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율시(古律詩) 44수 / 동국이상국전집 제5권

2014. 12. 28. 04:43들꽃다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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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율시(古律詩) 44수
동각(東閣) 오세문(吳世文)이 고원(誥院)의 여러 학사(學士)에게 드린 삼백 운(韻)의 시에 차운하다 병서(幷序)

 


    복양(濮陽) 오공 세문이 북사(北使)로부터 탄핵을 받고 서울로 돌아와 한가히 지내던 어느 날, 동각 김서정(金瑞廷)과 함께 원외(員外) 정문갑(鄭文甲)의 임원(林園)에 술자리가 베풀어졌다. 나도 그곳을 방문하여 말석(末席)에 참여하였는데 오공이 나에게 자랑하기를, “고금의 시집 중에 삼백 운의 시를 지은 사람은 없는데 나는 이 삼백 운의 시를 지어 고원의 여러 학사에게 드렸으니, 자네가 화답할 수 있겠는가.” 하면서 그 시를 꺼내 보였다. 나는 그날 집으로 돌아와 차운, 화답하여 오공에게 보내고 아울러 정 원외와 김 동각에게도 이를 알렸다.

 


동도는 옛날 좋은 나라로 / 東都古樂國
궁전의 터 남아 있으니 / 宮殿有遺基

 


신라 제56대 왕 김부(金溥)가 우리 태조에게 항복하자 태조가 맏 공주를 아내로 삼아 주고 신라를 경주(慶州)로 고쳐 그의 식읍(食邑)으로 하게 하였다. 오공이 자신은 신라왕의 외손이라 말하였고 또 동경(東京)에 우거(寓居)하였었으므로, 동경에 대한 일을 말하였다.

 

 

 

역사에서 지난 자취 엿볼 수 있고 / 靑史窺陳迹
순후한 풍속 옛날 되새길 수 있네 / 淳風記昔時
진 나라 강에는 처음으로 말이 건너갔고 / 晉江初渡馬
주 나라 낙수에는 비로소 거북점을 쳤네 / 周洛始鑽龜

 


낙읍은 주의 동경이므로 경주에 비유하였다.

 

 

 

 

발해는 둘러 못이 되고 / 渤海環爲沼
부상은 둘러 울이 되어 / 扶桑繚作籬
천년 동안의 왕업을 열고 / 千年開際會

 


《신라기(新羅記)》에 “일천 년의 운을 응했다.”하였다《신라추기(新羅㮲記)》에는 “9백 9년이었다.”하였다.

 

 

 

 

여러 성왕(聖王)이 평화를 누렸네 / 累聖享雍熙
비로소 궁현의 음악을 제정하고 / 肇制宮懸樂
처음으로 절찬하는 의식을 마련했네 / 初陳蕝纂儀
대하의 근검함을 본받았고 / 儉勤師大夏
인지의 황괴한 것을 물리쳤네 / 荒怪黜因墀

 


《습유기(拾遺記)》에 “인지 나라에서 다섯 개의 발이 달린 짐승을 진상해 왔는데 생김새가 사자(獅子)와 같다.”하였고 소동파(蘇東坡)의 시에는, 황괴환수문자년(荒怪還須問子年)이라 하였다.

 

 

 

 

 

한신 같은 국사를 등용하고 / 國士登韓信
공규같은 조신을 대우했네 / 朝臣重孔戣
은덕은 우로(雨露)와 같았고 / 恩榮同雨霈
호령은 뇌정(雷霆)과 같았네 / 號令劇雷馳
문물(文物)은 풍운처럼 융성하였고 / 冠帶風雲盛
성덕을 구가한 세월 길기도 하였네 / 謳歌日月遲
누가 평자의 부를 지었던가 / 誰成平子賦

 


평자가 동경부(東京賦)를 지었으므로 한 말이다.

 

 

 

 

 

이에 맹견의 사 볼 만하네 / 堪睹孟堅辭

 


맹견은 동도부(東都賦)를 지었다.

 

 

 

 

 

국토는 성기에 맞게 정리하고 / 經野當星紀
농사는 토질을 따라 장려했네 / 耰甿循土宜

 


《주례》에 “농사는 토질에 따른다.”하였다. 이미 동경을 주(周)의 낙읍에 비유하였으므로 한 말이다.

 

 

건곤은 서약으로 측정되고 / 乾坤歸黍籥
조화는 노추와 같네 / 造化入爐槌
무쇠를 씹는 충신의 담이요 / 嚼鐵忠臣膽
구슬을 연한 묵객의 시이네 / 聯珠墨客詩
경상의 저택은 고기의 비늘처럼 즐비하고 / 魚鱗卿相宅
제왕의 비석은 교룡(蛟龍)의 머리처럼 우뚝하네 / 螭首帝王碑
태학에서는 삼로를 맞아들이고 / 太學迎三老
홍려시(鴻臚寺)에서는 사이를 받아들이며 / 鴻臚受四夷
누각은 봉이 깃들었음을 알겠고 / 樓諳巢鳳閣
관사는 용으로 표시했음을 알겠네 / 官認紀龍司
날아갈 듯한 두 채의 궐이 벌여 있고 / 翼翼呀雙闕
출렁거리는 커다란 못이 패였네 / 泱泱闢大池

 


《신라기》에 “벽골지(碧骨池)를 쌓았고, 또 궁중에 큰 못을 팠다.”하였다.

 

 

 

 

 

선진은 기이한 자치를 남겼고 / 仙眞留異跡

 


《신라기》에 선랑(仙郞)의 사적들이 있다.

 

 

 

 

 

현성은 위대한 규범을 보였네 / 賢聖揭宏規
견수는 동대를 짝하였고 / 犬首侔東岱 ]
《신라기》에 “견수사(犬首祠)가 있다.” 하였고, 동도부에 “대산(岱山)에 돌을 새기고 숭산(嵩山)에 제(祭)를 드렸다.” 하였다.
교천은 좌이를 모방하였네 / 蛟川倣左伊 

 


《삼국사기》에 “동경에 교천이 있다.” 하였고 동경부에 “좌편에는 이수(伊水)가, 우편에는 전수(瀍水)가 있다.” 하였다.

 

 

 

 

 

연한 띠뿌리처럼 준사(俊士)가 많았고 / 茹連多衆彦
단단한 금석처럼 깊은 계책 간직하였네 / 石畫祕深惟
악작은 날개를 나란히 하고 / 鸑鷟爭騈翼
화류는 고삐를 잇달았네
/ 驊騮競接綏
이선은 다 고귀한 자제들이요 / 珥蟬皆貴冑
비봉 또한 청수(淸秀)한 자질들이네
/ 批鳳亦淸姿
이불을 덮어 준 풍표(馮豹)를 하찮게 여기었고 / 覆被應欺豹
옷자락을 잡아당긴 신비(辛毗)를 사모하였네 / 索裾或慕毗
규격 있는 문장은 절벽에 과시하고 / 遒文誇絶壁
신기한 계략은 시초에 비교되었네 / 神略較靈蓍
인범의 생황 청아하였고 / 仁範笙簧雅
홍유의 보불 드날렸네 / 弘儒黼黻披

 


박인범(朴仁範)과 설총(薛聰)을 말한 것이다.

 

 

 

 

가사(歌辭)가 청아하니 장적 소리 멀리 들리고 / 辭淸長笛嘏
지취가 고상하니 복건차림 아름다워라 / 意逸幅巾咨
저마다 앞을 다퉈 조반(朝班)에 오르거니 / 競躡班聯緊
누가 정무(政務)의 많음 사양하랴 / 誰辭政事埤
고운 같은 금마객은 / 孤雲金馬客

 


최치원(崔致遠)의 자는 고운인데 당(唐)에 들어가 단번에 급제하자, 동년(同年) 고운(顧雲)은 “한 화살에 금문(金門)의 사책(射策)을 쏘아 명중시켰다.” 고 시를 지어 찬양하였다.

 

 

 

 

동해의 옥림 가지였네 / 東海玉林枝
사책으로 중국을 울려 / 射策鳴中國
사해까지 진동시켰네 / 馳聲震四陲
높은 이름이 당시에 울려 퍼지고 / 高芬繁肹蠁
영원한 여운 지금도 메아리치네 / 遺韻遠委蛇

 


서경부(西京賦)에 “소리가 맑고 길어 멀리 메아리친다.” 하였고, 그 주(注)에 “남은 소리가 굽이친다.” 하였다.

 

 

 

 

 

염한이 다하려 하는 시대에 / 世欲終炎


신라의 말기를 말한다.

 

 

 

 

어진 이는 묵이처럼 은둔한 이 많았네 / 賢多匿黙台

 


《주서(周書)》에 “치봉(治峯)의 본래 성은 묵이였는데 난세(亂世)를 피하여 치봉으로 고쳤다.”하였고 《광운(廣韻)》의 지 자 운(支字韻)과 이 자 주(台字注)에 “성이니,《성원(姓苑)》에 나온다.” 하였다.

 

 

 

 

세상이 다시 하나로 통합되고 / 寰區歸統壹
나라에 영재가 배출되었네 / 古國産英奇
부자는 더욱 수기(秀氣)를 흠뻑 받아 / 夫子尤鍾秀
좋은 시절 유독히 뛰어났네 / 淸時特挺姿
구경 중에 역경을 더욱 좋아하고 / 九經偏嗜易
삼보에는 자비를 선두로 삼았네 / 三寶最先慈
사조(謝朓)의 저작을 무색케 하고 / 制作平呑朓
서이(徐摛)의 음와한 것을 일소하였네 / 哇淫一掃摛
이미 천리족을 달렸고 / 早騰千里足
일찍이 사시피를 갖췄네 / 曾備四時皮
강직(剛直)한 것은 이화정과 같고 / 鯁正李和鼎
풍류는 원효니와 같았네 / 風流袁孝尼
시재(詩才) 는 칠보에 지은 것보다 높고 / 詩高成七步
효도는 삼태를 물은 것보다 지났네 / 孝過問三笞
흰 옥은 본시 더럽히기 어렵고 / 白玉元難汚
저울대는 어찌 맘대로 속일쏜가 / 懸衡豈易欺
청수한 골격은 쌍학의 정수(精髓)이며 / 骨淸雙鶴髓
미려(美麗)한 시문은 수잠의 토사(吐絲)일세 / 文麗水蠶絲

 


수잠은 빙잠(氷蠶)과 다른 종류이다.

 

 

 

 

후학은 명령처럼 감화되고 / 後學螟蛉化
선비들은 조작처럼 모여드네 / 諸儒鳥雀隨

 


공이 평소 제생(諸生)을 모아 가르쳤다.

 

 

 

 

고상한 지조로 남다른 은총을 입었고 / 濯纓承異睠
경건한 마음으로 새로운 글을 올렸네 / 頮面奏新詞

 


공이 평소 한림(翰林)이 되었었다.

 

 

 

 

꿋꿋한 지개 이미 높았으니 / 抗志曾高峭
어찌 고개 숙여 아첨하겠으며 / 低顔肯哫訾
혜초를 꿰매 만든 패물 스스로 사랑했으니 / 自珍紉佩惠
주머니 뚫고 나오는 송곳 엄폐하기 어려워 / 難掩脫囊錐
술수(術數)는 금궤를 정통하고 / 步緯該金櫃

 


공은 음양설(陰陽說)에도 정통하였다. 《당서(唐書)》예문지(藝文志)에 《금궤경(金櫃經)》3권이 있다.

 

 

 

 

 

정신은 옥시를 터득했으니 / 精神檢玉匙

 


《황정경(黃庭經)》에 “구슬을 결속시키고 정을 단단히 하여 신근을 기르고 옥시와 금약을 항상 굳게 간직한다. [結珠固精養神根 玉匙金鑰常堅完]” 하였다. 공은 도가설(道家說)에도 밝았으므로 한 말이다.

 

 

 

 

 

공은 구오의 장원(長遠)한 세계(世系)요 / 句吳玄孫遠
또한 태백의 내려 온 유풍이라오
/ 太伯素風垂
해내에 동방삭이요 / 海內唯方朔
관동에 노비일세 / 關東獨魯丕
단편에는 침탁한 이를 비웃고 / 短編嘲踸踔
고전에는 환기 모양을 분별하며 / 古篆辨蠉蚑
사도로는 한유와 견주고 / 師道肩韓愈
명성은 유희처럼 높았네 / 時名揖庾羲
두 차례 동으로 가는 역마를 탔고 / 再乘東去馹
세 차례 북으로 가는 수레를 탔으니 / 三駕北征轙
장쾌한 관광은 유주(幽州)와 계구(薊丘)를 자랑하고 / 壯觀誇幽薊
고상한 유람은 괵 땅과 미현(郿縣)을 아울렀네 / 高遊繼虢郿
해우로 처음 수령(守令) 되었으니 / 薤盂初作守
어느 누가 의이를 의심하랴 / 薏苡孰興疑
치도(治道)가 융성하니 백성은 선정(善政)을 노래하고 / 理叶人歌政
상서(祥瑞)가 드리우니 임금은 복록을 받았네 / 徵期帝受釐
지방 풍속은 말갈(靺鞨)과 비슷하고 / 土風猶帶鞨
변방 습속은 맹수(猛獸)와 같았으나 / 邊俗例如羆
청독을 소탕하는 데 뭐가 어려우며 / 靑犢何勞剪
전융도 견제할 수 있었으니 / 羶戎尙可縻
위세는 먼 변방에 퍼지고 / 威聲加絶塞
충성은 귀신도 인정하였네 / 忠信質靈祇
큰 자라 어찌 샘에서만 놀겠는가 / 巨鼈那遊井
나는 용이 바로 못에서 뛰쳐 나왔네 / 飛龍旋躍陂

 


공이 소환됨을 말한 것이다.

 

 

 

 

재명(才名)은 더욱 육궐과 같아졌고 / 才英登陸厥
문한은 미지에게 맡겼네
/ 文翰委微之

 


공이 수령에서 돌아와 다시 한림(翰林)이 되었다.

 

 

 

 

누수(漏水)는 방울방울 떨어지고 / 銀漏聲霑滴
화전 그림자는 으리으리하네 / 花甎影陸離
임금의 제서(制書)는 견지에 받아 쓰고 / 制詞書繭紙
하사된 음식은 진미가 진진했는데 / 宣饌飫瓊糜
하찮은 봉채의 독을 만나고 / 微毒遭蜂蠆

 


공이 한림으로 있다가 사건에 관련되어 탄핵을 받아 면직되었다.

 

 

 

 

 

말 많은 제비의 저해를 받아 / 多言任鷾鴯
권서는 백옥과 같고 / 卷舒效伯玉
저술은 최기를 사모했네 / 著述慕崔琦
오도가 어찌 이대로 없어질소냐 / 吾道寧終否
사문이 다시 일어나려는 바일세 / 斯文要復施
한가히 사는 것은 반악(潘岳)을 본받았으나 / 閑居雖效岳
지난일은 반드시 맹기(孟岐)에 묻곤하네 / 古事必咨岐

 


《동명기(洞冥記)》에 “맹기는 청하(淸河)의 일사(逸士)로 나이가 7백세나 되어 국초(國初)의 일을 말했다.” 하였다.

