삼백운() 시에 차운하다 幷序.

 

   복양(濮陽) 오공 세문이 북사(北使)로부터 탄핵을 받고 서울로 돌아와 한가히 지내던 어느 날, 동각 김서정(金瑞廷)과 함께 원외(員外) 정문갑(鄭文甲)의 임원(林園)에 술자리가 베풀어졌다. 나도 그곳을 방문하여 말석(末席)에 참여하였는데 오공이 나에게 자랑하기를, '고금의 시집 중에 삼백 운의 시를 지은 사람은 없는데 나는 이 삼백 운의 시를 지어 고원의 여러 학사에게 드렸으니, 자네가 화답할 수 있겠는가.' 하면서 그 시를 꺼내 보였다. 나는 그날 집으로 돌아와 차운, 화답하여 오공에게 보내고 아울러 정 원외와 김 동각에게도 이를 알렸다.

'동도는 옛날 좋은 나라로, 궁전의 터 남아 있으니

   東都古樂國<동도고락국>   宮殿有遺基<궁전유유기>

신라 제56대 왕 김부(金溥)가 우리 태조에게 항복하자 태조가 맏 공주를 아내로 삼아 주고 신라를 경주(慶州)로 고쳐 그의 식읍(食邑)으로 하게 하였다. 오공이 자신은 신라왕의 외손이라 말하였고 또 동경(東京)에 우거(寓居) 하였었으므로, 동경에 대한 일을 말하였다.

역사에서 지난 자취 엿볼 수 있고, 순후한 풍속 옛날 되새길 수 있으며

   靑史窺陳迹<청사규진적>   淳風記昔時<순풍기석시>

진 나라 강에는 처음으로 말이 건너갔고, 주 나라 낙수에는 비로소 거북점을 쳤네

   晉江初渡馬<진강초도마>   周洛始鑽龜<주락시찬구>

낙읍은 주의 동경이므로 경주에 비유하였다.

() 나라~건너갔고 : 동진(東晉)이 강동(江東)으로 천도(遷都)했음을 말한다. []은 진 나라의 성이 사마(司馬)였으므로 한 말인데, 진 나라는 오호(五胡) 십육국(十六國)의 난에 시달려 원제(元帝) 때에 결국 강을 건너 강동으로 천도한 때문에 동진이라 불리게 되었다.

() 나라~쳤네 : 주 성왕(周成王)이 낙읍(洛邑)으로 천도하기 위하여 주공(周公)에게 명하여 동도(東都)를 만들도록 하였다. 이에 주공이 낙읍을 완성한 다음 낙고(洛誥)를 지어 바쳤는데, 여기에 '나는 간수(澗水)의 동쪽과 전수(瀍水)의 서쪽에 대하여 거북점을 쳤더니 낙읍이 길하다.' 하였으므로 한 말이다.

발해는 둘러 못이 되고, 부상은 둘러 울이 되어

   渤海環爲沼<발해환위소>   扶桑繚作籬<부상료작리>

천년 동안의 왕업을 열고, 여러 성왕(聖王)이 평화를 누렸네

   千年開際會<천년개제회>   累聖享雍熙<누성향옹희>

<신라기(新羅記)>'일천 년의 운을 응했다.'하였다 <신라추기(新羅㮲記)>에는 '99년이었다.' 하였다.

부상(扶桑) : 중국의 동해에 있었다는 나라로 곧 일본(日本)을 가리킨다.

비로소 궁현의 음악을 제정하고, 처음으로 절찬하는 의식을 마련하며

   肇制宮懸樂<肇制宮懸樂>   初陳蕝纂儀<초진절찬의>

대하의 근검함을 본받았고, 인지의 황괴한 것을 물리쳤네

   儉勤師大夏<검근사대하>   荒怪黜因墀<황괴출인지>

<습유기(拾遺記)>'인지 나라에서 다섯 개의 발이 달린 짐승을 진상해 왔는데 생김새가 사자(獅子)와 같다.' 하였고 소동파(蘇東坡)의 시에는, 황괴환수문자년(荒怪還須問子年)이라 하였다.

궁현(宮懸)의 음악 : 궁현은 옛날 천자가 현악(懸樂)하는 제도. <주례(周禮)>춘관 소서(春官 小胥)'현악하는 위치는 천자는 궁현, 제후는 헌현(軒懸)한다.' 하였다.

절찬(蕝纂)하는 의식(儀式) : 절찬은 띠를 묶어서 위치를 표한 다음 조회하는 의식을 연습하는 것을 말한다. <한서(漢書)>숙손통전(叔孫通傳)'제자 1백여 명과 절찬을 만들어 야외에서 연습했다.' 하였다.

대하(大夏) : ()의 우왕(禹王)이 만든 음악. <춘추좌전(春秋左傳)>양공(襄公) 29년에 '()의 공자(公子) 계찰(季札)이 대하의 춤을 보고 '아름답다, 근면하면서도 덕으로 여기지 않으니 우()가 아니고서야 누가 이런 덕을 닦겠는가.' 했다.' 하였다.

한신 같은 국사를 등용하고, 공규같은 조신을 대우했네

   國士登韓信<국사등한신>   朝臣重孔戣<조신중공규>

은덕은 우로(雨露)와 같았고, 호령은 뇌정(雷霆)과 같았네

   恩榮同雨霈<은영동우패>   號令劇雷馳<호령극뇌치>

문물(文物)은 풍운처럼 융성하였고, 성덕을 구가한 세월 길기도 하였네

   冠帶風雲盛<관대풍운성>   謳歌日月遲<구가일월지>

누가 평자의 부를 지었던가, 이에 맹견의 사 볼 만하네

   誰成平子賦<수성평자부>   堪睹孟堅辭<감도맹견사>

평자가 동경부(東京賦)를 지었으므로 한 말이다. 맹견은 동도부(東都賦)를 지었다.

한신(韓信) 같은 국사(國士) : 한신은 한()의 명장으로 유방(劉邦)을 도와 천하를 통일한 다음 그 공로로 초왕(楚王)에 봉해졌으나 뒤에 회음후(淮陰侯)로 강봉되었다. 국사는 온 나라가 추앙하는 선비란 뜻인데, 소하(蕭何)는 일찍이 한신을 칭찬하여 둘도 없는 국사라 하였다.

공규(孔戣) : () 나라의 명신. 헌종(憲宗) 때 간의대부(諫議大夫)가 되어 이섭(李涉)의 망상(罔上)하는 죄상을 탄핵하고 이소화(李少和)최이간(崔易簡)의 옥사(獄事)를 판결했으며, 목종(穆宗) 때에 사퇴를 빌자, 한유(韓愈)'조정에 공규 같은 인재는 3~4명밖에 되지 않으니, 사퇴를 만류해야 한다.' 하였다.

평자(平子)의 부() : 평자는 후한(後漢) 때의 문장가 장형(張衡)의 자(). 그때 천하가 태평하여 사치를 힘쓰므로 그가 낙양(洛陽)에 대한 동경부와 장안(長安)에 대한 서경부(西京賦)를 지어 온갖 풍물의 아름다움과 산천의 내력을 서술하였다.

맹견(孟堅)의 사() : 맹견은 후한 때의 사관(史官)이었던 반고(班固)의 자(). 그 역시 후한의 수도 동경에 대한 동도부를 지어 풍물의 변천을 읊었다.

국토는 성기에 맞게 정리하고, 농사는 토질을 따라 장려했네

   經野當星紀<경야당성기>   耰甿循土宜<우맹순토의>

<주례>'농사는 토질에 따른다.' 하였다. 이미 동경을 주()의 낙읍에 비유하였으므로 한 말이다.

성기(星紀) : ()()오성(五星)의 종()과 시()가 되는 남두성(南斗星)과 견우성(牽牛星)을 가리킨다.

건곤은 서약으로 측정되고,조화는 노추와 같네

   乾坤歸黍籥<건곤귀서약>   造化入爐槌<조화입노퇴>

무쇠를 씹는 충신의 담이요, 구슬을 연한 묵객의 시이네

   嚼鐵忠臣膽<작철충신담>   聯珠墨客詩<연주묵객시>

경상의 저택은 고기의 비늘처럼 즐비하고, 제왕의 비석은 교룡(蛟龍)의 머리처럼 우뚝하네

   魚鱗卿相宅<어린경상택>   螭首帝王碑<이수제왕비>

태학에서는 삼로를 맞아들이고, 홍려시(鴻臚寺)에서는 사이를 받아들이며

   太學迎三老<태학영삼노>   鴻臚受四夷<홍려수사이>

누각은 봉이 깃들었음을 알겠고, 관사는 용으로 표시했음을 알겠네

   樓諳巢鳳閣<누암소봉각>   官認紀龍司<관인기룡사>

날아갈 듯한 두 채의 궐이 벌여 있고, 출렁거리는 커다란 못이 패였네

   翼翼呀雙闕<익익하쌍궐>   泱泱闢大池<앙앙벽대지>

<신라기>'벽골지(碧骨池)를 쌓았고, 또 궁중에 큰 못을 팠다.' 하였다.

건곤(乾坤)~측정되고 : 십이율(十二律)의 하나인 황종(黃鐘)이 만사(萬事)의 근본이 됨을 말한 것이다. 황종의 관()은 검은 기장알 12백개가 들어가는데, 이것은 양()1()에 해당하는 바 지금의 작()이 된다. 황종의 관은 도량형(度量衡)의 기본이므로 천지만물을 측정할 수 있다는 뜻이다.

조화(造化)~같네 : 노추(爐槌)는 쇠붙이를 달구고 두들기는 기구로 곧 인간의 만사가 도야(陶冶)에 의하여 이루어짐을 말한 것이다.

태학(太學)에서는~맞아들이고 : 삼로(三老)는 정직(正直)고명(高明)침잠(沈潛)의 삼덕(三德)을 아는 장로(長老)로 한 사람이라고도 하고 세 사람이라고도 하는데, 이 말은 <예기(禮記)> 악기(樂記)'태학에서 삼로와 오경(五更)에게 음식을 대접했다는 말에서 나온 것이다'

홍려시(鴻臚寺)에서는~받아들이며 : 사이(四夷)는 동이(東夷)서융(西戎)남만(南蠻)북적(北狄)을 가리키는데, 홍려시는 외교를 맡은 직책이므로 한 말이다.

선진은 기이한 자치를 남겼고, 현성은 위대한 규범을 보였네

   仙眞留異跡<선진류이적>   賢聖揭宏規<현성게굉규>

<신라기>에 선랑(仙郞)의 사적들이 있다.

견수는 동대를 짝하였고, 교천은 좌이를 모방 하였네

   犬首侔東岱<견수모동대>   蛟川倣左伊<교천방좌이>

<신라기>'견수사(犬首祠)가 있다.' 하였고, 동도부에 '대산(岱山)에 돌을 새기고 숭산(嵩山)에 제()를 드렸다.' 하였다. <삼국사기>'동경에 교천이 있다.' 하였고 동경부에 '좌편에는이수(伊水), 우편에는 전수(瀍水)가있다' 하였다.

연한 띠뿌리처럼 준사(俊士)가 많았고, 단단한 금석처럼 깊은 계책 간직하였네

   茹連多衆彦<여련다중언>   石畫祕深惟<석화비심유>

악작은 날개를 나란히 하고, 화류는 고삐를 잇달았네

   鸑鷟爭騈翼<악작쟁병익>   驊騮競接綏<화류경접수>

이선은 다 고귀한 자제들이요, 비봉 또한 청수(淸秀)한 자질들이네

   珥蟬皆貴冑<이선개귀주>   批鳳亦淸姿<비봉역청자>

이불을 덮어 준 풍표(馮豹)를 하찮게 여기었고, 옷자락을 잡아당긴 신비(辛毗)를 사모하였네

   覆被應欺豹<복피응기표>   索裾或慕毗<색거혹모비>

규격 있는 문장은 절벽에 과시하고, 신기한 계략은 시초에 비교되었네

   遒文誇絶壁<주문과절벽>   神略較靈蓍<신략교령시>

인범의 생황 청아하였고, 홍유의 보불 드날렸네

   仁範笙簧雅<인범생황아>   弘儒黼黻披<홍유보불피>

박인범(朴仁範)과 설총(薛聰)을 말한 것이다.

악작(鸑鷟)~잇달았네 : 악작은 봉황과 같은 신조(神鳥)로 학사(學士)들을 비유한 것이며 화류(驊騮)는 대추 빛깔의 준마(駿馬)로 귀인들을 비유한 것이다.

이선(珥蟬)~자질들이네 : 이선은 초선관(貂蟬冠)으로 한대(漢代)의 시중(侍中) 상시(常侍)들이 쓰던 관인데 전()하여 높은 벼슬아치들을 가리킨 것이며, 비봉(批鳳)은 봉각(鳳閣)에서 비답(批答)을 수정하는 학사(學士)들을 가리킨다.

이불을~풍표(馮豹) : 풍표는 후한(後漢) 사람으로 자는 중문(仲文). 일찍이 낭관(郞官)이 되어 일을 아룄으나 허락하지 않자, 저녁에서부터 아침까지 성()에 부복하고 있었다. 이에 숙종(肅宗)이 기문랑(期門郞)으로 하여금 비단 이불을 갖다 덮어주게 하였다.

옷자락을~신비(辛毗) : 신비는 삼국(三國) 때 위() 나라 사람으로 자는 좌치(佐治). 문제(文帝) 때에 시중(侍中)이 되어 직간(直諫)을 좋아하였다. 한번은 문제가 기주(冀州)의 백성을 옮기려 하므로 직간하였으나, 문제가 듣지 않고 일어나 안으로 들어가자 임금의 옷자락을 잡아당기며 만류하였다.

인범(仁範)의 생황(笙簧) : 박인범은 신라(新羅) 사람으로 당() 나라에 들어가 빈공과(賓貢科)에 급제했으며 시문(詩文)에 능하 였다. 생황은 관악(管樂)의 일종으로 아악(雅樂)에 사용된다.

홍유(弘儒)의 보불(黼黻) : 홍유는 신라의 명유(名儒) 설총. 보불은 관복(官服)에 수놓은 무늬인데 곧 훌륭한 예악문물(禮樂文物)을 가리킨다.

가사(歌辭)가 청아하니 장적 소리 멀리 들리고, 지취가 고상하니 복건차림 아름다워라

   辭淸長笛嘏<사청장적하>   意逸幅巾咨<의일폭건자>

저마다 앞을 다퉈 조반(朝班)에 오르거니, 누가 정무(政務)의 많음 사양하랴

   競躡班聯緊<경섭반련긴>   誰辭政事埤<수사정사비>

고운 같은 금마객은, 동해의 옥림 가지였네

   孤雲金馬客<고운금마객>   東海玉林枝<동해옥림지>

최치원(崔致遠)의 자는 고운인데 당()에 들어가 단번에 급제하자, 동년(同年) 고운(顧雲)'한 화살에 금문(金門)의 사책(射策)을 쏘아 명중시켰다.' 고 시를 지어 찬양하였다.

동해(東海)~가지였네 : 동해는 우리나라를 가리킨 것이며 옥림(玉林)은 옥과 같은 나무의 가지란 뜻으로 최치원은 우리나라의 훌륭한 문장가임을 말한 것이다.

