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주역(周易), 태현경(太玄經)

2015. 6. 12. 09:55美學 이야기

 

 

 

[김홍균의 도서비평] 한(漢)나라 무너뜨리고 신(新)나라 세워

천하 도모했던 사상서

도서 비평 | 또 하나의 주역(周易), 태현경(太玄經)
[964호] 2014년 09월 04일 (목) 김홍균 mjmedi@mjmedi.com

 

 

 

   한(漢)나라가 전한(前漢 또는 西漢; BC206~AD8년)과 후한(後漢 또는 東漢; AD25~220년)으로 나뉘게 된 것은 왕망(王莽; BC45~AD23년)이 세웠던 신(新; AD8~23년)나라 때문이다. 신나라는 중국 최초로 통일을 완성했던 진(秦; BC221~BC206년)나라와 똑같이 겨우 15년 정도 되는 짧은 기간의 정권이었다. 하지만, 200년 가까운 역사를 가진 거대한 한나라를 무너뜨릴 수 있었던 힘의 근원은, 유향(劉向)의 아들 유흠(劉歆, BC53~AD25년)과 더불어 왕망 정권에 적극적으로 협력했던 양웅(揚雄; BC53~AD18년)에게서 비롯된 것이다.

 

 

 

   

양웅(揚雄) 著
사마광(司馬光) 注
김태식(金台植) 解譯
자유문고 刊

 


   유흠은 양웅에게 배워 오경(五經)에 통달하였고, 당시의 한나라 왕조시대에 유행했던 천인감응설(天人感應說)은 물론이고, 장수(長壽)의 비법으로 이용되었던 신선방술(神仙方術)부정하였으며, 황실의 신임을 받고 있는 도참(圖讖)의 미신을 대담하게 공격하였다. 또한 말더듬이였던 양웅은 서적의 탐독으로 깊은 사색을 함으로써, 도가의 자연과 유가의 객관을 중시하여 합리주의적인 윤리사상을 강조하였다. 이러한 측면에서 유흠에게 오경을 가르쳤던 양웅으로부터 신나라 건국의 사상적 기반이 갖추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양웅이 비록 말더듬이었다 하더라도, 박학다식하여 경학(經學)은 물론 시문(詩文)과 사장(辭章)에도 뛰어나 그의 사부(辭賦)는 성제(成帝; BC32~BC7년)를 감탄시켰으니, 감천부(甘泉賦)」, 「우렵부(羽獵賦)」, 「장양부(長楊賦)」, 「하동부(河東賦)」 등과 같은 것이 그것이다. 또한「논어(論語)」와 같은 체계를 갖춘 「법언(法言)」을 통해, 제가(諸家)의 사조(思潮)를 고성(古聖)과 경서(經書)에 따라 바로잡았으며, 유가(儒家)의 인위적 도덕교화를 기조로 예악(禮樂)과 군신(君臣)간의 질서를 도가적(道家的) 무위(無爲)의 정치와 결부시켜, 천도(天道)에 따라 백성의 양육 꾀하여야 할 것을 주장하였다.

   이 책 「태현경」 10권그 형식에 있어서는 「주역(周易)」을 근간으로 하였으나, 그 철학적 기조는 음양이원론(陰陽二元論) 대신 노자(老子)의 ‘무(無)’와 같은 우주의 근본인 ‘현(玄)’근원으로 하고, 천(天)·지(地)·인(人)의 변화법칙을 기본으로 하는 시(始)·중(中)·종(終)의 삼원(三元)으로써 설명하고 있다. 그리하여,「주역」에서 말하는 태극(太極)과 양의(兩儀)와 사상(四象)과 팔괘(八卦)와 64중괘(重卦)와 384효(爻)에 대응하여, 「태현경」에서는 1현(玄), 3방(方), 9주(州), 27부(部), 81가(家), 729찬(贊)을 두었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주역」이 6효를 두었지만, 「태현경」에서는 9수(首)를 두어서 천지인(天地人)의 개념을 3단계로 도입하고 주야(晝夜)를 구분해 한 단계를 더 늘려 놓았다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들은 「황제내경(黃帝內經)」이 한대(漢代)를 지나면서 변화발전 하는 단계와 궤를 같이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소문경(素問經)」 9권과 「침경(鍼經)」 9이었던 것이 「소문(素問)」 81편과 「영추(靈樞)」 81편으로 나뉘는 것이나, 촌관척(寸關尺), 27맥(脈), 삼음삼양(三陰三陽)의 설정 등에 대해 다시 숙고해 볼만하다. 본래 중국에 이러한 사상이 없었던 것을 감안하면, 왕망의 아버지가 흉노족이었던 것과 유관하지 않을까 싶다. 나아가서 고조선의 패망과 더불어 일어났던 흉노의 사상적 바탕을 양웅이 정리한 이라면, 이로부터 고조선의 사상과 철학 및 의학적 발전에 대한 분석과 재고가 필요하진 않을까? (값 2만원)