 

 

 

 

 

폄척을 받을수록 이름은 더욱 드러나고 / 貶斥名彌著
능멸은 당할수록 의지 더욱 안정하더니 / 陵競志莫禔
과연 은근한 소명을 받아 / 果承申命密
융숭한 은총 다시 입었네 / 更荷渥光熹
붕새의 날개 몇 번이나 꺾이려다가 / 風翼幾垂退
난근이 다시 얽매이게 되었네 / 蘭筋又見覊

 


공이 다시 한림이 되었다.

 

 

 

 

 

성시는 모두 우의(寓意)가 있었고 / 聲詩皆有寓
국폐(國弊)도 다스려지게 되었네 / 國病尙堪理
묘한 재주는 삼절을 이루었고 / 妙藝標三絶
맑은 행실은 팔비를 제거했네
/ 淸修去八疪
문장은 이문(吏文)도 만들 수 있고 / 文章兼飾吏
정직은 길상(吉祥)을 받을 만하였네 / 正直合膺禧
낮은 벼슬 법에 구애되고 / 薄宦拘繩墨
공의 재기(才器)는 재위(宰位)에 오를 만하네 / 公才稱鼎鼒
상설은 귀밑머리를 침노하는데 / 雪霜侵鬢髮
강하(江河)는 장부(臟腑)에 소용돌이치네
/ 江海吼肝脾
집안에는 먼지 낀 시루가 있고 / 家有生塵甑
문앞에는 굴대가 부딪치는 수레가 많았네
/ 門多擊轊輜
유업(儒業)은 문총이 남아 있고 / 儒功文塚在
충담은 검봉이 알아주리 / 忠膽劒鋒知
이미 소공의 인끈을 받고도 / 已結蕭公綬
오히려 동씨의 장막을 드리웠네
/ 猶垂董氏帷
아유(雅遊)는 백전에서 모시고 / 淸歡陪柏殿

 


백낙천(白樂天)의 주에 “백전에서 임금을 모시고 놀이했다.” 하였다.

 

 

 

 

 

국경(國慶)은 천기절(天祺節)에 참여했네 / 慶日趁天祺

 


《금파유사(金坡遺事)》에 “한림(翰林)이 매년 천경절(天慶節)과 천기절이 돌아오면 한 달 전에 미리 역말을 내린다.” 하였다.

 

 

 

 

어필은 등용을 윤허하고 / 御筆登遷拜
조의는 각문(閣門)에 보궐(補闕)이 되었네 / 朝儀省闕遺

 


공이 맨 처음 각문지후(閣門祗侯)에 임명되었다.

 

 

 

 

 

임금을 지척에 모시고 / 天威纔咫尺
은총을 흠뻑 입었네 / 雨澤洽霑滋
허리를 구부리니 몸가짐이 단정하고 / 傴僂端容止
위의가 씩씩하니 침과 콧물도 조심하였네 / 矜莊愼唾洟

 


《예기》에 “침과 콧물을 함부로 하지 않는다.” 하였다.

 

 

 

 

 

녹 받는 은사(隱士)라 자칭하고 / 自稱居祿隱
또 글만 짓는 바보로 자처하더니 / 還笑著書癡
갑자기 칙명이 내려 / 忽受言綸降
영광된 사절을 받았네 / 光承使節持

 


공이 금년 봄에 운중도(雲中道)의 감창사(監倉使)가 되었다.

 

 

 

 

호피(虎皮) 안장에는 번개 같은 채찍을 날리고 / 虎鞍揮電策
타고에는 천둥 같은 북채를 휘둘러 / 鼉鼓奮雷椎
대군에서 효기를 지휘하듯 하고 / 代郡麾驍騎
병주에서 장사를 선발하듯 하였네
/ 幷州選壯兒
가시숲에서 비외를 후려치듯 / 拉林摣狒猬

 


서경부에 “코 빨간 코끼리가 비외를 후려치니, 가시숲이 쓰러졌다.” 하였다.

 

 

 

 

 

적은 물에 녹을 치고 곤이를 몰살시키듯 / 擿漻䍡鯤鮞

 


서경부에 “적은 물을 가로막고 녹(䍡)을 치니, 곤이(鯤鮞)가 몰살된다.” 하였고, 그 주에 “녹은 잔 그물이요 곤이는 작은 물고기이다” 하였다.

 

 

 

 

진미는 춘주가 적합하고 / 旨味宜春酒
한수는 대곡의 배가 좋으네 / 寒羞大谷梨
그 고장에는 모습어가 별미라지 《산해경(山海經)》북산주(北山注)에 “자호(茈湖)에 모습어가 많이 난다.” 하였다 / 土聞生鰲鰼
한 철의 운치인 꾀꼬리 소리 생각나네 / 時記韻鶊鸝
비록 붉은 관복은 입었지만 / 命服雖披紫
검은 유관이야 어이 고치랴 / 儒管不改緇
봉 술잔을 고운 손으로 올리고 / 鳳觴纖手奉
용피리를 붉은 입술로 부네 / 龍管絳唇吹
두 갈래 진 창은 계단 앞에 삼엄하고 / 畫戟森庭陛
향기로운 바람은 길거리에 풍겨나네 / 香風徹道岐
풍년은 격택에서 점치고 / 年祥占格澤

 


《천문지(天文志)》에 “격택성이 나타나면 농사를 짓지 않아도 수확한다.” 하였다.

 

 

 

 

군사는 자휴에서 증험하네 / 軍事驗觜觿

 


《천문지》에 “자휴성은 삼군(三軍)의 일을 주장하는데, 명랑하면 군수(軍需)가 풍부하다” 하였다.

 

 

 

 

치첩은 진 나라 변방에 이어졌고 / 雉堞連秦塞
홍교는 초 나라 다리에 우뚝하네
/ 虹橋矗楚圯
때로는 사붕이 가설되기도 하고 / 射堋時或峙
날마다 기악이 따랐네 / 妓樂日相追
봄 물에는 뜸부기 떠놀고 / 春水浮鸂鶒
흰 모래엔 해오리 거닐며 / 淸沙立鷺鷥
꽃다운 동산에는 두구꽃 피었고 / 芳園開荳蔲
이슬 띤 가자(架子)에 도미가 얹혔네 / 露架拆酴醾
기괴한 바위는 혹처럼 나왔고 / 怪石如癭
반송은 규처럼 굽었네 규는 굽은 정갱이이다 / 盤松曲似䟸
여러 성에는 고삐를 잡아 순시하고 / 列城行攬轡
범같은 호위는 무기를 꼬나들었네 / 虎衛凜交鈹
해에 비친 깃발은 큰 곰이 뛰는 듯 / 映日旗羆䟴
바람 맞은 고깔은 까치가 기는 듯 / 隨風弁鵲跂
선창은 하얀 코끼리를 타고 / 仙倡馳白象
갑사(甲士)는 청부루말을 달렸네 / 介士騁蒼騅
선수에서는 솟구치는 물을 구경하고 / 鮮水觀滮湃
원산에서는 험악스러운 산을 통과했네 / 源山歷險巇

 


《산해경》에 “북선(北鮮)의 산을 등졌다.” 하였고 또 “북으로 원산에 이른다.” 하였다.

 

 

 

 

 

몸을 솟구쳐 떠가는 학을 붙잡고 / 騰身捫去鶴
눈을 굴려 나는 비둘기를 보내며 / 遊目送翩鵻
놀이 줄은 높아서 은하(銀河)에 닿았고 / 戲索高連漠
놀란 공은 날아서 토담을 넘네 / 驚毬逬越壝
세상 맑으니 누구나 기뻐할 뿐이요 / 時淸唯燕喜
송사 없으니 날마다 놀이를 즐기며 / 訟息好遊嬉
범을 때려잡듯 힘차게 사부를 짓고 / 搏虎專詞賦
오리떼처럼 질서 있게 바둑을 두네 / 成鳧鬪奕碁
설아는 음률에 맞춰 노래하고 / 雪兒歌律勻
옥녀는 옥으로 된 띠를 드리네
/ 玉女獻琛褵
본시 호화(豪華)에도 반연이 있어 / 已分親羅綺
미인들의 관심 끌기도 하네 / 從敎惹粉脂
사성은 한중(漢中)에 들어오고 / 使星還入漢
의죽은 기수(淇水)에서 보았네 / 猗竹佇瞻淇
깁부채가 도중에 버림받고 / 紈扇中捐棄
또 착도(錯刀)가 주어지지 않아 / 金刀莫贈貽

 


사수시(四愁詩)에 “미인(美人)이 나에게 도금(鍍金)한 착도를 주네.” 하였고, 그 주에 “임금이 작록(爵祿)을 주어 영광되게 한 데 비유한 것이다.” 하였다.

 

 

 

 

 

조정에서는 경숙을 박대하고 / 朝廷疏敬叔
권귀들은 환이를 꺼리었네
/ 權貴忌桓彝
도를 곧게 하다가 삼출을 감수하고 / 直道甘三黜
긴 노래로 오희를 발하였네 / 長謠發五噫
어찌 조금의 원망인들 있었으랴 / 怨尤心豈敢
현달한 이는 예부터 이러하다네 / 賢達古如斯
집안에 앉아 한적한 것을 즐기며 / 一室耽閑適
권문(權門)에 기웃대는 것을 비웃었네 / 高門笑伺窺
백두까지 정위(廷尉)로 근무하였고 / 白頭傭作尉
강장에 스승되기를 좋아하여 / 絳帳樂爲師

 


공이 일찍이 교수로 있었다.

 

 

 

 

석거의 강론 오래 빠졌으니 / 久欠石渠講
구실의 자문 어찌하려나
/ 何如衢室諮
받는 조롱 해명하며 자위도 하고 / 解嘲聊自慰
곤란한 대답에는 또한 그만 두었네 / 答難亦云罷
자락(自樂)으로 시름을 잊을 수 있으니 / 樂可忘憂止
노래 속에 어찌 탄식만 있겠는가 / 歌何嘆而已
일생 동안 궁색이 뼛속까지 스몄고 / 一生窮到骨
세상 일에는 웃으며 턱을 만질 뿐이네 / 萬事笑指頤
달 밝은 나무에도 괜히 놀라는 까치 같고 / 月樹空驚鵲
천둥치는 하늘에도 그냥 엎드려 있는 교룡(蛟龍) 같네 / 雷天尙伏螭
물러난 것 도정절 같지도 않고 / 去非陶靖節
면직된 것 하후자 같지도 않네
/ 罷異夏侯孜
영제가 세상을 떠나고 나니 / 令弟仙驂遠

 


공의 아우 세재(世才)의 자는 덕전(德全)으로 명유(名儒)가 되었었는데, 지금은 이미 세상을 떠났다.

 

 

 

 

 

공의 집에 한 그루 옥수가 시들었구려 / 君家玉樹虧
내 평소 의기가 맞는 사이였지만 / 我曾同意氣

 


나는 덕전과 망년의 사귐[忘年之交]이 있었다.

 

 

 

 

재주로야 어찌 자웅을 겨룰 수 있었으랴 / 才豈角雄雌
공자의 문은 엿볼수록 오묘하고 / 孔戶窺彌奧
조식(曹植)의 담은 들어갈수록 깊었네 / 曹墻入愈冞
벽운하(碧雲騢)가 어찌 조송(趙宋)에만 있었으며 / 碧雲何獨趙
명월주(明月珠)도 수후(隨侯)에게만 있는 게 아닐세
/ 明月不須隨
누구나 맞서기를 겁내거니 / 共怯當鋒刃
어찌 방패나 창을 놀릴 수 있으랴 / 其能搖楯鍦
사부(詞賦)는 송옥을 몰아낼 만하였고 / 辭堪驅宋玉
의지는 왕비를 제거하려 했는데 / 意欲剪王伾
그만일세 간 지 이미 오래이니 / 逝矣乘風久
아 그 누가 코의 흙 떼어 주려나 / 嗟哉斲堊誰
시를 볼 적마다 슬픔만 더하고 / 見詩增感慨
전날을 생각하면 절로 슬퍼진다오 / 懷舊自悽恧
홀로 장강의 눈물을 흘리며 / 獨灑長康淚
지금도 덕수(德秀)의 미목 떠오르네 / 猶思德秀眉
공은 작천을 계승하였고 / 唯公承鷟薦

 


공의 부조(父祖)가 다 급제하여 명유(名儒)가 되었는데, 공이 계승하였다. 당(唐) 나라 장작(張鷟)이 진사과(進士科)에 급제하였는데 그의 손자 천(薦)도 문장이 뛰어나 사관(史官)으로 기용되었으며 천의 아들 우신(又新)과 손자 독(讀)이 또 진사과에 급제하였으므로 한 말이다.

 

 

 

 

 

당세의 인 희가 되었네 / 當世作駰僖

 


후한(後漢) 때 공희(孔僖)가 그 손자 인(駰)과 벗처럼 지내므로 양욱(梁郁)이 거기에 대해 말을 하였는데, 인과 희가 대답하지 않았다.

 

 

 

 

 

미록일랑 따르지 말고 / 莫便隨麋鹿
모쪼록 준의를 쓰시오
/ 須期戴鵔鸃
광음(光陰)은 분촌을 아끼고 / 流光憐分寸
외물은 작게 여겼다오 / 外物視銖錙
전번에 찾아가 서로 만났었고 / 相訪曾交臂
시 읊조리며 수염을 만지작이러니 / 淸吟自撚髭
이번에도 감히 덤불에 깃들던 새가 / 慚將栖薈羽
하늘을 찌를 듯한 갈기를 건드렸으나 / 仰觸刺天鬐
주인은 왕찬을 기꺼이 맞아주고 / 主喜迎王粲
나는 가규를 깊이 흠모했네
/ 予深慕賈逵

 


가규는 오경(五經)에 정통하여 학자들의 흠모를 받았다.

 

 

 

 

 

복수(濮水)에서 한가히 낚시질한 것을 자랑하였고 / 幽居誇釣濮
누수(㶟水)의 기이한 유람을 설명하였네
/ 奇迹說遊㶟

 


공이 북지(北地)에서 동도로 돌아왔을 때 내가 방문하였었다. 《유편(類篇)》에 “누수는 안문(鴈門) 땅에 있는 강 이름이다.” 하였다.

 

 

 

 

마치 청풍이 엄습해 오는 듯하였고 / 恰有淸風襲
원래 소의의 비판이 없었네 / 元無素議玼

 


《당서(唐書)》에 “최홍례(崔弘禮)가 병부 상서가 되어서는 만년에 축적(蓄積)을 힘썼으므로 소의의 비판이 있었다.” 하였다.

 

 

 

 

 

억울한 탄핵을 갑자기 만나니 / 橫彈翻見中
가난병을 퇴치하기 어렵네 / 貧病却難醫
기회가 언제냐고 한탄 마소 / 莫嘆辰安在
덕이 쇠퇴하지 않은 것 알 수 있네
/ 端知德不衰
어찌 물오리 마름을 쪼아 먹듯 하겠느냐 / 那隨鳧唼藻
봉황이 죽실(竹實)을 먹게 되리 / 會與鳳含蕤
경조는 참다운 호련이니 / 京兆眞瑚璉

 


 

이는 김 동각(金東閣)을 가리킨 것이다.

 

 

 

 

 

왕랑은 창피한 서까래일세 / 王郞愧桷榱

 


진(晉) 나라 왕감(王鑒)은 서까래 정도의 재목이었다 한다.

