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불사지(백률사 아래), 칠불암 마애불상군, 신선암 마애보살반가상

2015. 1. 28. 15:39들꽃다회

 

 

문화유적 답사~ (29)

 
 

굴불사지(백률사 아래), 칠불암 마애불상군, 신선암 마애보살반가상

셀라 2014.09.20 19:57

 

       지인들과 자주 약수터에 갔었던 백률사 밑 굴불사지... (그 윗쪽 뭐더라.. 여튼 윗쪽 유적은 못 봤다. 갑자기 빈혈기 몰려 와 앞이 캄캄 호흡곤란이 와서.. 흑 이렇게 약해빠져서  페트라, 마추피츄 우찌갈꼬...  딴 사람한테 민폐는 안 끼쳐서  다행 히유~~ 아~~슬픔.) ,칠불암, 그 윗쪽 신선암 일정인데 신선암 역시 못 올라감 .

 

굴불사지:신라경덕왕이 백률사를 찾았을때 땅속에서 염불하는 소리가 들려 파보니 바위가 나와 그것으로 불상을 새기고 절을 세웠다는 전설이 있는곳

 

 

 

 

 

 

 

 

 

 

 

 

 

 

 

 

 

 

 

 

 

 

 

 

칠불암: 창건연대 및 중창의 기록은 전하지 않고 있으나 현존하는 유물들로 보아

신라시대에 창건되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현재 남산 내에서는 가장 규모가 큰 불상을 갖춘 곳이다.

 

칠불암이라 부르게 된 것도 마당에 있는 바위에 아미타삼존불을 비롯하여

사방불이 조각되어 있기 때문으로서, 1930년대에 지금의 암자가 세워졌다.

이 칠불은 조각수법이 빼어날 뿐 아니라 우리나라 사방불의 연구에 귀중한 유물이 된다.

또, 이 절의 위쪽 신선바위(神仙巖)에는 반가상을 한 보살상이 있는데 매우 빼어난 작품이다.

 

 

 

 

 

 

 

 

 

 

신선암 마애보살반가상: 경주 남산의 칠불암  석불군이 있는 바위 뒷면 꼭대기에

남쪽을 향하여 조각된 유희좌의 관음보살상이다.

 

평야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정상에서 구름무늬 위에 조각되어 있어

마치 하늘에서 내려오는 듯한 신비감을 준다.

통일신라의 석불 가운데 유희좌의 관음상은 이것이 유일한 예이다.

 

 

 

 

 

 

 

 

 

 

 

 

 

 

 

 

 

 

 

 

 

 

 

 

  - 다음 블로그 < 천년상생의 숲> 셀라 님의 글 중에서 발췌 .....

 

 

 

 

 

<164> 신선암마애보살반가상(神仙庵磨崖菩薩半跏像)

데일리안 | 입력 2006.12.09 09:30

[데일리안 배강열]

낮.

닳고 더러워진 버선발로 품앗이 하던 그녀는 늘 하던 몸짓 그대로   길 위 좌판에 걸터앉아 무표정한 사람들 속에서 웃고 있었다. 장터 갈림길에 앉아 부추나 푸성귀를 팔며 간간이 웃음 날리던 그녀더러 사람들은 실없다고 했다. 파장이 다가오는 저녁, 바람을 피하는 유일한 방법이란 바람에 날리는 머리칼 쓸어 담아 보자기를 머리에 쓰고 때때로 흩날리는 머리칼 무심결에 주워 담는 것. 스쳐 지나가는 사람 모두에게 반가운 손 내밀어 '나무관세음보살' 인사를 하고 구겨진 지폐 몇 장, 동 전 몇 닢 쟁그랑 거리는 그녀의 주머니는 칼날 같이 핏발 선 사람들의 조급함을 담아 낮은 숨결로 녹여내는 용광로 같은 힘이 있었던 거야. 푸성귀만 파는 것이 아니라 인정을 팔던 목소리, 그녀를 따라 차마 웃지는 않아도 사람들의 마음속은 담금질 된 화를 풀어내면서 뜨뜻해졌었던 게지.



                                                  

◇ 마애보살반가상 정면 ⓒ 들찔레밤.

그녀가 꽃 대신 거친 빈손에 사람 냄새 묻히고 산다는 것을 사람들은 몰랐다. 나도 몰랐다. 구태여 말하지 않는 그녀의 표정에서도 모른다. 여겨졌다. 하루의 노고를 안고 산동네를 찾아드는 그녀의 귀가 시간에 맞추어 판잣집들 마리위로 달이 뜬다. 가난이라는 역한 냄새가 풀풀거리고 고단한 사람들의 코골이가 시끄러운 그 동네의 이름은 그래도 신선동(神仙洞)이랬다. 주소도 없이 둘째 골목 셋째 집에 사는 그녀가 식은 우거짓국에 한 술 밥 말아 먹는 성찬을 즐기고 이슥한 밤이슬에 세수를 한다. 산꼭대기 조릿대 숲에 바람이 일 때 쯤, 비로소 때가 절은 버선발을 벗어 두고 한 뼘 온기 도는 방바닥에 몸 뉘어 충실한 하루의 대가로 단잠 이룰 수 있었나보다.

