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1. 29. 21:00ㆍ들꽃다회
경주 남산 문화재 (45)
2014.8.1 금요일, 폭염 속으로, 칠불암 산정에서 용장계곡 쪽 모전 삼층석탑, 7년 만의 만남
2014.8.1 금요일, 폭염속 7년 만의 만남
외국인 비구니를 통해서 변모하는 칠불암과 칠불사.2014.8.1 촬영:庭光散人
경주에 있는 3기의 모전삼층석탑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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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악동 모전 삼층석탑 |
남산리 동탑 모전 삼층석탑 |
용장계못골모전삼층석탑 |
용장계 池谷(못골) 모전 삼층석탑을 찾아 오른 칠불암
폭염으로 7년 동안 벼르고 있었던 경주에서 같은 제작 기법의 모전 삼층석탑 못골 삼층석탑을 찾았다.
2002년3월경 용장계 못골(池谷)에 모전 삼층석탑이 복원 되었다. 위치한 곳이 남산 서편 쪽에 용장곡으로 오를 경우와 칠불암, 신선암 쪽에서 백운재, 고위산 반대쪽 용장골로 빠지는 250미터 근처에 있어, 하계 산림이 우거질 경우 찾기가 어렵다.
겨울철 산행시엔 빠르게 해가 떨어지는 관계로, 여분 시간에 삼층석탑에 갈려면 번번히 놓쳐야하는 위치에 있다.
오늘의 산행은 목적지는 용장계 못골 모전 삼층석탑이다.
남산 3백 여 산행을 한 全산신령님을 앞 장 세우고 간 산행이었다. 비장한 각오로 갔었다. 승용차를 가지고 갈 경우 귀로 때문에 동선의 폭이 짧아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때문에 남산 63골짜기를 종횡 무진 걷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오늘은 남산 등산 산신령님을 모시고 떠난 산행이라, 마음까지 든든하다. 봉화골을 오른다. 칠불암과 신선암이 있는 곳이다.
마른 장마 때문에 계곡의 물이 말랐다. 자갈과 모래가 목마름까지 보챈다.
칠불암 입구, 새로운 요사채가 건립되고 있다. 땀을 훔치고 마지막 돌계단을 오르니 금와보살(개구리)가 반긴다. 통도사 자장암 금와보살을 본 후엔 금와보살(蛙佛)은 기쁨이며 환희다.
<금와보살>
3년 만에 칠불암 경내가 환하게 단장되고 있다. 암자 벽쪽을 유리창으로 하여 칠불암의 칠부처를 품고 있다.
눈이 푸른 서양 비구니들의 환한 미소가 연꽃처럼 피어난다.
위쪽 신선암 여래좌상불(마애보살반가상)을 친견한다. 밝은 햇살아래 항시 환한 얼굴로 봉화골 숲길로 달려갈 자세로 앉아 있다. 靜的之動勢 -'고요속에 움직임'이다.
신선암 윗쪽으로 오른다. 갈림길이 나온다. 오른편은 봉화대능선 쪽으로 이영재로 이어지는 길이고, 왼편은 백운재 쪽 고위능선이다. 모전 삼층석탑이 있는 곳은 오른편으로 봉화대능선 쪽으로 100 미터 쪽으로 간다. 좁은 길에 이정표가 나온다.
아랫쪽으로 용장계못골 쪽으로 250미터 옆에 모전삼층탑이 숲 속에 숨어 있다. 지도만 보고 온 초행인은 놓치기 일 수다.
동행인 남산산신령은 놓칠리 없다. 작은 산개울을 건너 숲 속에 우뚝 선 모전탑이 나를 품는다. 나 또한 안겼다.
남산리 쌍탑 중 동탑과 건축 수법이 같다. 모전탑은 벽돌 처럼 쌓은 탑이다.