 

 

 

 

 

넓은 도량은 너와 나의 경계가 없었고 / 坦懷無畛域
높은 학식은 미세한 것도 분석하였네 / 深識剖毫釐
천수의 시를 읊은 장호요 / 千首詩張祜
삼도의 부를 지은 좌사일세
/ 三都賦左思
한 번 응시하여 노서에 오르고 / 一鳴登鷺序
새로 등용되어 선위를 썼네
/ 新沐振蟬緌
어찌 천록을 교정할 뿐이겠는가 / 豈但校天祿
저 곡려까지도 견제할 수 있으리
/ 猶堪覇谷蠡
전번 태묘(太廟)를 모실 때는 / 曩陪淸廟寢

 


공이 태묘의 영(令)이 되었었다.

 

 

 

 

 

제단(祭壇)을 엄숙히 받들어 / 肅奉紫壇祠
손수 삼조를 차리고 / 摩扢陳三俎
힘껏 육자를 마련하여
/ 擩燔辨六齍
외외히 제물이 이미 괴어지고 / 磑磑芳已積

 


《한서(漢書)》에 “제물이 외외하다.” 하였는데, 그 주에 “외외는 제물이 높이 괴어진 모양이다.” 하였다.

 

 

 

 

육육히 정성이 더욱 지극하였네 / 鬻鬻意逾祗

 


‘鬻’의 음은 육이니, 신(神)을 전송할 때 공경하고 조심하는 모양이다.

 

 

 

 

 

계주는 맑은 향기 그윽하고 / 桂酒淸如潑
산뢰는 가득하여도 기울지 않았네
/ 山罍滿不欹
배가 텅 빈 맹수(猛獸) 모양의 북틀이 벌여지고 / 腹褰張猛簴
뿔이 한 움큼쯤 되는 희생 풍성도 하였네 / 角握省豐犧
낮이나 밤이나 직책만을 수행했고 / 夙夜唯供職
여러 제사에 정결만을 힘썼네 / 蒸嘗但潔栥
조심스레 규정된 전사에 따르고 / 栗齋循典祀
정당하지 못한 제사를 배격하며 / 譎詭黜淫魑
훼골하게 경건히 늘어서니 / 卉汨臚精信

 


《한서》 훼골로(卉汨臚) 주에 “훼골은 제관(祭官)들의 동작이 신속하다는 뜻이요, 노는 죽 늘어선다는 뜻이다.” 하였다.

 

 

 

 

 

신이 이에 안정된 복록을 주었네 / 綏將降福禠
저물게 언을 부를 줄 알아야 하는데 / 須知暮召偃
그 누가 밤에 기를 부르랴 / 誰肯夜呼祈
재상이 되어서는 응당 글을 보아야 하고 / 拜相應看字
벼슬이 오르려면 죽은 이를 꿈꿔야 하리 / 移官早夢尸
어진 상수도 멸시를 받았거니 / 賢猶凌向戌
어찌 진이에게 의논할 일이던가 / 事豈聞陳寅

 


《춘추좌전(春秋左傳)》정공(定公) 6년 조에 “송(宋)의 악기(樂祈)가 그 재신(宰臣) 진이에게 ‘……’ 하였고, 진이는 진(晉)의 정령(政令)이 한 군데서 나오지 않음을 알기 때문에 ‘악기가 진에 가면 반드시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했다.” 하였다. ‘寅’의 음은 이(怡)이니, 유운(柳韻) 지자운(支字韻)의 ‘寅’ 자에 진이(陳寅)로 되어 있다.

 

 

 

 

훌륭한 도(道)는 높은 산처럼 우러러보고 / 景行高山仰
좋은 재목은 으레 큰 집에 쓰는 거라오 / 長材大厦施
남을 대할 적엔 정성스러웠고 / 接人多款款
벗을 사귈 적엔 또한 충성스러웠네 / 友直亦偲偲
큰 고을을 다스려 민폐를 근절시켰고 / 劇郡尋煩敝

 

 

공이 다시 안변(安邊)의 수령이 되었다.

 

 

 

 

 

돌아오는 길에는 누조(嫘祖)를 위문했네 / 歸程遠問嫘
수레는 천둥처럼 구르고 / 軺䡕行轞轞
말은 바람처럼 달렸어라 / 騂驈走駓駓
나뭇가지엔 원숭이 떼 깃들고 / 木末爭猿捷
산봉우리엔 잡새가 날아가네 / 峯頭趁鳥奞
치솟는 노도는 출렁출렁하고 / 鷺濤奔瀇瀁
아득한 오산(鰲山)은 구불구불하며 / 鰲岫杳嵔
갯벌에 둘러 있는 마을 내 끼어 자욱하고 / 繞浦煙村暗
시내에 잇단 길 험하기도 하네 / 沿溪石棧逶
안장을 지우니 놀이가 자유롭고 / 卸鞍遊散誕
붓을 잡으니 손놀림 빨라지네 / 援筆舞瀏漓
목이 말라 찬 샘물 마시니 / 渴飮寒泉液
마치 언 술을 머금는 듯하네 / 疑含凍醴澌
숨은 새들은 눈길을 기웃대고 / 幽禽窺睥睨
달리는 짐승은 갈기가 일어서네 / 走獸奮髬髵
얽힌 덩굴을 더위잡고 / 繃絡攀蘿薜
숙삼한 작유를 통과하네 / 橚槮過柞桵

 


《유편(類篇)》에 “역(棫)은 갈참나무[柞]또는 무리 참나무[桵]이다.” 하였으며 서경부에 “재역(梓棫)이 숙삼하다.” 하였는데, 그 주에 “숙삼은 울창한 모양이다.” 하였다.

 

 

 

 

수레에서 내려 군정(郡政)을 열고 / 下車開郡閣
칼을 안고 변비(邊備)를 강화하네 / 擁劍課邊陴
애들의 놀이는 꿩을 길들이는 것 같고 / 童戲猶馴雉
군사의 사냥은 비휴를 잡아들이네 / 軍蒐競獻貔
경지(耕地)는 괘상(卦象)처럼 나누었고 / 卦分畦塊圠
가옥(家屋)은 성좌(星座)처럼 흩어졌네 / 星散屋逶迤
공청(公廳)은 나란히 구르는 수레처럼 일정하고 / 廨舘堪方軌
연석(宴席)은 정돈한 신발처럼 정연하네 / 賓筵擬履齊
전등(錢燈)은 여기저기 반짝이고 / 錢釭明爍爍
깃발은 이리저리 펄럭이며 / 竿衽轉僛僛
은빛은 순채국에 엉기고 / 銀鏤凝蓴菜
금빛은 기장술에 떴구나 / 金鱗泛黍酏
푸짐한 장만은 사막새 종달새 구이오 / 豐廚炮鵽鴳
진기한 반찬은 상어와 숭어찜일세 / 珍膳味鮫鯔
헌원(軒轅)과 제곡(帝嚳)을 이처럼 보고 / 軒嚳看如虱

 


육귀몽(陸龜蒙)의 시에 “삼황(三皇)의 도(道)를 우러러 보니, 개미와 이가 우주에 있는 것 같다.” 하였다.

 

 

 

 

진과 수를 개구리처럼 비웃었지 / 陳隋笑若蚳

 


피일휴(皮日休)의 시에 “그 뒤 진수(陳隋) 시대에 와서는 크고 작은 것이 다 개구리나 두더지 같다.” 하였다.

 

 

 

 

 

몹시 사랑한 것은 오직 송의 미인이요 / 酷憐唯宋
몽땅 고혹된 것은 모두 오의 미녀였네 / 射遞盡吳姬
촉군의 백성은 바지를 노래하고 / 蜀郡民歌袴
금릉의 기생은 물대야를 드렸으며 / 金陵妓奉匜


 

도곡(陶穀)의 고사이다.

 

 

 

 

 

좋은 산으로는 적석(赤石)이 우뚝하고 / 好山高赤石
진귀한 물건으로는 주제가 푸짐하네 / 奇貨富朱提
서류는 언제나 책상 위에 쌓여 있고 / 簿領長堆案
관복은 잠깐 동안 옷걸이에 걸려 있네 / 朝衣少襯椸
은혜는 능히 밀로를 그립게 하고 / 恩能懷密老
위엄은 이미 왕이를 복종시켰네 / 威已懾王姨

 


왕연(王衍)의 이모[姨]로 《세설(世說)》에 보인다.

 

 

 

 

 

이에 수령(守令)을 그만두고 / 已罷割鷄手
한가한 위치로 되돌아오니 / 還栖傾鳳椅
간편한 행장으로 말 고삐를 잡고 / 輕裝廻沃轡
새로운 차림은 산뜻한 갈의(葛衣)를 걸쳤네 / 新服拂涼絺
이름난 산천을 두루 구경하고 / 歷閱溪山勝
여로(旅路)의 피로를 일체 잊었네 / 都忘道里疲
혼은 항상 조정을 못 잊어하고 / 魂勞懸貝闕
귀는 으레 옥음(玉音)을 듣는 듯하였네 / 耳想聽龍篪
그래도 삼수의 상서를 이루려 하고 / 尙欲徵三穗

 


채무(蔡茂)가 광한(廣漢)의 태수가 되어 세 개의 이삭이 나온 벼 꿈을 꾸었다. 공이 안변 태수에서 체환(遞還)되었기 때문에 비유한 것이다.

 

 

 

 

앞으로 구기의 영광을 기대했는데 / 方圖戴九

 


《한서》에 “일품직(一品職)은 옥으로 된 고깔의 꾸미개가 아홉 개다.” 하였다.

 

 

 

 

 

돌아오는 여로에는 날개가 움츠렸고 / 歸來戢羽翮
사람들 눈길에는 노마(駑馬)로 바뀌었으며 / 俯仰改騮驪
같은 출신들은 마치 섶 쌓이듯 하였으나 / 舊列薪猶積

 


공이 각문(閣門)의 남아도는 일원(一員)으로 아직 임관되지 않았기 때문에 말한 것이다.

 

 

 

 

 

공의 고충은 바위처럼 요동될 줄 모르네 / 孤忠石不移
조용한 생활은 언제나 안석에 의지하고 / 端居長隱几
청고한 꿈은 오히려 수레를 타보곤 하네 / 淸夢尙乘軧
서림(書林)은 누구와 벗하였고 / 書圃誰爲伴
인리(仁里)는 누구와 이웃했던가 / 仁隣孰與比
한 푼의 금전도 축재하지 않았으니 / 一錢當不蓄
만 권의 서적은 과연 무엇을 도우려 했던가 / 萬卷本何裨
베 이불이 호락의 갖옷보다 나았고 / 幅被勝狐狢
채소 반찬이 유이의 요리보다 좋았네 / 盤蔬當鱬鮧
회포를 풀려고 술이나 실컷 마실 뿐 / 攎懷唯酩酊
천명(天命)을 알거니 무엇을 한탄하랴 / 知命敢嗚戲
예복을 갖추고 처음으로 찾아 뵈었을 때 / 冠櫑初投謁
다행히 거절은 당하지 않았으나 / 門墻不見麾

 


내가 공을 댁으로 방문하였었다.

 

 

 

 

 

멍멍하여 한계를 분간할 수 없었고 / 惘然迷界限
흐릿하여 방향을 헤아릴 수 없었네 / 怳未測津涯
서리 내리니 푸른 하늘 멀고 / 霜落碧天遠
이슬 차가우니 많은 잎 시들며 / 露寒殷葉萎
석양은 이미 저물었고 / 夕陽嗟暮矣
밤바람은 싸늘도 하였지 / 涼夜問何其
손목 잡고 서로 웃음을 나누다가도 / 扼腕俱相笑
심정을 논할 적엔 혼자 슬퍼하였네 / 論情頗自悲
초당에선 비로소 물을 마시었고 / 草堂初飮水
부엌에선 늦게야 콩깍지를 지폈네 / 塵釜晩燃萁
훼방을 피하려 할 적에는 입을 다물지만 / 避謗雖緘口
이미 당했을 적에는 꼭 강경히 해명하며 / 逢時必壯頄
위의는 일체가 구비되었고 / 威儀誠棣棣
우둔(愚鈍)을 기꺼이 자처하였네 / 闒茸謾嘻嘻
나는 영양의 수사(秀士)를 경애하노니 / 我愛榮陽秀

 


이는 원외(員外) 정문갑(鄭文甲)을 가리킨다.

 

 

 

 

 

재주가 파군의 오자(吳資)와 같네 / 才如巴郡資

 


《송릉집(松陵集)》에 보인다.

 

 

 

 

 

백대에서 나약한 관리를 탄핵하고 / 柏坮憚吏懦

 


공이 일찍이 어사(御史)가 되었었다.

 

 

 

 

 

폐석으로 불쌍한 백성을 살렸으며 / 肺石活民羸

 


지금 공이 형부 원외랑(刑部員外郞)이 되었다. 《주례》에 “대사구(大司寇)가 궁한 백성의 억울한 일을 처리해 준다.” 하였다.
이미 삼관새를 구경하고 / 已歷三關塞

 


《제지(齊志)》에 “의양현(義陽縣)에 삼관새가 있다.” 하였다.

 

 

 

 

 

구절판(九折坂)을 통과하였네 / 曾驅九折阺
소를 올리는 용기는 판을 걷어올리고 / 疏書應脫腕
격을 초하는 솜씨는 눈 깜빡할 사이로세 / 草檄僅生視
심현에서는 남악(南嶽)을 구경하고 / 灊縣嘗觀霍
낭야에서는 유수(濰水)를 건넜었네 / 琅邪亦渡濰
태세(太歲)가 미성(尾星) 궤도에 닿던 해 / 歲行臨尾次
왕사로 건유에 부임했는데 / 王事赴乾維

 


공이 계축년에 의주 분도(義州分道)를 맡았다.

 

 

 

 

말갈(靺鞨)이 용만진에 들어서고 / 鞨入龍灣鎭
의주(義州)의 별칭.

 

잇달아 압록강을 침범하였네 / 行侵鴨綠湄
아군의 진용은 볼수록 씩씩하고 / 軍容看仡仡
적군의 눈깔은 멋대로 힐긋대며 / 胡眼笑睢睢
호복(胡服) 차림이 소란스레 오고가니 / 左衽猶旁午
공의 충성엔 부끄럽게만 여겨졌네 / 中心尙忸怩
집집마다 검극(劍戟)이 장비되고 / 家皆藏劍槊
사람마다 호미를 치웠으니 / 人罕用鎡
이내 묵어 있던 지역이 / 始使生榛地
전립(戰笠)으로 뒤덮인 동치(東甾)가 되었네 / 渾爲聚笠留

 


《문선(文選)》에 “전립들이 동치 땅에 모였다.” 하였다.

 

 


 

 

모호는 영고숙(穎考叔)을 무시하고 / 蝥弧欺考叔
경부는 최수보다 장쾌하며 / 鯨賦壯崔倕

 


유우석(劉禹錫)의 최수비문(崔倕碑文)에 “융갈(戎羯)이 중국을 어지럽혀 왕사(王師)가 출정(出征)하니, 수가 벌경예부(伐鯨鯢賦)를 지어 올렸다.” 하였다.