금문(金門)의 사책(射策) : 금문은 한대(漢代) 궁문(宮門)에 있던 금마문(金馬門)의 약칭으로 후세에는 한림원(翰林院)을 가리키게 되었다. 사책(射策)은 옛날 선비를 시험하던 한 방법으로 경서(經書) 또는 정치상의 의문을 죽간(竹簡)에 쓰게 하여 이것으로 우열을 분별하던 제도인데 곧 과거를 가리킨 것이다.

사책으로 중국을 울려, 사해까지 진동시켰으니

   射策鳴中國<사책명중국>   馳聲震四陲<치성진사수>

높은 이름이 당시에 울려 퍼지고, 영원한 여운 지금도 메아리치네

   高芬繁肹蠁<고분번힐향>   遺韻遠委蛇<유운원위사>

서경부(西京賦)'소리가 맑고 길어 멀리 메아리친다.' 하였고, 그 주()'남은 소리가 굽이친다.' 하였다.

염한이 다하려 하는 시대에, 어진 이는 묵이처럼 은둔한 이 많았네

   世欲終炎漢<세욕종염한>   賢多匿黙台<현다닉묵태>

신라의 말기를 말한다. '<주서(周書)>'치봉(治峯)의 본래 성은 묵이였는데 난세(亂世)를 피하여 치봉으로 고쳤다.' 하였고 <광운(廣韻)>의 지 자 운(支字韻)과 이 자 주(台字注)'성이니, <성원(姓苑)>에 나온다' 하였다.

염한(炎漢) : 한 나라는 화덕(火德)으로 왕노릇했다 하여 칭한 말인데, 후한은 동경에 도읍했으므로 우리나라의 동경인 경주에 도읍한 신라를 비유한 것이다.

세상이 다시 하나로 통합되고, 나라에 영재가 배출되었네

   寰區歸統壹<환구귀통일>   古國産英奇<고국산영기>

부자는 더욱 수기(秀氣)를 흠뻑 받아, 좋은 시절 유독히 뛰어났네

   夫子尤鍾秀<부자우종수>   淸時特挺姿<청시특정자>

구경 중에 역경을 더욱 좋아하고, 삼보에는 자비를 선두로 삼았네

九經偏嗜易<구경편기역>   三寶最先慈<삼보최선자>

사조(謝朓)의 저작을 무색케 하고, 서이(徐摛)의 음와한 것을 일소하였네

制作平呑朓<제작평탄조>   哇淫一掃摛<왜음일소리>

이미 천리족을 달렸고, 일찍이 사시피를 갖췄네

早騰千里足<조등천리족>   曾備四時皮<증비사시피>

강직(剛直)한 것은 이화정과 같고, 풍류는 원효니와 같았네

鯁正李和鼎<경정이화정>   風流袁孝尼<風流袁孝尼>

시재(詩才) 칠보에 지은 것보다 높고. 효도는 삼태를 물은 것보다 지났네

詩高成七步<시고성칠보>   孝過問三笞<효과문삼태>

흰 옥은 본시 더럽히기 어렵고. 저울대는 어찌 맘대로 속일쏜가

白玉元難汚<백옥원난오>   懸衡豈易欺<현형기역기>

청수한 골격은 쌍학의 정수(精髓)이며, 미려(美麗)한 시문은 수잠의 토사(吐絲)일세

骨淸雙鶴髓<골청쌍학수>   文麗水蠶絲<문려수잠사,

수잠은 빙잠(氷蠶)과 다른 종류이다.

삼보(三寶) : 불가에서 말하는 불()()().

사조(謝朓) : 남제(南齊)의 문장가이다. 자는 현휘(玄暉)로 특히 오언시(五言詩)에 능하였다.

서이(徐摛)의 음와(淫哇) : 서이는 남조 때 양() 나라 사람으로 자는 사수(士秀). 신기한 문장을 만들었는데 곧 염문체(艶文體)로서 궁체(宮體)라 이름한바, 애정의 시문이 되었으므로 음와라 한 것이다.

천리족(千里足) : 하루에 천 리를 달리는 준마(駿馬)를 말하는데 전()하여 뛰어난 재질을 칭한다.

사시피(四時皮) : 마음 속에 시비판단이 분명함을 말한다. ()의 저부(褚裒)는 고귀(高貴)한 풍도가 있었으며 기국(器局)이 어났다. 환이(桓彛)'피부 속에 포폄(褒貶)이 있다.' 하였으며, 사안(謝安)은 사시의 기후가 모두 갖춰졌다.' 하였는데 <춘추(春秋)>는 원래 봄은 양()으로서 포상(褒賞)에 해당하고 가을은 음()으로서 폄벌(貶罰)에 해당하므로 명명한 것임을 들어 말한 것이다.

이화정(李和鼎) : 화정은 당()의 시어사(侍御史)였던 이감(李甘)의 자(). 그는 무척 정직하였는데, 교활한 정주(鄭注)가 재상되기를 구하자 이감은 '재상은 첫째 덕망이 있어야 하고, 다음은 문예가 있어야 하는데, 정주가 어떤 사람인데 재상을 구한단 말인가. 만일 그에게 임명장이 내리면 찢어버리겠다.' 하였다. 그 후 과연 정주에게 임명되므로 이것을 찢었다가 죄를 얻어 좌천되었다.

원효니(袁孝尼) : 효니는 진()의 학자 원준(袁準)의 자. 그는 충신공정(忠信公正)하였고,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성품이 침착하고 겸손하였으며, 정치에 관한 저서가 10여만 자에 이르렀다.

칠보(七步)에 지은 것 : 삼국 시대 위()의 조식(曹植)이 지은 칠보시(七步詩)를 말한다. 조식은 뛰어난 문재(文才)가 있었는데이것을 시기한 형인 문제(文帝 조비(曹丕))는 일곱 걸음을 걷는 동안에 시를 짓게 하고 만일 못 지으면 벌을 주려고 하였으나 그는 과연 칠보 동안에 연두시(燃豆詩)를 지었다.

삼태(三笞)를 물은 것 : 옛날 주공(周公)의 아들 백금(伯禽)이 그의 숙부(叔父)인 강숙(康叔)과 함께 입조(入朝)하였다가 아버지인 주공을 세 차례 뵈었는데 번번이 매를 맞았다. 강숙의 제의로 상자(商子)라는 현인(賢人)을 찾아 그 이유를 물었더니 남산(南山)의 양지쪽과 음지쪽에 있는 두 나무를 보고 오라고 하였다. 그래서 가보니 남산 양지쪽에는 교()라는 나무가 쳐들려 있었고 음지쪽에는 자()라는 나무가 수그러져 있었다. 백금이 다녀와서 본 대로 말하자 상자는 '교는 부도(父道), 자는 자도(子道)를 의미한 것이다.' 말하였다. 백금이 그 이튿날 주공을 뵈올 때 정문에 들어서서는 빨리 걷고 당()에 올라서는 무릎을 꿇자 주공이, '어디서 군자를 만났더냐.' 하고 위로해 주었다.

수잠(水蠶) : 누에의 일종으로 길이가 6~7촌이나 되고, 흑색에 인각(鱗角)이 있으며 서리나 눈이 내릴 때에야 고치를 짓는데, 고치는 길이가 1척이나 되고 오색실이 나온다.

후학은 명령처럼 감화되고. 선비들은 조작처럼 모여드네

後學螟蛉化<후학명령화>   諸儒鳥雀隨<제유조작수>

공이 평소 제생(諸生)을 모아 가르쳤다.

명령(螟蛉) : 푸른 빛깔의 나비의 유충이다. 나나니벌은 이 유충을 물어다가 항상 자기를 닮으라고 하면 이 유충들이 나나니벌로 변한는옛말에 의한 것으로 의자(義子)나 후학(後學)들에 비유된다.

고상한 지조로 남다른 은총을 입었고, 경건한 마음으로 새로운 글을 올렸네

   濯纓承異睠<탁영승이권>   頮面奏新詞<회면주신사>

공이 평소 한림(翰林)이 되었었다.

꿋꿋한 지개 이미 높았으니. 어찌 고개 숙여 아첨하겠으며

   抗志曾高峭<항지증고초>   低顔肯哫訾<저안긍족자>

혜초를 꿰매 만든 패물 스스로 사랑했으니, 주머니 뚫고 나오는 송곳 엄폐하기 어려워

   自珍紉佩惠<자진인패혜>   難掩脫囊錐<난엄탈낭추>

술수(術數)는 금궤를 정통하고, 정신은 옥시를 터득했으니

   步緯該金櫃<보위해금궤>   精神檢玉匙<정신검옥시>

공은 음양설(陰陽說)에도 정통하였다. <당서(唐書)>예문지(藝文志)<금궤경(金櫃經)> 3권이 있다.

<황정경(黃庭經)>'구슬을 결속시키고 정을 단단히 하여 신근을 기르고 옥시와 금약을 항상 굳게 간직한다. [結珠固精養神根 玉匙金鑰常堅完]' 하였다. 공은 도가설(道家說)에도 밝았으므로 한 말이다.

혜초(蕙草)~패물 : 혜초는 향초(香草), 곧 현자(賢者)의 높은 지조를 표시한다.

주머니~송곳 : 훌륭한 재덕(才德)이 안에 있으면 저절로 나타난다는 뜻. 전국 시대 조() 나라 평원군(平原君)의 문객이었던 모수(毛遂)가 스스로 자신을 추천하자, 평원군은 선비가 세상에 있는 것은 마치 송곳이 주머니 속에 있는 것과 같아 끝이 저절로 나오게 된다고 한 말에서 나온 것이다.

옥시(玉匙)와 금약(金鑰) : 옥시 금약(玉匕金籥)이라고도 쓰는데, 옥시는 이[], 금약은 혀[]를 가리키며 전()하여 도가서(道家書)를 말한다. 

공은 구오의 장원(長遠)한 세계(世系), 또한 태백의 내려 온 유풍이라오

   句吳玄孫遠<구오현손원>   太伯素風垂<태백소풍수>

해내에 동방삭이요, 관동에 노비일세

   海內唯方朔<해내유방삭>   關東獨魯丕<관동독노비>

단편에는 침탁한 이를 비웃고, 고전에는 환기 모양을 분별하며

   短編嘲踸踔<단편조침탁>   古篆辨蠉蚑<고전변현기>

사도로는 한유와 견주고, 명성은 유희처럼 높았네

   師道肩韓愈<사도견한유>   時名揖庾羲<시명읍유희>

두 차례 동으로 가는 역마를 탔고, 세 차례 북으로 가는 수레를 탔으니

   再乘東去馹<再乘東去馹>   三駕北征轙<삼가북정의>

장쾌한 관광은 유주(幽州)와 계구(薊丘)를 자랑하고, 고상한 유람은 괵 땅과 미현(郿縣)을 아울렀네

   壯觀誇幽薊<장관과유계>   高遊繼虢郿<고유계괵미>

해우로 처음 수령(守令) 되었으니, 어느 누가 의이를 의심하랴

   薤盂初作守<해우초작수>   薏苡孰興疑<의이숙흥의>

치도(治道)가 융성하니 백성은 선정(善政)을 노래하고, 상서(祥瑞)가 드리우니 임금은 복록을 받았네

   理叶人歌政<리협인가정>   徵期帝受釐<징기제수리>

지방 풍속은 말갈(靺鞨)과 비슷하고, 변방 습속은 맹수(猛獸)와 같았으나

   土風猶帶鞨<토풍유대갈>   邊俗例如羆<변속례여비>

청독을 소탕하는 데 뭐가 어려우며, 전융도 견제할 수 있었으니

   靑犢何勞剪<청독하노전>   羶戎尙可縻<전융상가미>

위세는 먼 변방에 퍼지고, 충성은 귀신도 인정하였네

   威聲加絶塞<위성가절색>   忠信質靈祇<충신질령기>

큰 자라 어찌 샘에서만 놀겠는가, 나는 용이 바로 못에서 뛰쳐 나왔네

   巨鼈那遊井<거별나유정>   飛龍旋躍陂<비룡선약피>

공이 소환됨을 말한 것이다.

재명(才名)은 더욱 육궐과 같아졌고, 문한은 미지에게 맡겼네

   才英登陸厥<재영등육궐>   文翰委微之<문한위미지>

공이 수령에서 돌아와 다시 한림(翰林)이 되었다.

구오(句吳)~유풍이라오 : 오씨(吳氏)를 말한 것이다. 구오는 오() 나라로 구()는 오 지방의 초발성(初發聲). 태백(太伯)은 주 태왕(周太王)의 장자로 아우인 계력(季歷)에게 왕위를 인계하기 위하여 도망쳐 오()에 거하였는데 뒤에 무왕(武王)이 천하를 통일한 다음 그의 자손을 오 나라에 봉해 주었다.

동방삭(東方朔) : 전한(前漢) 사람으로 자()는 만청(曼倩). 해학과 문장에 능했으므로 선술(仙術)을 배웠다 한다.

노비(魯丕) : 후한(後漢) 사람으로 자는 숙릉(叔陵). 성품이 침착하고 학문을 좋아하여, 오경(五經)을 정통하였으며 <노시(魯詩)><상서(尙書)>를 가르쳐 당시의 명유(名儒)가 되었다.

침탁(踸踔) : 걸음이 일정하지 못하고 더딘 모양으로 문재(文才)가 둔함을 말한 것이다.

환기(蠉蚑) : 꿈틀거리는 벌레의 모양으로 고전(古篆)의 자획(字畫)을 가리킨 것이다.

한유(韓愈) : () 나라의 유학가(儒學家)이며 문장가. 일찍이 사설(師說)을 지어 사도(師道)를 말하였다.

유희(廋羲) : () 나라 사람으로 자는 의숙(義叔). 목제(穆帝)에게 풍간(諷諫)하는 시를 지어 올려 명망이 높았다.

해우(薤盂) : 염교와 물주발을 가리킨다. 후한(後漢) 때 방삼(龐參)은 한양 태수(漢陽太守)로 부임하여 그 고을의 처사 임당(任堂)을 맨 먼저 방문하였다. 임당은 말 대신, 문 앞에 큰 염교 한 뿌리와 물 한 주발을 내다 놓은 다음, 어린 손자를 안고 그 옆에 엎드려 있었다. 그는 한동안 생각하다가 물은 자기에게 청백하라는 뜻이요 큰 염교 뿌리는 자기에게 강성한 종친을 제거해 달라는 뜻이요, 손자를 안은 것은 불쌍한 백성을 돌봐 주라는 뜻임을 알고 깊은 감명을 받아 훌륭한 치적(治績)을 이룩하였다.

의이(意苡) : 마원(馬援)이 교지(交趾) 태수로 있다가 돌아올 때 약용(藥用)으로 율무를 가져왔는데 그가 사망한 뒤에 명주(明珠)와 문서(文犀)를 들여왔다는 참소를 당하였다.

청독(靑犢) : 후한 광무제 때 여러 반적(反賊) 중의 하나.

재명(才名)~맡겼네 : 육궐(陸厥)은 남제(南齊) 사람으로 자는 한경(韓卿). 젊어서부터 기개(氣槪)가 있었고 문장에 능하였다. 미지(微之)는 당()의 문장가 원진(元稹)의 자로 한림원(翰林院)에 들어가 여러 벼슬을 하였다.