<모전석탑의 지붕돌 윗 지붕 층급받침형식은 모전석탑 들여 쌓기에서 나왔다. 모전탑인 분황사 지붕과 같은 형식이다-글돋선생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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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국사 석가탑 지붕돌의 지붕은 민지붕 형식으로 되어있다. 모전탑형식과는 다름(클릭시큰 사진) |
의성탑리 오층석탑 지붕돌의 형식이 모전계단식 들여 쌓기식으로 건축되었다. |
남산 용장계 못골 삼층모전탑 윗 지붕돌 들여 쌓기식으로 계단식으로 조성했었다 |
분황사 모전탑 윗 지붕은 벽돌 들여쌓기로 했었다.(클릭시 큰 사진) |
경주에서 모전탑의 전형으로 분황사 모전석탑을 들 수 있다. 삼층석탑으론,경주에 현재 남아 있는 동일 기법의 모전석탑은 3기가 남아있다. 무열왕릉 근처 서악의 모전석탑과 동남산 남산리 동탑, 그리고 이곳 용장계곡 못골의 삼층석탑이다. 동남산 남산리 동탑과 거의 비슷하다. 기단부는 직육각형의 돌 8개를 짜 마춰져 있고. 지붕돌은 일반 탑은 민밋한 지붕으로 되어있는데 반해, 이 곳 지붕돌은 층급받침과 같이 되어있다. 그 형식을 취한 이유가 있다. 받침계단 모양이 보는이 쪽에서 볼 때 벽돌로 쌓아 놓은 지붕처럼 보이기 위함이다. 분황사 사진을 잘 살펴보면 지붕의 아랫부분은 내어 쌓기로, 윗부분은 들여 쌓기로 목조 건축에서 나올 수 없는 양식의 지붕 형식이다. 분황사 모전석탑은 선덕여왕 때 건축되었다. 7세기, 경북 영양, 의성탑리의 모전석탑 지붕형식에서 볼 수 있는 양식이 되었다.
마치 지붕돌(옥개석) 받침계단과, 지붕까지 벽돌로 쌓아놓은 것처럼 보인다. 3곳 모두 그런 모양이다. 나 또한 10여년 동안 까닭을 몰랐다. 하지만 작년에 남산리 동탑을 안내하면서 노을에 비친 지붕돌이 붉은 벽돌로 쌓은 듯한 착각을 하였다.
그 때 그 이유를 알았다. 의문이 확 풀렸다. 분황사 지붕 쌓기가 뇌리 속에서 번뜩이었다. 격물치지(格物致知) 뜻을 알게 해준 모전석탑 지붕돌 모양이었다.
높이 5.6미터, 절은 사라지고 없지만, 모전석탑은 천년을 견디고 있었다. 모든것은 변하고 멸한다는 것을 불법은 말하고 있다. 우린 삼층석탑을 보면서, 모든 것이 변한다는 '제행무상(諸行無常)' 모든 변하는 것에 자아라는 실체가 없다는 '제법무아(諸法無我)' 모든 변하는 것은 괴로움을 낳는다는 '일체개고(一切皆苦)' 즉 삼법인(三法印)이란 세 가지 진실한 부처님의 가르침이 바로 이 탑 앞에서 느낀다.
3층 지붕돌 부분은 새로운 화강암으로 깎아 얹었다. 석재도 영원할 것 같아 보였지만 천년 세월에 변한다. 사물이 무상하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영원할 것으로 착각하고 살고 있다. 바로 이런 잘못된 생각이 전도몽상(顚倒夢想)이다. 이 잘못된 생각을 버릴 때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고, 그 속에서 바르게 사는 길을 알게 된다.
폐사지에 새로 복원된 삼층석탑이 나의 스승이며, 진리를 말해 준다. 진리는 날 자유롭게 한다. 산에 오를 때 고통이 싹 가셨다. 하산 할 때 몸 속에서 빠져나간 욕망의 찌꺼기가 사라져 버려 깃털처럼 날고 싶다. 자연의 순리에 순응할 때 자유로와 진다. 그 것이 해탈이 아닐까. 남산(우지산:신라 때 이름) 순행은 나에겐 수행과 같은 이유이다.
백운재로 오른다. 온 김에 남산에 제 일봉 고위산(494미터) 정상에 섰다. 정상이란 표지석 앞에 섰다.
오늘의 산행을 시 한 수로 대변한다.
仙佛孤絶處 高位客思史
墟竹風搖翠 池河午滿花
址游智愈壯 探跡鬢都華
踏合元非易 處有前緣似
신선불 홀로 앉아 있는 곳
고위봉에서 나그네 옛일을 생각하네
언덕 대숲은 바람에 녹색빛을 흔들고
못골 연꽃은 정오에 만발하였네
절터찾아 돌아다니면 지혜가 더욱 장엄해지지만
옛터 탐방 세월 속 귀밑머리 모두 새었네
발품으로 얻음은 원래 쉬운일 아니니
곳들은 전생의 인연과 유사함이 있는 것 같네
(2014.8.4 庭光散人>
칠불암의 원경
칠불암의 정체, 과연 7불은 누구일까- 소설가 김인배 (彼岸夢 집필 중)
2011년 10월 이후 오랫만에 올랐다.
원래 한 암석을 가운데를 떼어 내고 앞 사면불, 뒤면 3면불-칠성 사상과 합일 된 풍류도 사상에 근거함
신선암, 마애반가사유상. 유희좌로 앉은 마애좌상불
칠불암 산정에서 이영재 쪽으로 내려오다 표지 안내판 250미터 용장계지곡(못골)삼층석탑 안내 팻말
용장계 못골 모전 삼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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