 

 

 

 

 

군량 수송하는 노고를 어찌 꺼리랴 / 飛輓勞何憚
한번 소탕하려는 뜻 굳게 지녔네 / 澄淸志不隳
첫 새벽 잔치는 군심(軍心)을 격려하고 / 芳晨開宴衎
비장한 곡조는 과부도 감동했었지 / 哀曲感孀嫠
시취(詩趣)는 모중령과 같이하고 / 吟共毛中令
편유(遍遊)할 땐 혁화(革華)와 함께 하네 / 遊煩革下邳
회군(回軍)에 있어 무얼 급히 서두르랴 / 何須行刦刦
질주하는 말 잠깐 동안 늦췄어라 / 暫可息騤騤
강 위에 깃발을 멈추고 / 江上停歸旆
배 중에 작별의 술잔 마련하니 / 舟中命別卮
암혈(巖穴)은 맑게 개고 / 岫眉晴脈脈
파도는 잔잔도 하네 / 波練靜漪漪
기러기는 노에 놀라 날아가고 / 過雁飛驚棹
거북이는 둑에 나와 엎드렸네 / 潛龜伏負坻

 


사현부(思玄賦)에 “영귀(靈龜)가 둑에 나와 엎드렸다.” 하였다.

 

 

 

 

 

안개 짙으니 먼 섬이 희미하고 / 霧濃迷遠島
물이 빠지니 넓은 진펄 보이누나 / 水落見空泜
풀빛이 멀리까지 뻗치고 / 草色連迢遞
호수의 빛은 끝없이 연이었네 / 湖光接渺瀰
숲 속의 들말[野馬]은 소리가 요란하고 / 林猑聲嗝
모래 위의 새들은 깃이 늘어졌구나 / 沙鳥羽襂襹
비단 같은 붉은 잉어가 뛰놀고 / 錦碎叉紅鯉
마름 같은 하얀 방어를 낚아내네 / 萍浮釣白魾

 


최표(崔豹)의 《고금주(古今注)》에 “방어는 위에 뜨기를 좋아하는데 그 빛깔이 마름과 같기 때문에 백비(白魾)라 한다.” 하였다.

 

 

 

 

 

호화스러운 자리는 대모가 깔렸고 / 華筵鋪玳瑁
보배스러운 주기는 노자를 보내왔다오 / 寶杓送鸕鶿
주석은 사흘이 계속되고 / 坐到三竿日
주량은 한 섬을 들이켰네 / 狂傾一石甀
이전엔 그렇게 영화롭더니 / 昔何榮赫煽
이제는 왜 한탄만 하게 되었을까 / 今反退嗄吚

 


공이 지금 면직되어 있다.

 

 

 

 

 

공 등이 모두 이러하니 / 公輩皆如此
하늘도 공평하지 못하네 / 皇天亦似私
아 나같이 기구한 운명은 / 嗟予生薄命
떠돌이 신세 그 몇 해던가 / 浪迹幾多朞
괜히 선리에만 의탁된 존재가 / 仙李徒攀託

 


노자(老子)와 성(姓)이 같다.

 

 

 

 

 

여사(旅舍)에 하루하루 얹혀 지내네 / 蘧廬暫寓覊
불우한 자신이 부끄럽거니 / 自猶慙蹇短
무슨 뽐낼 나위가 있겠는가 / 誰忍飾顴
좁은 소견은 조회와 같고 / 陋愧如曹鄫
묻힌 이름은 두기와 같기에 / 名知似斗箕
요즘엔 조용한 운수를 찾아 / 頃逃雲水窟
험난한 세속 회피하고 있다오 / 高避網羅危
따뜻한 방안에서 추위를 지내고 / 燠室經寒候
서늘한 정각에서 더위를 막으며 / 涼臺禦暑曦
담장 옆에 밤나무 대추나무 심고 / 傍墻培棗栗
터 주위에 뽕나무 암뽕나무 심으며 / 匝地種桑桋

 


《유편(類篇)》에 “암뽕나무도 뽕나무의 일종인데, 줄기는 짧고 가지는 길다.” 하였다.

 

 

 

 

 

옥우의 학을 길들이고 / 玉羽馴他鶴
채우(綵羽)의 꿩을 사냥하네 / 莎鞦射却鶅
거문고는 녹수를 타고 / 美琴彈淥水
시는 청기(淸奇)한 것을 찾누나 / 琢句覓淸琪
푸른 대나무가 층계 앞에 둘렀고 / 綠竹環階砌
푸른 소나무는 평고대를 덮었네 / 靑松蔭梠㮰

 


경복전부(景福殿賦) 주에 “평고대를 연첨목(連簷木)이라 한다.” 하였다.

 

 

 

 

 

이끼를 제거해 폐정을 수리하고 / 剝苔新廢井
땅을 일구어 따비밭을 만든다오 / 墾土理荒菑
암혈(巖穴)에는 고라니 새끼가 엎드렸고 / 穴伏梢麕子
산속에는 호랑이 시체가 쓰러졌네 / 山僵蹂虎屍
한적한 생활에도 지루할 적이 있어 / 幽栖難奈久
슬쩍 나와 보면 남의 비웃음만 받아 / 出試見他辴

 


나는 요즈음 북산(北山)에 우거(寓居)하면서 자호(自號)를 백운거사(白雲居士)라 하였다.

 

 

 

 

 

앞으로 제갈에서 의탁하려 하거니 / 更欲依諸葛
비위가 추천되는 데 뭐가 어려우랴만 / 何妨薦費褘

 


제갈량(諸葛亮)이 비위를 추천하였었다.

 

 

 

 

 

천자가 워낙 성명(聖明)하여 / 但聞天子聖
거유만을 높인다 하니 / 唯重巨儒耆
애써 꾸미려 해도 아무 소용 없고 / 剪拂徒勞爾
용렬한 재주는 항시 그렇다오 / 駑頑亮若玆
조대(釣臺)에서 떠날 인연이 없거니 / 無緣離釣築
어찌 띠집 벗어나길 바라랴 / 何計脫蓬茨
옥이 들어 있으면 궤가 감춰지게 되고 / 玉蘊常藏櫝
구슬이 묻혀 있으면 언덕도 윤택하다는데 / 珠潛敢潤碕

 


오도부(吳都賦)에 “붉은 단사(丹砂)와 투명한 잔구슬[璣]…… 언덕이 마르지 않고 수목이 윤택하다.” 하였다.

 

 

 

 

 

생애가 어찌 이다지 불우한지 / 生涯何落魄
심사가 너무 평온하지 못하구려 / 心事好參差
가도는 늘 나귀를 탔고 / 賈島驢恒跨
환공은 말도 타지 않았으며 / 桓公馬未騎
전사엔 새들이 망라되고 / 篆沙羅鳥雀
망호엔 거미를 보았어라 / 網戶對蛛蜘
연에서 높인 곽외(郭隗)를 무어 부러워하며 / 何羨燕尊隗
송에서 상 준 이반(耏班)을 어떻게 바라겠는가 / 何期宋賞耏
경도(京都)는 변천에 민감하고 / 京塵工化素
세파(世波)는 고비가 극심하네 / 世路劇彎崎
우수울사 천 편의 시로도 / 自笑詩千紙
한 가지 물건도 살 수 없지만 / 難償市一劑
소악(韶樂)을 들으니 고기맛을 잊고 / 韶聲忘嗜味
상송이 있으니 배고픔도 걱정 없네 / 商頌莫憂飢
술을 즐기니 꿰미에 돈이 떨어지고 / 愛酒緡錢盡
땔감이 없으니 빗장을 쪼개 지피네 / 無薪牡木炊
봄은……원문 3자 결…… / 靑春□□□
햇볕은 그늘진 해바라길 피하누나 / 白日避陰葵
지장은 찢기울까 걱정되고 / 紙帳唯愁裂
하의는 미처 꿰매지 못하였네 / 荷衣不用紕
글을 너무 보니 안력이 상하고 / 看書雙眼損
병이 많으니 온 몸이 허약하며 / 多病一身㾨
컬컬하면 잔을 들어 목을 축이고 / 渴把杯濡口
다닐 때는 지팡이로 몸을 버티네 / 行將杖拄肢
거니는 취미는 장주(莊周)보다 높고 / 逍遙高漆吏
잠적(潛跡)하는 심사는 굴원(窟原)을 위문하며 / 伏竄吊湘纍
길가에는 도추의 털털한 신이 놓이고 / 路置桃椎屩
뜨락에는 공우의 장식한 신이 없다네 / 庭無貢禹綦
남들은 나를 방광하다 조롱하지만 / 人雖譏放曠
나는 본시 아첨을 부끄럽게 여기기에 / 我本恥嚅㖇
가는 곳마다 공격이 생기고 / 觸地生矛戟
온 몸에는 고통이 뒤따르나 / 渾身帶蒺蔾
두어 칸의 띠집이 모처럼 마련되고 / 數間初卜宅
한 벌의 갈옷이 이만 마음 편한데 / 一褐自安卑
어린 자식은 거친 쌀도 좋아하고 / 稚子呼麤糲
못난 아내는 장옷조차 없으며 / 山妻欠羃䍦

 


《당서(唐書)》거복지(車服志)에 “부인들은 장옷으로 몸을 가린다.” 하였다.

 

 

 

 

 

언제나 손경의 문이 닫혔고 / 常閉孫敬戶
공야장(公冶長)의 구류(拘留)와도 같네 / 如在冶長縲
아 전날 세 분을 뵈었을 적에 / 憶昨尋三老
시간 보내며 온갖 시름 잊으니 / 移時遣百罹
양춘의 높은 곡조 영중(郢中)에서 부르는 듯 / 陽春嘉唱郢
궤채의 모임으로 수원(睢圓)에서 노니듯 / 繢綵譬遊睢
봉 날개에 의탁하는 영광을 입었고 / 附翼方欣覿
또 의기가 양양한 기쁨을 나누었네 / 揚眉各自怡
정원에는 잡초를 베고 / 繞園芟草莽
주위에는 잡목을 제거했으며 / 掃地剪楱椔

 


《당서》에 “고목(枯木)이 가리고 잡목이 우거졌다.” 하였고, 또 “고목은 줄기와 가지를 몽땅 제거한다.” 하였다.

 

 

 

 

 

숲 속의 과일은 높아서 따기 어렵고 / 林菓高難摘
연못의 고기는 이루 친근할 수 있네 / 池鱗俯可麗

 


정공의 임원(林園)에는 연못까지 있다.

 

 

 

 

 

기장엿을 어찌 엿보지 않으며 / 餦餭何讓窺
곰국은 있는 대로 사양치 않아 / 臛臇不辭欹

 


젓가락으로 음식 집는 것은 의(欹)라 한다.

 

 

 

 

 

손님을 좋아한 이 모두 임방이요 / 愛客皆任昉
어진이 추천한 이 다 송기일세 / 推賢盡宋畸

 


전한(前漢) 때 좌풍익(左馮翊) 송기가 황패(黃覇)를 현량(賢良)으로 천거하였다.

 

 

 

 

 

장씨(張氏)의 시내에는 섬약한 버들을 품제(品題)하고 / 張溪題弱柳
반씨(潘氏)의 원포(園圃)에는 꽃다운 호유(胡荽)를 자랑하네 / 潘圃詫芳荽
흔들리는 녹색에 마늘이 예쁘고 / 颺綠還憐蒜
돋아나는 황색에 유채(蓶菜)가 환하구려 / 抽黃始見蓶

 


유채는 조구(鳥韭)와 비슷하면서도 황색이다.

 

 

 

 

 

이미 삼색리를 옮겼고 / 已移三色李
구광지로 심으려 하네 / 將種九光芝
돌샘은 워낙 깊어 두레박줄이 느리고 / 石井絙繩索
산재는 오래되어 막대기로 버티었네 / 山齋峙柱榰
잔은 삼백으로 헤아리고 / 盃籌三百計
술은 십천으로 걸렀으니 / 斗酒十千釃
막걸리와 좋은 술을 마시고 / 代奏醙兼醑
텁텁한 술과 모주를 권하며 / 交斟酎雜醨
붓은 회화군(懷化郡)의 먹을 찍고 / 濡毫懷化墨
찻잔은 정주의 자기를 사용하네 / 嘗荈定州瓷
이미 참여를 허용하였거니 / 已許來函杖
어찌 찬합을 던질 리 있으랴 / 何曾怒擧欙

 


《진서(晉書)》에 “왕연(王衍)이 연석에서 화나는 일이 있어, 찬합을 들어 상대방의 얼굴에 던졌다.” 하였다.

 

 

 

 

 

조용한 정취는 곡구요(谷口謠)보다 높고 / 幽情高谷口
끝없는 시야는 아미산까지 닿았네 / 遠目極峨嵋
묵은 나무엔 푸른 이끼가 돋았고 / 古木蒼苔澁
높은 추목(楸木)엔 푸른 칡덩굴 얽혔구려 / 高楸碧葛虆
안건으로 바위에 함께 걸터앉고 / 岸巾同踞石
납기로 험한 산에도 오르네 / 蠟屐更升岯
세면(洗面)할 적에는 곁으로 나는 샘에 가고 / 盥潄臨泉氿
거닐 적에는 늘어진 가지를 헤치며 나뭇가지 밑으로 늘어진 것을 피(㯅)라 한다 / 徘徊拂樹㯅
수풀이 깊숙하니 피어오른 구름 날마다 끼었고 / 林深餘宿靄
동학(洞壑)이 그윽하니 시원한 바람 언제나 모이네 / 洞密聚曾颸
다행히 함께 천일주(千日酒)를 마셨거니 / 幸共傾千日
어찌 구의산(九疑山)을 못 볼까 걱정하랴 / 何嗟對九疑
향내가 그윽한 두약을 찾고 / 幽香尋杜若
세속이 즐기는 엿 따위를 멀리하네 / 俗嗜屛餳飴
기쁜 정의만 다하면 그만이지 / 要極歡情耳
어찌 사소한 예절에 구애되랴 / 何拘末禮爲
오늘은 잠시 물 만난 고기 되었지만 / 乍如魚得水
내일은 다시 끈끈이에 붙은 새와 같으리 / 退作鳥黏黐
저녁 잠자리에는 풀자리가 고작이요 / 夜臥唯莞葦
아침 밥상에는 고사리나물뿐이라네 / 朝飧只蕨藄
섭섭해하는 말은 차마 들을 수 없고 / 緖言難接耳
그리는 눈물은 눈꼽으로 변하였네 / 思淚謾成眵
굶주린 쥐는 괜히 안석(案席)을 엿보고 / 飢鼠空窺案
추위에 떠는 닭은 일찍 회에 오르누나 / 寒鷄已上塒
모진 바람은 북쪽에서 몰아들고 / 厲風嚴朔漠
석양 볕은 서산에 넘어가네 / 反炤指崦嵫
진작부터 경첩(輕捷)한 문체(文體)로 바꾸려 한바 / 久欲成勦體

 


종기실 시평(鍾記室詩評)에 “문체가 경첩하고 안정되었다.” 하였다.

 

 

 

 

 

도리어 남의 영치만 받을까 염려했으나 / 唯憂被詅嗤

 


《청상잡기(靑箱雜記)》에 “문장이 졸렬한데도 돌에 새기기 좋아하는 자가 받는 비웃음을 영치라 한다.” 하였다.

 

 

 

 

 

마음을 더욱 고요히 가라앉히고 / 潛心彌眑眑
시구를 더 열심히 모색하네 / 索句益孶孶
다시는 공과 함께 즐기기 어려우니 / 未復同君樂
나의 체증 어떻게 소화시키려나 / 邦堪使我疧
복양에 세속 초탈을 숭상하고 / 濮陽超世尙
이도에 띠집 마련을 뜻했으니 / 履道結茅期

 


오공이 나에게 “정원 안에 한 채의 초당을 마련하고 그대와 함께 경서(經書)를 토론하려 한다.” 하였다.

