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광사 수월관음도 / 사자루

2015. 6. 10. 17:04美學 이야기

 

 

송광사 수월관음도 / 사자루

20150605~06 금,토요일  맑음

 

 

20150605 금요일 오후 , 맑음

 

다송자 금명보정(錦溟寶鼎) 선사님의 법호에서 따온

산내찻집 <다송원(茶松苑)>옆에서 ......

 

 

 

 

 

 

다송원(茶松苑) 편액

 

 

 

 

 

다송원 전경

 

 

 

금명보정 스님의 여러 시(詩)중에서 하나를 골라서 감상하여 보기로 한다.


 

 

雨後採新茶(우후채신차)

 비온 후 새 차를 따다 

 

                                   다송자(茶松子) 금명보정(錦溟寶鼎)선사

 

乍晴朝雨掩柴扉 (사청조우엄시비)

借問茶田向竹園 (차문다전향죽원)

禽舌驚人啼白日 (금설경인제백일)

童稚喚友點黃昏 (동치환우점황혼)

纖枝應密深林壑 (섬지응밀심림학)

嫩葉偏多少石邨 (눈엽편다소석촌)

煎造如令依法製 (전조여령의법제)

銅甁活水飮淸魂 (동병활수음청혼)

 

 

아침부터 내리던 비 개어 사립문 닫아 걸

차밭을 물어 대밭으로 향하노라 .

 새들은 인기척에 놀라 한낮에 지저귀고

어린 동자 삼아 차달이다 보니 어느새 저녁노을이 떠있구나!

 

깊숙한 숲속에는 잔가지 빽빽한데

이 작은 산골마을어린 찻잎이 많구나 .

분부대로 차를 덖어 법제하여

구리병에 치솟는 찻물 마시니 영혼이 맑아 오네.

 

 

 

- 이 한시는 다송자 스님께서 봄비가 그치기를 기다려

송광사나 태안사 인근의 산골마을에 있는 대밭을 찾아

이슬을 맞고 자란 어린 찻잎으로 죽로차(竹露茶)를 법제하고,

어린 다동에게  손수 만든 차를 구리다병에 달이게 하여(煎茶) 마시다 보니

어느듯 저녁때가 되었다는 한폭의 그림 같은 시이다.

 

시간가는 줄 모르고 다선삼매(茶禪三昧)에 빠져든 모습이다.

 

대흥사로 가셔서 <동사열전>을 쓴, 초의선사의 법제자인 범해각안(梵海覺岸) 스님에게

다법을 배우신 금명보정(錦溟寶鼎) 선사이고 보면 이 작은 산골마을 대숲에서

만드신 차도 구증구포(九蒸九暴)하는 초의제다법에 따라 법제(法製)한 죽로차(竹露茶)이리라.

 

차를 덖다 남은 잔불 위에다 구리다병을  올려놓고 방금 법제한 차를 달이고 ,

찻잔을 들고서 서산에 지는 낙조를 물끄러미 바라보는(觀照) 스님과 동자.......

한폭의 산수화와 같은 정경이 이 시를 읽는 도중에 떠오른다.

 

 

-  구증구포란 아홉번 찌고 아홉번 말린다는 의미이지만

차를 만들 때에는 여러번 덖고 여러번 말린다 라는 의미이다.

 

다만 독성이 강한 한약재를 법제할 때 말하는 구증구포는

반드시 아홉번 찌고 아홉번 말린다는 법식을 따라야 한다.

 

 

    **** 註 : 여기에서 점(點)은 차를 달인다(點茶 또는 팽다 烹茶)에서와 같이 일반동사로 쓰였다.

      차를 달이는 다법(茶法)은 당나라 이전의 고래(古來)로 부터 내려온 원시다법인

전다법(煎茶法)이라고 부르며, 약다법(㵸茶法, 또는 삼수변+藥茶法)이라 별칭하기도 한다.