金洪均
서울 광진구 한국전통의학史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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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주역 '태현경' 완역>

연합뉴스 | 입력 2006.03.03. 06:49

 
(서울=연합뉴스) 김용래 기자 = 전한(前漢) 왕조가 왕망(王莽)의 신(新) 왕조로 교체되는 격변기를 살다간 인물로 양웅(揚雄.BC 53-AD 18)이란 사람이 있다.

   당시 문단에서 그는 사부(辭賦)의 최고 작가로 문학가였으며, 정치가였고, 철학자였으며, 언어학자이기도 했다. 이처럼 다채로운 경력의 소유자인 그에 대한 후대의 평가는 결코 좋다고만 할 수 없었다.

특히 왕망 정권에 적극적으로 협조했다 해서 지조 없는 지식인의 대명사적인 존재로 간주되기도 했다.

   그의 저작물로 현전하는 것으로는 '법언'(法言), '방언'(方言)과 함께 '태현경'(太玄經)이 있으며, 그 외에 '감천부'(甘泉賦)를 비롯한 시가 작품 다수가 전한다.

   양웅의 저작 전통에서 독특한 대목은 각기 모델로 삼은 경전이 있다는 사실이다. 후한 초기 때 역사가 반고(班固)가 쓴 한서(漢書) 수록 양웅 열전에 의하면, 법언 논어(論語), 방언'창힐'(현재 망실됨)을 본뜬 것이며, 태현경주역(周易)을 모방한 것이라고 한다.

   주역에서 우주만물이 생성되고 변화 소멸하는 법칙으로 설정된 태극(太極)과 양의(兩儀), 사상(四象)과 팔괘(八卦), 64중괘(重卦)와 384효(爻)에 대응하는 개념으로 그는 각각 1현(玄), 3방(方), 9주(州), 27부(部), 81가(家), 729찬(贊)이라는 체계를 만들어 냈다.

 


   주목할 것은 주역에서 우주만물의 절대법칙으로 태극을 설정한 데 비해 태현경은 현(玄)이란 개념을 내세웠다는 점이다. 현에서 천지가 생겨나고 인간이 생겨나고 만물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玄이란 개념은 주역과는 그다지 관계가 없다. 그보다는 오히려 노자(老子)와 밀접하다. 노자는 우주만물의 절대 원리로 도(道)를 상정하면서, 그런 道는 실체가 없어 형용할 수는 없으나, "현하고 또 현하다(玄之又玄)"고 묘사한다.

그러니 노자에게 道와 玄은 곧 동일한 개념이라고 간주해도 대과가 없다.

어떻든 玄과 같은 개념들로서 우주만물이 생성 변화 소멸하는 원리를 나름대로 체계화하고자 한 결과물이 태현경인 셈이다.

이 태현경에 대해서는 역대 주석서(해설서)가 많으나, 북송 시대 정계 거물이자 저명한 역사가요 문학가인 사마광(司馬光)'태현집주'(太玄集注)가 가장 저명하다.

이 태현집주가 최근 동양학 전문출판사인 자유문고에서 완역돼 나왔다. 김태식 역주. 444쪽. 2만원.

yongla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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