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서남산지구 삼릉

2015. 4. 21. 04:26들꽃다회

 

 

 


 

경주 서남산지구 삼릉

   

 

 

 

 

 

 

 

 

 

 

 

 

 

 

 

 

 


 

   조선시대 경주 망성리의 화계 유의건이 남긴 '화계집''라능진안설(羅陵眞贋說)'이라고 하여

왕릉이 정해진 내력에 대한 글이 있다.

이에 따르면 조선 영조 6년 경술년(1730)에 경주부윤으로 있던 김시형이 박씨 문중과 타협하여

전승(傳承)을 잃어버린 왕릉을 찾는 작업을 하였는데

당시 두 문중은 남산을 기준으로 하여 동남산에 위치하고 있는 능들을 김씨 왕릉으로 하고 서

남산 일대에 있는 능들을 박씨 왕릉으로 정하였다고 한다.

따라서 무덤의 주인도 적당히 붙인 것이라는 내용이다.

 

 

   왕릉은 주변에 송림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3기 모두 원형봉토분이며

신덕왕릉의 구조로 보아 3기 모두 횡열식석실분으로 

봉분 둘레에 호석을 쌓고 큰 자연암석을 둘렸는데,

지금은 다 묻혀서 마치 원형의 토분처럼 보인다

 

   삼국사기를 보면 신라 56명의 왕 중에서 박씨는 모두 10명으로,
1대 박혁거세, 2대 남해차차웅, 3대 유리이사금, 5대 파사이사금, 6대 지마이사금, 7대 일성이사금,

8대 아달라이사금, 그리고 830년 후에 다시 53대 신덕왕, 54대 경명왕, 55대 경애왕이 있다.

 

   그 중 세분이 이곳에 묻혀 있다고 하는데

제8대 아달라왕(재위A.D.154-184)의 능은 서쪽 가장 아래 위치하며,

앙에 제53대 신덕왕(재위 A.D.912-917)이,

그리고 동쪽에 제54대 경명왕(재위A.D.917-924)의 능으로 전해 온다.

 

   그러나 신라 초기의 아달라왕(阿達羅王)과 하대(下代)의 신덕왕(神德王)·경명왕(景明王) 사이에는

 무려 700여년의 차이가 있어 이들의 릉(陵)이 한 곳에 모여 있다는 사실이 이해되기 어렵다.


 

 

 

 

 

 

 

 

 

 

ㅡ 다음 블로그 <토함산솔이파리> 솔뫼 님의 자료 중에서 발췌 ......

 

솔뫼 2011.04.15 20:28

경주 남산 삼릉계(三稜)1-삼릉과 삼릉계 제1사지(寺址)의 유적 view 발행 | * 경주 남산

 

 




 

 

 

 

 

 

 

 

 

삼릉계곡 마애관음보살상

경상북도 유형문재 제19호

 

 

 

 

 

 

 

 

 

왼손에 정병을 들었으며

입술 주위에 붉은 주칠(朱漆)로 단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