누수(漏水)는 방울방울 떨어지고, 화전 그림자는 으리으리하네

   銀漏聲霑滴<은누성점적>   花甎影陸離<화전영육리>

임금의 제서(制書)견지에 받아 쓰고, 하사된 음식은 진미가 진진했는데

   制詞書繭紙<제사서견지>   宣饌飫瓊糜<선찬어경미>

하찮은 봉채의 독을 만나고, 말 많은 제비의 저해를 받아

   微毒遭蜂蠆<미독조봉채>   多言任鷾鴯<다언임의이>

'공이 한림으로 있다가 사건에 관련되어 탄핵을 받아 면직되었다'

권서는 백옥과 같고, 저술은 최기를 사모했네

   卷舒效伯玉<권서효백옥>   著述慕崔琦<저술모최기>

오도가 어찌 이대로 없어질소냐, 사문이 다시 일어나려는 바일세

   吾道寧終否<오도령종부>   斯文要復施<사문요복시>

한가히 사는 것은 반악(潘岳)을 본받았으나, 지난일은 반드시 맹기(孟岐)에 묻곤하네

   閑居雖效岳<한거수효악>   古事必咨岐<고사필자기>

<동명기(洞冥記)>'맹기는 청하(淸河)의 일사(逸士)로 나이가 7백세나되어 국초(國初)의 일을 말했다' 하였다.

화전(花甎) : 꽃무늬가 놓인 벽돌인데 한림원(翰林院) 북쪽 뜰 앞에 화전으로 깐 길이 있었으므로 한림원을 칭하게 되었다.

견지(繭紙) : 고려 때 생산되던 종이로 품질이 매우 좋았다.

권서(卷舒)~같고 : 출처(出處)의 의리가 정당함을 말한다. 백옥(伯玉)은 춘추(春秋) 시대 위() 나라의 현대부(賢大夫) 거원(蘧瑗)(). 그는 출처를 의에 맞게 하였으므로 공자는 그를 칭찬하여 '군자이다 거백옥이여, 나라에 도()가 있으면 벼슬하고 나라에 도가 없으면 거두어[] 감춘다.' 하였다.

최기(崔琦) : 후한(後漢) 사람으로 자는 자위(子瑋). 문장이 뛰어나 외척잠(外戚箴)백곡부(白鵠賦) 등을 지었다.

한가히~본받았으나 : ()의 반악(潘岳)이세상일을 상관하지 않고 한가히 살겠다는 뜻으로 한거부(閑居賦)를지었으므로 한 말이다.

폄척을 받을수록 이름은 더욱 드러나고, 능멸은 당할수록 의지 더욱 안정하더니

   貶斥名彌著<폄척명미저>   陵競志莫禔<능경지막제>

과연 은근한 소명을 받아, 융숭한 은총 다시 입었네

   果承申命密<과승신명밀>   更荷渥光熹<경하악광희>

붕새의 날개 몇 번이나 꺾이려다가, 난근이 다시 얽매이게 되었네'

   風翼幾垂退<풍익기수퇴>   蘭筋又見覊<난근우견기>

공이 다시 한림이 되었다.

난근(蘭筋)~되었네 : 어쩔 수 없이 다시 정사를 맡게 되었다는 뜻, 난근은 말 힘줄의 이름으로 명마(名馬)를 가리킨다. <상마경(相馬經)>'난근이 원중(元中)으로부터 솟아 있으면 하루에 천 리를 달린다.' 하였는데, 원중은 눈 밑 이정() 자 모양으로 움푹 들어간 것이라 한다.

성시는 모두 우의(寓意)가 있었고, 국폐(國弊)도 다스려지게 되었네

   聲詩皆有寓<성시개유우>   國病尙堪理<국병상감리>

묘한 재주는 삼절을 이루었고, 맑은 행실은 팔비를 제거했네

   妙藝標三絶<묘예표삼절淸修去八疪<청수거팔비>

문장은 이문(吏文)도 만들 수 있고, 정직은 길상(吉祥)을 받을 만하였네

   文章兼飾吏<문장겸식리>   正直合膺禧<정직합응희>

낮은 벼슬 법에 구애되고, 공의 재기(才器)는 재위(宰位)에 오를 만하네

   薄宦拘繩墨<박환구승묵>   公才稱鼎鼒<공재칭정자>

상설은 귀밑머리를 침노하는데, 강하(江河)는 장부(臟腑)에 소용돌이치네

   雪霜侵鬢髮<설상침빈발>   江海吼肝脾<강해후간비>

집안에는 먼지 낀 시루가 있고, 문앞에는 굴대가 부딪치는 수레가 많았네

   家有生塵甑<가유생진증>   門多擊轊輜<문다격세치>

유업(儒業)문총이 남아 있고, 충담은 검봉이 알아주리

   儒功文塚在<유공문총재>   忠膽劒鋒知<충담검봉지>

이미 소공의 인끈을 받고도, 오히려 동씨의 장막을 드리웠네

   已結蕭公綬<이결소공수>   猶垂董氏帷<유수동씨유>

아유(雅遊)백전에서 모시고, 국경(國慶)천기절(天祺節)에 참여했네'

   淸歡陪柏殿<청환배백전>   慶日趁天祺<경일진천기>

백낙천(白樂天)의 주에 '백전에서 임금을 모시고 놀이했다.' 하였다.

<금파유사(金坡遺事)>'한림(翰林)이 매년 천경절(天慶節)과 천기절이 돌아오면 한 달 전에 미리 역말을 내린다.' 하였다.

묘한~제거했네 : 삼절(三絶)은 시()()()의 뛰어난 재주를 말하며 팔 비(八疪)는 장자(莊子)의 말로, 해서는 안 될 일을 하는 총(), 돌아보지 않고 나아가기만 하는 영(), 남의 비위만 맞춰 말하는 유(), 시비를 가리지 않고 말하는 첨(), 남의 과실을 말하기 좋아하는 참(), 남을 이간질하는 적(), 나쁜 사람을 거짓 칭찬하는 특(), 선악을 가리지 않고 비위만 맞추어 자기 욕심을 채우는 험() 등 여덟 가지의 나쁜 점이라 한다.

상설(霜雪)은 소용돌이치네 : 상설은 백색을 나타낸 것으로 나이가 많아 머리나 수염이 세었지만 마음만은 강하처럼 넓음을 말한 것이다.

집안에는~많았네 : 집안은 가난하여 시루를 사용하지 않아서 먼지가 끼었지만 문 앞에는 귀객(貴客)들이 줄을 이어 수레끼리 서로 부딪칠 정도임을 말한 것이다.

문총(文塚) : 당 나라 유세(劉蛻)가 문장의 초고(草稿)를 차마 버리지 못하고 한데 모아 땅에 묻은 데서 나온 말로 곧 많은 공부를 가리킨다.

이미~드리웠네 : 소공(蕭公)은 전한(前漢)의 소육(蕭育), 동씨(董氏)는 동중서(董仲舒)를 가리킨다. 소육은 친구 주박(朱博) 등과 절친한 사이로 서로 추천하여 높은 벼슬에 올랐으며 이보다 앞서 왕길(王吉)과 공우(貢禹) 역시 이와 같았으므로 장안(長安)에는 '소주가 인끈을 매자 왕공이 갓을 새로 썼다.[蕭朱結綬 王貢彈冠]' 하였으며, 동중서는 <춘추(春秋)>를 전공하였으며, 경제(景帝) 때에 박사(博士)가 되어 장막을 드리우고 제자를 가르쳤는데 아무도 그의 얼굴을 보지 못했으며 3년 동안 밖에 나오지도 않았다.

백전(柏殿) : 한 무제(漢武帝)가 장안(長安)에 세웠던 대(), 곧 백량대(柏梁臺). 무제는 대가 완성된 뒤 잔치를 마련하고 여러 신하들에게 칠언시(七言詩)를 지을 수 있는 사람만이 참석할 수 있게 하여, 백량체(柏梁體)라는 하나의 시체(詩體)를 남겼다.

천기절(天祺節) : 북송(北宋)의 진종(眞宗) 대중상부(大中祥符) 원년 41일에 하늘에서 천서(天瑞)가 두 번째로 내려온 상서(祥瑞)가 있다 하여 국경일로 지정된 날.

천경절(天慶節) : 천서(天瑞)가 첫 번째 내린다는 정월 3.

어필은 등용을 윤허하고, 조의는 각문(閣門)에 보궐(補闕)이 되었네

   御筆登遷拜<어필등천배>   朝儀省闕遺<조의성궐유>

공이 맨 처음 각문지후(閣門祗侯)에 임명되었다.

임금을 지척에 모시고, 은총을 흠뻑 입었네

   天威纔咫尺<천위재지척>   雨澤洽霑滋<우택흡점자>

허리를 구부리니 몸가짐이 단정하고, 위의가 씩씩하니 침과 콧물도 조심하였네

   傴僂端容止<구루단용지>   矜莊愼唾洟<긍장신타이>

<예기>'침과 콧물을 함부로 하지 않는다.' 하였다.

녹 받는 은사(隱士)라 자칭하고, 또 글만 짓는 바보로 자처하더니

   自稱居祿隱<자칭거록은>   還笑著書癡<환소저서치>

갑자기 칙명이 내려, 영광된 사절을 받았네

   忽受言綸降<홀수언륜강>   光承使節持<광승사절지>

공이 금년 봄에 운중도(雲中道)의 감창사(監倉使)가 되었다.

호피(虎皮) 안장에는 번개 같은 채찍을 날리고, 타고에는 천둥 같은 북채를 휘둘러

   虎鞍揮電策<호안휘전책>   鼉鼓奮雷椎<타고분뇌추>

대군에서 효기를 지휘하듯 하고, 병주에서 장사를 선발하듯 하였네'

   代郡麾驍騎<대군휘효기>   幷州選壯兒<병주선장아>

서경부에 '코 빨간 코끼리가 비외를 후려치니, 가시숲이 쓰러졌다.' 하였다.

타고(鼉鼓) : 악어 가죽으로 만든 북.

대군(代郡)에서~하였네 : 대군과 병주(幷州)는 모두 지금의 산서성(山西省) 태원현(太原縣) 부근인데 전국 시대 조()의 명장(名將) 이목(李牧)이 여기에 있으면서 군사를 훈련하고 수비를 잘하여 명성을 떨쳤다.

가시숲에서 비외를 후려치듯, 적은 물에 녹을 치고 곤이를 몰살시키듯

   拉林摣狒猬<납림사비위>   擿漻䍡鯤鮞<적류록곤이>

서경부에 '적은 물을 가로막고 녹()을 치니, 곤이(鯤鮞)가 몰살된다.' 하였고, 그 주에 '녹은 잔 그물이요 곤이는 작은 물고기이다' 하였다.

진미는 춘주가 적합하고, 한수는 대곡의 배가 좋으네, 그 고장에는 모습어가 별미라지

   旨味宜春酒<지미의춘주>   寒羞大谷梨<한수대곡리>   土聞生鰲鰼<토문생오습>

<산해경(山海經)> 북산주(北山注)'자호(茈湖)에 모습어가 많이 난다.' 하였다.

춘주(春酒) : 겨울에 빚은 술. 봄에 빚어서 겨울에 익은 술이라고도 한다.

한수(寒羞)~좋으네 : 한수는 성찬(盛饌)을 먹은 다음 먹는 과일 따위를 말하는데, 시원한 음식이라 하여 붙여진 것이며, 대곡(大谷)의 배는 큰 골짜기에서 나는 배로 반악(潘岳)의 한거부(閑居賦)'장공(張公) 대곡의 배와 양후(梁侯) 오비(烏椑)의 감이다.' 하여 천하에 유명하였다.

한 철의 운치인 꾀꼬리 소리 생각나네, 비록 붉은 관복은 입었지만

   時記韻鶊鸝<시기운경리>   命服雖披紫<명복수피자>

검은 유관이야 어이 고치랴, 봉 술잔을 고운 손으로 올리고

   儒管不改緇<유관불개치>   鳳觴纖手奉<봉상섬수봉>

용피리를 붉은 입술로 부네, 두 갈래 진 창은 계단 앞에 삼엄하고

   龍管絳唇吹<용관강진취>   畫戟森庭陛<화극삼정폐>

향기로운 바람은 길거리에 풍겨나네, 풍년은 격택에서 점치고

   香風徹道岐<향풍철도기>   年祥占格澤<연상점격택>

<천문지(天文志)>'격택성이 나타나면 농사를 짓지 않아도 수확한다.' 하였다.

군사는 자휴에서 증험하네

   軍事驗觜觿<군사험자휴>

<천문지>'자휴성은 삼군(三軍)의 일을 주장하는데, 명랑하면 군수(軍需)가 풍부하다' 하였다.

치첩은 진 나라 변방에 이어졌고, 홍교는 초 나라 다리에 우뚝하네

   雉堞連秦塞<치첩련진색>   虹橋矗楚圯<홍교촉초이>

때로는 사붕이 가설되기도 하고, 날마다 기악이 따랐네

   射堋時或峙<사붕시혹치>   妓樂日相追<기락일상추>

봄 물에는 뜸부기 떠놀고, 흰 모래엔 해오리 거닐며

   春水浮鸂鶒<춘수부계칙>   淸沙立鷺鷥<청사립로사>

꽃다운 동산에는 두구꽃 피었고, 이슬 띤 가자(架子)도미가 얹혔네

   芳園開荳蔲<방원개두구>   露架拆酴醾< 노가탁도미>

기괴한 바위는 혹처럼 나왔고, 반송은 규처럼 굽었네 규는 굽은 정갱이이다

   怪石如癭<괴석여영>   盤松曲似䟸<반송곡사규>

여러 성에는 고삐를 잡아 순시하고, 범같은 호위는 무기를 꼬나들었네

   列城行攬轡<열성행람비>   虎衛凜交鈹<호위름교피>

해에 비친 깃발은 큰 곰이 뛰는 듯, 바람 맞은 고깔은 까치가 기는 듯

   映日旗羆䟴<영일기비>   隨風弁鵲跂<수풍변작기>

선창은 하얀 코끼리를 타고, 갑사(甲士)는 청부루말을 달렸네

   仙倡馳白象<선창치백상>   介士騁蒼騅<개사빙창추>

선수에서는 솟구치는 물을 구경하고, 원산에서는 험악스런 산을 통과했네

   鮮水觀滮湃<선수관표배>   源山歷險巇<원산력험희>

<산해경>'북선(北鮮)의 산을 등졌다.' 하였고 또 '북으로 원산에 이른다.' 하였다.

치첩(雉堞)~우뚝하네 : 치첩은 성() 위에 쌓은 성가퀴로 여장(女墻)이라고도 하는데 진 시황(秦始皇)이 쌓은 만리장성(萬里長城)을 가리킨 것이며 홍교(虹橋)는 강소성(江蘇省)에 있는 다리로 이 지역은 옛날 초() 나라의 땅이었으므로 한 말이다.

사붕(射堋) : 화살을 쏠 때 화살을 받치는 터.

도미(酴醾) : 다화(茶花)의 별명으로 동백꽃을 가리킨다.

여러~순시하고 : 이는 상대방의 덕망을 찬양함. <후한서(後漢書)> 범방전(范滂傳)'마침 기주(冀州) 일대에 흉년이 들어 도적떼가 일어나므로 조정에서 그를 청조사(淸詔使)로 삼아 순찰케 하였다. 그가 수레에 올라 고삐를 잡고, 천하를 한번 쇄신시켜 보겠다는 뜻을 다지며 기주 지방에 당도하니 수령들이 모두 자신의 잘못을 알고 벼슬을 내놓았다.' 하였다.