새벽.

꿈속에서 그녀는 춘 삼월 어느 날,구름바다를 헤치고 병풍처럼 둘러친 산봉우리에 앉았다. 고대왕조의 귀부인 이거나 공주였던 그녀는 삼면보관(三面寶冠)을 쓰고 유희좌(遊戱座)로 편안히 앉아 참꽃 한 줌 꺾어든 채 구름아래 먼발치를 바라본다. 때가 씻긴 빈 발 밑에 연화(蓮花)가 가볍고 산을 따라 흐르는 구름이 발끝에 차인다. 뭇 백성들이 이르기를 두견새 우는 봄 날 관세음보살 오신다 했다지. 보살님 오는 날, 그 새는 남쪽을 보고 운다는 전설은 그 옛날 안드라왕조에도 있었던 거지만 버선발 벗고 오실 줄은 아무도 몰랐지. 보살님 이미 사람들 가슴속에서 만났던 그 분일 줄 누가 알았으랴? 꽃을 든 채 시무외인(施無畏印)취하며 살아있는 자들의 모든 두려움을 없애주고 위안을 주는 그녀의 머리위로 낮달이 뜨고 선선암(神仙庵) 너럭바위에 바람이 한 줄 지난다.

[신선암마애보살반가상 /전문]


◇ ⓒ 들찔레

 

 


◇ ⓒ 들찔레

◇ ⓒ 들찔레

 

◇ 마애보살반가상의 각 부분 ⓒ 들찔레

 

자연 암벽에 새긴 불상이란 뜻의
마애불(磨崖佛)은 본래 원시시대의 암각화 같은데서 그 기원을 찾습니다. 후에 불교가 융성하면서 고대인도, 중국, 일본, 한국 등에서 부처님의 일생이나 신화 전설 같은 내용을 바위벽면에 새김으로서 신앙심을 고취하였다는 것이지요. 이런 마애불은 조각이지만 회화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어서 그 의미가 크다고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석굴암이 가장 아름답고 규모가 큰 마애석굴 입니다.

경주 남산 한 귀퉁이 신선암에는 보살 한 분이 살고 계십니다. 바위의 남쪽 벽을 파내고 새긴 보살상은 두광(頭光)과 신광(身光)이 세 줄 씩 선조(線彫)된 광배가 감실의 영역을 표시하고 있는데 남쪽 하늘을 응시하며 1300여년을 그 자리 지키고 있지요. 경주 남산에는 수 없이 많은 불상들이 존재하지만 저는 이 <신선암마애보살반가상>이 가장 아름답다 생각합니다.

물론 남산에는 인간적인 풍모와 소박함 그리고 세월에 깎여 알듯 모를 듯 미소 짓는 표정을 가진 <감실할매부처>도 참 결 고운 석재의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신선암 마애보살반가상과 같은 형식의 보살상이 경기도 이천에도 있는데 바로 보물 제 982호로 지정된 태평흥국명마애보살좌상 (太平興國銘磨崖菩薩坐像)입니다. 그러나 이 보살상은 고려 초인 981년에 만들어진 작품으로 신선암의 것에 비해 조악하고 단순하여 예술적 가치가 떨어집니다.

그러나 신선암의 마애보살이 아름다운 이유는 화려하고 정교하게 돋을새김 된 기법과 더불어 지정학적 위치가 사방이 툭 트인 산꼭대기에 있어서 계절에 따라 날씨에 따라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에 뭇 상상을 가능하게 해줍니다. 신선암 꼭대기에는 실제로 구름이 지나가는 일이 많은데 용트림 하는 구름을 새긴 위에 조각된 이 마애보살은 언제나 구름위에 앉아 있습니다.



                                      

◇ 신선암, 하늘 위에 앉은 마애보살반가상 ⓒ 다음이미지 언제님

 

국보 83호인 금동미륵보살반가상의 우려한 선과 입체미 그리고 그윽한 미소를 기억합니다. 선덕여왕의 미륵이 되고자 했던 욕망을 얹어 조성되었다 하기도 하는 그 반가사유상은 세련된 기법에도 불구하고 끝없이 고뇌하는 모습에서 바라보는 이들이 조심스럽습니다. 그러나 구름위에서 맨 발 한쪽을 연꽃 위에 내려놓아 유희좌(遊戱座)를 취한 모습은 근엄하면서도 은근히 긴장을 풀어내는 모습이라 여겨져 보는 사람도 편하게 느껴집니다.

이 보살님은 오른 손에 꽃가지를 들고 있고 다른 한 손은 가슴께로 들어 올려 밖을 향하는 시무외인(施無畏印)을 취하고 있으며 이는 살아있는 자들의 모든 두려움을 없애주고 위안을 주는 뜻이 담겨 있지요. 더불어 앉은 자세가 반가부좌(半跏趺座) 중 유희좌(遊戱座)를 취한 것으로 보아 이 마애보살은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 입니다.

