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성이 낳은 다인, 다송자(茶松子 1861~1930)

2015. 5. 30. 13:43차 이야기

 

 

 

       곡성이 낳은 다인, 다송자(茶松子 1861~1930)| 스님의 시

 

정견 | 조회 22 |추천 1 | 2015.04.26. 11:35

 

 

 

 곡성이 낳은 다인, 다송자(茶松子 1861~1930)

 

   초의선사의 <동다송>으로 피어난 조선후기의 불교차문화의 큰 흐름은 범해각안(梵海覺岸)의 <다가(茶歌)>로 이어지고 다송자의 80여편의 차시를 통해서 확인 할 수 있다. 다송자가 마음을 전한 송광사의 보조암과 광원암, 구례 화엄사와 천은사, 해남의 대흥사 곡성 태안사는 호남지방의 대표적인 차산지와 일치한다. <다송문고> 2권의 행록초(行錄草)에 다송자 금명보정 일대기가 기록되어 있는데, 다송자는 곡성군 운룡리 사람이라고 되어 있다. 이 기록 속의 곡성군 운룡리는 지금은 순천시 주암면 운룡리로 바뀌어져 있다. 다송자가 고향인 곡성 태안사에서의 수행하는 모습은 환갑의 나이에도 안거(安居)에 들면서 선리를 참구하고 때때로 찾아오는 선객들에게 차한잔으로 진리의 문을 열어주었다. <행록초>에 나오는 태안사에서 다송자의 모습을 살펴보자.

 

   무오년(1918) 3월 해은당에서 전강을 하였으니 이곳이 두 번째 마음을 전한 곳이다 ----옮겨서 태안사 선원에서 하안거를 하고 다시 봉서암과 염불당에서 동안거를 하였다. 신유년 (1921) 1월 19일 즉 스님이 환갑이 되시던 날, 따르는 제자들이 다회를 열고, 오래살기를 축원하는 시집 한권을 만들어서 기념하는 뜻을 드러내었다.

 

   戊午三月 傳講于海隱堂 此第二傳心 --缺字--移住泰安寺禪院解夏 又結臘於鳳瑞庵念佛堂 辛酉一月十九日 卽六一初度也 徒弟等設茶會一堂 壽詩一卷 以欲紀念之表

<다송문고>2권 행록초의 부분

 

   이렇듯 다송자가 있는 곳에서는 늘 차가 있었다. 여기에 등장하는 봉서암과 염불당은 태안사의 부속암자이다. 다송자가 고향인 곡성 태안사에서 맏는 환갑의 감회는 남달랐을 것이다. 그 자리에 그의 제자들이 기념문집을 만들어서 펼쳐주는 찻자리는, 다송자의 예순 한번째의 생일찻자리의 차한잔에는, 존경과 사랑의 마음이 함께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음의 시는 태안사에서 삼시 삼때 차와 함께한 다송자의 모습이 그림처럼 그려져있다.

 

   대숲이 짙푸른 그윽한 한 골짜기

   풍류를 찾아온 고사들을 기쁘게 맞이하네

   竹樹深濃一壑幽 喜逢高士訪風流

 

   구산의 들빛은 청운의 꿈이 깊은데

   봉악의 이내빛은 벽오동처럼 시들하네

   龜山野色靑雲密 鳳岳烟光碧梧稠

 

   사월 보리는 누렇게 익고 풀은 향기로운 저녁

   삼시 삼 때 차익으니 녹음이 유연하네

   四月麥黃芳草晩 三時茶熟綠陰悠

 

   세상의 영욕은 마침내 헛된 꿈인것을

   단사를 달이며 늙어서도 나여기 살레

   世間榮辱終虛夢 共煮丹砂老此區

 

   동리산에 한 누대가 있으니

   숲의 새와 들의 학이 함께 노닌다네

   桐裏山中有一樓 林禽野鶴肯從遊

 

   날개짓 하면서 푸른 산봉우리를 오르고

   즐겁게 물가에서 물소리를 듣는다네

   鼓翔應陟靑峯屹 樂志憑聽白水流

 