몸을 솟구쳐 떠가는 학을 붙잡고, 눈을 굴려 나는 비둘기를 보내며

   騰身捫去鶴<등신문거학>   遊目送翩鵻<유목송편추>

놀이 줄은 높아서 은하(銀河)에 닿았고, 놀란 공은 날아서 토담을 넘네

   戲索高連漠<희색고련막>   驚毬逬越壝<경구월유>

세상 맑으니 누구나 기뻐할 뿐이요, 송사 없으니 날마다 놀이를 즐기며

   時淸唯燕喜<시청유연희>   訟息好遊嬉<송식호유희>

범을 때려잡듯 힘차게 사부를 짓고, 오리떼처럼 질서 있게 바둑을 두네

   搏虎專詞賦<박호전사부>   成鳧鬪奕碁<성부투혁기>

설아는 음률에 맞춰 노래하고, 옥녀는 옥으로 된 띠를 드리네

   雪兒歌律勻<설아가률균>   玉女獻琛褵<옥녀헌침리>

본시 호화(豪華)에도 반연이 있어, 미인들의 관심 끌기도 하네

   已分親羅綺<이분친라기>   從敎惹粉脂<종교야분지>

사성은 한중(漢中)에 들어오고, 의죽은 기수(淇水)에서 보았네

   使星還入漢<사성환입한>   猗竹佇瞻淇<의죽저첨기>

깁부채가 도중에 버림받고, 또 착도(錯刀)가 주어지지 않아

   紈扇中捐棄<환선중연기>   金刀莫贈貽<금도막증이>

사수시(四愁詩)'미인(美人)이 나에게 도금(鍍金)한 착도를 주네.' 하였고, 그 주에 '임금이 작록(爵祿)을 주어

영광되 게 한 데 비유한 것이다.' 하였다.

조정에서는 경숙을 박대하고, 권귀들은 환이를 꺼리었네

   朝廷疏敬叔<조정소경숙>   權貴忌桓彝<권귀기환이>

도를 곧게 하다가 삼출을 감수하고, 긴 노래로 오희를 발하였네

   直道甘三黜<직도감삼출>   長謠發五噫<장요발오희>

설아(雪兒)~드리네 : 설아는 당 나라 이밀(李密)의 애희(愛姬). 이밀은 손님이나 벗들의 훌륭한 시문을 보면 반드시 그녀로 하여금 음률에 맞춰 노래하게 하였다. 옥녀(玉女)는 선녀(仙女)를 가리킨 것으로 설아나 옥녀는 모두 아름다운 기생을 말한 것이다.

사성(使星)~들어오고 : 사성은 사자(使者)를 칭하며 한중(漢中)은 익주(益州)로 현재의 사천성(四川省). () 나라 화제(和帝)는 즉위한 다음 사자를 사방으로 파견하여 미복(微服)으로 다니면서 사방의 풍속과 민요를 채집해 오게 하였는데 이때 두 명의 사신이 익주에 이르러 원인 이합(李郃)의 집에 투숙해 있었다. 여름철이라서 함께 밖에 나와 하늘을 보았는데 이합은 '두 분께서 서울을 떠날 때 두 사신을 이곳에 파견한 사실을 모르는가? 천기를 보니 두 사성이 익주의 분야(分野)로 향하고 있기 때문에 안다.' 하였다.

의죽(猗竹)~보았네 : 의죽은 무성한 대나무. 기수(淇水)는 하남성(河南省) 임현(林縣)을 지나는 물로 이 부근엔 대나무가 잘 되었다. <시경(詩經)>위풍(衛風)기욱(淇奧)'저 기수 벼랑을 보니 푸른 대나무 무성하다.[瞻彼淇奧 菉竹猗猗]' 하였는데 덕행이 훌륭한 위 무공(衛武公)을 비유하여 찬양한 것으로 상대방의 높은 덕을 말한 것이다.

조정에서는~꺼리었네 : 훌륭한 사람을 등용하지 않음을 말한다. 경숙(敬叔)은 공자의 제자 남궁괄(南宮适)로 남용(南容)이라 하기도 하는데, 매우 침착하고 언행을 조심하였으므로 공자는 그를 질서(姪壻)로 삼았으며, 환이(桓彝)는 진()의 충신으로 자는 무륜(茂倫)인데 천성이 활달하고 조감(藻鑑)이 있었다. 반적(反賊) 소 준(蘇峻)을 공격하다가 힘이 다했으나 끝내 항복하지 않고 살해를 당하였다.

()~감수하고 : 삼출(三黜)은 세 번 파면당한 것을 말한다. 춘추 시대 노()의 현대부(賢大夫) 전금(展禽 일명 유하혜(柳下惠)라고도 한다)은 사사(士師)가 되어 삼출을 당했는데, 사람들은 '왜 떠나가지 않는가?' 하자, 그는 대답하기를 '도를 곧게 하여 임금을 섬긴다면 어디 간들 삼출을 당하지 않으며, 도를 굽혀 사람을 섬긴다면 하필 부모의 나라를 떠나가겠는가.' 하였다.

긴 노래로~발하였네 : 오희(五噫)는 가사(歌詞) 끝에 탄식하는 뜻으로 희() 자를 붙이는 것을 말한다. 후한 때의 은사였던 양홍(梁鴻)은 경사(京師)를 지나면서 오희가(五噫歌)를 지었는데 숙종(肅宗)은 그 내용을 보고 슬퍼하여 찾으려 하였으나 그는 끝내만나지 않았다.

어찌 조금의 원망인들 있었으랴, 현달한 이는 예부터 이러하다네

   怨尤心豈敢<원우심기감>   賢達古如斯<현달고여사>

집안에 앉아 한적한 것을 즐기며, 권문(權門)에 기웃대는 것을 비웃었네

   一室耽閑適<일실탐한적>   高門笑伺窺<고문소사규>

백두까지 정위(廷尉)로 근무하였고, 강장에 스승되기를 좋아하여

   白頭傭作尉<백두용작위>   絳帳樂爲師<강장락위사>

공이 일찍이 교수로 있었다.

강장(絳帳) : 뿌연 비단 휘장인데, 후한의 학자 마융(馬融)이 제자들을 가르칠 때에 강장을 베풀고 교수하였으므로 학궁(學宮)을 가리키게 되었다.

 

석거의 강론 오래 빠졌으니, 구실의 자문 어찌하려나

   久欠石渠講<구흠석거강>   何如衢室諮<하여구실자>

받는 조롱 해명하며 자위도 하고, 곤란한 대답에는 또한 그만 두었네

   解嘲聊自慰<해조료자위>   答難亦云罷<답난역운파>

자락(自樂)으로 시름을 잊을 수 있으니, 노래 속에 어찌 탄식만 있겠는가

   樂可忘憂止<낙가망우지>   歌何嘆而已<가하탄이이>

일생 동안 궁색이 뼛속까지 스몄고, 세상 일에는 웃으며 턱을 만질 뿐이네

   一生窮到骨<일생궁도골>   萬事笑指頤<만사소지이>

달 밝은 나무에도 괜히 놀라는 까치 같고, 천둥치는 하늘에도 그냥 엎드려 있는 교룡(蛟龍) 같네

   月樹空驚鵲<월수공경작>   雷天尙伏螭<뇌천상복리>

물러난 것 도정절 같지도 않고, 면직된 것 하후자 같지도 않네

   去非陶靖節<거비도정절>   罷異夏侯孜<파이하후자>

영제가 세상을 떠나고 나니, 공의 집에 한 그루 옥수가 시들었구려

   令弟仙驂遠<영제선참원>   君家玉樹虧<군가옥수휴>

공의 아우 세재(世才)의 자는 덕전(德全)으로 명유(名儒)가 되었었는데, 지금은 이미 세상을 떠났다.

석거(石渠)~어찌하려나 : () 나라 때에 소하(蕭何)가 지은 각()인데, 유향(劉向)이 일찍이 여기에서 오경(五經)을 강론하였다. 구실(衢室)은 옛날 요() 임금이 백성들의 의사를 물었던 곳이라 한다.

물러난~않네 : 정절(靖節)은 진()의 처사(處士) 도잠(陶潛)의 시호(諡號). 그는 팽택 영(彭澤令)이 된 지 80여일 만에 연말이 되어 상급인 군()에서 감독하는 관리가 왔는데, 의관을 정돈하고 맞이하라 하자 '어찌 시골의 젊은 애들에게 허리를 굽히겠는가.' 하고는 그날 즉시 사임하였다. 하후자(夏侯孜)는 당() 나라 사람으로 자는 호학(好學). 동평장사(同平章事)로 있었는데, 당사(堂史)가 서명(署名)을 하다가 하후자의 품안에 넘어져 죽었으므로 이 때문에 파직을 당하였다.

옥수(玉樹) : 선목(仙木)으로 사람의 고결한 풍채를 비유한다.

내 평소 의기가 맞는 사이였지만, 재주로야 어찌 자웅을 겨룰 수 있었으랴

   我曾同意氣<아증동의기>   才豈角雄雌<재기각웅자>

나는 덕전과 망년의 사귐[忘年之交]이 있었다.

공자의 문은 엿볼수록 오묘하고, 조식(曹植)의 담은 들어갈수록 깊었네

   孔戶窺彌奧<공호규미오>   曹墻入愈冞<조장입유미>

벽운하(碧雲騢)가 어찌 조송(趙宋)에만 있었으며, 명월주(明月珠)도 수후(隨侯)에게만 있는 게 아닐세

   碧雲何獨趙<벽운하독조>   明月不須隨<명월불수수>

누구나 맞서기를 겁내거니, 어찌 방패나 창을 놀릴 수 있으랴

   共怯當鋒刃<공겁당봉인>   其能搖楯鍦<기능요순사>

사부(詞賦)송옥을 몰아낼 만하였고, 의지는 왕비를 제거하려 했는데

   辭堪驅宋玉<사감구송옥>   意欲剪王伾<의욕전왕비>

그만일세 간 지 이미 오래이니, 아 그 누가 코의 흙 떼어 주려나

   逝矣乘風久<서의승풍구>   嗟哉斲堊誰<차재착악수>

시를 볼 적마다 슬픔만 더하고, 전날을 생각하면 절로 슬퍼진다오

   見詩增感慨<견시증감개>   懷舊自悽恧<회구자처뉵>

홀로 장강의 눈물을 흘리며, 지금도 덕수(德秀)의 미목 떠오르네

   獨灑長康淚<독쇄장강루>   猶思德秀眉<유사덕수미>

공은 작천을 계승하였고

   唯公承鷟薦<유공승작천>

공의 부조(父祖)가 다 급제하여 명유(名儒)가 되었는데, 공이 계승하였다. () 나라 장작(張鷟)이 진사과(進士科)에 급제하였는데 그의 손자 천()도 문장이 뛰어나 사관(史官)으로 기용되었으며 천의 아들 우신(又新)과 손자 독()이 또 진사과에 급제 하였으므로 한 말이다.

당세의 인 희가 되었네

   當世作駰僖<당세작인희>

후한(後漢) 때 공희(孔僖)가 그 손자 인()과 벗처럼 지내므로 양욱(梁郁)이 거기에 대해 말을 하였는데, 인과 희가 대답하지 않았다

벽운하(碧雲騢)~아닐세 : 현재에도 훌륭한 인재가 있다는 뜻. 벽운하는 송 태종(宋太宗)의 어마(御馬)로 입가에 푸른 구름 무늬가 있었으므로 명명하였는데, 하루에 천 리를 달렸고 태종이 죽자 따라 죽었다. 수후(隨侯)는 춘추 시대 한수(漢水) 동쪽에 있던 수 나라 임금인데, 그는 명월주(明月珠)라고 불리는 진귀한 구슬을 갖고 있었으므로 수후의 구슬[隨侯之珠]이라 하여 유명하였다.

송옥(宋玉) : 전국 시대 초()의 문장가.

왕비(王伾) : () 나라 사람으로 좌산기상시(左散騎常侍)를 지냈는데 성품이 비루하여 뇌물을 좋아하였다.

홀로~흘리며 : 장강(長康)은 진() 나라 고개지(顧愷之)의 자(). 그는 일찍이 환온(桓溫)의 대사마 참군(大司馬參軍)이 되었었는데, 환온이 죽자 슬피 곡하였다. 어떤 사람이 곡한 모습을 표현하라 하자 '울음소리는 벼락이 산을 깨치는 듯하였고, 눈물은 하수를 쏟아 바다에 넣는 듯했다.' 하였다.

지금도~떠오르네 : 당 나라 원덕수(元德秀)의 자는 자지(紫芝)였는데 미목(眉目)이 뛰어나게 수려하였다. 그리하여 방관(房琯)'자지의 미목을 보면 사람으로 하여금 명리(名利)에 대한 마음이 모두 사라지게 한다.' 하였다.

미록일랑 따르지 말고, 모쪼록 준의를 쓰시오

   莫便隨麋鹿<막편수미록>   須期戴鵔鸃<수기대준의>

광음(光陰)은 분촌을 아끼고, 외물은 작게 여겼다오

   流光憐分寸<유광련분촌>   外物視銖錙<외물시수치>

전번에 찾아가 서로 만났었고, 시 읊조리며 수염을 만지작이러니

   相訪曾交臂<상방증교비>   淸吟自撚髭<청음자연자>

이번에도 감히 덤불에 깃들던 새가, 하늘을 찌를 듯한 갈기를 건드렸으나

   慚將栖薈羽<참장서회우>   仰觸刺天鬐<앙촉자천기>

주인은 왕찬을 기꺼이 맞아주고, 나는 가규를 깊이 흠모했네'

   主喜迎王粲<주희영왕찬>   予深慕賈逵<여심모가규>

가규는 오경(五經)에 정통하여 학자들의 흠모를 받았다.

미록(麋鹿)일랑~쓰시오 : 준의(鵔鸃)는 한대(漢代)에 시랑(侍郞)들이 쓰던 관(), 즉 산 속에 들어가 은둔하지 말고 조정에 나와 벼슬하라는 뜻이다.

주인은~흠모했네 : 상대방의 문장과 학식을 칭찬한 말. 왕찬(王粲)은 삼국시대 위() 나라 사람으로 자는 중선(仲宣)인데, 학식이 풍부하고 문장에 뛰어나 당시의 학자 채옹(蔡邕)은 그의 재주를 훌륭하게 여겨 올 때마다 신을 거꾸로 신고 나와 마중하였다. 가규(賈逵)는 후한 사람으로 자는 경백(景伯)인데, 오경(五經)에 대한 여러 저서가 있다.

복수(濮水)에서 한가히 낚시질한 것을 자랑하였고, 누수(㶟水)의 기이한 유람을 설명하였네

   幽居誇釣濮<유거과조복>   奇迹說遊㶟<기적설유누>

공이 북지(北地)에서 동도로 돌아왔을 때 내가 방문하였었다. <유편(類篇)>'누수는 안문(鴈門) 땅에 있는 강 이름이다.' 하였다.

복수(濮水)에서~설명하였네 : 복수는 중국 하북성(河北省) 복양현(濮陽縣)에 있는 강으로 곧 중국을 다녀왔음을 말한 것이다.

마치 청풍이 엄습해 오는 듯하였고, 원래 소의의 비판이 없었네

   恰有淸風襲<흡유청풍습>   元無素議玼<원무소의자>

<당서(唐書)>'최홍례(崔弘禮)가 병부 상서가 되어서는 만년에 축적(蓄積)을 힘썼으므로 소의의 비판이 있었다.' 하였다.

