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허목(許穆, 1595∼1682)이 자손에게 내린 18조목의 훈계[訓子孫十八戒]

2015. 8. 12. 21:01잡주머니

 

 

 

 

 

      

10. 내가 평생 지녀 지킨 경계 가훈과 유언 / 옛사람 내면풍경

 

2011.10.29. 18:57

 

전용뷰어 보기                        

                    http://sambolove.blog.me/150122666946

 

 

 

-허목(許穆, 1595∼1682)이 자손에게 내린 18조목의 훈계[訓子孫十八戒]

 


재물과 이익을 즐거워 말고,
교만과 가득참을 부러워 말라.
괴상하고 허탄한 것 믿지를 말고
남의 허물을 말하지 말라.
의심하는 말은 친족을 어지럽히고
투기(妬忌)하는 아낙은 집안을 망친다.
여색을 좋아하는 자 제 몸을 망치고
술 마시기 즐기면 생명을 해친다.
말 많음은 반드시 피해야 하고
지나친 노여움은 경계해야 한다.
말은 충직하고 믿음성 있게
행실은 도탑고도 공경스럽게.
상례와 제례는 조심스레 행하고
집안 간엔 반드시 화목해야 한다.
사람 가려 벗 사귀면 허물에서 멀어지고
마을 가려 집 정하면 욕볼 일이 다시 없다.
군자의 행실은 남 이기는 것을 능함으로 삼지 않고
스스로를 지킴을 어질게 여긴다.

이를 힘써 잊지 말라.


   내가 늙어 죽을 때가 다 되었다. 이미 죽은 자의 혼백으로 하여금 부끄러워하게 하지 말라. 이 말은 모두 내가 내 몸에 친히 경계하고 힘써 신칙한 것이니, 말한 내용이 더욱 절실하다.

毋樂貨利. 毋羨驕盈. 毋信怪誕. 毋言人過. 疑言亂族. 妬婦亡家. 好色者敗身. 崇飮者戕生. 多言必避. 多怒必戒. 言必忠信. 行必篤敬. 喪祭必謹. 宗族必睦. 擇人而交者遠過. 擇里而居者遠辱. 君子之行, 不以勝人爲能, 自守爲賢. 勉之毋忘.
吾老死迫矣. 毋令已死者魂魄愧恥. 此皆老人於吾身, 親戒而勉飭者也. 所言尤切.

   내 늙고 병들어 살 날이 많지 않으니 유언으로 알고 들어라. 내 가르침은 간단하다. 나도 평생 화두로 들고 살아왔던 경계니 어찌 말을 너저분하게 하랴. 재물과 이익, 교만과 가득참 같은 것은 가급 멀리하도록 해라. 괴상한 것 쫓는 버릇, 남 험담하는 습관은 모두 제 복을 깎는 짓이다. 공연히 의심하는 말을 꺼내 친족 간에 분란을 일으켜서는 안 된다. 아낙네의 투기는 집안을 망치는 가장 빠른 길이다. 여색에 빠지고 술에 빠지면 제 몸을 망치고, 명을 재촉한다. 말 많아 좋을 일은 없다. 성냄은 더딜수록 좋은 법, 화내기 전에 한번 더 참는 법을 배워라. 말은 충직하고 믿음성 있게, 행동은 도탑고도 공경스럽게 해야 한다. 상례와 제례를 보면 그 집안의 법도를 알 수 있다. 어찌 살피지 않으랴. 집안의 화목이 깨지면 남들의 손가락질을 받게 된다. 사람 가려 사귀고, 동네를 가려서 살아야 한다. 그저 남 이기는 것만 좋아하고 스스로를 지키지 못한다면 천하에 가장 어리석인 인간이 바로 그다. 내 죽은 뒤에 너희들 하는 모습 보고 내 넋이 부끄럽지 않도록 명심하고 또 새겨라. 이것이 내 마지막 당부다.

 


   미수(眉叟) 허목(許穆, 1595∼1682)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양천(陽川), 자는 문보(文甫) 또는 화보(和甫), 호는 미수(眉叟), 시호는 문정(文正)이다. 노론과 남인의 당파간 대립이 첨예하던 시대에 남인의 영수로 활동했다. 1680년 경신대출척으로 남인이 실각하여 정계를 떠날 때까지 치열한 정치적 삶을 살았던 인물이다.