 

전다법은 차가 원래 신농이 온갖 풀을 맛보고 차로 입을 행구어 제독하였다는

설화 이래로 약용과 음용 겸용으로 사용하던 것에서 유래한다.

광복 후에 이르기까지 전남 남부 일부 지방에 남아 있었다는 녹차로 빗은 청태전을

약으로  탕관에 달여서 마시는 방법과 같다.

<조선의 차와 선>을 쓴  일본인  의학박사 모로오까 다모쓰(諸岡 存, 1879 ~1946)와

 산림기사인 이에이리 가즈오(家入一雄, 1900 ~1982)가 공저로 저술한 책에도 보인다.

 

마치 한약을 달일 때 처럼 차화로(茶爐) 위에서 장시간 달이면

찻잎 속에 여러 성분들이 탕관이나 다병(茶甁) 내에서 서로 합성되어

새로운 성분이 형성된다. 이 중정(中正)을 얻은 때는 차를 우려마실 때 맡아보지 못하던

새로운 향기가 표출(颩香)되는 것으로 쉽게 알 수 있다.

 

과거 차화로에서는 주로 숯이나 장작을 때는 아궁이에서 나온

벌겋게 달은 숯을 재와 함께 사용하였기 떄문에 한나절 정도 지나면

숯이 다 타고 열기가 사그러들어 재만 남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였다.

현대의 주방기구를 이용하는 방법은  핫플레이트나 전열기 등을 이용하여

숯불을 피운 것 처럼 약하게 해놓고 (눈금 1~2 정도) 장시간 달이다 보면

전에 맡아보지 못하던 새로운 향기가 찻주전자의 출수구나 뚜껑 등을 통해 나온다.

이때가 전다법(煎茶法)에 의한 차달임으로 차가 익은 것으로 보면 된다.

 

이러하듯이 전다법에 의한 차달임은 시간이 다른 다법에 비하여

오래 걸리기 때문에 혼자서 책을 읽거나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음률의 흐름을 고를 때, 글씨 연습을 하거나, 또는 기도나 연공(練功)을 할 때 등

간이 한가할 때 현대인들의 한정아취(閑靜雅趣)로 즐겨볼 일이다.

여러 사람들이 모이는 다회(茶會)에서는 현대생활의 서로 바쁜 일정 때문에

행다하기 어려우나 미리 차를 달여놓는다면 불가능한 것 만은 아니다.

 

야외에서나 별서(別墅) 등지에서 시회(詩會), 화회(畵會), 연주회,

골동품 감상 모임, 바둑 모임 등 특별한 목적을 가진 모임에서는

시간이 많이 경과되기 때문에 틈틈이 고아(高雅)한 아취(雅趣)로 즐겨볼 만한 일이다.

 

근래에 서양에서 들어온 웰빙(Well Being)과 슬로우 푸드(Slow Food)라는 용어로

상징되는 요지음 유행하는 음다풍조는 광복 후 즉금에 이르기까지

산중 선방 스님들이나 풀잎같은 민초(民草)들의 차달임을 통하여 슬로우 드링크(Slow Drink)로

면면히 어어져 오고 있음을 이제라도 마음의 창을 열고 바라보아야 한다.

 

 

 

 

 

 

 

 

 

 

 

 

    우선 다송자 스님에 대해서 간단히 알아보자.

<다송문고(茶松文庫)> 2권의 행록초(行錄草)다송자 금명보정 일대기가 기록되어 있는데,

다송자는 곡성군 운룡리 사람이라고 되어 있다. 이 기록 속의 곡성군 운룡리는 지금은 순천시 주암면 운룡리로 바뀌어져 있다.

 

스님은 1861년 1월19일 전남 곡성군 석곡면 운월리에서 출생하여 1875년 12월22일 송광사 금련선사(金蓮禪師)께 출가하였다.

법명은 보정(寶鼎),호는 금명(錦溟),자는 다송(茶頌)인데 스님들끼리는 ‘다송자’라 불렀다.