억울한 탄핵을 갑자기 만나니, 가난병을 퇴치하기 어렵네

   橫彈翻見中<횡탄번견중>   貧病却難醫<빈병각난의>

기회가 언제냐고 한탄 마소, 덕이 쇠퇴하지 않은 것 알 수 있네

   莫嘆辰安在<막탄진안재>   端知德不衰<단지덕불쇠>

어찌 물오리 마름을 쪼아 먹듯 하겠느냐, 봉황이 죽실(竹實)을 먹게 되리

   那隨鳧唼藻<나수부삽조>   會與鳳含蕤<회여봉함유>

경조는 참다운 호련이니, 왕랑은 창피한 서까래일세

   京兆眞瑚璉<경조진호련>   王郞愧桷榱<왕랑괴각최>

이는 김 동각(金東閣)을 가리킨 것이고 진() 나라 왕감(王鑒)은 서까래 정도의 재목이었다 한다.

기회가~있네 : 좋은 때가 와서 반드시 등용된다는 뜻. 덕이 쇠한다는 것은 곧 세상이 나빠진다는 뜻이므로 여기서는 이와 반대로 좋은 세상이 옴을 말한 것이다.

경조(京兆)~호련(瑚璉)이니 : 경조는 경조윤(京兆尹)으로 수도(首都)를 맡은 관직을 말하며, 호련(瑚璉)은 종묘(宗廟)에서 쓰는 제기(祭器)로 훌륭한 인재를 비유한 것이다.

넓은 도량은 너와 나의 경계가 없었고, 높은 학식은 미세한 것도 분석하였네

   坦懷無畛域<탄회무진역>   深識剖毫釐<심식부호리>

천수의 시를 읊은 장호요, 삼도의 부를 지은 좌사일세

   千首詩張祜<천수시장호>   三都賦左思<삼도부좌사>

한 번 응시하여 노서에 오르고, 새로 등용되어 선위를 썼네

   一鳴登鷺序<일명등노서>   新沐振蟬緌<신목진선유>

어찌 천록을 교정할 뿐이겠는가, 저 곡려까지도 견제할 수 있으리

   豈但校天祿<기단교천록>   猶堪覇谷蠡<유감패곡려>

전번 태묘(太廟)를 모실 때는, 제단(祭壇)을 엄숙히 받들어

   曩陪淸廟寢<낭배청묘침>   肅奉紫壇祠<숙봉자단사>

공이 태묘의 영()이 되었었다.

손수 삼조를 차리고, 힘껏 육자를 마련하여

   摩扢陳三俎<마흘진삼조>   擩燔辨六齍<유번변육자>

외외히 제물이 이미 괴어지고, 육육히 정성이 더욱 지극하였네

   磑磑芳已積<애애방이적>   鬻鬻意逾祗<죽죽의유지>

<한서(漢書)>'제물이 외외하다.' 하였는데, 그 주에 '외외는 제물이 높이 괴어진 모양이다.' 하였다. ''의 음은 육이니, ()을 전송할 때 공경하고 조심하는 모양이다.

천수의~좌사(左思)일세 : 뛰어난 문장을 말한 것이다. 장호(張祜)는 당() 나라 사람으로 자는 승길(承吉)인데 궁사(宮詞)에 능하여 유명하였으며, 좌사는 진() 나라 사람으로 자는 태충(太沖)인데, 문장에 능하여 촉도(蜀都)오도(吳都)위도(魏都)에 대한 삼도부(三都賦)를 지었다.

한 번~썼네 : 노서(鷺序)란 백로(白鷺)가 나는데 차서가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조관(朝官)의 반차(班次)를 말하며, 선위(蟬緌)는 고대 갓 모양이 매미 머리와 같았다 하여 생긴 이름으로 조관(朝冠)을 가리킨다.

어찌~있으리 : ()에만 능한 것이 아니라 무()에도 능하다는 뜻. 천록(天祿)은 한() 나라 때 장서하던 천록각(天祿閣)을 말하며, 곡려(谷蠡)는 흉노(匈奴) 번왕(藩王)의 봉호(封號)로 좌우로 나뉘어 있었다.

삼조(三俎)~마련하여 : 삼조는 돼지[]어물[][]를 가리키며, 육자(六齍)는 육자(六粢)로 서()()()()()()를 가리키는데 모두 제수(祭需)이다.

계주는 맑은 향기 그윽하고, 산뢰는 가득하여도 기울지 않았네

桂酒淸如潑<계주청여발>   山罍滿不欹<산뢰만불의>

배가 텅 빈 맹수(猛獸) 모양의 북틀이 벌여지고, 뿔이 한 움큼쯤 되는 희생 풍성도 하였네

   腹褰張猛簴<복건장맹거>   角握省豐犧<각악성풍희>

낮이나 밤이나 직책만을 수행했고, 여러 제사에 정결만을 힘썼네

   夙夜唯供職<숙야유공직>   蒸嘗但潔栥<증상단결자>

조심스레 규정된 전사에 따르고, 정당하지 못한 제사를 배격하며

   栗齋循典祀<율재순전사>   譎詭黜淫魑<휼궤출음리>

훼골하게 경건히 늘어서니, 신이 이에 안정된 복록을 주었네

   卉汨臚精信<훼골려정신>    綏將降福禠<수장강복사>

<한서> 훼골로(卉汨臚) 주에 '훼골은 제관(祭官)들의 동작이 신속하다는 뜻이요, 노는 죽 늘어선다는 뜻이다.' 하였다.

계주(桂酒)~않았네 : 계주는 계화(桂花)로 빚은 술이며, 산뢰(山罍)는 하후씨(夏后氏)의 술잔이라 하는데 산과 구름의 무늬가 있어 이렇게 이름하였다 한다.

저물게 언을 부를 줄 알아야 하는데, 그 누가 밤에 기를 부르랴

   須知暮召偃<수지모소언>   誰肯夜呼祈<수긍야호기>

재상이 되어서는 응당 글을 보아야 하고, 벼슬이 오르려면 죽은 이를 꿈꿔야 하리

   拜相應看字<배상응간자>   移官早夢尸<이관조몽시>

어진 상수도 멸시를 받았거니, 어찌 진이에게 의논할 일이던가

   賢猶凌向戌<현유능향술>   事豈聞陳寅<사기문진인>

<춘추좌전(春秋左傳)> 정공(定公) 6년 조에 '()의 악기(樂祈)가 그 재신(宰臣) 진이에게 '....' 하였고, 진이는 진()의 정령(政令)이 한 군데서 나오지 않음을 알기 때문에 '악기가 진에 가면 반드시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했다. 하였다. ''의 음은 이()이니, 유운(柳韻) 지자운(支字韻)'' 자에 진이(陳寅)로 되어 있다.

저물게~하는데 : 경략(經略)이 있는 사람을 등용해야 한다는 뜻이다. ()은 한 무제(漢武帝) 때 제국(齊國)의 주보언(主父偃)을 가리킨다. 주보언이 <주역(周易)><춘추(春秋)>를 비롯 백가서(百家書)에 통했으나 일찍이 제()()() 등지에서 융숭한 대우를 받지 못하자, 위 장군(衛將軍 위청(衛靑))을 통해 무제(武帝)에게 알현(謁見)을 요청하였지만 그도 뜻대로 되지 않으므로, 직접 궐하(闕下)에서 상서(上書)한 끝에 왕으로부터 저물녘에야 소견(召見)을 받아 국가에 대해 중대한 일을 아뢰고 나서 대번에 등용되었던 고사인데, 주보언의 모책(謀策)을 받아들여 한() 나라가 크게 안정되었다.

그 누가~부르랴 : ()는 동진(東晉) 때의 은사(隱士)인 기가(祈嘉)를 가리킨다. 기가가 젊어서 청빈(淸貧)하고 학문을 좋아했는데 나이 20여 세 되었을 때 밤중에 갑자기 누가 창문에서 그를 불러 '기공빈(祈孔賓 공빈은 기가의 자) 기공빈, 빨리 숨어라 빨리 숨어라. 세상에 나가면 소득은 털끝만도 못하고 잃는 것만 태산같이 클 것이다.' 하므로 아침에 그대로 서쪽으로 도망하여 돈황(敦煌)에 가서 학사(學舍)에 들어가 글만 읽었는데, 뒤에 경전(經傳)을 널리 통하여 큰 학자가 되었고 문인(門人)2천여 명이나 되었다. 그리하여 그는 끝내 세상에 나가지 않았고, 오래 수를 누렸다.

재상이~보아야 하고 : () 나라 때 재상 영호도(令狐綯)가 모르는 고사(故事)가 있어 온정균(溫庭筠)을 찾아가 묻자, 온정균이 '그 사실이 <남화경(南華經>에 나오는데, <남화경>은 벽서(僻書)도 아니니, 상공(相公)께서 국정을 보는 가운데 혹 여가가 있을 때면 꼭 고사를 열람하기 바랍니다.' 하였다.

벼슬이~꿈꿔야 하리 : () 나라 때 이극(李克), 하늘에서 관() 2개가 자기 앞으로 떨어지는 꿈을 꾸고는 그 사실을 색담(索紞)에게 묻자, 색담이 '()이란 곧 직()이니 틀림없이 누가 그대를 추천해서 벼슬이 승진하게 되겠소.' 하였는데, 뒤에 과연 그렇게 되었다 한다.

어진~받았거니 : 상수(向戍)는 춘추(春秋) 시대 송()의 대부(大夫)로 일찍이 진()()가 패()를 다툴 때에 그가 전쟁을 중지할 것을 제후(諸侯)들에게 통고하여 제후들이 그의 말을 따름으로써 천하를 안정시켰던 사람인데, 여기에 멸시를 받았다는 말은 자세히 알 수 없다.

훌륭한 도()는 높은 산처럼 우러러보고, 좋은 재목은 으레 큰 집에 쓰는 거라오

   景行高山仰<경행고산앙>   長材大厦施<장재대하시>

남을 대할 적엔 정성스러웠고, 벗을 사귈 적엔 또한 충성스러웠네

   接人多款款<접인다관관>   友直亦偲偲<우직역시시>

큰 고을을 다스려 민폐를 근절시켰고, 돌아오는 길에는 누조(嫘祖)를 위문했네

   劇郡尋煩敝<극군심번폐>   歸程遠問嫘<귀정원문루>

공이 다시 안변(安邊)의 수령이 되었다.

누조(嫘祖) : 서릉씨(西陵氏)의 딸로 황제(黃帝)의 원비(元妃). 멀리 나가서 놀기를 좋아하다가 길에서 죽었으므로, 후세 사람들이 길의 신[行神]으로 높여 제()를 지냈기 때문에 한 말이다.

수레는 천둥처럼 구르고, 말은 바람처럼 달렸어라

   軺䡕行轞轞<초증행함함>   騂驈走駓駓<성율주비비>

나뭇가지엔 원숭이 떼 깃들고, 산봉우리엔 잡새가 날아가네

   木末爭猿捷<목말쟁원첩>   峯頭趁鳥奞<봉두진조순>

치솟는 노도는 출렁출렁하고, 아득한 오산(鰲山)은 구불구불하며

   鷺濤奔瀇瀁<노도분왕양>   鰲岫杳嵔<오수묘외>

갯벌에 둘러 있는 마을 내 끼어 자욱하고, 시내에 잇단 길 험하기도 하네

   繞浦煙村暗<요포연촌암>   沿溪石棧逶<연계석잔위>

안장을 지우니 놀이가 자유롭고, 붓을 잡으니 손놀림 빨라지네

   卸鞍遊散誕<사안유산탄>   援筆舞瀏漓<원필무류리>

목이 말라 찬 샘물 마시니, 마치 언 술을 머금는 듯하네

   渴飮寒泉液<갈음한천액>   疑含凍醴澌<의함동례시>

숨은 새들은 눈길을 기웃대고, 달리는 짐승은 갈기가 일어서네

   幽禽窺睥睨<유금규비예>   走獸奮髬髵<주수분비이>

얽힌 덩굴을 더위잡고, 숙삼한 작유를 통과하네

   繃絡攀蘿薜<붕락반라벽>   橚槮過柞桵<숙삼과작유>

<유편(類篇)>'()은 갈참나무[]또는 무리 참나무[]이다.' 하였으며 서경부에 '재역(梓棫)이 숙삼하다.' 하였는데, 그 주에 '숙삼은 울창한 모양이다.' 하였다.

수레에서 내려 군정(郡政)을 열고, 칼을 안고 변비(邊備)를 강화하네

   下車開郡閣<하거개군각>   擁劍課邊陴<옹검과변비>

애들의 놀이는 꿩을 길들이는 것 같고, 군사의 사냥은 비휴를 잡아들이네

   童戲猶馴雉<동희유순치>   軍蒐競獻貔<군수경헌비>

경지(耕地)는 괘상(卦象)처럼 나누었고, 가옥(家屋)은 성좌(星座)처럼 흩어졌네

   卦分畦塊圠<괘분휴괴알>   星散屋逶迤<성산옥위이>

공청(公廳)은 나란히 구르는 수레처럼 일정하고, 연석(宴席)은 정돈한 신발처럼 정연하네

   廨舘堪方軌<해관감방궤>   賓筵擬履齊<빈연의리제>

전등(錢燈)은 여기저기 반짝이고, 깃발은 이리저리 펄럭이며

   錢釭明爍爍<전강명삭삭>   竿衽轉僛僛<간임전기기>

은빛은 순채국에 엉기고, 금빛은 기장술에 떴구나

   銀鏤凝蓴菜<은루응순채>   金鱗泛黍酏<은루응순채>

푸짐한 장만은 사막새 종달새 구이오, 진기한 반찬은 상어와 숭어찜일세

   豐廚炮鵽鴳<풍주포탈안>   珍膳味鮫鯔<진선미교치>

헌원(軒轅)과 제곡(帝嚳)을 이처럼 보고, 진과 수를 개구리처럼 비웃었지

   軒嚳看如虱<헌곡간여슬>   陳隋笑若蚳<진수소약지>

육귀몽(陸龜蒙)의 시에 '삼황(三皇)의 도()를 우러러 보니, 개미와 이가 우주에 있는 것 같다.' 하였다.

'피일휴(皮日休)의 시에 '그 뒤 진수(陳隋) 시대에 와서는 크고 작은 것이 다 개구리나 두더지 같다.' 하였다,

몹시 사랑한 것은 오직 송의 미인이요, 몽땅 고혹된 것은 모두 오의 미녀였네

   酷憐唯宋艶<혹련유송염>   射遞盡吳姬<사체진오희>

촉군의 백성은 바지를 노래하고, 금릉의 기생은 물대야를 드렸으며

   蜀郡民歌袴<촉군민가고>   金陵妓奉匜<금릉기봉이>

도곡(陶穀)의 고사이다.

촉군(蜀郡)~노래하고 : 지방 수령(守令)이 선정(善政)을 하는 데 비유한 말이다. 후한(後漢) 때 염범(廉范)이 촉군 태수(蜀郡太守)로 부임하여 선정을 베풀자, 백성들이 '염숙도(廉叔度 숙도는 염범의 자), 왜 이제야 왔소. 전에는 저고리 하나도 없다가 이제는 바지가 다섯 벌이나 된다오.' 하고 그의 선정을 노래하였다.