   그는 학문과 그림, 글씨, 문장 모두에 능하였다. 그는 이기론(理氣論)에 있어서 기(氣)는 이(理)에서 나오고 이는 기에서 행하므로 이기를 분리시킬 수 없다고 주장하였고, 또 독특한 도해법(圖解法)으로 해설한《심학도(心學圖)》《요순우전수심법도(堯舜禹傳授心法圖)》를 지어 후학들을 교육하였다. 글씨는 특히 전서에 뛰어나 동방 제1인자라는 찬사를 받았다. 작품으로 삼척〈척주동해비(陟州東海碑)〉, 시흥〈영상이원익비(領相李元翼碑)〉, 파주이성중표문(李誠中表文)〉이 있고, 그림으로 묵죽도(墨竹圖)가 전한다. 저서로는《방국왕조례(邦國王朝禮)》·《경설(經說)》·《경례유찬(經禮類纂)》·《미수기언(眉叟記言)》 등이 있다.


   허목은 생전에 자신의 저술을 손수 편차하여《기언(記言)》이라 이름하고 서문까지 써놓았다. 이 서문에서 허목은 문집의 이름을《기언》이라 한 이유를 설명하였다. 군자의 영욕(榮辱)은 언행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늘 삼가야 한다. 이를 늘 염두에 두었던 미수는 말을 하면 반드시 기록하여 날마다 반성하고 힘써 왔다. 스스로 쓴 글을《기언》이라 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미수 허목은 영의정 이원익의 손녀이자 완선군(完善君) 이의전(李儀傳)의 딸인 전주이씨(全州李氏)와 결혼하여 슬하에 3남 2녀를 두었고, 측실과의 사이에서 2녀를 두었다.〈훈자손십팔계(訓子孫十八戒)〉는 이들 자손들에게 남긴 열여덟 조목의 훈계이다. 각 조목에 담긴 내용들은 자손들에게만 전하려 했던 것이 아니라 평생 동안 스스로 갈고 닦았던 것들이다. 실제로 허목은 자신의 전(傳)과 명(銘)을 지어 후세인을 경계했을 뿐 아니라 다양한 자경문(自警文)을 지어 스스로를 다잡았다.〈자성잠(自省箴)〉,〈자경이명(自警二銘)〉,〈자경(自警)〉,〈희노지계(喜怒之戒)〉등이 대표적인 작품들이다. 여기서 함께 읽어 보기로 한다. 먼저 〈자성잠(自省箴)〉이다. 

 


   마음을 주관하는 것은 생각이다. 또한 행동에는 아홉 가지 생각이 있다. 생각하면 얻고 생각하지 않으면 잃는다. 엄숙하지 않고, 공경하지 않으며, 태만하고 게을러 제멋대로 하는 것은 모두 생각하지 않는데서 오는 허물이니, 삼가지 않을 수 있겠는가? 바름을 얻고서 죽는 것을 옛 사람은 힘썼다. 늙어 죽는 것으로 스스로 목표 삼지 말고, 이를 적어 스스로를 돌아볼 것이다.


心之官則思, 亦行有九思. 思則得, 不思則失. 不莊不敬, 怠惰放肆, 皆不思之咎, 可不愼歟. 得正而斃, 古人勉焉. 勿以老死自畫, 書之以自省.

   마음은 생각의 지배를 받고, 행동은 생각의 결과다. 그러니 바른 행동에 앞서 바른 생각이 먼저다. 《논어》에는 군자가 갖추어야 할 아홉 가지 생각에 대해 말한 것이 있다. 밝게 보고, 똑똑히 들으며, 낯빛을 온화하게 하고, 용모는 단정히 하며, 말은 충성스럽게, 일은 공경하게 할 것을 생각한다. 의문 나면 묻고, 분할 때는 더 큰 일을 떠올리고, 이득을 보면 의로운 것인지 아닌 지를 생각한다. 이러한 아홉 가지 생각을 늘 지녀 몸가짐을 바로 할 때 비로소 사람이 밥벌레가 아닌 군자가 될 수 있다.