스님은 입적할 때까지 한번도 송광사를 떠난 적이 없었고, 평생을 유명강사로 활동하다가 1930년 2월13일 70세로 입적하였는데,

차(茶)에 대한 조예가 깊었다. 남긴 시가 1,106수이며 이중 차시(茶詩)만 80수에 달한다

 

 

 

만약 이 나무 계단 중에 어느 하나가 빠져 있다면?

이와같이 우리 전통다도가면이 이어져 온다.

 

 

     초의선사의 동다송(東茶頌)

 

   초의선사(1786~1866)의 동다송(東茶頌)의 이름은 원래 동다행(東茶行)이었다.

 

   초의스님의 글을 모은 일지암집(一枝庵集)권2 ‘해거노인에게 올리는 글’(上海居道人書 상해거도인서)에는 그 제목이

동다행으로 쓰여 있고, 1890년 범인(梵寅)이 편집하고 원응계정(圓應戒正)이 정서한 필사본(筆寫本) 초의선사전집(草衣禪師全集)에도

동다행으로 되어 있다.

여기서 ‘행’과 ‘송’의 뜻은 차이가 없다.

 

현존하는 동다송 필사본은 4가지로 요약된다.

 

1. 다예관본(茶藝館本)

    태평양화학공업(주)의 다예관에 소장된 필사본. 대흥사 주지를 지낸 응송 박영희(應松 朴暎熙,1891~1990)소장하던 것으로

현재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본(本)이다.

 

2. 석오본(石梧本)

    초의선사의 연보에서 언급 된 석오 윤치영의 필사본. 한때 정본(訂本)이라고 발표되었으나 오.탈자가 있어 정본으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

대체적인 시각임.

 

3. 경암본(鏡菴本)

    한국다문화연구소가 소장한 것으로 1874년 추석에 승려로 짐작되는 경암이 필사했을 것으로 추정되며 초의선사가 열반에 드신 후 

8년 후에 필사를 하였다.

 

4.다송자본(茶松子本)

 송광사 보정(寶鼎,1861~1930,다송자)스님 필사한 것으로 송광사에 소장되어 있으며, 2002년에 발견되었음.

 

- 전 한국일보 김대성 기자의 자료 

 

 

 

                                                                                                               -  20150606 토요일 오전 촬영

 

 

 

 <늦은 봄 벗들과 대작하다 3수. 임술년 삼월

(晩春與友對作三 壬戌 三月)의 두번째 수 > 

 

                          /  다송자(茶松子) 금명보정(錦溟寶鼎)선사


 

  겨울이나 봄이나 이땅의 뭇생명은 자라고 있는데               大地群生冬一春

  꽃과 나무마음과 바램 항상 새로와지고 있구나.          心花意樹亦能新

  

  차는 7월(桐月)이 지나야 비로서 그 맛을 알 수 있고           茶從桐月方知味

  글은 양웅과 왕포(雲淵)을 얻어야 서로 벗할 만하네            龍得雲淵好作隣

 

  도는 태양과 같아 번뇌마장을 녹이고                                 道若太陽消煩障

  찻잔은 삼태기와 같아 마음에 찌든 때 쓸어내나니               盃如箕箒掃荊塵

 

  부끄럽게도 우리는 인연 고리에 길게 묶여있으니                愧吾長繫無繩子

  어느 날 나는 세간을 벗어나 청산이 될까                            何日靑山出世人

 

 

   백중인 음력 칠월보름 우란분절이 지나면 하안거 하시던 납자들은 선방 문을 나서 운수행각의 

만행을 떠난다. 한여름이 지나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면 차맛을 제대로 알 수 있고 차는 도와 같이

우리의 번뇌를 씻어내고 마음에 찌든 때를 씻어낼 수 있다는 점에서  마치 달마조사가 지은

<세수경(洗髓經)>연마할 때 생겨나는 법열(法悅)을 얻을 수 있는 것과 같은 공능을 지닌

대지의 선물이라는 금명선사님의 시이다.