   인간의 먼지같은 이익은 장구목에 버리고

   물외의 한가로운 정으로 봉두산에 앉았어라

   人間塵利(趾-止+母)藏龜 物外閒情坐鳳頭

 

   어느날 호계삼소를 할 수 있으련가

   옥대로 문을 닫고 마음대로 오고갈거나

   虎溪他日如三笑 玉帶鎭門任去留

 

   구산의 조아미 초부에게 차운하다. 2수 ,4월 어느날 <次龜山趙雅嵋樵 二 四月日>

 

   구산에서 온 젊은이들의 패기발랄함과 봉두산의 늙은 다송자의 원숙함이 어울려, 봉두암 산봉우리로 장구목 물가로 치달으면서 자연과 동화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또한 삼시 삼때, 때때마다 차가 있었다는 이 기록에서 태안사 차살림이 제법 큰 규모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922년 다송자가 태안사에서 송광사로 가기전 친구들과 대작한 시에서 우리는 다송자 차정신의 진수를 만나게 된다. 모두 3수로 되어 있는데 여기서는 두 번째 수만 살펴본다.

 

  대지의 뭇 생명은 겨울과 봄이 하나인데

  마음의 꽃과 뜻의 나무는 오히려 새로워라

  大地群生冬一春 心花意樹亦能新

 

  차는 7월(桐月)이 지나야 비로서 그 맛을 알 수 있고

  글은 양웅과 왕포(雲淵)을 얻어야 서로 벗할 만하네

  茶從桐月方知味 龍得雲淵好作隣

 

  도는 태양 같아 번뇌마장을 녹이고

  찻잔은 삼태기와 같아 마음 먼지를 쓸어내나니

  道若太陽消煩障 盃如箕箒掃荊塵

 

  부끄럽게도 우리는 끈없는 끈에 길게 묶여 있구나

  어느 날 나는 세상을 벗어난 걸림 없는 사람이 될까

  愧吾長繫無繩子 何日靑山出世人

 

  <늦은 봄 벗들과 대작하다. 3수. 임술년 삼월 (晩春與友對作三 壬戌 三月)>의 두 번째 수

 

   이 시에서 우리는 여름 장마가 끝난 뒤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 차의 참된 맛을 알게 된다는 차생활의 지혜와 함께 찻잔이 쓰레기와 먼지를 모두 거두어가는 삼태기와 같다는 다송자의 다도관을 만나게 된다. 다송자에게 차는 그냥 음료로서의 차가 아니다. 그것은 마치 번뇌마장을 녹이는 태양과 같이 밝음의 도이자, 참나를 찾으면서 치열한 내면과의 싸움에서 취하는 한자락 마음의 평화였던 것이다.

   여기서 살펴본 몇 편 시와 함께 다송자의 80여편의 차가 소재가 된 시에는, 삼시 삼때, 온 하루 차와 함께하는 생활 속의 선차가 있었다. 이렇듯 생활 속의 선차를 위한 차를 공급하기 위해서는 차생산이 필수 불가결이었을 것이다. 다송자가 차생산에 관여하며 차밭을 새로 만들거나 관리하는 기록은 그의 문집에서 5차례에 걸쳐 나온다. 그리고 그렇게 생산된 차를 보관하기 위한 차전용창고를 만들기도 하였다. 다송자가 태안사에서 차밭을 일구고 차를 생산한 기록은 찾을 수가 없지만, 1936년 곡성의 곡성의 차생산량은 호남지방에서 광주, 순천에 이어 3위를 차지한다.

 

 

 

"동당 윤법흥 스님 금명 보정선사 후신이라 말들었다"

전북대 명예교수이신 강건기 교수님 함께 동당 큰스님께 말씀하심

 

2015년 3월 219일 조계산인

정견스님 1000일 기도 中

 

 

   -   다음 카페 <반야바라밀 선원> 정견 스님의 글 중에서 전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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