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선전(守禪傳) / 동문선 제101권

2014. 12. 28. 05:59들꽃다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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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傳)
수선전(守禪傳)


이첨(李詹)

   이름을 수선(守禪)이라고 하는 중이 있는데 현풍현(玄風縣) 사람이다. 여러 대를 그 고을에 살다가 아버지인 견(堅)에게 이르러 바로 해평(海平)으로 옮겼고 거기에서 선(禪)을 낳았다. 선은 처음 나이가 12ㆍ3세 때에 홍복사(弘福寺)의 중에게 가서 글을 배웠으나 재주가 둔하여 스승이 뜻을 가르쳐 주면 곧 그대로 따라서 외기만 할 뿐이요, 스승이 가만히 있으면 아무 소리도 못하고 있었다. 다른날 집에 돌아왔기에 견(堅)이 배운 것을 외보게 하니 다만 한두 구절 밖에는 기억하지 못하고 다른 것은 모두 잊어버렸으며, 기억한다는 것도 그다지 분명하지 못하였다. 견은 화를 내며 이르기를, “너의 위로 있는 형 둘은 모두 벌써 틀렸고, 우리 집안을 일으킬 수 있는 것은 오직 너만을 기대하였는데 너조차 이 모양이냐.” 하며 드디어 그를 매로 때렸다. 그리하여 그 중에게 부탁하여 그의 머리를 깎고 제자의 예를 가지게 하였다. 선이 나이가 20이 되어 불교의 책을 배웠으나 과거에 공부할 적이나 다름이 없었다. 이때에는 갓과 의복을 제대로 갖추었다. 드디어 뜬구름과 같은 먼 생각이 일어나서 낙동강을 건너고 태백산 밑을 지나서 풍악(楓岳)에 올라서 큰 바다를 바라보며 관동(關東)을 두루 돌아 대관령을 넘어서 동쪽에 있는 유명한 산을 모조리 찾아다녔다. 그러나 구경한 것이 신기한 것이 많은 데 비하여 아는 것은 더욱 어두워졌다. 절에서 머무를 때마다 제대로 맡은 일에 성의가 없다는 것으로 책망을 들었다. 그는 다시 사불산 대승사(四佛山大乘寺)에 이르러 13명의 중과 결하(結夏)의 의식을 행하여 석달 동안 벽을 바라보고 있으면서 탐구하여 보았는데, 이른바 나의 성(性)은 그 작용하는 것을 가지고 성이라 하는가 하면 이것은 기(氣)요, 성이 아니었다. 인간은 모두 가지고 있는가 하면 나와 남이 같지 않음이 있었다. 이것을 찾아 보아도 얻지 못하고 얻는댔자 이것을 볼 수가 없는 것이므로 마침내 효과가 없었다. 또는 함께 거처하는 사람들이 혹 마구 움직이기도 하지만 그 성(性)에 대하여는 밝게 아는 바가 없었다. 드디어 모두 물리치고 고요히 들어앉아서 탐구하려고 동지인 혜명(惠明)이란 사람과 경주(慶州) 남산(南山)에 있는 내양암(內養庵)에 머물고 있는데, 혜명이 식량을 얻으러 나갈 때면 선(禪)은 혼자서 거처하는 수가 있다. 밤이면 사나운 범이 문에 엿보면서 부르짖으면 그 소리가 쩌렁쩌렁하며 4방의 벽이 흔들렸다. 그러나 선은 두려워하거나 겁을 내지 않고 자연스럽게 굳게 앉아 있었다. 이것은 그 이웃에 사는 중들이 모두 증명하는 것이니, 공부의 힘이 그 마음을 지배하는 바가 있는 것이 아니라면 어쩔 수 없어서 거짓 버티고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선은 여러 번 어렵고 위험한 지경을 겪는 동안에 고생스럽고 매말라서 차츰 중노릇 하기가 싫어졌다.

 

 

   그리하여 세상에서, “성(性)을 보고 부처가 된다[見性成佛].”는 것이 모두 허황된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마침내 소탈한 관습은 드디어 글하는 선비들과 놀기를 좋아하였다. 그는 성인(聖人)의 인의(仁義)에 대한 학설과 시서(詩書)의 교훈을 듣고는 즐겁게 보는 바가 있는 듯하였고, 흐뭇하게 얻는 바가 있는 듯하였다. 비록 그의 옛 습성이 모두 없어지지는 않았으나 그의 뜻은 가상할 만하다. 세상에 노는 사람이 글을 공부하다가 제대로 안되면 곧 중의 모양을 지어가지고 스스로 고상한 체하기도 하며, 또 불교를 배우다가 마치지 못하면 곧 문장을 한답시고 핑계하고 스스로 방탕한 데로 넘쳐나가는 것이 그 경로가 선(禪)과 비슷한 사람이 많은데, 어찌 그 숫자를 다 들어서 책망할 수 있으랴. 선은 나에게서 《맹자(孟子)》의 책을 배우다가, “불효가 세 가지인데, 후손을 두지 못하는 것이 가장 크다.”는 대목에 이르러 세 번 반복하여 읽으며 탄식하기를, “이 말씀이 정말 그렇다. 나는 천하의 죄인이로구나.” 하였으니, 아, 그가 성현의 말씀에 대하여 얻은 바가 깊었으며, 과거의 잘못을 깨달은 바가 분명하다. 이것이 내가 전을 쓰게 된 취지다. 공자는 이르기를, “교육에
있어서는 종류를 따질 것이 없다.” 하였고, 맹자는 이르기를, “돌아오면 곧 그를 받아들일 것 뿐이다.” 하였으니, 공자와 맹자가 어찌 나를 속이겠는가.


 


 
ⓒ 한국고전번역원 ┃ 임창순 (역) ┃ 19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