             

**** 註 : 차를 마셨던 기록은 불교가 중국에 전래되기 이전, 한나라 때의 문헌에서 보인다.
 이때 차
를 접 사람은 승려가 아닌 파촉지역의 귀족 · 문인인 왕포 · 사마상여 · 양웅 등이다.

 

 

<文心雕龍 詮賦第八(문심조룡 전부제팔)>-劉勰(유협)

전부 제팔(詮賦 第八)에

 

"子淵洞簫(자연통소) : 왕포의 동소부는
窮變於聲貌(궁변어성모) : 소리와 형상의 변화를 다했고"

 

"子雲甘泉(자운감천) : 양운의 감천부는
構深瑋之風(구심위지풍) : 깊고 진귀한 풍세를 갖추었다. "

 

라는 운문 구절이 있는 것으로 보아,

왕포는 <동소부(洞簫賦)>를 지었고, 양운은 <감천부(甘泉賦)>를 지어

그들의 문명(文名)을 드날렸음을 알 수 있다.

 

 

***** 육조시대의 양나라의 문예평론가  : 유협劉勰(465~521)

 

 

 

  

저녁예불 사물

-  범종, 법고, 목어, 운판

 

 

 

 

 



20150606 토요일 , 맑음

사자루 편액

 

 

 

이런 명품 <수월관음도>를 배관하게 될 줄 알았으면

삼각대를 지참하고 갔어야 하나,

역시 손(手)각대로는 한계를 절감한다.

 

 

 

 

 

 

 

 

 

 

 

 

 

  

선재동자

남순동자(南巡童子)

 

 

 

 
▸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란?


   수월관음이란 명칭은 '화엄경' 보타락가산의 유지(幽池)위에 비치는 달처럼 맑고 아름다운 모습을 나타내는

보살이라는 뜻으로 '화엄경'의 마지막 '입법계품'에서 선재동자가 문수보살의 안내를 받아 보리심을 발하고 선지식을

찾아 마지막 보현보살에 이르기까지 53선지식을 만나 구법의 순례를 하게 된다.
   이 가운데 바다 위 온갖 보배로 된 청정한 곳으로 꽃과 과수들이 우거지고 맑은 샘과 시냇물이 흐르는 보타락가산에 상주하고

계신 관음보살을 만난다는 장면을 묘사해내고 있는 것이 수월관음도이다.

 

 

 

마치 현대의상 처럼 투명하게 속이 비치는 시스룩 같은

천의사라(天衣絲羅)로 전신을 감싸고 있다.

 

 

 

천의사라 안으로 귀갑문(龜甲紋)

 

 

 

천의사라에 금니 인박무늬

 

 

 

 

 

 

 

 

 

 맑고 투명한 수정염주를 드신 관음보살

 

 

 

 

 

 

 

    송광사 수월관음도   

(2006.1.5.자)

- 제 사진이 미흡하여 인터넷 파도타기로 찾아보았으나

같은 수월관음도는 아니다.

- 다음 카페 <사유수(思惟修)/불교인의 모임 > 통달무아법자 님의 사진자료 ......

cafe.daum.net/dhyana02/_album/636   

 

 




고려 후기, 227.9cm×125.8cm, 비단에 채색, 일본 대덕사 소장의 수월관음도, 1323, 고려불화.



                            지금 세계적으로 그 예술적인 가치로 인하여 정평(定評)이 나있는

고려불화가 160여점 정도 남아있다고 합니다

그 고려불화중에서 백미(白眉)로 치고 있는 것이

바로 이 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입니다

수월관음도는 화려하면서도 우아한 종교적인 아름다움과
격식을 지닌 작품으로
고려불화의 특징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귀중한 작품들 입니다

 

보통 수월관음도에는
그림 왼쪽에는 동해 용왕 일행을 그렸고,
오른쪽에는 불법(佛法)을 구하는 선재 동자가 무릎을 꿇고 있는 장면을 그립니다
관음보살 옆에는 수정같이 날카로운 산에 청죽(靑竹)을 두개 그리게되고
관음보살의 머리와 몸에는 후광이 둘러져 있는 모습을 보여주며
청죽 반대쪽 바위에는 술병 같은 병 있고, 

이 병에는 버드나무가 꽂혀 있는 것이 패턴화 되어있는 모습입니다.

