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인 흉노기원에 대하여. ^^ 신라김씨 흉노기원이 맞다.

2015. 5. 3. 01:08우리 역사 바로알기

 

 

 

 

 

       신라인 흉노기원에 대하여. ^^ 신라김씨 흉노기원이 맞다. [7]

 

해신 (ades****)

주소복사 조회 957 08.11.30 20:43 신고신고
 

한국이나 많은 나라의 건국신화는 알신화가 많습니다.그것은 자신들의 시조를 신비화시키고,

하늘에서 내려왔다고하는 하늘 숭배사상에서 기원합니다.
한족이 부르는 흉노의 원뜻은 순유라는 말이고 유럽으로가면 shun-nu (슝-누/순누)라고
불렀으며, 그뜻은 하늘의 거룩한 자손 이라는 뜻입니다.

샤머니즘을 숭배했으며 북두칠성 숭배사상도 강했습니다. 사마천의 사기에  흉노열전
에서는 흉노의 조상은 하후씨의 후손인 순유라고 말한바 있습니다.
부여의 하백의딸 유화부인도 그러고보면  흉노의 피가  섞이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흉노는 기원전 209년~174년 동안 융성했던 세력으로 전한시대 초나라와 한나라(유방)
시대에 일어나 동쪽의 동호(오환족,선비족), 서쪽의 월지(월씨족), 남쪽의 누번(티벳,토번),

북쪽의 격곤을 차례로 점령하여 세력을 확장했던 세력입니다.

흉노어는 알타이어족계로  그뜻은 하늘의 거룩한 태양의 자손이라는 뜻이며,
후에 남흉노는 한나라에 귀부하여 살게되는 남흉노와 고비사막 남단인 금산(알타이산)
일대에 활동하게되는 북흉노로 나뉘게됩니다. 그들이 몽골근처에 머물렀을때는
몽골어로는  탱그리 아가한 이라고 불렀습니다.

북흉노국은 후에 선비족과 유연족과 섞여 살게된 부족은  새로운 돌궐족으로 성장하게됩니다.
돌궐족은  제철업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고  그것은 유목생활의 경제수단이 돈이 아니라
금으로 계산을 했기때문입니다.

기원전 209년 부친을 살해하고 권좌를 거머쥔 모돈선우 ((선우>가한이전에 불렀던 최고 권력자의 칭호)는

중국북방에서 최초의 노예제정권을 수립합니다.
흉노족의 역사는 군사반란과 쿠테타의 역사가 비일비재한것이 사실입니다.

기원전140년 한나라 무제가 즉위한후 흉노를 정벌하여 고비사막 남부로 축출하여,
흉노의 제민족들이 한왕조에 귀순을 하여 살게됩니다.
이후  기원전 58년 호한야 계후산 선우가 즉위하면서 흉노의 내분이 발발하여,
5명의 선우가 권력쟁탈전을 벌이면서 혼란국면이 발생하게 됩니다.

이때 바로 투후 김일제가 훗날에  남흉노인 2만~5만 사이의 흉노인을 하택시 근처로
데려온 것으로 봅니다.

기원전 36년 호한야 선우는 서한왕조의 후원을 받아 흉노를 안정화시키고,
기원전 33년에  장안으로와서 한나라 원제를 만나고, 한왕실과 혼사를맺게되고,
원제는 궁녀 왕장을 그에게 시집을 보내고 영호알씨라 불렀습니다.
알타이산(금산,금미산)을  알타이어로 아르치스산(어간은 아르치,어미는 스.알씨>알찌>알치) ==>

이것을 보면 왜 한원제가 영호알씨라고 칭호를 내렸는지 이해가 되실 겁니다.

김알지는  아르치스산(금미산에서 태어나고 활동하며 금을 경제지불수단으로 살아가는 유목민족)의 후예로서의 뜻입니다.
왜 알지가 알영에서 나왔는지 이해가 되시리라 믿습니다. 한원제가 내린 칭호인 영호알씨가 바로 알영이고  김알지라는 사실을,,
이것이 후에 소군출새의 이야기로 잘알려져 있습니다.

기원후 9년 왕망이 한나라를 찬탈하고 신나라 왕조를 건국하여 흉노등 소수 제민족을
차별하고 압박정책 시행등으로 관계가 악화됩니다.
왕망은 투후 김일제와 외가친척관계였고  김일제는 흉노 휴도왕(선우)의 태자로 있다가

한나라와의 전쟁으로 포로로 잡혀있다  한고조의 제2인자까지 오르는 인물입니다.

중국정사를 보면 위기를 느낀 김일제가 모친을 데리고 반도로 탈출한 루트까지
나옵니다. 배를타고 이동해온것은 확실합니다.