좋은 산으로는 적석(赤石)이 우뚝하고, 진귀한 물건으로는 주제가 푸짐하네

   好山高赤石<호산고적석>   奇貨富朱提<기화부주제>

서류는 언제나 책상 위에 쌓여 있고, 관복은 잠깐 동안 옷걸이에 걸려 있네

   簿領長堆案<부영장퇴안>   朝衣少襯椸<조의소친이>

은혜는 능히 밀로를 그립게 하고, 위엄은 이미 왕이를 복종시켰네

   恩能懷密老<은능회밀노>   威已懾王姨<위이섭왕이>

왕연(王衍)의 이모[]<세설(世說)>에 보인다.

주제(朱提) : 질이 좋은 은()의 이명(異名). 좋은 은이 주제현(朱提縣)에서 나기 때문에 이른 말이다.

은혜는~그립게 하고 : 밀로(密老)는 후한(後漢) 때에 밀() 땅의 영()을 지낸 탁무(卓茂)를 가리킨다. 탁무가 일찍이 밀 땅의 영이 되어 백성들을 마치 자기 자식처럼 아끼고 사랑하며 선정을 베풀었으므로 광무제(光武帝)가 조서하기를 '전 밀령(密令) 탁무야말로 지방현령으 로 남이 할 수 없는 어려운 일을 하여 명예가 천하에 으뜸이니, 천하에 중상(重賞)을 받아 마땅하다. 지금 당장 탁무를 태부(太傅)로 발탁시키고 포덕후(褒德侯)에 봉해서 식읍삼백호(食邑三百戶)를 제수함과 동시에 그의 큰아들은 태중대부(太中大夫), 둘째 아들은 낭중(郞中)으로 각각 제수하라.' 하여 크게 은총을 내렸다.

위엄은~복종시켰네 : () 나라 때 왕연(王衍)의 아내 곽씨(郭氏) 부인이 성질이 고집스럽고 괴팍한데다 탐욕이 많아 무리하게 재물을 모으곤 하여, 왕연이 그를 금하려 해도 되지 않았는데, 당시 그 고을 사람인 유주 자사(幽州刺史) 이양(李陽)이 경도(京都)에서 의협심이 많기로 유명한 사람이어서 곽씨 부인이 본디부터 두려워하던 중이었으므로 왕연이 곽씨 부인에게 '당신의 행위를 나만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고, 이양도 못마땅하게 생각한다.' 하니, 곽씨 부인이 이 말을 듣고는 그런 짓을 못 했다는 고사이다. 이 사실이 <진서(晉書)>세설신어(世說新語)>에 다같이 나오나 모두가 왕연의 아내에 대한 일로 되어 있으니 여기 원문과 자주(自注)에서 왕연의 이모[]라고 한 것은 잘못이 아닌가 싶다.

이에 수령(守令)을 그만두고, 한가한 위치로 되돌아오니

   已罷割鷄手<이파할계수>   還栖傾鳳椅<환서경봉의>

간편한 행장으로 말 고삐를 잡고, 새로운 차림은 산뜻한 갈의(葛衣)를 걸쳤네

   輕裝廻沃轡<경장회옥비>   新服拂涼絺<신복불량치>

이름난 산천을 두루 구경하고, 여로(旅路)의 피로를 일체 잊었네

   歷閱溪山勝<역열계산승>   都忘道里疲<도망도이피>

혼은 항상 조정을 못 잊어하고, 귀는 으레 옥음(玉音)을 듣는 듯하였네

   魂勞懸貝闕<혼로현패궐>   耳想聽龍篪<이상청용지>

그래도 삼수의 상서를 이루려 하고, 앞으로 구기의 영광을 기대했는데

   尙欲徵三穗<상욕징삼수>   方圖戴九<방도대구>

채무(蔡茂)가 광한(廣漢)의 태수가 되어 세 개의 이삭이 나온 벼 꿈을 꾸었다. 공이 안변 태수에서 체환(遞還) 되었기 때문에 비유한 것이다. <한서>'일품직(一品職)은 옥으로 된 고깔의 꾸미개가 아홉 개다.' 하였다.

돌아오는 여로에는 날개가 움츠렸고, 사람들 눈길에는 노마(駑馬)로 바뀌었으며

   歸來戢羽翮<귀래집우핵>   俯仰改騮驪<부앙개류려>

같은 출신들은 마치 섶 쌓이듯 하였으나, 공의 고충은 바위처럼 요동될 줄 모르네

   舊列薪猶積<구렬신유적>   孤忠石不移<고충석부이>

공이 각문(閣門)의 남아도는 일원(一員)으로 아직 임관되지 않았기 때문에 말한 것이다.

같은~하였으나 : 섶을 쌓는 데 있어 나중에 쌓는 것을 위에 올려놓듯이 나중에 벼슬한 자가 전임자보다 중용되고 전임자는 항상 미관 말직에 있는 채 중용되지 못함을 비유한 말이다. <사기(史記)> 급암전(汲黯傳)'급암이 무제(武帝)에게 '폐하께서 군신(群臣)을 등용하는 것이 마치 섶을 쌓는 것과 같아, 나중의 것이 맨 위로 올라가게 됩니다.' 했다.' 하였다.

조용한 생활은 언제나 안석에 의지하고, 청고한 꿈은 오히려 수레를 타보곤 하네

   端居長隱几<단거장은궤>   淸夢尙乘軧<청몽상승저>

서림(書林)은 누구와 벗하였고, 인리(仁里)는 누구와 이웃했던가

   書圃誰爲伴<서포수위반>   仁隣孰與比<인린숙여비>

한 푼의 금전도 축재하지 않았으니, 만 권의 서적은 과연 무엇을 도우려 했던가

   一錢當不蓄<일전당부축>   萬卷本何裨<만권본하비>

베 이불이 호락의 갖옷보다 나았고, 채소 반찬이 유이의 요리보다 좋았네

   幅被勝狐狢<폭피승호학>   盤蔬當鱬鮧<반소당>

회포를 풀려고 술이나 실컷 마실 뿐, 천명(天命)을 알거니 무엇을 한탄하랴

   攎懷唯酩酊<노회유명정>   知命敢嗚戲<지명감오희>

예복을 갖추고 처음으로 찾아 뵈었을 때, 다행히 거절은 당하지 않았으나

   冠櫑初投謁<관뢰초투알>   門墻不見麾<문장부견휘>

멍멍하여 한계를 분간할 수 없었고, 흐릿하여 방향을 헤아릴 수 없었네

   惘然迷界限<망연미계한>   怳未測津涯<황미측진애>

내가 공을 댁으로 방문하였었다.

조용한~의지하고 : 자기 자신도 잊어버리고 천지의 조화와 벗할 수 있는 경지에 이름을 비유한 말이다. <장자(莊子)> 제물론(齊物論)'남곽자기(南郭子綦)가 안석에 기대 앉아서 마치 그 자신조차도 잊어버린 것처럼 멍하니 하늘을 우러러 한숨을 짓고 있었다~.' 하였다.

청고한~타보곤 하네 : 마음이 고상한 것을 비유한 말이다. () 나라 때 위개(衛玠)가 악광(樂廣)에게 꿈이 무엇인가 묻자, 악광이 '생각에서 온 것이다.' 하니, 위개가 '형신(形神)이 아무 사물을 접하지 않고 꾸는 꿈은 무엇입니까?' 하고 물으므로 악광이 '이것은 원인[]에서 온 것이다. 일찍이 수레를 타고 쥐구멍에 들어가서 철저(鐵杵)를 씹는 꿈을 꾸어 보지 못했다.' 하였는데, 이는 곧 아무 생각도 없고 원인도 없기 때문이라는 데서 온 말이다.

유이(鱬鮧) : 유와 이는 모두 생선의 이름이다.

서리 내리니 푸른 하늘 멀고, 이슬 차가우니 많은 잎 시들며

   霜落碧天遠<상락벽천원>   露寒殷葉萎<노한은엽위>

석양은 이미 저물었고, 밤바람은 싸늘도 하였지

   夕陽嗟暮矣<석양차모의>   涼夜問何其<양야문하기>

손목 잡고 서로 웃음을 나누다가도, 심정을 논할 적엔 혼자 슬퍼하였네

   扼腕俱相笑<액완구상소>   論情頗自悲<논정파자비>

초당에선 비로소 물을 마시었고, 부엌에선 늦게야 콩깍지를 지폈네

   草堂初飮水<초당초음수>   塵釜晩燃萁<진부만연기>

훼방을 피하려 할 적에는 입을 다물지만, 이미 당했을 적에는 꼭 강경히 해명하며

   避謗雖緘口<피방수함구>   逢時必壯頄<봉시필장규>

위의는 일체가 구비되었고, 우둔(愚鈍)을 기꺼이 자처하였네

   威儀誠棣棣<위의성체체>   闒茸謾嘻嘻<탑용만희희>

나는 영양의 수사(秀士)를 경애하노니, 그 재주가 파군의 오자(吳資)와 같네

   我愛榮陽秀<아애영양수>   才如巴郡資<재여파군자>

이는 원외(員外) 정문갑(鄭文甲)을 가리킨다. <송릉집(松陵集)>에 보인다.

백대에서 나약한 관리를 탄핵하고, 폐석으로 불쌍한 백성을 살렸으며

   柏坮憚吏懦<백대탄이나>   肺石活民羸<폐석활민리>

공이 일찍이 어사(御史)가 되었었다. 지금 공이 형부 원외랑(刑部員外郞)이 되었다. <주례>'대사구(大司寇)가 궁한 백성의 억울한 일을 처리해 준다.' 하였다.

이미 삼관새를 구경하고, 또 구절판(九折坂)을 통과하였네

   已歷三關塞<이력삼관색>   曾驅九折阺<증구구절저>

<제지(齊志)>'의양현(義陽縣)에 삼관새가 있다.' 하였다.

재주가~같네 : 지방 수령으로 있으면서 선정을 베푼 것을 비유한 말이다. <화양국지(華陽國志)>'오자(吳資)가 파군 태수(巴郡太守)로 있으면서 자주 풍년(豐年)이 들자 사람들이 '새벽 바람 솔솔 불어오더니, 단비 내려 벼싹[禾苗]을 적시누나. 우리 임금 시무를 걱정하시어, 그 덕으로 우리들은 살기 편하다오.[習習晨風動 澍雨潤禾苗 我后恤時務 我人以優饒]' 했다.' 하였다.

폐석(肺石) : 붉은 돌. 주대(周代)에 대사구(大司寇)가 이 붉은 돌을 조정에 설치해 놓고 억울한 백성들에게 거짓 없는 붉은 마음을 가지고 이 붉은 돌 위에 앉아 사실을 하소연하도록 하여 그들의 억울함을 처리해 주었던 데서 온 말이다.

구절판(九折坂)을 통과하였네 : 국사(國事)를 위하여 멀고 험한 지방의 수령을 지냈다는 뜻이다. () 나라 때 왕양(王陽)이 익주 자사(益州刺史)가 되어 공래현(邛崍縣)의 구절판(九折坂 공래현에 있는 언덕 이름인데 이리저리 구부러져서 매우 험난한 곳이므로 붙여진 이름이다)을 순시하다가 부모가 끼쳐준 몸으로 이처럼 험난한 곳을 함부로 다니겠느냐면서 되돌아갔는데, 뒤에 왕준(王尊)이 자사가 되어서는 이곳에 당도하여 '왕양은 효자가 되었으니 나는 충신이 되겠다.' 하고는 마부를 호령하여 말을 몰아 이곳을 통과하였다 한다.

소를 올리는 용기는 판을 걷어올리고, 격을 초하는 솜씨는 눈 깜빡할 사이로세

   疏書應脫腕<소서응탈완>   草檄僅生視<초격근생시>

심현에서는 남악(南嶽)을 구경하고, 낭야에서는 유수(濰水)를 건넜었네

   灊縣嘗觀霍<첨현상관곽>   琅邪亦渡濰<낭사역도유>

태세(太歲)가 미성(尾星)궤도에 닿던 해, 왕사로 건유에 부임했는데

   歲行臨尾次<세행임미차>   王事赴乾維<왕사부건유>

공이 계축년에 의주 분도(義州分道)를 맡았다.

말갈(靺鞨)이 용만진에 들어서고, 잇달아 압록강을 침범하였네

   鞨入龍灣鎭<갈입용만진>   行侵鴨綠湄<행침압록미>

군의 진용은 볼수록 씩씩하고, 적군의 눈깔은 멋대로 힐긋대며

   軍容看仡仡<군용간흘흘>   胡眼笑睢睢<호안소휴휴>

호복(胡服) 차림이 소란스레 오고가니, 공의 충성엔 부끄럽게만 여겨졌네

   左衽猶旁午<좌임유방오>   中心尙忸怩<중심상뉴니>

집집마다 검극(劍戟)이 장비되고, 사람마다 호미를 치웠으니

   家皆藏劍槊<가개장검삭>   人罕用鎡X<인한용자X>

이내 묵어 있던 지역이, 전립(戰笠)으로 뒤덮인 동치(東甾)가 되었네

   始使生榛地<시사생진지>   渾爲聚笠留<혼위취립유>

<문선(文選)>'전립들이 동치 땅에 모였다.' 하였다.

모호는 영고숙(穎考叔)을 무시하고, 경부는 최수보다 장쾌하며

   蝥弧欺考叔<모호기고숙>   鯨賦壯崔倕<경부장최수>

유우석(劉禹錫)의 최수비문(崔倕碑文)'융갈(戎羯)이 중국을 어지럽혀 왕사(王師)가 출정(出征)하니, 수가 벌경예부(伐鯨鯢賦)를 지어 올렸다.' 하였다.

군량 수송하는 노고를 어찌 꺼리랴, 한번 소탕하려는 뜻 굳게 지녔네

   飛輓勞何憚<비만노하탄>   澄淸志不隳<징청지불휴>

첫 새벽 잔치는 군심(軍心)을 격려하고, 비장한 곡조는 과부도 감동했었지

   芳晨開宴衎<방신개연간>   哀曲感孀嫠<애곡감상리>

시취(詩趣)는 모중령과 같이하고, 편유(遍遊)할 땐 혁화(革華)와 함께 하네

   吟共毛中令<음공모중령>   遊煩革下邳<유번혁하비>

회군(回軍)에 있어 무얼 급히 서두르랴, 질주하는 말 잠깐 동안 늦췄어라

   何須行刦刦<하수행겁겁>   暫可息騤騤<잠가식규규>

강 위에 깃발을 멈추고, 배 중에 작별의 술잔 마련하니

   江上停歸旆<강상정귀패>   舟中命別卮<주중명별치>

암혈(巖穴)은 맑게 개고, 파도는 잔잔도 하네

   岫眉晴脈脈<수미청맥맥>   波練靜漪漪<파련정의의>

기러기는 노에 놀라 날아가고, 거북이는 둑에 나와 엎드렸네

   過雁飛驚棹<과안비경도>   潛龜伏負坻<잠귀복부지>

사현부(思玄賦)'영귀(靈龜)가 둑에 나와 엎드렸다.' 하였다.

건유(乾維) : 건방(乾方). 여기서는 우리나라의 의주(義州) 분야이다.

모호(蝥弧)~무시하고 : 전쟁에서 남 먼저 적을 용감하게 무찌른 것을 비유한 말이다. 모호는 춘추 시대 제후(諸侯)가 사용하기() 이름. 춘추 시대 정백(鄭伯)이 허()를 칠 적에 영고숙이 정백의 기인 모호를 가지고 맨 먼저 적의 성 위에 올라갔었다.

시취(詩趣)~같이하고 : ()를 지을 때는 붓[]을 가지고 한다는 뜻이다. 모중령(毛中令)은 곧 붓을 지칭하는 말이다.