 

 


   다음은 〈자경이명(自警二銘)〉이다. 스스로를 경계하는 짧은 두 편의 글로 이루어져 있다. 

   스스로를 사사로이 하는 자는 남을 속인다. 하늘의 이치가 환히 드러나 있으니 사람은 속일 수가 없다. 한갓 스스로 속는 것일 뿐이다. 그런 까닭에 그 몸을 성실하게 하여 반드시 자신을 속이지 않은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어버이를 공경하는 자는 발 한번 들 때에도 감히 부모를 잊지 않는다. 어두움을 따라 허물을 부르지 말고, 험한 곳을 밟아 몸을 위태롭게 하지 말라. 어버이를 사랑하는 자는 한 마디 말을 해도 부모를 잊지 않는다. 구차히 남을 욕해서 비난을 사지 말고, 구차스레 웃으며 남에게 아첨하지 말라.


自私者欺人. 天理昭著, 人不可欺, 徒自欺耳. 故誠其身, 必自毋自欺始.
敬親者, 一擧足而不敢忘父母, 毋服闇而招咎, 毋履險而危身. 愛親者, 一出言而不敢忘父母, 毋苟訾而招詬, 毋苟笑而媚人.

   사실 큰 가르침은 너무나 평범해서 오히려 싱겁게 들린다. 하지만 그 싱거운 말씀을 실천하기가 참 어렵다. 스스로를 속이지 않는다. 그른 길로 가서 비난 받지 않는다. 몸을 위태롭게 할 험한 곳은 가지 않는다. 남 욕하지 않는다. 아첨하지 않는다. 그는 이런 말들을 스스로에게 되뇌면서 한 세상을 살았다. 스스로 자신을 위해 쓴 자신의 묘지명에서 그는 이렇게 자신의 삶을 요약했다. 제목은 〈허미수자명(許眉叟自銘)〉이다.

   노인은 허목이니 자가 문보라는 사람이다. 본디 공암 사람이나 한양 동쪽 성곽 밑에 살았다. 노인은 눈썹이 길어 눈을 덮었으므로 미수(眉叟)로 자호하였다. 태어날 때 손에 문(文)자가 있었으므로 또한 문보라고 스스로 자를 삼았다. 노인은 평생 고문을 몹시 좋아했다. 늘 자봉산 가운데 들어가 고문으로 된 공씨전(孔氏傳)을 읽었다. 늦게 문장을 이루니, 그 글은 툭 터져 어지럽지 않았고, 시원스러움을 좋아해 스스로 즐겼다. 마음으로 옛 사람이 남긴 가르침을 쫓아 늘 스스로를 지켜 몸에 허물이 적게 하려 했지만 할 수는 없었다. 그 〈자명(自銘)〉에 말한다. “말은 그 행실을 가리지 못했고, 행실은 그 말을 실천하지 못했다. 한갓 큰 소리로 성현의 글을 즐겨 읽었으나 그 허물은 하나도 고치지 못했다. 돌에다 써서 뒷 사람을 경계하노라.”
叟, 許穆文父者也. 本孔巖人, 居漢陽之東郭下. 叟眉長過眼, 自號曰眉叟. 生而有文在手, 囗文, 亦自字曰文父. 叟平生篤好古文, 常入紫峯山中, 讀古文孔氏傳. 晩而成文章, 其文大肆而不淫, 好稀闊自娛. 心追古人餘敎, 常自守, 欲寡過於其身而不能也. 其自銘曰, 言不掩其行, 行不踐其言. 徒嘐嘐然說讀聖賢, 無一補其愆. 書諸石, 以戒後之人.



   자식에게 준 가르침이나 스스로에게 한 다짐이 차이가 없다. 이런 것이 삶의 일관성이다. 일관성은 자신감에서 나온다. 그저 생기지 않는다. 평생 옳은 길을 향해 매진하는 노력 끝에 생겨난다.

 

 

 

[출처] 10. 내가 평생 지녀 지킨 경계 |작성자 새오늘

http://sambolove.blog.me/150122666946

- 블로그 미 <다산을 찾아서> 새오늘 님의 자료 중에서 전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