 

이런 회화적 특징이 정형화(定形化)되어

매너리즘적으로 반복되는 경향을 낳기도 하였지만
이렇게 고정된 형식을 답습하는 경향에서,
그만큼 불화(佛畵)의 전통적 의궤(儀軌)가 엄격했으며
고려시대의 귀족불교가 매우 보수적이었다는 사실도 알 수 있습니다


고려 수월관음도현재 전 세계적으로 39점 남아있다고 합니다
(정우택, 고려시대의 회화 참고)
한국에는
3점의 수월관음도를 포함해서

모두 10점의 고려불화가 있다고 합니다.
그 이외에 나머지 고려 불화들은

'왜구'와 '일제'라는 뻔뻔한 선조를 둔 일본에 모두 있다고 하는군요

 

[현재까지 학계에 보고된 160여종의 고려불화중에서

 일본은 130여점으로 가지고 있고

 한국 10여점, 미국,유럽 20여점 가지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고 합니다



 

 

 

 

보물 제1426호 
수월관음도

 

- 태평양 박물관 일본에서 사서 한국으로 가지고 온 다음에
2005년에 보물 지정을 받은 그림입니다 .

 


 

▼ <작품설명>
   수월관음도는 비록 조성연대와 작가가 명확하지 않고 부분적으로 변·퇴색과 수리 및 덧그린 흔적이 엿보이고 있기는 하지만, 일본 소재의 1323년 작 서구방 필 수월관음도를 위시한 고려시대 14세기 관세음보살도들과 비교해 보면 마치 한 본을 사용하기라도 한 듯 구도와 인물의 형태가 거의 같고, 고려불화의 특징적인 화사한 색채와 세련되고 우아한 선을 구사한 인물 묘사 등 세부묘사에 있어서도 서로 유사한 점이 엿보여 예술성 높은 동일시기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화면 구성이 충실하며 표현기법 역시 고려불화의 전형을 잘 보여주고 있다는 점 그리고 국내에는 제대로 된 고려시대 수월관음도가 2∼3점에 불과하다는 자료의 희소성, 나아가 이미 보물로 지정되어 있는 두 점의 수월관음도와 비교하여도 질적인 면에서 뒤떨어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미술사적으로 자료적 가치가 충분하다.





 

서구방 필 , <수월관음도>, 1323년, 견본채색, 165.5cm×101.5cm,

일본 교토(京都) 센오쿠하쿠코칸(泉屋博古館) 소장


 

   머리카락 같은 세필(細筆) 하나로 주체의 피부의 털 한 오라기까지, 옷자락 비단의 한 올, 한 올까지 그려 넣었으니

 불화 한 점 완성시키기 위해서는 몇년의 시간이 걸린다는 말이 절감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어찌 시간과 정성뿐이겠는가. 그림을 완성했을 때는 시각과 청각도 한계점에 다다랐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림의 발원자나 화공의 정신이야 말로 신앙과 도(道)의 정점에 다다라 있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그래야만 한 점의 완벽한 불화를 그려낼  수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림을 그린 시간 보다는 잘 그리게 해달라는 기도시간이 더 길었을지도 모른다.


   고려 불화를 그리는 데는 특정한 염료와 배채법(背彩法)이란 특별한 채색기법을 이용한다고 들었다.

그래서 수 백년이 지나도 채색의 선명도가 변하지 않고 지금까지 전해 오는 것이리라.

 

 

 

  ㅡ 다음블로그 <미지로 떠나는 여행> 미지로 님의 글 중에서 발췌 ......

http://blog.daum.net/migiro/812

 

 


 




 




 




 




 




 




 




 




 

사진자료 :  cafe.daum.net/PoemRiver/L6yo/97  시가 흐르는 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