 

 

 

 

 

정대한 출처를 그 누가 알랴 / 出處知誰與
오직 나만이 존경하고 있다오 / 攀援獨我推
마실 때는 좋은 술과 함께하고 / 飮將同綠蟻
먹을 때는 또한 손가락과 마주하게 되었네 / 食亦共蹲鴟
학을 즐기려면 배가 부르도록 해야 하고 / 耽學期便腹
시를 평하려면 철저하게 분석해야 하느니 / 評詩到擘肌
큰 화로는 날카롭거나 무딘 쇠를 다 용납하고 / 洪爐容利鈍
밝은 거울은 곱거나 미운 얼굴 다 비쳐주네 / 明鏡納妌媸
짐승 중에는 을 신중히 기록하였고 / 獸傅重箋狛

 


공이 모충(毛蟲)ㆍ갑충(甲蟲)ㆍ인충(鱗蟲)에 대한 시(詩)를 지었다. 《산해경(山海經)》에 “남산에 있는 짐승들 가운데 박이 가장 많다.” 하였다.

 

 

 

 

 

벌레 중에는 수를 자세히 논의했는데 / 蟲篇細問雖

 


《광운(廣韻)》에 “수(雖)는 벌레의 이름인데, 땅거미와 비슷하면서도 작다.” 하였다. 공이 수에 대한 시를 지었기 때문에 말한 것이다.

 

 

 

 

 

스승이라면 맹희처럼 높이고 / 師傅尊孟喜
형이라면 승미처럼 섬기네 / 兄事擬僧彌
졸렬한 글을 드리고 보니 / 强自呈蕪拙
명작을 모독하여 너무 부끄럽다오 / 多慙側曄猗

 



끝말: 오공의 시는 거의 다 고사(古事)를 인용하였다. 그리고 나의 강운(强韻)을 단 구절을 보기 위하여 낱낱이 주석을 붙이도록 하였으나 나는 후인에게 비웃음만 받을까 두려워서 거의 다 삭제하고 간략한 주석만 두었다.

 

 

 

 


 