관세음(觀世音)은 세상의 모든 소리를 살펴본다는 뜻이며 보살(菩薩)은 세간과 중생을 이익되게 하는 성자(聖者)이므로

이 관세음보살은 대자대비(大慈大悲)의 마음으로 중생을 구제하고 제도하는 보살이며[救世菩薩]

세상을 구제하는 청정한 성자[救世丁字], 중생에게 두려움 없는 마음을 베푸는 이[施無畏者],

크게 중생을 연민하는 마음으로 이익 되게 하는 보살[大悲聖者]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신선암 마애보살의 얼굴을 보면 후덕하게 생긴 아주머니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얼굴이 비대해 보이고 목의 삼도가 뚜렷한 것은 통일신라 융성기의 불상들에

공통적으로 보이는 경향이기는 하지만 이 마애보살의 경우 신비롭게 치장된 얼굴이 아닌 것이

 다행이라 여겨집니다. 특히나 관세음보살의 얼굴이 이렇듯 편안하게 보인다는 것이 다행입니다.

따라서 신선암마애보살의 덕스런 얼굴은 우리네 이웃을 닮아 있어서

어쩌면 삼면보관(三面寶冠)을 쓴 보살의 얼굴은

당시 후덕한 신라의 귀족부인이 아니었을까? 상상을 해봅니다.

이렇듯 무조건 엄숙하지만은 않은 마애보살의 모습은 언제나 큰 긴장 없이

사람들이 다가설 수 있으며 작은 소원 하나라도 잘 들어줄 것만 같습니다.

구름 위를 둥실 떠가는 자유로운 관세음보살,

신선암 마애보살반가상(보물 199호)은 경주 남산동 산 35번지에 있습니다./ 배강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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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199~200호 (경주 남산 신선암 마애보살반가상)|  …─ 보물

미탁 | 조회 65 |추천 0 | 2010.07.11. 13:07

 

경주 남산 신선암 마애보살반가상 보물199호

소 재 지 : 경북 경주시 남산동 산36

 

   경주 남산은 유물·유적의 보고(寶庫)라고 할 수 있는데, 여기에 가면 삼국시대부터 통일신라 후기까지의 불상들을 모두 만나볼 수 있다. 그 중에 하나인 높이 1.4m의 마애보살반가상은 칠불암(七佛庵) 위에 곧바로 선 남쪽바위에 새겨져 있다. 마치 구름 위에 앉아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머리에 삼면보관(三面寶冠)을 쓰고 있어서 보살상임을 알 수 있다. 얼굴은 풍만하고, 지그시 감은 두 눈은 깊은 생각에 잠긴 모습으로 구름 위의 세계에서 중생을 살펴보고 있는 듯하다. 오른손에는 꽃을 잡고 있으며, 왼손은 가슴까지 들어 올려서 설법하는 모양을 표현하고 있다. 천의(天衣)는 아주 얇아 신체의 굴곡이 사실적으로 드러나 보이며 옷자락들은 대좌(臺座)를 덮고 길게 늘어져 있다. 머리광배와 몸광배를 갖춘 광배(光背) 자체를 불상이 들어 앉을 공간으로 이용했기 때문에 보살상이 더욱 두드러져 보이며, 통일신라시대 8세기 후반의 작품으로 보인다.

 


경주 남산 칠불암 마애석불 보물200호
소 재 지;

경북 경주시 남산동 산36

   가파른 산비탈을 평지로 만들기 위해서 동쪽과 북쪽으로 높이 4m 가량되는 돌축대를 쌓아 불단을 만들고 이 위에 사방불(四方佛)을 모셨으며, 1.74m의 간격을 두고 뒤쪽의 병풍바위에는 삼존불(三尊佛)을 새겼다. 삼존불은 중앙에 여래좌상을 두고 좌우에는 협시보살입상을 배치하였다. 화려한 연꽃위에 앉아 있는 본존불은 미소가 가득 담긴 양감있는 얼굴과 풍만하고 당당한 자세를 통해 자비로운 부처님의 힘을 드러내고 있다. 왼쪽 어깨에만 걸치고 있는 옷은 몸에 그대로 밀착되어 굴곡을 실감나게 표현하고 있다. 손은 오른손을 무릎 위에 올려 손끝이 땅을 향하게 하고 왼손은 배부분에 대고 있는 모습이다. 좌·우 협시보살은 크기가 같으며, 온몸을 부드럽게 휘감고 있는 옷을 입고 있다. 삼존불 모두 당당한 체구이며 조각수법이 뛰어나다. 다른 바위 4면에 새긴 사방불도 화사하게 연꽃이 핀 자리에 앉아 있는 모습으로 방향에 따라 손모양을 다르게 하고 있다.

 

국보 제312호 경주 남산 칠불암 마애불상군으로 명칭변경 및 승격지정됨에 따라 2009년9월2일 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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