편유(遍遊)할 땐~함께 하네 : 사방에 놀러다닐 때는 신[]과 함께 한다는 뜻이다. 혁화는 가죽신을 가리킨 말이다.

안개 짙으니 먼 섬이 희미하고, 물이 빠지니 넓은 진펄 보이누나

   霧濃迷遠島<무농미원도>   水落見空泜<수락견공지>

풀빛이 멀리까지 뻗치고, 호수의 빛은 끝없이 연이었네

   草色連迢遞<초색연초체>   湖光接渺瀰<호광접묘미>

숲 속의 들말[野馬]은 소리가 요란하고, 모래 위의 새들은 깃이 늘어졌구나

   林猑聲嗝<임곤성격>   沙鳥羽襂襹<사조우삼시>

비단 같은 붉은 잉어가 뛰놀고, 마름 같은 하얀 방어를 낚아내네

   錦碎叉紅鯉<금쇄차홍리>   萍浮釣白魾<평부조백비>

최표(崔豹)<고금주(古今注)>'방어는 위에 뜨기를 좋아하는데 그 빛깔이 마름과 같기 때문에 백비(白魾)라 한다.' 하였다.

호화스런 자리는 대모가 깔렸고, 보배스런 주기는 노자를 보내왔다오

   華筵鋪玳瑁<화연포대모>   寶杓送鸕鶿<보표송로자>

주석은 사흘이 계속되고, 주량은 한 섬을 들이켰네

   坐到三竿日<좌도삼간일>   狂傾一石甀<광경일석추>

이전엔 그렇게 영화롭더니, 이제는 왜 한탄만 하게 되었을까

   昔何榮赫煽<석하영혁선>   今反退嗄吚<금반퇴사의>

공이 지금 면직되어 있다.

노자(鸕鶿) : 술그릇을 말한다. 금모(金母)가 여러 신선과 적수(赤水)에 모여 잔치할 때 벽금앵무배(碧金鸚鵡杯)와 백옥노자표(白玉鸕鶿杓)가 있었는데, 앵무배가 비면 노자표가 저절로 술을 따르고 술을 마시려 하면 앵무배가 저절로 들렸다.

공 등이 모두 이러하니, 하늘도 공평하지 못하네

   公輩皆如此<공배개여차>   皇天亦似私<황천역사사>

아 나같이 기구한 운명은, 떠돌이 신세 그 몇 해던가

   嗟予生薄命<차여생박명>   浪迹幾多朞<낭적기다기>

괜히 선리에만 의탁된 존재가, 여사(旅舍)에 하루하루 얹혀 지내네

   仙李徒攀託<선리도반탁>   蘧廬暫寓覊<거려잠우기>

노자(老子)와 성()이 같다.

불우한 자신이 부끄럽거니, 무슨 뽐낼 나위가 있겠는가

   自猶慙蹇短<자유참건단>   誰忍飾顴<수인식권>

좁은 소견은 조회와 같고, 묻힌 이름은 두기와 같기에

   陋愧如曹鄫<누괴여조증>   名知似斗箕<명지사두기>

요즘엔 조용한 운수를 찾아, 험난한 세속 회피하고 있다오

   頃逃雲水窟<경도운수굴>   高避網羅危<고피망라위>

따뜻한 방안에서 추위를 지내고, 서늘한 정각에서 더위를 막으며

   燠室經寒候<욱실경한후>   涼臺禦暑曦<양대어서희>

담장 옆에 밤나무 대추나무 심고, 터 주위에 뽕나무 암뽕나무 심으며

   傍墻培棗栗<방장배조율>   匝地種桑桋<잡지종상이>

<유편(類篇)>'암뽕나무도 뽕나무의 일종인데, 줄기는 짧고 가지는 길다.' 하였다.

좁은~같고 : 조회(曹鄶)는 춘추 시대 두 나라 이름이다. <춘추좌전(春秋左傳)> 양공(襄公) 29'계찰(季札)이 회()() 두 나라의 가요에 대해서는 평론이 없었다.' 한 주에 '계찰이 두 나라의 가요를 듣고 너무나도 미약하고 보잘것이 없어서 평론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하였다.

두기(斗箕) : 두 별의 이름. 이 두 별의 사이는 은하(銀河)가 가로놓였으므로, 간격이 있어 원활하지 못한 것의 비유.

옥우의 학을 길들이고, 채우(綵羽)의 꿩을 사냥하네

   玉羽馴他鶴<옥우순타학>   莎鞦射却鶅<사추사각치>

거문고는 녹수를 타고, 시는 청기(淸奇)한 것을 찾누나

   美琴彈淥水<미금탄록수>   琢句覓淸琪<탁구멱청기>

푸른 대나무가 층계 앞에 둘렀고, 푸른 소나무는 평고대를 덮었네

   綠竹環階砌<녹죽환계체>   靑松蔭梠㮰<청송음려비>

경복전부(景福殿賦)주에 '평고대를 연첨목(連簷木)이라 한다.' 하였다.

녹수(淥水) : 악부(樂府) 금곡(琴曲)의 가사 이름.

이끼를 제거해 폐정을 수리하고, 땅을 일구어 따비밭을 만든다오

   剝苔新廢井<박태신폐정>   墾土理荒菑<간토이황치>

암혈(巖穴)에는 고라니 새끼가 엎드렸고, 산속에는 호랑이 시체가 쓰러졌네

   穴伏梢麕子<혈복초균자>   山僵蹂虎屍<산강유호시>

한적한 생활에도 지루할 적이 있어, 슬쩍 나와 보면 남의 비웃음만 받아

   幽栖難奈久<유서난내구>   出試見他辴<출시견타진>

나는 요즈음 북산(北山)에 우거(寓居)하면서 자호(自號)를 백운거사(白雲居士)라 하였다.

앞으로 제갈에서 의탁하려 하거니, 비위가 추천되는 데 뭐가 어려우랴만

   更欲依諸葛<갱욕의제갈>   何妨薦費褘<하방천비위>

제갈량(諸葛亮)이 비위를 추천하였었다.

천자가 워낙 성명(聖明)하여, 거유만을 높인다 하니

   但聞天子聖<단문천자성>   唯重巨儒耆<유중거유기>

애써 꾸미려 해도 아무 소용 없고, 용렬한 재주는 항시 그렇다오

   剪拂徒勞爾<전불도노이>   駑頑亮若玆<노완량약자>

조대(釣臺)에서 떠날 인연이 없거니, 어찌 띠집 벗어나길 바라랴

   無緣離釣築<무연이조축>   何計脫蓬茨<하계탈봉자>

옥이 들어 있으면 궤가 감춰지게 되고, 구슬이 묻혀 있으면 언덕도 윤택하다는데

   玉蘊常藏櫝<옥온상장독>   珠潛敢潤碕<주잠감윤기>

오도부(吳都賦)'붉은 단사(丹砂)와 투명한 잔구슬[]~언덕이 마르지 않고 수목이 윤택하다.' 하였다.

생애가 어찌 이다지 불우한지, 심사가 너무 평온하지 못하구려

   生涯何落魄<생애하락백>   心事好參差<심사호참차>

가도는 늘 나귀를 탔고, 환공은 말도 타지 않았으며

   賈島驢恒跨<가도려항과>   桓公馬未騎<환공마미기>

전사엔 새들이 망라되고, 망호엔 거미를 보았어라

   篆沙羅鳥雀<전사라조작> 網戶對蛛蜘<망호대주지>

연에서 높인 곽외(郭隗)를 무어 부러워하며, 송에서 상 준 이반(耏班)을 어떻게 바라겠는가

   何羨燕尊隗<하선연존외>   何期宋賞耏<하기송상내>

경도(京都)는 변천에 민감하고, 세파(世波)는 고비가 극심하네

   京塵工化素<경진공화소>   世路劇彎崎<세로극만기>

우수울사 천 편의 시로도, 한 가지 물건도 살 수 없지만

   自笑詩千紙<자소시천지>   難償市一劑<난상시일제>

소악(韶樂)을 들으니 고기맛을 잊고,상송이 있으니 배고픔도 걱정 없네

   韶聲忘嗜味<소성망기미>   商頌莫憂飢<상송막우기>

술을 즐기니 꿰미에 돈이 떨어지고, 땔감이 없으니 빗장을 쪼개 지피네

   愛酒緡錢盡<애주민전진>   無薪牡木炊<무신모목취>

봄은~원문 3자 결~, 햇볕은 그늘진 해바라길 피하누나

   靑春▨▨▨<청춘▨▨▨>   白日避陰葵<백일피음규>

지장은 찢기울까 걱정되고, 하의는 미처 꿰매지 못하였네

   紙帳唯愁裂<지장유수렬>   荷衣不用紕<하의불용비>

글을 너무 보니 안력이 상하고, 병이 많으니 온 몸이 허약하며

   看書雙眼損<간서쌍안손>   多病一身㾨<다병일신의>

컬컬하면 잔을 들어 목을 축이고, 다닐 때는 지팡이로 몸을 버티네

   渴把杯濡口<갈파배유구>   行將杖拄肢<행장장주지>

거니는 취미는 장주(莊周)보다 높고, 잠적(潛跡)하는 심사는 굴원(窟原)을 위문하며

   逍遙高漆吏<소요고칠이>   伏竄吊湘纍<복찬적상류>

길가에는 도추의 털털한 신이 놓이고,뜨락에는 공우의 장식한 신이 없다네

   路置桃椎屩<노치도추교>   庭無貢禹綦<정무공우기>

남들은 나를 방광하다 조롱하지만, 나는 본시 아첨을 부끄럽게 여기기에

   人雖譏放曠<인수기방광>   我本恥嚅㖇<아본치유이>

가는 곳마다 공격이 생기고, 온 몸에는 고통이 뒤따르나

   觸地生矛戟<촉지생모극>   渾身帶蒺蔾<혼신대질리>

두어 칸의 띠집이 모처럼 마련되고, 한 벌의 갈옷이 이만 마음 편한데

   數間初卜宅<수간초복택>   一褐自安卑<일갈자안비>

어린 자식은 거친 쌀도 좋아하고, 못난 아내는 장옷조차 없으며

   稚子呼麤糲<치자호추려>   山妻欠羃䍦<산처흠멱리>

<당서(唐書)>거복지(車服志)'부인들은 장옷으로 몸을 가린다.' 하였다.

가도(賈島)~탔고 : 가도는 당() 나라 때의 시인(詩人). 처음에 중이 되었다가 뒤에 환속(還俗)하였다. 그는 한창 시상(詩想)에 잠겼을 적에는 아무리 공경(公卿) 같은 귀인을 만나도 알지 못하고 지나치고는 하였는데, 하루는 경조윤(京兆尹)을 길에서 만났는데도 나귀에 탄 채 피하지 않았다가 책망을 듣고 한참 만에야 풀려나기도 하였다.

환공(桓公)~않았으며 : 제환공(齊桓公)이 서정(西征)하는 길에 말을 매놓고서 태항산(太行山)을 넘어 비이(卑耳)의 오랑캐와 함께 진하(秦夏)를 정복했을 때의 일을 말한 듯하나 자세하지 않다.

전사(篆沙) : 모래 위의 전자(篆字). 모래 위를 밟아다녀서 난 발자국이 마치 전자 모양으로 된 형태를 말한 듯하다.

망호(網戶) : 그물처럼 조각된 무늬 지게. <금루자(金樓子)> 잡기(雜記)'공사(龔舍)가 초왕(楚王)과 함께 미앙궁(未央宮)에서 자게 되었는데, 크고 빨간 거미가 쳐놓은 그물에 벌레들이 걸려들어 꼼짝도 못하는 것을 보고 '벼슬은 곧 사람의 그물이다.' 탄식하고 벼슬에서 물러나자, 사람들이 그를 지주은(蜘蛛隱)이라 했다.' 하였다.

()에서 높인 곽외(郭隗) : 곽외는 전국 시대 연() 나라 사람. 소왕(昭王)이 천하의 어진이들을 초빙하려고 할 때 곽외가 '우선 나 같은 사람부터 어진이로 초빙해 준다면 어찌 나보다 더 어진이가 저절로 몰려들지 않겠는가.' 하여, 맨 먼저 스승의 대우를 받았다.

()에서 상 준 이반(耏班) : 이반은 춘추 시대 송 나라 사람. 수만(鄋瞞)이 송을 쳐들어왔을 때 그가 사도 황보(司徒皇父)의 어자(御者)가 되어 적을 사로잡게 되자, 송공(宋公)이 문(관문(關門)을 말하는데, 이 관문을 곽외에게 주어 거기에서 나온 세금을 곽외의 소유로 하였다)을 상()으로 주었다.

소악(韶樂)~잊고 : 소악은 순() 임금의 음악. <논어(論語)> 술이(述而)'공자가 제()에서 소악을 듣고는 고기맛조차 잊어버리고 '이처럼 아름다울 줄은 몰랐다.' 했다.' 하였다.

상송 : <시경(詩經)> 삼송(三頌 ()()())의 하나. 이는 은() 나라 때에 지어진 것이라 한다.

지장(紙帳) : 종이로 만든 모기장.

하의(荷衣) : ()잎으로 엮어 만든 은자(隱者)의 옷, <초사(楚辭)>이소경(離騷經)'기하(芰荷)를 재단하여 옷을 만든다.' 하였다.

길가에는~놓이고 : 도추의 성은 주(), 당 나라 때 거사(居士). 그는 천성이 담박하여 산 속 오막살이에 살면서 항상 미투리를 만들어 길가에 놓아두면, 지나는 사람들이 '주 거사의 신이다.' 하고 쌀을 대신 그 자리에 갖다 놓고 신을 가져갔다 한다.

뜨락에는~없다네 : 공우(貢禹)는 한() 나라 때 현량(賢良)으로 천거되어 뒤에 간의 대부(諫議大夫) 등을 지낸 사람이나, 여기서 말하는 신에 대한 일은 자세히 알 수 없다.

언제나 손경의 문이 닫혔고, 공야장(公冶長)의 구류(拘留)와도 같네

   常閉孫敬戶<상폐손경호>   如在冶長縲<여재야장류>

아 전날 세 분을 뵈었을 적에, 시간 보내며 온갖 시름 잊으니

   憶昨尋三老<억작심삼로移時遣百罹<이시견백리>

양춘의 높은 곡조 영중(郢中)에서 부르는 듯, 궤채의 모임으로 수원(睢圓)에서 노니듯

   陽春嘉唱郢<양춘가창영>   繢綵譬遊睢<궤채비유휴>

봉 날개에 의탁하는 영광을 입었고, 또 의기가 양양한 기쁨을 나누었네

   附翼方欣覿<부익방흔적>   揚眉各自怡<양미각자이>

정원에는 잡초를 베고, 주위에는 잡목을 제거했으며

   繞園芟草莽<요원삼초망>   掃地剪楱椔<소지전주치>

<당서>'고목(枯木)이 가리고 잡목이 우거졌다. '하였고, '고목은 줄기와 가지를 몽땅 제거한다. '하였다.

손경(孫敬)의 문이 닫혔고 : 손경은 한 나라 사람. 문을 닫고 글을 읽다가 졸음이 오면 상투를 천장에 매어달기까지 했는데, 문을 닫고 공부하였으므로 그때 사람들이 그를 폐호 선생(閉戶先生)이라 일컬었다.