[주D-001]진(晉) 나라……건너갔고 : 동진(東晉)이 강동(江東)으로 천도(遷都)했음을 말한다. 말[馬]은 진 나라의 성이 사마(司馬)였으므로 한 말인데, 진 나라는 오호(五胡) 십육국(十六國)의 난에 시달려 원제(元帝) 때에 결국 강을 건너 강동으로 천도한 때문에 동진이라 불리게 되었다.
[주D-002]주(周) 나라……쳤네 : 주 성왕(周成王)이 낙읍(洛邑)으로 천도하기 위하여 주공(周公)에게 명하여 동도(東都)를 만들도록 하였다. 이에 주공이 낙읍을 완성한 다음 낙고(洛誥)를 지어 바쳤는데, 여기에 “나는 간수(澗水)의 동쪽과 전수(瀍水)의 서쪽에 대하여 거북점을 쳤더니 낙읍이 길하다.” 하였으므로 한 말이다.
[주D-003]부상(扶桑) : 중국의 동해에 있었다는 나라로 곧 일본(日本)을 가리킨다.
[주D-004]궁현(宮懸)의 음악 : 궁현은 옛날 천자가 현악(懸樂)하는 제도. 《주례(周禮)》춘관 소서(春官 小胥)에 “현악하는 위치는 천자는 궁현, 제후는 헌현(軒懸)한다.” 하였다.
[주D-005]절찬(蕝纂)하는 의식(儀式) : 절찬은 띠를 묶어서 위치를 표한 다음 조회하는 의식을 연습하는 것을 말한다. 《한서(漢書)》숙손통전(叔孫通傳)에 “제자 1백여 명과 절찬을 만들어 야외에서 연습했다.” 하였다.
[주D-006]대하(大夏) : 하(夏)의 우왕(禹王)이 만든 음악. 《춘추좌전(春秋左傳)》양공(襄公) 29년에 “오(吳)의 공자(公子) 계찰(季札)이 대하의 춤을 보고 ‘아름답다, 근면하면서도 덕으로 여기지 않으니 우(禹)가 아니고서야 누가 이런 덕을 닦겠는가.’ 했다.” 하였다.
[주D-007]한신(韓信) 같은 국사(國士) : 한신은 한(漢)의 명장으로 유방(劉邦)을 도와 천하를 통일한 다음 그 공로로 초왕(楚王)에 봉해졌으나 뒤에 회음후(淮陰侯)로 강봉되었다. 국사는 온 나라가 추앙하는 선비란 뜻인데, 소하(蕭何)는 일찍이 한신을 칭찬하여 둘도 없는 국사라 하였다. 《史記 淮陰侯傳》
[주D-008]공규(孔戣) : 당(唐) 나라의 명신. 헌종(憲宗) 때 간의대부(諫議大夫)가 되어 이섭(李涉)의 망상(罔上)하는 죄상을 탄핵하고 이소화(李少和)ㆍ최이간(崔易簡)의 옥사(獄事)를 판결했으며, 목종(穆宗) 때에 사퇴를 빌자, 한유(韓愈)가 “조정에 공규 같은 인재는 3~4명밖에 되지 않으니, 사퇴를 만류해야 한다.” 하였다. 《新唐書 孔戣傳》
[주D-009]평자(平子)의 부(賦) : 평자는 후한(後漢) 때의 문장가 장형(張衡)의 자(字). 그때 천하가 태평하여 사치를 힘쓰므로 그가 낙양(洛陽)에 대한 동경부와 장안(長安)에 대한 서경부(西京賦)를 지어 온갖 풍물의 아름다움과 산천의 내력을 서술하였다. 《後漢書 張衡列傳》
[주D-010]맹견(孟堅)의 사(辭) : 맹견은 후한 때의 사관(史官)이었던 반고(班固)의 자(字). 그 역시 후한의 수도 동경에 대한 동도부를 지어 풍물의 변천을 읊었다. 《後漢書 班固列傳》
[주D-011]성기(星紀) : 일(日)ㆍ월(月)ㆍ오성(五星)의 종(終)과 시(始)가 되는 남두성(南斗星)과 견우성(牽牛星)을 가리킨다.
[주D-012]건곤(乾坤)은……측정되고 : 십이율(十二律)의 하나인 황종(黃鐘)이 만사(萬事)의 근본이 됨을 말한 것이다. 황종의 관(管)은 검은 기장알 1천 2백개가 들어가는데, 이것은 양(量)의 1약(龠)에 해당하는 바 지금의 작(勺)이 된다. 황종의 관은 도량형(度量衡)의 기본이므로 천지만물을 측정할 수 있다는 뜻이다.
[주D-013]조화(造化)는……같네 : 노추(爐槌)는 쇠붙이를 달구고 두들기는 기구로 곧 인간의 만사가 도야(陶冶)에 의하여 이루어짐을 말한 것이다.
[주D-014]태학(太學)에서는……맞아들이고 : 삼로(三老)는 정직(正直)ㆍ고명(高明)ㆍ침잠(沈潛)의 삼덕(三德)을 아는 장로(長老)로 한 사람이라고도 하고 세 사람이라고도 하는데, 이 말은 《예기(禮記)》 악기(樂記)의 “태학에서 삼로와 오경(五更)에게 음식을 대접했다는 말에서 나온 것이다.”
[주D-015]홍려시(鴻臚寺)에서는……받아들이며 : 사이(四夷)는 동이(東夷)ㆍ서융(西戎)ㆍ남만(南蠻)ㆍ북적(北狄)을 가리키는데, 홍려시는 외교를 맡은 직책이므로 한 말이다.
[주D-016]악작(鸑鷟)은……잇달았네 : 악작은 봉황과 같은 신조(神鳥)로 학사(學士)들을 비유한 것이며 화류(驊騮)는 대추 빛깔의 준마(駿馬)로 귀인들을 비유한 것이다.
[주D-017]이선(珥蟬)은……자질들이네 : 이선은 초선관(貂蟬冠)으로 한대(漢代)의 시중(侍中) 상시(常侍)들이 쓰던 관인데 전(轉)하여 높은 벼슬아치들을 가리킨 것이며, 비봉(批鳳)은 봉각(鳳閣)에서 비답(批答)을 수정하는 학사(學士)들을 가리킨다.
[주D-018]이불을……풍표(馮豹) : 풍표는 후한(後漢) 사람으로 자는 중문(仲文). 일찍이 낭관(郞官)이 되어 일을 아룄으나 허락하지 않자, 저녁에서부터 아침까지 성(省)에 부복하고 있었다. 이에 숙종(肅宗)이 기문랑(期門郞)으로 하여금 비단 이불을 갖다 덮어주게 하였다.
[주D-019]옷자락을……신비(辛毗) : 신비는 삼국(三國) 때 위(魏) 나라 사람으로 자는 좌치(佐治). 문제(文帝) 때에 시중(侍中)이 되어 직간(直諫)을 좋아하였다. 한번은 문제가 기주(冀州)의 백성을 옮기려 하므로 직간하였으나, 문제가 듣지 않고 일어나 안으로 들어가자 임금의 옷자락을 잡아당기며 만류하였다. 《三國志 魏志 辛毗傳》
[주D-020]인범(仁範)의 생황(笙簧) : 박인범은 신라(新羅) 사람으로 당(唐) 나라에 들어가 빈공과(賓貢科)에 급제했으며 시문(詩文)에 능하였다. 생황은 관악(管樂)의 일종으로 아악(雅樂)에 사용된다.
[주D-021]홍유(弘儒)의 보불(黼黻) : 홍유는 신라의 명유(名儒) 설총. 보불은 관복(官服)에 수놓은 무늬인데 곧 훌륭한 예악문물(禮樂文物)을 가리킨다.
[주D-022]금문(金門)의 사책(射策) : 금문은 한대(漢代) 궁문(宮門)에 있던 금마문(金馬門)의 약칭으로 후세에는 한림원(翰林院)을 가리키게 되었다. 사책(射策)은 옛날 선비를 시험하던 한 방법으로 경서(經書) 또는 정치상의 의문을 죽간(竹簡)에 쓰게 하여 이것으로 우열을 분별하던 제도인데 곧 과거를 가리킨 것이다.
[주D-023]동해(東海)의……가지였네 : 동해는 우리나라를 가리킨 것이며 옥림(玉林)은 옥과 같은 나무의 가지란 뜻으로 최치원은 우리나라의 훌륭한 문장가임을 말한 것이다.
[주D-024]염한(炎漢) : 한 나라는 화덕(火德)으로 왕노릇했다 하여 칭한 말인데, 후한은 동경에 도읍했으므로 우리나라의 동경인 경주에 도읍한 신라를 비유한 것이다.
[주D-025]삼보(三寶) : 불가에서 말하는 불(佛)ㆍ법(法)ㆍ승(僧).
[주D-026]사조(謝朓) : 남제(南齊)의 문장가이다. 자는 현휘(玄暉)로 특히 오언시(五言詩)에 능하였다.
[주D-027]서이(徐摛)의 음와(淫哇) : 서이는 남조 때 양(梁) 나라 사람으로 자는 사수(士秀). 신기한 문장을 만들었는데 곧 염문체(艶文體)로서 궁체(宮體)라 이름한바, 애정의 시문이 되었으므로 음와라 한 것이다.
[주D-028]천리족(千里足) : 하루에 천 리를 달리는 준마(駿馬)를 말하는데 전(轉)하여 뛰어난 재질을 칭한다.
[주D-029]사시피(四時皮) : 마음 속에 시비판단이 분명함을 말한다. 진(晉)의 저부(褚裒)는 고귀(高貴)한 풍도가 있었으며 기국(器局)이 뛰어났다. 환이(桓彛)는 “피부 속에 포폄(褒貶)이 있다.” 하였으며, 사안(謝安)은 사시의 기후가 모두 갖춰졌다.” 하였는데 《춘추(春秋)》는 원래 봄은 양(陽)으로서 포상(褒賞)에 해당하고 가을은 음(陰)으로서 폄벌(貶罰)에 해당하므로 명명한 것임을 들어 말한 것이다. 《晉書 褚裒傳》
[주D-030]이화정(李和鼎) : 화정은 당(唐)의 시어사(侍御史)였던 이감(李甘)의 자(字). 그는 무척 정직하였는데, 교활한 정주(鄭注)가 재상되기를 구하자 이감은 “재상은 첫째 덕망이 있어야 하고, 다음은 문예가 있어야 하는데, 정주가 어떤 사람인데 재상을 구한단 말인가. 만일 그에게 임명장이 내리면 찢어버리겠다.” 하였다. 그 후 과연 정주에게 임명되므로 이것을 찢었다가 죄를 얻어 좌천되었다. 《新唐書 李甘傳》
[주D-031]원효니(袁孝尼) : 효니는 진(晉)의 학자 원준(袁準)의 자. 그는 충신공정(忠信公正)하였고,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성품이 침착하고 겸손하였으며, 정치에 관한 저서가 10여만 자에 이르렀다. 《晉書 袁準傳》
[주D-032]칠보(七步)에 지은 것 : 삼국 시대 위(魏)의 조식(曹植)이 지은 칠보시(七步詩)를 말한다. 조식은 뛰어난 문재(文才)가 있었는데, 이것을 시기한 형인 문제(文帝 조비(曹丕))는 일곱 걸음을 걷는 동안에 시를 짓게 하고 만일 못 지으면 벌을 주려고 하였으나 그는 과연 칠보 동안에 연두시(燃豆詩)를 지었다. 《世說新語》
[주D-033]삼태(三笞)를 물은 것 : 옛날 주공(周公)의 아들 백금(伯禽)이 그의 숙부(叔父)인 강숙(康叔)과 함께 입조(入朝)하였다가 아버지인 주공을 세 차례 뵈었는데 번번이 매를 맞았다. 강숙의 제의로 상자(商子)라는 현인(賢人)을 찾아 그 이유를 물었더니 남산(南山)의 양지쪽과 음지쪽에 있는 두 나무를 보고 오라고 하였다. 그래서 가보니 남산 양지쪽에는 교(橋)라는 나무가 쳐들려 있었고 음지쪽에는 자(梓)라는 나무가 수그러져 있었다. 백금이 다녀와서 본 대로 말하자 상자는 “교는 부도(父道)를, 자는 자도(子道)를 의미한 것이다.” 말하였다. 백금이 그 이튿날 주공을 뵈올 때 정문에 들어서서는 빨리 걷고 당(堂)에 올라서는 무릎을 꿇자 주공이, “어디서 군자를 만났더냐.” 하고 위로해 주었다. 《說苑 建本》
[주D-034]수잠(水蠶) : 누에의 일종으로 길이가 6~7촌이나 되고, 흑색에 인각(鱗角)이 있으며 서리나 눈이 내릴 때에야 고치를 짓는데, 고치는 길이가 1척이나 되고 오색실이 나와 문금
[주D-035]명령(螟蛉) : 푸른 빛깔의 나비의 유충이다. 나나니벌은 이 유충을 물어다가 항상 자기를 닮으라고 하면 이 유충들이 나나니벌로 변한다는 옛말에 의한 것으로 의자(義子)나 후학(後學)들에 비유된다.
[주D-036]혜초(蕙草)를……패물 : 혜초는 향초(香草)로, 곧 현자(賢者)의 높은 지조를 표시한다.
[주D-037]주머니……송곳 : 훌륭한 재덕(才德)이 안에 있으면 저절로 나타난다는 뜻. 전국 시대 조(趙) 나라 평원군(平原君)의 문객이었던 모수(毛遂)가 스스로 자신을 추천하자, 평원군은 선비가 세상에 있는 것은 마치 송곳이 주머니 속에 있는 것과 같아 끝이 저절로 나오게 된다고 한 말에서 나온 것이다. 《史記 平原君傳》
[주D-038]옥시(玉匙)와 금약(金鑰) : 옥시 금약(玉匕金籥)이라고도 쓰는데, 옥시는 이[齒]를, 금약은 혀[舌]를 가리키며 전(轉)하여 도가서(道家書)를 말한다.
[주D-039]구오(句吳)의……유풍이라오 : 오씨(吳氏)를 말한 것이다. 구오는 오(吳) 나라로 구(句)는 오 지방의 초발성(初發聲). 태백(太伯)은 주 태왕(周太王)의 장자로 아우인 계력(季歷)에게 왕위를 인계하기 위하여 도망쳐 오(吳)에 거하였는데 뒤에 무왕(武王)이 천하를 통일한 다음 그의 자손을 오 나라에 봉해 주었다. 《史記 吳太伯世家》
[주D-040]동방삭(東方朔) : 전한(前漢) 사람으로 자(字)는 만청(曼倩). 해학과 문장에 능했으므로 선술(仙術)을 배웠다 한다. 《史記 東方朔傳》
[주D-041]노비(魯丕) : 후한(後漢) 사람으로 자는 숙릉(叔陵). 성품이 침착하고 학문을 좋아하여, 오경(五經)을 정통하였으며 《노시(魯詩)》ㆍ《상서(尙書)》를 가르쳐 당시의 명유(名儒)가 되었다. 《後漢書 魯丕傳》
[주D-042]침탁(踸踔) : 걸음이 일정하지 못하고 더딘 모양으로 문재(文才)가 둔함을 말한 것이다.
[주D-043]환기(蠉蚑) : 꿈틀거리는 벌레의 모양으로 고전(古篆)의 자획(字畫)을 가리킨 것이다.
[주D-044]한유(韓愈) : 당(唐) 나라의 유학가(儒學家)이며 문장가. 일찍이 사설(師說)을 지어 사도(師道)를 말하였다.
[주D-045]유희(廋羲) : 진(晉) 나라 사람으로 자는 의숙(義叔). 목제(穆帝)에게 풍간(諷諫)하는 시를 지어 올려 명망이 높았다.
[주D-046]해우(薤盂) : 염교와 물주발을 가리킨다. 후한(後漢) 때 방삼(龐參)은 한양 태수(漢陽太守)로 부임하여 그 고을의 처사 임당(任堂)을 맨 먼저 방문하였다. 임당은 말 대신, 문 앞에 큰 염교 한 뿌리와 물 한 주발을 내다 놓은 다음, 어린 손자를 안고 그 옆에 엎드려 있었다. 그는 한동안 생각하다가 물은 자기에게 청백하라는 뜻이요 큰 염교 뿌리는 자기에게 강성한 종친을 제거해 달라는 뜻이요, 손자를 안은 것은 불쌍한 백성을 돌봐 주라는 뜻임을 알고 깊은 감명을 받아 훌륭한 치적(治績)을 이룩하였다. 《後漢書 龐參傳》
[주D-047]의이(意苡) : 마원(馬援)이 교지(交趾) 태수로 있다가 돌아올 때 약용(藥用)으로 율무를 가져왔는데 그가 사망한 뒤에 명주(明珠)와 문서(文犀)를 들여왔다는 참소를 당하였다. 《後漢書 馬援傳》
[주D-048]청독(靑犢) : 후한 광무제 때 여러 반적(反賊) 중의 하나.
[주D-049]재명(才名)은……맡겼네 : 육궐(陸厥)은 남제(南齊) 사람으로 자는 한경(韓卿). 젊어서부터 기개(氣槪)가 있었고 문장에 능하였다. 미지(微之)는 당(唐)의 문장가 원진(元稹)의 자로 한림원(翰林院)에 들어가 여러 벼슬을 하였다. 《南齊書 陸厥傳》,《新唐書 元稹傳》
[주D-050]화전(花甎) : 꽃무늬가 놓인 벽돌인데 한림원(翰林院) 북쪽 뜰 앞에 화전으로 깐 길이 있었으므로 한림원을 칭하게 되었다.
[주D-051]견지(繭紙) : 고려 때 생산되던 종이로 품질이 매우 좋았다.
[주D-052]권서(卷舒)는……같고 : 출처(出處)의 의리가 정당함을 말한다. 백옥(伯玉)은 춘추(春秋) 시대 위(衛) 나라의 현대부(賢大夫) 거원(蘧瑗)의 자(字). 그는 출처를 의에 맞게 하였으므로 공자는 그를 칭찬하여 “군자이다 거백옥이여, 나라에 도(道)가 있으면 벼슬하고 나라에 도가 없으면 거두어[卷] 감춘다.” 하였다. 《論語 衛靈公》
[주D-053]최기(崔琦) : 후한(後漢) 사람으로 자는 자위(子瑋). 문장이 뛰어나 외척잠(外戚箴)ㆍ백곡부(白鵠賦) 등을 지었다. 《後漢書 崔琦傳》
[주D-054]한가히……본받았으나 : 진(晉)의 반악(潘岳)이 세상일을 상관하지 않고 한가히 살겠다는 뜻으로 한거부(閑居賦)를 지었으므로 한 말이다.
[주D-055]난근(蘭筋)이……되었네 : 어쩔 수 없이 다시 정사를 맡게 되었다는 뜻, 난근은 말 힘줄의 이름으로 명마(名馬)를 가리킨다. 《상마경(相馬經)》에 “난근이 원중(元中)으로부터 솟아 있으면 하루에 천 리를 달린다.” 하였는데, 원중은 눈 밑 이정(井) 자 모양으로 움푹 들어간 것이라 한다.
[주D-056]묘한……제거했네 : 삼절(三絶)은 시(詩)ㆍ서(書)ㆍ화(畫)의 뛰어난 재주를 말하며 팔 비(八疪)는 장자(莊子)의 말로, 해서는 안 될 일을 하는 총(摠), 돌아보지 않고 나아가기만 하는 영(佞), 남의 비위만 맞춰 말하는 유(諛), 시비를 가리지 않고 말하는 첨(謟), 남의 과실을 말하기 좋아하는 참(讒), 남을 이간질하는 적(賊), 나쁜 사람을 거짓 칭찬하는 특(慝), 선악을 가리지 않고 비위만 맞추어 자기 욕심을 채우는 험(險) 등 여덟 가지의 나쁜 점이라 한다.