기원후48년 동한초기에 내부분열로 남흉노와 북흉노로 분열되고 남흉노의 선우는 한족문화를 숭상하여

한족과의 화의를 주장하다가, 백성들을 거느리고 동한에 귀순하여
한나라 국경안으로 들어와 살게되고, 고비사막 북부지역으로 물러난 북흉노는 매년
계속된 천재지변과 전쟁으로 나날이 쇠퇴하고 인접국의 협공과 끊이지않는 내분으로
진퇴양난에 처하게됩니다.

기원후 91년 동한왕조는 금미산(금산.알타이산)에서 북흉노국을 크게 무찌르고,
이에 북흉노의 선우는 일부의 신하와 백성들을 거느리고 서쪽의 강거로 도주하였다가,
흑해,이해, 북쪽 기슭을 지나 동유럽으로 들어갔는데  그지역사람들은 그들을
흉인이라 불렀습니다.

후에 그지역 토착민족과 융화되면서 지금의 헝가리인의 선조가 되었습니다.
고비사막 북부초원에 그대로 남아있거나 남으로 이주하여 국경안으로 들어온 북흉노인들은

동한말기에 일부는 조조에게, 일부는 원소에게 각각붙어 북중국의 군웅할거전쟁에
가담하게 됩니다.

그후 선비와 유연이 연이어 일어나게되는데  바로 흉노가 남북으로 분열하면서
떨어져나간 흉노인들이 선비족과 유연족에붙어 혼혈이 일어나면서 생성된 종족이며,
일부는 완전히 선비족이나 유연족과 융화되고 나머지는 새로운 부족이됩니다.

이처럼 정권교체가 빈번하고 계급갈등과 민족갈등이 복잡하게 얽힌  역사과정속에서,
흉노인들은 직접 한족에게 융화되기도하고 혹은 먼저다른 소수민족에 융화되었다가
다시 한족과 뒤에 일어난 북방 소수민족에 융화되기도 합니다.
이러한 반복적인 융화를 거치면서 흉노라는 이름은 남북조시대 이후에는 사적에서
영원히 자취를 감추게됩니다.

알타이산(금산)일대에서 순수 흉노로있던 흉노족은 후에 선비족과 유연족과 섞이면서
북흉노를 이루었고 이들의 뒤에일어난 종족이 바로 돌궐족입니다.
흉노와 선비족,유연족 합작품이 바로 돌궐족인 것입니다.
돌궐족은 제철업에 뛰어나고 제련에 능한걸로 알려져있습니다.

삼한시대 이전에  진나라권력하에 진장성에 투입된 흉노의 일부가 감숙성 노역장에서
탈출하여 반도 동남단으로 피신해 들어오게되는데 호남의 마한인들이 자리를 내주어
살게되고, 그곳을 진한국이라 부르게됩니다.
박씨나 석씨는 이때 들어와 생성된 종족으로 볼수가 있을것입니다.
물론 삼한이전시대의 단군조선인들이 소수 흩어져 살고있었을것이고, 그들을 복속
하면서  진한을 이루게되고 삼한이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삼국지위지 동이전에 나오듯이 흉노의 언어와 마한인의 언어는 달랐으며 진한인들이
외부에서 이주해왔다는 사실은 부인할수가 없을것입니다.

박씨 알신화는  외부이주종의 한계를 극복하기위하여 흉노인들이 믿었던

하늘 숭배사상과 결부시켜 신비화시킨 것이며, 그것이 알신화로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후에 투후 김일제는 태후를 모시고 배로 건너와 금성(경주)로 건너오게 되고,
박씨,석씨의 (진나라 복속하에 있다가 만리장성 축성작업에 투입되었다가 탈출한 흉노족)

진한정권과의 군사적 권력투쟁을 벌이고 박씨,석씨를 몰아내고  김씨정권을 세우게됩니다.

투후 김일제 후손들은 박씨,석씨의 알신화를 모방하여 자신들의 시조를 김알지신화로
만들어 내게됩니다.
김알지의 김은 말그대로  알타이산(금산에서 기원한것을 말하는것이고,
알지는 알타이산(금산)안에 있던 아르치스산의 아르치가  마한어로 읽히기에
알치,알찌,알씨로 읽히면서  알지가 된것이고,
왜 한원제가  궁녀 왕장을 호한야 선우에게 시집을 보내며 영호알씨라 칭했는지
그 의문이 풀릴것입니다.


p/s  왜  우리나라 역사에서 군사반란,쿠테타의 주역은 항상 영남인지 이해가
되시리라 믿습니다.

이말을 끝으로 올리는 이유는 그들은 힘이 넘친다 이겁니다.^^
그리고 흉노는 지나인들이 비하해서 부른이름이며 우리 모두는 흉노의 원뜻인
하늘의 거룩한 태양의 자손 이라는 사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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