공야장(公冶長)~구류(拘留) : <논어(論語)> 공야장(公冶長)'그가 아무리 구류중에 있지만 그의 죄는 아니다.' 하였다.

양춘(陽春)~부르는 듯 : 양춘은 초()의 고상한 사곡(詞曲) 이름. 송옥(宋玉)이 초왕에게 '한 사람이 영중(郢中)에서 양춘과 백설(白雪) 같은 고상한 곡조를 부르니 화답할 자가 겨우 수십 명뿐이었습니다.' 하였다.

수원(睢園) : () 나라 제왕(諸王)인 양효왕(梁孝王)이 빈객(賓客)들을 맞이하던 토원(兔園)을 말한다.

봉 날개에~입었고 : 이는 출세를 뜻하는 말이다. <후환서(後漢書)>광무기(光武紀)'지금 여러 사람이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대왕을 따르는 것은 용의 비늘을 더위잡고 봉의 날개에 붙어 그 뜻한 바를 이루려 함입니다.' 하였다.

숲 속의 과일은 높아서 따기 어렵고, 연못의 고기는 이루 친근할 수 있네

   林菓高難摘<임과고난적>   池鱗俯可麗<지린부가려>

정공의 임원(林園)에는 연못까지 있다.

기장엿을 어찌 엿보지 않으며, 곰국은 있는 대로 사양치 않아

   餦餭何讓窺<장황하양규>   臛臇不辭欹<확전불사의>

젓가락으로 음식 집는 것은 의()라 한다.

손님을 좋아한 이 모두 임방이요, 어진이 추천한 이 다 송기일세

   愛客皆任昉<애객개임방>   推賢盡宋畸<추현진송기>

전한(前漢) 때 좌풍익(左馮翊) 송기가 황패(黃覇)를 현량(賢良)으로 천거하였다.

손님을~임방(任昉)이요 : () 나라 임방은 시()()()이 모두 당세에 뛰어난 재사로 이름 있는 선비들과 교유하기를 좋아하였는데, 누구나 그에게 인정을 받은 사람은 다 높이 발탁되기 때문에 수많은 선비들이 다 그를 좋아하여 따랐으므로 좌석에 손님들이 항상 수십 명씩이나 있었다

장씨(張氏)의 시내에는 섬약한 버들을 품제(品題)하고

   張溪題弱柳<장계제약유>

반씨(潘氏)의 원포(園圃)에는 꽃다운 호유(胡荽)를 자랑하네

   潘圃詫芳荽<반포타방유>

흔들리는 녹색에 마늘이 예쁘고, 돋아나는 황색에 유채(蓶菜)가 환하구려

   颺綠還憐蒜<양록환연산>   抽黃始見蓶<추황시견유>

유채는 조구(鳥韭)와 비슷하면서도 황색이다.

장씨(張氏)~품제(品題)하고 : 장정견(張正見)의 시에 '맑은 시내 천 길이나 험한데 삼양에 섬약한 버들이 드리웠네.[千仞淸溪險 三陽弱 柳垂]' 하였다.

반씨(潘氏)~자랑하네 : () 나라 때 문장가 반악(潘岳)의 한거부(閑居賦)'좋은 곳에 거소(居所) 잡아 집을 짓고 못을 만들면~호유[胡荽 향초 이름]가 향내를 풍기리라.' 하였다.

이미 삼색리를 옮겼고, 구광지로 심으려 하네

   已移三色李<이이삼색이>   將種九光芝<장종구광지>

돌샘은 워낙 깊어 두레박줄이 느리고, 산재는 오래되어 막대기로 버티었네

   石井絙繩索<석정환승삭>   山齋峙柱榰<산재치주지>

잔은 삼백으로 헤아리고, 술은 십천으로 걸렀으니

   盃籌三百計<배주삼백계>   斗酒十千釃<두주십천시>

막걸리와 좋은 술을 마시고, 텁텁한 술과 모주를 권하며

   代奏醙兼醑<대주수겸서>   交斟酎雜醨<교짐주잡리>

붓은 회화군(懷化郡)의 먹을 찍고, 찻잔은 정주의 자기를 사용하네

   濡毫懷化墨<유호회화묵>   嘗荈定州瓷<상천정주자>

이미 참여를 허용하였거니, 어찌 찬합을 던질 리 있으랴

   已許來函杖<이허래함장>   何曾怒擧欙<하증노거류>

<진서(晉書)>'왕연(王衍)이 연석에서 화나는 일이 있어, 찬합을 들어 상대방의 얼굴에 던졌다.' 하였다.

삼색리(三色李) : () 나라 때 부현(傅玄)의 이부(李賦)'~방릉(房陵)의 표청리(縹靑李 옥색 오얏)는 한 나무에 세 가지 색깔의 오얏이 열리고 맛과 이름이 각기 다르다.' 하였다.

구광지(九光芝) : 영지(靈芝)의 이름. <포박자(抱朴子)>'구광지는 석지(石芝)의 일종으로, 임수(臨水)의 높은 산 절벽 틈에서 나는데, 모양이 마치 주발처럼 생겼고 크기는 한 자를 넘지 않는다.' 하였다.

회화군(懷化郡)의 먹 : 좋은 먹을 지칭하는 말이다. 고미(顧微)의 광주기(廣州記)'회화군에서 해자를 파서 많은 석묵(石墨)을 캐내는데 먹이 매우 좋아서 글씨를 쓰기에 알맞다.' 하였다.

정주(定州)의 자기[] : 정주는 곧 지금의 하북성(河北省) 정현(定縣)을 말하는데 송대(宋代)에 이 고을 사람들이 만든 자기가 아주 유명하여 세상에서 정요(定窯)라고 일컫기까지 하였다.

조용한 정취는 곡구요(谷口謠)보다 높고, 끝없는 시야는 아미산까지 닿았네

   幽情高谷口<유정고곡구>   遠目極峨嵋<원목극아미>

묵은 나무엔 푸른 이끼가 돋았고, 높은 추목(楸木)엔 푸른 칡덩굴 얽혔구려

   古木蒼苔澁<고목창태삽>   高楸碧葛虆<고추벽갈류>

안건으로 바위에 함께 걸터앉고, 납기로 험한 산에도 오르네

   岸巾同踞石<안건동거석>   蠟屐更升岯<납극갱승비>

세면(洗面)할 적에는 곁으로 나는 샘에 가고, 거닐 적에는 늘어진 가지를 헤치며

   盥潄臨泉氿<관수임천궤>   徘徊拂樹㯅<배회불수피>

나뭇가지 밑으로 늘어진 것을 피()라 한다.

수풀이 깊숙하니 피어오른 구름 날마다 끼었고, 동학(洞壑)이 그윽하니 시원한 바람 언제나 모이네

   林深餘宿靄<임심여숙애>   洞密聚曾颸<동밀취증시>

다행히 함께 천일주(千日酒)를 마셨거니, 어찌 구의산(九疑山)을 못 볼까 걱정하랴

   幸共傾千日<행공경천일>   何嗟對九疑<하차대구의>

향내가 그윽한 두약을 찾고, 세속이 즐기는 엿 따위를 멀리하네

   幽香尋杜若<유향심두약>   俗嗜屛餳飴<속기병당이>

기쁜 정의만 다하면 그만이지, 어찌 사소한 예절에 구애되랴

   要極歡情耳<요극환정이>   何拘末禮爲<하구말예위>

오늘은 잠시 물 만난 고기 되었지만, 내일은 다시 끈끈이에 붙은 새와 같으리

   乍如魚得水<사여어득수>   退作鳥黏黐< 퇴작조점리>

저녁 잠자리에는 풀자리가 고작이요, 아침 밥상에는 고사리나물뿐이라네

   夜臥唯莞葦<야와유완위>   朝飧只蕨藄<조손지궐기>

섭섭해하는 말은 차마 들을 수 없고, 그리는 눈물은 눈꼽으로 변하였네

   緖言難接耳<서언난접이>   思淚謾成眵<사루만성치>

굶주린 쥐는 괜히 안석(案席)을 엿보고, 추위에 떠는 닭은 일찍 회에 오르누나

   飢鼠空窺案<기서공규안>   寒鷄已上塒<한계이상시>

모진 바람은 북쪽에서 몰아들고, 석양 볕은 서산에 넘어가네

   厲風嚴朔漠<여풍엄삭막>   反炤指崦嵫<반소지엄자>

진작부터 경첩(輕捷)한 문체(文體)로 바꾸려 한바, 도리어 남의 영치만 받을까 염려했으나

   久欲成勦體<구욕성초체>   唯憂被詅嗤<유우피령치>

종기실 시평(鍾記室詩評)'문체가 경첩하고 안정되었다.' 하였다.

<청상잡기(靑箱雜記)>'문장이졸렬한데도돌에새기기좋아하는자가받는비웃음을영치라 한다.'하였다.

곡구요(谷口謠) : () 나라 고사(高士) 정자진(鄭子眞)이 곡구현(谷口縣)에 집을 짓고 수도하면서 지은 무언(無言)의 노래를 이름.

안건(岸巾) : 두건을 뒤로 제껴 써서 이마가 훤히 드러나게 하는 것. 전하여 예법을 무시하고 아무에게나 친근하게 대면하는 것을 말한다. 이설에는 미천한 자가 쓰는 두건이라고도 한다.

납기(蠟屐) : 밀을 발라서 광택이 나는 나막신. <진서(晉書)> 완부전(阮孚傳)'그는 납기를 너무 좋아하고 조약(祖約)은 재물을 너무 아하여 모두 흠이 되나, 그 중에도 두 사람의 우열(優劣)을 오랫동안 판가름하지 못하였다. 그러다가 한 사람이 조약을 찾아가니 마침 금전을 계산하다가 날쌔게 뒤로 치우고는 그 표정이 매우 불안해하였고, 완부를 찾아가니 마침 납기를 챙겨 신고는 '나의 일생에 몇 켤레나 더 신게 될는지 모르겠다.' 하고 혼자서 탄식하는 그 표정이 매우 차분하였으므로 두 사람의 승부를 비로소 가려냈다.' 하였다.

구의산(九疑山) : 지금의 호남성 영원현(寧遠縣) 남쪽에 있는 주명(朱明)석성(石城)석루(石樓)아황(娥皇)순원(舜源)여영(女英)소소(蕭韶)계림(桂林)자림(梓林) 등 아홉 봉우리의 산으로 모두가 모양이 같이 생겨서 보는 사람이 누구나 어느 봉이 어느 봉인지 어리둥절하여 의심을 내게 되므로 구의(九疑)라 이름했다 한다.

두약(杜若) : 향초(香草)의 이름. <초사(楚辭)> 구가(九歌) 상군(湘君)'저 방주(芳洲)에서 두약을 캐노라.' 하였다.

마음을 더욱 고요히   가라앉히고, 시구를 더 열심히 모색하네

   潛心彌眑眑<잠심미유유>   索句益孶孶<색구익자자>

다시는 공과 함께 즐기기 어려우니, 나의 체증 어떻게 소화시키려나

   未復同君樂<미복동군락>   邦堪使我疧<방감사아저>

복양에 세속 초탈을 숭상하고,   이도에 띠집 마련을 뜻했으니

   濮陽超世尙<복양초세상>   履道結茅期<이도결모기>

오공이 나에게 '정원 안에 한 채의 초당을 마련하고 그대와 함께 경서(經書)를 토론하려 한다.' 하였다.

정대한 출처를 그 누가 알랴, 오직 나만이 존경하고 있다오

   出處知誰與<출처지수여>   攀援獨我推<반원독아추>

마실 때는 좋은 술과 함께하고, 먹을 때는 또한 손가락과 마주하게 되었네

   飮將同綠蟻<음장동녹의>   食亦共蹲鴟<식역공준치>

학을 즐기려면 배가 부르도록 해야 하고, 시를 평하려면 철저하게 분석해야 하느니

   耽學期便腹<탐학기편복>   評詩到擘肌<평시도벽기>

큰 화로는 날카롭거나 무딘 쇠를 다 용납하고, 밝은 거울은 곱거나 미운 얼굴 다 비쳐주네

   洪爐容利鈍<홍로용이둔>   明鏡納妌媸<명경납정치>

짐승 중에는 을 신중히 기록하였고,벌레 중에는 수를 자세히 논의했는데

   獸傅重箋狛<수부중전박>   蟲篇細問雖<충편세문수>

공이 모충(毛蟲)갑충(甲蟲)인충(鱗蟲)에 대한 시()를 지었다. <산해경(山海經)>'남산에 있는 짐승들 가운데 박이 가장 많다.' 하였다. <광운(廣韻)>'()는 벌레의 이름인데, 땅거미와 비슷하면서도 작다.' 하였다. 공이 수에 대한 시를 지었기 때문에 말한 것이다.

스승이라면 맹희처럼 높이고, 형이라면 승미처럼 섬기네

   師傅尊孟喜<사부존맹희>   兄事擬僧彌<형사의승미>

졸렬한 글을 드리고 보니, 명작을 모독하여 너무 부끄럽다오'

   强自呈蕪拙<강자정무졸>   多慙側曄猗<다참측엽의>

끝말: 오공의 시는 거의 다 고사(古事)를 인용하였다. 그리고 나의 강운(强韻)을 단 구절을 보기 위하여 낱낱이 주석을 붙이도록 하였으나 나는 후인에게 비웃음만 받을까 두려워서 거의 다 삭제하고 간략한 주석만 두었다.

<李奎報:高麗:古譯院()>

복양(濮陽)~숭상하고 : 춘추 시대 장주(莊周)가 복수(濮水 복양현에 있는 강)에서 낚시질할 때, 초왕(楚王)이 사신을 보내어 장주에게 초 나라 정승이 되어달라고 하자, 장주가 돌아본 체도 않으면서 '거북은 죽어서 뼈를 남겨 귀하게 되는 것보다 차라리 살아서 저 진흙 속에 꼬리를 끌고 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것이니, 나 역시 벼슬 자리에 속박되지 않고 산 거북처럼 진흙 속에 꼬리를 끌고 다니며 살련다.' 하였다.

배가 부르도록[便腹] : 학식(學識)이 많음을 비유한 말이다. 후한(後漢) 때 변소(邊韶)가 문장(文章)으로 유명하였는데 한번은 거짓 낮잠을 자는 체하고 있자 제자가 혼잣말로 '변 효선(邊孝先 효선은 변소의 자)은 배는 잔뜩 부른데다 글읽기는 싫어하고 잠만 자려는구나.' 하니, 변소가 대응하기를 '잔뜩 부른 배는 곧 오경(五經) 상자이고, 자려고 하는 것은 경사(經事)를 사색함이다.' 하였다.

() : 짐승 이름. 이리 비슷하다고 한다.

스승이라면~높이고 : 맹희(孟喜)는 전한(前漢) 때의 유학자(儒學者). 전왕손(田王孫)에게서 <주역(周易)>을 배웠는데, 뒤에 '스승 전생(田生)이 죽을 때에 오로지 자기에게만 학문을 전수(傳授)했다.'고 말하여 유자(儒者)들로부터 많은 선망(羨望)을 받았다.

형이라면~섬기네 : 승미(僧彌)는 진() 나라 때 왕민(王珉)의 소자(小字). 왕민이 어려서 재주가 뛰어나 자기 형인 왕순(王珣)보다 이름이 높았으므로, 그때 사람들이 '법호(法護 왕순의 소자)도 훌륭하기는 하지만, 승미의 형이 되기에는 부족하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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