[주D-057]상설(霜雪)은 소용돌이치네 : 상설은 백색을 나타낸 것으로 나이가 많아 머리나 수염이 세었지만 마음만은 강하처럼 넓음을 말한 것이다.
[주D-058]집안에는……많았네 : 집안은 가난하여 시루를 사용하지 않아서 먼지가 끼었지만 문 앞에는 귀객(貴客)들이 줄을 이어 수레끼리 서로 부딪칠 정도임을 말한 것이다.
[주D-059]문총(文塚) : 당 나라 유세(劉蛻)가 문장의 초고(草稿)를 차마 버리지 못하고 한데 모아 땅에 묻은 데서 나온 말로 곧 많은 공부를 가리킨다.
[주D-060]이미……드리웠네 : 소공(蕭公)은 전한(前漢)의 소육(蕭育), 동씨(董氏)는 동중서(董仲舒)를 가리킨다. 소육은 친구 주박(朱博) 등과 절친한 사이로 서로 추천하여 높은 벼슬에 올랐으며 이보다 앞서 왕길(王吉)과 공우(貢禹) 역시 이와 같았으므로 장안(長安)에는 “소주가 인끈을 매자 왕공이 갓을 새로 썼다.[蕭朱結綬 王貢彈冠]” 하였으며, 동중서는 《춘추(春秋)》를 전공하였으며, 경제(景帝) 때에 박사(博士)가 되어 장막을 드리우고 제자를 가르쳤는데 아무도 그의 얼굴을 보지 못했으며 3년 동안 밖에 나오지도 않았다. 《漢書 蕭望之傳ㆍ董仲舒傳》
[주D-061]백전(柏殿) : 한 무제(漢武帝)가 장안(長安)에 세웠던 대(臺), 곧 백량대(柏梁臺). 무제는 대가 완성된 뒤 잔치를 마련하고 여러 신하들에게 칠언시(七言詩)를 지을 수 있는 사람만이 참석할 수 있게 하여, 백량체(柏梁體)라는 하나의 시체(詩體)를 남겼다.
[주D-062]천기절(天祺節) : 북송(北宋)의 진종(眞宗) 대중상부(大中祥符) 원년 4월 1일에 하늘에서 천서(天瑞)가 두 번째로 내려온 상서(祥瑞)가 있다 하여 국경일로 지정된 날.
[주D-063]천경절(天慶節) : 천서(天瑞)가 첫 번째 내린다는 정월 3일.
[주D-064]타고(鼉鼓) : 악어 가죽으로 만든 북.
[주D-065]대군(代郡)에서……하였네 : 대군과 병주(幷州)는 모두 지금의 산서성(山西省) 태원현(太原縣) 부근인데 전국 시대 조(趙)의 명장(名將) 이목(李牧)이 여기에 있으면서 군사를 훈련하고 수비를 잘하여 명성을 떨쳤다.
[주D-066]춘주(春酒) : 겨울에 빚은 술. 봄에 빚어서 겨울에 익은 술이라고도 한다.
[주D-067]한수(寒羞)는……좋으네 : 한수는 성찬(盛饌)을 먹은 다음 먹는 과일 따위를 말하는데, 시원한 음식이라 하여 붙여진 것이며, 대곡(大谷)의 배는 큰 골짜기에서 나는 배로 반악(潘岳)의 한거부(閑居賦)에 “장공(張公) 대곡의 배와 양후(梁侯) 오비(烏椑)의 감이다.” 하여 천하에 유명하였다.
[주D-068]치첩(雉堞)은……우뚝하네 : 치첩은 성(城) 위에 쌓은 성가퀴로 여장(女墻)이라고도 하는데 진 시황(秦始皇)이 쌓은 만리장성(萬里長城)을 가리킨 것이며 홍교(虹橋)는 강소성(江蘇省)에 있는 다리로 이 지역은 옛날 초(楚) 나라의 땅이었으므로 한 말이다.
[주D-069]사붕(射堋) : 화살을 쏠 때 화살을 받치는 터.
[주D-070]도미(酴醾) : 다화(茶花)의 별명으로 동백꽃을 가리킨다.
[주D-071]여러……순시하고 : 이는 상대방의 덕망을 찬양함. 《후한서(後漢書)》 범방전(范滂傳)에 “마침 기주(冀州) 일대에 흉년이 들어 도적떼가 일어나므로 조정에서 그를 청조사(淸詔使)로 삼아 순찰케 하였다. 그가 수레에 올라 고삐를 잡고, 천하를 한번 쇄신시켜 보겠다는 뜻을 다지며 기주 지방에 당도하니 수령들이 모두 자신의 잘못을 알고 벼슬을 내놓았다.” 하였다.
[주D-072]설아(雪兒)는……드리네 : 설아는 당 나라 이밀(李密)의 애희(愛姬). 이밀은 손님이나 벗들의 훌륭한 시문을 보면 반드시 그녀로 하여금 음률에 맞춰 노래하게 하였다. 옥녀(玉女)는 선녀(仙女)를 가리킨 것으로 설아나 옥녀는 모두 아름다운 기생을 말한 것이다.
[주D-073]사성(使星)은……들어오고 : 사성은 사자(使者)를 칭하며 한중(漢中)은 익주(益州)로 현재의 사천성(四川省). 한(漢) 나라 화제(和帝)는 즉위한 다음 사자를 사방으로 파견하여 미복(微服)으로 다니면서 사방의 풍속과 민요를 채집해 오게 하였는데 이때 두 명의 사신이 익주에 이르러 원인 이합(李郃)의 집에 투숙해 있었다. 여름철이라서 함께 밖에 나와 하늘을 보았는데 이합은 “두 분께서 서울을 떠날 때 두 사신을 이곳에 파견한 사실을 모르는가? 천기를 보니 두 사성이 익주의 분야(分野)로 향하고 있기 때문에 안다.” 하였다.《後漢書 李郃傳》
[주D-074]의죽(猗竹)은……보았네 : 의죽은 무성한 대나무. 기수(淇水)는 하남성(河南省) 임현(林縣)을 지나는 물로 이 부근엔 대나무가 잘 되었다. 《시경(詩經)》위풍(衛風)기욱(淇奧)에 “저 기수 벼랑을 보니 푸른 대나무 무성하다.[瞻彼淇奧 菉竹猗猗]” 하였는데 덕행이 훌륭한 위 무공(衛武公)을 비유하여 찬양한 것으로 상대방의 높은 덕을 말한 것이다.
[주D-075]조정에서는……꺼리었네 : 훌륭한 사람을 등용하지 않음을 말한다. 경숙(敬叔)은 공자의 제자 남궁괄(南宮适)로 남용(南容)이라 하기도 하는데, 매우 침착하고 언행을 조심하였으므로 공자는 그를 질서(姪壻)로 삼았으며, 환이(桓彝)는 진(晉)의 충신으로 자는 무륜(茂倫)인데 천성이 활달하고 조감(藻鑑)이 있었다. 반적(反賊) 소 준(蘇峻)을 공격하다가 힘이 다했으나 끝내 항복하지 않고 살해를 당하였다. 《晉書 桓彝傳》
[주D-076]도(道)를……감수하고 : 삼출(三黜)은 세 번 파면당한 것을 말한다. 춘추 시대 노(魯)의 현대부(賢大夫) 전금(展禽 일명 유하혜(柳下惠)라고도 한다)은 사사(士師)가 되어 삼출을 당했는데, 사람들은 “왜 떠나가지 않는가?” 하자, 그는 대답하기를 “도를 곧게 하여 임금을 섬긴다면 어디 간들 삼출을 당하지 않으며, 도를 굽혀 사람을 섬긴다면 하필 부모의 나라를 떠나가겠는가.” 하였다. 《論語》
[주D-077]긴 노래로……발하였네 : 오희(五噫)는 가사(歌詞) 끝에 탄식하는 뜻으로 희(噫) 자를 붙이는 것을 말한다. 후한 때의 은사였던 양홍(梁鴻)은 경사(京師)를 지나면서 오희가(五噫歌)를 지었는데 숙종(肅宗)은 그 내용을 보고 슬퍼하여 찾으려 하였으나 그는 끝내 만나지 않았다. 《後漢書 梁鴻傳》
[주D-078]강장(絳帳) : 뿌연 비단 휘장인데, 후한의 학자 마융(馬融)이 제자들을 가르칠 때에 강장을 베풀고 교수하였으므로 학궁(學宮)을 가리키게 되었다.
[주D-079]석거(石渠)의……어찌하려나 : 한(漢) 나라 때에 소하(蕭何)가 지은 각(閣)인데, 유향(劉向)이 일찍이 여기에서 오경(五經)을 강론하였다. 구실(衢室)은 옛날 요(堯) 임금이 백성들의 의사를 물었던 곳이라 한다. 《漢書 劉向傳》《 三國志 魏志 文帝紀》
[주D-080]물러난……않네 : 정절(靖節)은 진(晉)의 처사(處士) 도잠(陶潛)의 시호(諡號). 그는 팽택 영(彭澤令)이 된 지 80여일 만에 연말이 되어 상급인 군(郡)에서 감독하는 관리가 왔는데, 의관을 정돈하고 맞이하라 하자 “어찌 시골의 젊은 애들에게 허리를 굽히겠는가.” 하고는 그날 즉시 사임하였다. 하후자(夏侯孜)는 당(唐) 나라 사람으로 자는 호학(好學). 동평장사(同平章事)로 있었는데, 당사(堂史)가 서명(署名)을 하다가 하후자의 품안에 넘어져 죽었으므로 이 때문에 파직을 당하였다. 《晉書 陶潛傳》《新唐書》
[주D-081]옥수(玉樹) : 선목(仙木)으로 사람의 고결한 풍채를 비유한다.
[주D-082]벽운하(碧雲騢)가……아닐세 : 현재에도 훌륭한 인재가 있다는 뜻. 벽운하는 송 태종(宋太宗)의 어마(御馬)로 입가에 푸른 구름 무늬가 있었으므로 명명하였는데, 하루에 천 리를 달렸고 태종이 죽자 따라 죽었다. 수후(隨侯)는 춘추 시대 한수(漢水) 동쪽에 있던 수 나라 임금인데, 그는 명월주(明月珠)라고 불리는 진귀한 구슬을 갖고 있었으므로 수후의 구슬[隨侯之珠]이라 하여 유명하였다. 《玉壺淸話》《淮南子 汎論訓》
[주D-083]송옥(宋玉) : 전국 시대 초(楚)의 문장가.
[주D-084]왕비(王伾) : 당(唐) 나라 사람으로 좌산기상시(左散騎常侍)를 지냈는데 성품이 비루하여 뇌물을 좋아하였다. 《新唐書 王伾傳》
[주D-085]홀로……흘리며 : 장강(長康)은 진(晉) 나라 고개지(顧愷之)의 자(字). 그는 일찍이 환온(桓溫)의 대사마 참군(大司馬參軍)이 되었었는데, 환온이 죽자 슬피 곡하였다. 어떤 사람이 곡한 모습을 표현하라 하자 “울음소리는 벼락이 산을 깨치는 듯하였고, 눈물은 하수를 쏟아 바다에 넣는 듯했다.” 하였다. 《晉書 顧愷之傳》
[주D-086]지금도……떠오르네 : 당 나라 원덕수(元德秀)의 자는 자지(紫芝)였는데 미목(眉目)이 뛰어나게 수려하였다. 그리하여 방관(房琯)이 “자지의 미목을 보면 사람으로 하여금 명리(名利)에 대한 마음이 모두 사라지게 한다.” 하였다 《新唐書 元德秀傳》
[주D-087]미록(麋鹿)일랑……쓰시오 : 준의(鵔鸃)는 한대(漢代)에 시랑(侍郞)들이 쓰던 관(冠), 즉 산 속에 들어가 은둔하지 말고 조정에 나와 벼슬하라는 뜻이다.
[주D-088]주인은……흠모했네 : 상대방의 문장과 학식을 칭찬한 말. 왕찬(王粲)은 삼국시대 위(魏) 나라 사람으로 자는 중선(仲宣)인데, 학식이 풍부하고 문장에 뛰어나 당시의 학자 채옹(蔡邕)은 그의 재주를 훌륭하게 여겨 올 때마다 신을 거꾸로 신고 나와 마중하였다. 가규(賈逵)는 후한 사람으로 자는 경백(景伯)인데, 오경(五經)에 대한 여러 저서가 있다. 《三國志 魏志 王粲傳》《後漢書 賈逵傳》
[주D-089]복수(濮水)에서……설명하였네 : 복수는 중국 하북성(河北省) 복양현(濮陽縣)에 있는 강으로 곧 중국을 다녀왔음을 말한 것이다.
[주D-090]기회가……있네 : 좋은 때가 와서 반드시 등용된다는 뜻. 덕이 쇠한다는 것은 곧 세상이 나빠진다는 뜻이므로 여기서는 이와 반대로 좋은 세상이 옴을 말한 것이다.
[주D-091]경조(京兆)는……호련(瑚璉)이니 : 경조는 경조윤(京兆尹)으로 수도(首都)를 맡은 관직을 말하며, 호련(瑚璉)은 종묘(宗廟)에서 쓰는 제기(祭器)로 훌륭한 인재를 비유한 것이다.
[주D-092]천수의……좌사(左思)일세 : 뛰어난 문장을 말한 것이다. 장호(張祜)는 당(唐) 나라 사람으로 자는 승길(承吉)인데 궁사(宮詞)에 능하여 유명하였으며, 좌사는 진(晉) 나라 사람으로 자는 태충(太沖)인데, 문장에 능하여 촉도(蜀都)ㆍ오도(吳都)ㆍ위도(魏都)에 대한 삼도부(三都賦)를 지었다. 《新唐書 張祜傳》《 晉書 左思傳》
[주D-093]한 번……썼네 : 노서(鷺序)란 백로(白鷺)가 나는데 차서가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조관(朝官)의 반차(班次)를 말하며, 선위(蟬緌)는 고대 갓 모양이 매미 머리와 같았다 하여 생긴 이름으로 조관(朝冠)을 가리킨다.
[주D-094]어찌……있으리 : 문(文)에만 능한 것이 아니라 무(武)에도 능하다는 뜻. 천록(天祿)은 한(漢) 나라 때 장서하던 천록각(天祿閣)을 말하며, 곡려(谷蠡)는 흉노(匈奴) 번왕(藩王)의 봉호(封號)로 좌우로 나뉘어 있었다.
[주D-095]삼조(三俎)를……마련하여 : 삼조는 돼지[豕]ㆍ어물[魚]ㆍ포[腊]를 가리키며, 육자(六齍)는 육자(六粢)로 서(黍)ㆍ직(稷)ㆍ도(稻)ㆍ양(粱)ㆍ맥(麥)ㆍ과(苽)를 가리키는데 모두 제수(祭需)이다
[주D-096]계주(桂酒)는……않았네 : 계주는 계화(桂花)로 빚은 술이며, 산뢰(山罍)는 하후씨(夏后氏)의 술잔이라 하는데 산과 구름의 무늬가 있어 이렇게 이름하였다 한다.
[주D-097]저물게……하는데 : 경략(經略)이 있는 사람을 등용해야 한다는 뜻이다. 언(偃)은 한 무제(漢武帝) 때 제국(齊國)의 주보언(主父偃)을 가리킨다. 주보언이 《주역(周易)》《춘추(春秋)》를 비롯 백가서(百家書)에 통했으나 일찍이 제(齊)ㆍ연(燕)ㆍ조(趙) 등지에서 융숭한 대우를 받지 못하자, 위 장군(衛將軍 위청(衛靑))을 통해 무제(武帝)에게 알현(謁見)을 요청하였지만 그도 뜻대로 되지 않으므로, 직접 궐하(闕下)에서 상서(上書)한 끝에 왕으로부터 저물녘에야 소견(召見)을 받아 국가에 대해 중대한 일을 아뢰고 나서 대번에 등용되었던 고사인데, 주보언의 모책(謀策)을 받아들여 한(漢) 나라가 크게 안정되었다. 《漢書 卷64 主父偃傳》
[주D-098]그 누가……부르랴 : 기(祈)는 동진(東晉) 때의 은사(隱士)인 기가(祈嘉)를 가리킨다. 기가가 젊어서 청빈(淸貧)하고 학문을 좋아했는데 나이 20여 세 되었을 때 밤중에 갑자기 누가 창문에서 그를 불러 “기공빈(祈孔賓 공빈은 기가의 자) 기공빈, 빨리 숨어라 빨리 숨어라. 세상에 나가면 소득은 털끝만도 못하고 잃는 것만 태산같이 클 것이다.” 하므로 아침에 그대로 서쪽으로 도망하여 돈황(敦煌)에 가서 학사(學舍)에 들어가 글만 읽었는데, 뒤에 경전(經傳)을 널리 통하여 큰 학자가 되었고 문인(門人)이 2천여 명이나 되었다. 그리하여 그는 끝내 세상에 나가지 않았고, 오래 수를 누렸다. 《晉書 卷94 隱逸傳》
[주D-099]재상이……보아야 하고 : 당(唐) 나라 때 재상 영호도(令狐綯)가 모르는 고사(故事)가 있어 온정균(溫庭筠)을 찾아가 묻자, 온정균이 “그 사실이 《남화경(南華經》에 나오는데, 《남화경》은 벽서(僻書)도 아니니, 상공(相公)께서 국정을 보는 가운데 혹 여가가 있을 때면 꼭 고사를 열람하기 바랍니다.” 하였다.
[주D-100]벼슬이……꿈꿔야 하리 : 진(晉) 나라 때 이극(李克)이, 하늘에서 관(棺) 2개가 자기 앞으로 떨어지는 꿈을 꾸고는 그 사실을 색담(索紞)에게 묻자, 색담이 “관(棺)이란 곧 직(職)이니 틀림없이 누가 그대를 추천해서 벼슬이 승진하게 되겠소.” 하였는데, 뒤에 과연 그렇게 되었다 한다.
[주D-101]어진……받았거니 : 상수(向戍)는 춘추(春秋) 시대 송(宋)의 대부(大夫)로 일찍이 진(晉)ㆍ초(楚)가 패(霸)를 다툴 때에 그가 전쟁을 중지할 것을 제후(諸侯)들에게 통고하여 제후들이 그의 말을 따름으로써 천하를 안정시켰던 사람인데, 여기에 멸시를 받았다는 말은 자세히 알 수 없다.
[주D-102]누조(嫘祖) : 서릉씨(西陵氏)의 딸로 황제(黃帝)의 원비(元妃). 멀리 나가서 놀기를 좋아하다가 길에서 죽었으므로, 후세 사람들이 길의 신[行神]으로 높여 제(祭)를 지냈기 때문에 한 말이다.
[주D-103]촉군(蜀郡)의……노래하고 : 지방 수령(守令)이 선정(善政)을 하는 데 비유한 말이다. 후한(後漢) 때 염범(廉范)이 촉군 태수(蜀郡太守)로 부임하여 선정을 베풀자, 백성들이 “염숙도(廉叔度 숙도는 염범의 자)여, 왜 이제야 왔소. 전에는 저고리 하나도 없다가 이제는 바지가 다섯 벌이나 된다오.” 하고 그의 선정을 노래하였다. 《後漢書 卷31 廉范傳》
[주D-104]주제(朱提) : 질이 좋은 은(銀)의 이명(異名). 좋은 은이 주제현(朱提縣)에서 나기 때문에 이른 말이다.
[주D-105]은혜는……그립게 하고 : 밀로(密老)는 후한(後漢) 때에 밀(密) 땅의 영(令)을 지낸 탁무(卓茂)를 가리킨다. 탁무가 일찍이 밀 땅의 영이 되어 백성들을 마치 자기 자식처럼 아끼고 사랑하며 선정을 베풀었으므로 광무제(光武帝)가 조서하기를 “전 밀령(密令) 탁무야말로 지방현령으로 남이 할 수 없는 어려운 일을 하여 명예가 천하에 으뜸이니, 천하에 중상(重賞)을 받아 마땅하다. 지금 당장 탁무를 태부(太傅)로 발탁시키고 포덕후(褒德侯)에 봉해서 식읍삼백호(食邑三百戶)를 제수함과 동시에 그의 큰아들은 태중대부(太中大夫)로, 둘째 아들은 낭중(郞中)으로 각각 제수하라.” 하여 크게 은총을 내렸다.
[주D-106]위엄은……복종시켰네 : 진(晉) 나라 때 왕연(王衍)의 아내 곽씨(郭氏) 부인이 성질이 고집스럽고 괴팍한데다 탐욕이 많아 무리하게 재물을 모으곤 하여, 왕연이 그를 금하려 해도 되지 않았는데, 당시 그 고을 사람인 유주 자사(幽州刺史) 이양(李陽)이 경도(京都)에서 의협심이 많기로 유명한 사람이어서 곽씨 부인이 본디부터 두려워하던 중이었으므로 왕연이 곽씨 부인에게 “당신의 행위를 나만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고, 이양도 못마땅하게 생각한다.” 하니, 곽씨 부인이 이 말을 듣고는 그런 짓을 못 했다는 고사이다. 이 사실이 《진서(晉書)》와 《세설신어(世說新語)》에 다같이 나오나 모두가 왕연의 아내에 대한 일로 되어 있으니 여기 원문과 자주(自注)에서 왕연의 이모[姨]라고 한 것은 잘못이 아닌가 싶다.
[주D-107]같은……하였으나 : 섶을 쌓는 데 있어 나중에 쌓는 것을 위에 올려놓듯이 나중에 벼슬한 자가 전임자보다 중용되고 전임자는 항상 미관 말직에 있는 채 중용되지 못함을 비유한 말이다. 《사기(史記)》 급암전(汲黯傳)에 “급암이 무제(武帝)에게 ‘폐하께서 군신(群臣)을 등용하는 것이 마치 섶을 쌓는 것과 같아, 나중의 것이 맨 위로 올라가게 됩니다.’ 했다.” 하였다.
[주D-108]조용한……의지하고 : 자기 자신도 잊어버리고 천지의 조화와 벗할 수 있는 경지에 이름을 비유한 말이다. 《장자(莊子)》 제물론(齊物論)에 “남곽자기(南郭子綦)가 안석에 기대 앉아서 마치 그 자신조차도 잊어버린 것처럼 멍하니 하늘을 우러러 한숨을 짓고 있었다…….” 하였다.
[주D-109]청고한……타보곤 하네 : 마음이 고상한 것을 비유한 말이다. 진(晉) 나라 때 위개(衛玠)가 악광(樂廣)에게 꿈이 무엇인가 묻자, 악광이 “생각에서 온 것이다.” 하니, 위개가 “형신(形神)이 아무 사물을 접하지 않고 꾸는 꿈은 무엇입니까?” 하고 물으므로 악광이 “이것은 원인[因]에서 온 것이다. 일찍이 수레를 타고 쥐구멍에 들어가서 철저(鐵杵)를 씹는 꿈을 꾸어 보지 못했다.” 하였는데, 이는 곧 아무 생각도 없고 원인도 없기 때문이라는 데서 온 말이다. 《世說新語 文學》
[주D-110]유이(鱬鮧) : 유와 이는 모두 생선의 이름이다.
[주D-111]재주가……같네 : 지방 수령으로 있으면서 선정을 베푼 것을 비유한 말이다. 《화양국지(華陽國志)》에 “오자(吳資)가 파군 태수(巴郡太守)로 있으면서 자주 풍년(豐年)이 들자 사람들이 ‘새벽 바람 솔솔 불어오더니, 단비 내려 벼싹[禾苗]을 적시누나. 우리 임금 시무를 걱정하시어, 그 덕으로 우리들은 살기 편하다오.[習習晨風動 澍雨潤禾苗 我后恤時務 我人以優饒]’ 했다.” 하였다.
[주D-112]폐석(肺石) : 붉은 돌. 주대(周代)에 대사구(大司寇)가 이 붉은 돌을 조정에 설치해 놓고 억울한 백성들에게 거짓 없는 붉은 마음을 가지고 이 붉은 돌 위에 앉아 사실을 하소연하도록 하여 그들의 억울함을 처리해 주었던 데서 온 말이다.
[주D-113]구절판(九折坂)을 통과하였네 : 국사(國事)를 위하여 멀고 험한 지방의 수령을 지냈다는 뜻이다. 한(漢) 나라 때 왕양(王陽)이 익주 자사(益州刺史)가 되어 공래현(邛崍縣)의 구절판(九折坂 공래현에 있는 언덕 이름인데 이리저리 구부러져서 매우 험난한 곳이므로 붙여진 이름이다)을 순시하다가 부모가 끼쳐준 몸으로 이처럼 험난한 곳을 함부로 다니겠느냐면서 되돌아갔는데, 뒤에 왕준(王尊)이 자사가 되어서는 이곳에 당도하여 “왕양은 효자가 되었으니 나는 충신이 되겠다.” 하고는 마부를 호령하여 말을 몰아 이곳을 통과하였다 한다.
[주D-114]건유(乾維) : 건방(乾方). 여기서는 우리나라의 의주(義州) 분야이다.
[주D-115]모호(蝥弧)는……무시하고 : 전쟁에서 남 먼저 적을 용감하게 무찌른 것을 비유한 말이다. 모호는 춘추 시대 제후(諸侯)가 사용하던 기(旗) 이름. 춘추 시대 정백(鄭伯)이 허(許)를 칠 적에 영고숙이 정백의 기인 모호를 가지고 맨 먼저 적의 성 위에 올라갔었다. 《春秋左傳 隱公11年》
[주D-116]시취(詩趣)는……같이하고 : 시(詩)를 지을 때는 붓[筆]을 가지고 한다는 뜻이다. 모중령(毛中令)은 곧 붓을 지칭하는 말이다. 《韓昌黎集 毛穎傳》
[주D-117]편유(遍遊)할 땐……함께 하네 : 사방에 놀러다닐 때는 신[鞋]과 함께 한다는 뜻이다. 혁화는 가죽신을 가리킨 말이다. 《韓昌黎集 下邳侯革華傳》
[주D-118]노자(鸕鶿) : 술그릇을 말한다. 금모(金母)가 여러 신선과 적수(赤水)에 모여 잔치할 때 벽금앵무배(碧金鸚鵡杯)와 백옥노자표(白玉鸕鶿杓)가 있었는데, 앵무배가 비면 노자표가 저절로 술을 따르고 술을 마시려 하면 앵무배가 저절로 들렸다.
[주D-119]좁은……같고 : 조회(曹鄶)는 춘추 시대 두 나라 이름이다. 《춘추좌전(春秋左傳)》 양공(襄公) 29에 “계찰(季札)이 회(鄶)ㆍ조(曹) 두 나라의 가요에 대해서는 평론이 없었다.” 한 주에 “계찰이 두 나라의 가요를 듣고 너무나도 미약하고 보잘것이 없어서 평론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하였다.
[주D-120]두기(斗箕) : 두 별의 이름. 이 두 별의 사이는 은하(銀河)가 가로놓였으므로, 간격이 있어 원활하지 못한 것의 비유.
[주D-121]녹수(淥水) : 악부(樂府) 금곡(琴曲)의 가사 이름.
[주D-122]가도(賈島)는……탔고 : 가도는 당(唐) 나라 때의 시인(詩人). 처음에 중이 되었다가 뒤에 환속(還俗)하였다. 그는 한창 시상(詩想)에 잠겼을 적에는 아무리 공경(公卿) 같은 귀인을 만나도 알지 못하고 지나치고는 하였는데, 하루는 경조윤(京兆尹)을 길에서 만났는데도 나귀에 탄 채 피하지 않았다가 책망을 듣고 한참 만에야 풀려나기도 하였다. 《新唐書 卷176 賈島傳》
[주D-123]환공(桓公)은……않았으며 : 제환공(齊桓公)이 서정(西征)하는 길에 말을 매놓고서 태항산(太行山)을 넘어 비이(卑耳)의 오랑캐와 함께 진하(秦夏)를 정복했을 때의 일을 말한 듯하나 자세하지 않다.
[주D-124]전사(篆沙) : 모래 위의 전자(篆字). 모래 위를 밟아다녀서 난 발자국이 마치 전자 모양으로 된 형태를 말한 듯하다.
[주D-125]망호(網戶) : 그물처럼 조각된 무늬 지게. 《금루자(金樓子)》 잡기(雜記)에 “공사(龔舍)가 초왕(楚王)과 함께 미앙궁(未央宮)에서 자게 되었는데, 크고 빨간 거미가 쳐놓은 그물에 벌레들이 걸려들어 꼼짝도 못하는 것을 보고 ‘벼슬은 곧 사람의 그물이다.’ 탄식하고 벼슬에서 물러나자, 사람들이 그를 지주은(蜘蛛隱)이라 했다.” 하였다.
[주D-126]연(燕)에서 높인 곽외(郭隗) : 곽외는 전국 시대 연(燕) 나라 사람. 소왕(昭王)이 천하의 어진이들을 초빙하려고 할 때 곽외가 “우선 나 같은 사람부터 어진이로 초빙해 준다면 어찌 나보다 더 어진이가 저절로 몰려들지 않겠는가.” 하여, 맨 먼저 스승의 대우를 받았다.
[주D-127]송(宋)에서 상 준 이반(耏班) : 이반은 춘추 시대 송 나라 사람. 수만(鄋瞞)이 송을 쳐들어왔을 때 그가 사도 황보(司徒皇父)의 어자(御者)가 되어 적을 사로잡게 되자, 송공(宋公)이 문(門 관문(關門)을 말하는데, 이 관문을 곽외에게 주어 거기에서 나온 세금을 곽외의 소유로 하였다)을 상(賞)으로 주었다. 《左傳 文公 11年》
[주D-128]소악(韶樂)을……잊고 : 소악은 순(舜) 임금의 음악. 《논어(論語)》 술이(述而)에 “공자가 제(齊)에서 소악을 듣고는 고기맛조차 잊어버리고 ‘이처럼 아름다울 줄은 몰랐다.’ 했다.” 하였다.
[주D-129]상송 : 《시경(詩經)》 삼송(三頌 주(周)ㆍ노(魯)ㆍ상(商))의 하나. 이는 은(殷) 나라 때에 지어진 것이라 한다.
[주D-130]지장(紙帳) : 종이로 만든 모기장.
[주D-131]하의(荷衣) : 연(蓮)잎으로 엮어 만든 은자(隱者)의 옷, 《초사(楚辭)》이소경(離騷經)에 “기하(芰荷)를 재단하여 옷을 만든다.” 하였다.
[주D-132]길가에는……놓이고 : 도추의 성은 주(朱), 당 나라 때 거사(居士). 그는 천성이 담박하여 산 속 오막살이에 살면서 항상 미투리를 만들어 길가에 놓아두면, 지나는 사람들이 “주 거사의 신이다.” 하고 쌀을 대신 그 자리에 갖다 놓고 신을 가져갔다 한다. 《新唐書 卷196 朱桃椎傳》
[주D-133]뜨락에는……없다네 : 공우(貢禹)는 한(漢) 나라 때 현량(賢良)으로 천거되어 뒤에 간의 대부(諫議大夫) 등을 지낸 사람이나, 여기서 말하는 신에 대한 일은 자세히 알 수 없다.
[주D-134]손경(孫敬)의 문이 닫혔고 : 손경은 한 나라 사람. 문을 닫고 글을 읽다가 졸음이 오면 상투를 천장에 매어달기까지 했는데, 문을 닫고 공부하였으므로 그때 사람들이 그를 폐호 선생(閉戶先生)이라 일컬었다.
[주D-135]공야장(公冶長)의……구류(拘留) : 《논어(論語)》 공야장(公冶長)에 “그가 아무리 구류중에 있지만 그의 죄는 아니다.” 하였다.
[주D-136]양춘(陽春)의……부르는 듯 : 양춘은 초(楚)의 고상한 사곡(詞曲) 이름. 송옥(宋玉)이 초왕에게 “한 사람이 영중(郢中)에서 양춘과 백설(白雪) 같은 고상한 곡조를 부르니 화답할 자가 겨우 수십 명뿐이었습니다.” 하였다.
[주D-137]수원(睢園) : 한(漢) 나라 제왕(諸王)인 양효왕(梁孝王)이 빈객(賓客)들을 맞이하던 토원(兔園)을 말한다.
[주D-138]봉 날개에……입었고 : 이는 출세를 뜻하는 말이다. 《후환서(後漢書)》광무기(光武紀)에 “지금 여러 사람이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대왕을 따르는 것은 용의 비늘을 더위잡고 봉의 날개에 붙어 그 뜻한 바를 이루려 함입니다.” 하였다.
[주D-139]손님을……임방(任昉)이요 : 양(梁) 나라 임방은 시(詩)ㆍ문(文)ㆍ필(筆)이 모두 당세에 뛰어난 재사로 이름 있는 선비들과 교유하기를 좋아하였는데, 누구나 그에게 인정을 받은 사람은 다 높이 발탁되기 때문에 수많은 선비들이 다 그를 좋아하여 따랐으므로 좌석에 손님들이 항상 수십 명씩이나 있었다. 《梁書 卷14 任昉傳》
[주D-140]장씨(張氏)의……품제(品題)하고 : 장정견(張正見)의 시에 “맑은 시내 천 길이나 험한데 삼양에 섬약한 버들이 드리웠네.[千仞淸溪險 三陽弱柳垂]” 하였다.
[주D-141]반씨(潘氏)의……자랑하네 : 진(晉) 나라 때 문장가 반악(潘岳)의 한거부(閑居賦)에 “좋은 곳에 거소(居所) 잡아 집을 짓고 못을 만들면……호유[胡荽 향초 이름]가 향내를 풍기리라.” 하였다. 《晉書 卷五十五 潘岳傳》
[주D-142]삼색리(三色李) : 진(晉) 나라 때 부현(傅玄)의 이부(李賦)에 “……방릉(房陵)의 표청리(縹靑李 옥색 오얏)는 한 나무에 세 가지 색깔의 오얏이 열리고 맛과 이름이 각기 다르다.” 하였다.
[주D-143]구광지(九光芝) : 영지(靈芝)의 이름. 《포박자(抱朴子)》에 “구광지는 석지(石芝)의 일종으로, 임수(臨水)의 높은 산 절벽 틈에서 나는데, 모양이 마치 주발처럼 생겼고 크기는 한 자를 넘지 않는다.” 하였다.
[주D-144]회화군(懷化郡)의 먹 : 좋은 먹을 지칭하는 말이다. 고미(顧微)의 광주기(廣州記)에 “회화군에서 해자를 파서 많은 석묵(石墨)을 캐내는데 먹이 매우 좋아서 글씨를 쓰기에 알맞다.” 하였다.
[주D-145]정주(定州)의 자기[瓷] : 정주는 곧 지금의 하북성(河北省) 정현(定縣)을 말하는데 송대(宋代)에 이 고을 사람들이 만든 자기가 아주 유명하여 세상에서 정요(定窯)라고 일컫기까지 하였다.
[주D-146]곡구요(谷口謠) : 한(漢) 나라 고사(高士) 정자진(鄭子眞)이 곡구현(谷口縣)에 집을 짓고 수도하면서 지은 무언(無言)의 노래를 이름.
[주D-147]안건(岸巾) : 두건을 뒤로 제껴 써서 이마가 훤히 드러나게 하는 것. 전하여 예법을 무시하고 아무에게나 친근하게 대면하는 것을 말한다. 이설에는 미천한 자가 쓰는 두건이라고도 한다.
[주D-148]납기(蠟屐) : 밀을 발라서 광택이 나는 나막신. 《진서(晉書)》 완부전(阮孚傳)에 “그는 납기를 너무 좋아하고 조약(祖約)은 재물을 너무 좋아하여 모두 흠이 되나, 그 중에도 두 사람의 우열(優劣)을 오랫동안 판가름하지 못하였다. 그러다가 한 사람이 조약을 찾아가니 마침 금전을 계산하다가 날쌔게 뒤로 치우고는 그 표정이 매우 불안해하였고, 완부를 찾아가니 마침 납기를 챙겨 신고는 ‘나의 일생에 몇 켤레나 더 신게 될는지 모르겠다.’ 하고 혼자서 탄식하는 그 표정이 매우 차분하였으므로 두 사람의 승부를 비로소 가려냈다.” 하였다.
[주D-149]구의산(九疑山) : 지금의 호남성 영원현(寧遠縣) 남쪽에 있는 주명(朱明)ㆍ석성(石城)ㆍ석루(石樓)ㆍ아황(娥皇)ㆍ순원(舜源)ㆍ여영(女英)ㆍ소소(蕭韶)ㆍ계림(桂林)ㆍ자림(梓林) 등 아홉 봉우리의 산으로 모두가 모양이 같이 생겨서 보는 사람이 누구나 어느 봉이 어느 봉인지 어리둥절하여 의심을 내게 되므로 구의(九疑)라 이름했다 한다.
[주D-150]두약(杜若) : 향초(香草)의 이름. 《초사(楚辭)》 구가(九歌) 상군(湘君)에 “저 방주(芳洲)에서 두약을 캐노라.” 하였다.
[주D-151]복양(濮陽)에……숭상하고 : 춘추 시대 장주(莊周)가 복수(濮水 복양현에 있는 강)에서 낚시질할 때, 초왕(楚王)이 사신을 보내어 장주에게 초 나라 정승이 되어달라고 하자, 장주가 돌아본 체도 않으면서 “거북은 죽어서 뼈를 남겨 귀하게 되는 것보다 차라리 살아서 저 진흙 속에 꼬리를 끌고 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것이니, 나 역시 벼슬 자리에 속박되지 않고 산 거북처럼 진흙 속에 꼬리를 끌고 다니며 살련다.” 하였다. 《莊子 秋水》
[주D-152]배가 부르도록[便腹] : 학식(學識)이 많음을 비유한 말이다. 후한(後漢) 때 변소(邊韶)가 문장(文章)으로 유명하였는데 한번은 거짓 낮잠을 자는 체하고 있자 제자가 혼잣말로 “변 효선(邊孝先 효선은 변소의 자)은 배는 잔뜩 부른데다 글읽기는 싫어하고 잠만 자려는구나.” 하니, 변소가 대응하기를 “잔뜩 부른 배는 곧 오경(五經) 상자이고, 자려고 하는 것은 경사(經事)를 사색함이다.” 하였다. 《後漢書 卷80 邊韶傳》
[주D-153]박(狛) : 짐승 이름. 이리 비슷하다고 한다.
[주D-154]스승이라면……높이고 : 맹희(孟喜)는 전한(前漢) 때의 유학자(儒學者). 전왕손(田王孫)에게서 《주역(周易)》을 배웠는데, 뒤에 ‘스승 전생(田生)이 죽을 때에 오로지 자기에게만 학문을 전수(傳授)했다.’고 말하여 유자(儒者)들로부터 많은 선망(羨望)을 받았다. 《前漢書 卷88 儒林傳》
[주D-155]형이라면……섬기네 : 승미(僧彌)는 진(晉) 나라 때 왕민(王珉)의 소자(小字). 왕민이 어려서 재주가 뛰어나 자기 형인 왕순(王珣)보다 이름이 높았으므로, 그때 사람들이 “법호(法護 왕순의 소자)도 훌륭하기는 하지만, 승미의 형이 되기에는 부족하다.” 하였다.


 

ⓒ 한국고전번역원 ┃ 이재수 (역) ┃ 19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