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김휴(金烋, 1597~1638)의〈계자설(戒子說)〉

2015. 8. 12. 21:19잡주머니

 

 

 

 

 

       12. 술꾼 아비의 훈계 가훈과 유언 / 옛사람 내면풍경

 

2011.10.29.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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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휴(金烋, 1597~1638)의〈계자설(戒子說)〉

 


   미친 듯이 세상을 희롱하고, 뻣뻣하게 사물을 업신여기는 것은 군자의 아름다운 덕이 아니다. 비록 ‘자취를 더럽혀 도를 깨끗이 하고, 몸을 온전히 하여 해를 멀리한다’고들 하지만, 명분을 밝히는 가르침 중에도 절로 명철보신(明哲保身)하는 길이 있으니 어찌 반드시 이렇게만 하겠느냐. 나는 어두운 때를 만나 정치는 혼탁하고 어지러웠다. 아예 자취를 숨길 작정으로 마침내 과거 공부도 그만두고 감히 술 마시는 것만 일삼았다. 마침내 술꾼이란 이름을 얻게 되자, 속으로 몸을 보전하는 좋은 계책이라 여겼었다. 하지만 술 취한 뒤에는 위태롭게 큰 소리로 말하며 곁에 사람이 없는 듯이 굴어 남의 말을 듣곤 했다. 이제와 생각해 보니 후회해도 소용이 없구나. 너는 마땅히 이를 몹시 경계하도록 해라. 마음을 두고 몸을 행함은 모름지기 단정한 사람을 법도로 삼아야 할 것이다. 독서는 성현의 경전을 바탕으로 삼야 한다. 그 다음엔 《시경》《이소(離騷)》를 읽어서 빼어난 기운을 보태야겠지. 무릇 글 짓는 것 또한 모름지기 크게 위치를 차지하고 높이 운격을 지녀 반드시 옛 사람의 법도를 따라야만 한다. 과거 시험장의 진부하고 물러터진 자태를 일삼아서는 안 된다.


猖狂玩世, 高亢傲物, 殊非君子之美德. 雖曰穢跡而潔道, 全身而遠害, 然名敎中自有明哲保身之道, 何必乃爾. 余遭昏朝, 時政濁亂, 欲爲沈冥之托, 遂廢擧業, 敢事杯酌. 竟得崇飮之名, 自以爲保身之良策. 而旣醉之後, 危談大言, 傍若無人, 以取人唇吻. 到今思之, 懺悔無及. 汝宜切戒之. 處心行己, 須以端人爲法. 讀書以聖賢經傳爲根基, 次第讀詩騷, 以助其發越之氣. 凡製述亦須大占地步, 高占韻格, 必蹈古人畦徑, 而勿事科文腐軟之態.



   아들아! 아비가 비록 술꾼 소리를 들으며 이룬 것 없이 한 세상을 건너왔다만, 내 오늘은 내게 할 말이 있다. 세상이 어지러우면 일부러 자취를 더럽혀서라도 도를 지킨다고 했다. 그렇게 해서라도 어지러운 세상에서 제 한 몸 보전해서 해를 멀리하자는 것이겠지. 하지만 군자의 미덕은 뻣뻣하게 잘난 체 하거나 미친 척 세상을 낮춰보는 데서 나오지 않는다. 결국 돌아보니 아비의 한 평생은 명철보신(明哲保身) 네 글자에 얽매여 전전긍긍 살아온 데 불과한 것이로구나. 내 이제 와 후회하지만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나는 네가 못난 아비의 전철을 따르지 않고, 바른 몸가짐과 마음가짐을 지닌 단정한 사람이 되었으면 싶다. 성현의 경전은 만세에 변치 않을 말씀이니 늘 가까이 두고 새겨야 한다. 하지만 장부란 기상이 없을 수 없으니, 때로 《시경》과 《이소》를 읽어 경전 공부 하느라 막힌 기운을 풀어 주어야지. 글은 스케일이 있어야 하고 격조가 드높아야 한다. 그저 과거 시험장에서 점수나 더 받으려고 아등바등하는 진부한 행태를 답습한데서야 글이라고 할 수가 없는 것이다. 벼슬하고 못하고는 중요한 것이 아니니라. 하지만 사람이 군자의 덕을 갖추지 못한 것은 진땀나는 일이다. 아비의 술버릇을 배우지 말고, 군자의 몸가짐을 깃들이도록 해라.

 

 


   이 글을 쓴 경와(敬窩) 김휴(金烋, 1597~1638)는 조선 중기의 학자로 본관은 의성, 자는 자미(子美) 또는 겸가(謙可), 호는 경와(敬窩)이다. 성격이 올곧아 불의에 타협하는 일이 없었다. 1617년 폐모론을 주장했던 정조(鄭造)가 경상도안찰사로 부임하여 예안(禮安)을 순시하던 길에 도산서원(陶山書院)에 들러 자기 이름을 원록(院錄)에 기재하였는데, 이를 보고 분개하여 유적(儒籍)을 더럽히는 자라며 그 이름을 지워버린 일도 있다.


   1627년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나 벼슬길에 나가지 않았다. 그 뒤 조경(趙絅)의 간곡한 권유와 천거로 강릉참봉에 임명되었지만, 스승인 여헌 장현광 학통을 계승하여 성리학을 깊이 연구하는 데 몰두하였다. 뿐만 아니라 서책을 도시(圖示)하고 분류, 정리하는 등 우리나라 서지학(書誌學)의 기초를 마련하고 그 발달에 기여한 공로가 크다. 저서로는《경와집》·《해동문헌총록(海東文獻總錄)》이 있다.


   김휴는 안강노씨(安康盧氏) 노경임(盧景任)의 딸을 아내로 맞아 슬하에 1남 1녀를 두었다. 42세로 생을 마감한 그는 하나뿐인 아들 김학기(金學基)에게 많은 경계의 글을 남겼다. 위 〈계자설(戒子說)〉은 그 가운데 하나다. 이 외에도 분묘(墳墓), 사당(祠堂), 제사(祭祀), 지갈(誌碣), 유고(遺稿) 등에 대한 유언을〈유계오사(遺戒五事)〉란 글에 담아 놓았다. 병중의 당부를 적은 〈병중에 써서 아들에게 주다[病中書贈雄兒]〉라는 글도 있다. 함께 읽어 본다.

   돌아가신 아버님께서 강가에서 병이 위독하실 때 시를 지어 이렇게 나를 경계하셨다. “학문하면 훗날에 존영(尊榮)을 얻겠지만, 잡박한 기예는 한갓 성정 해친다네. 한 마디 말이라도 실천하면 족하나니, 만 마디 말 외워봤자 무슨 성취 있으랴. 애친(愛親)과 경장(敬長)을 바탕으로 삼고서, 성의(誠意)와 수신(修身)이 그 다음 단계일세. 네 아비 한 평생 병을 달고 살아서, 언제나 너에게 가문 부흥 희망했네.” 내가 젊었을 때 성품이 완전히 둔한 것은 아니어서 학문에 힘을 쏟으려 하였다. 부형의 바람이 절실하였고, 스스로의 다짐도 얕지 않았다. 하지만 뜻을 세움이 굳세지 않아 끝내 반생을 헛되이 지나보냄을 면치 못하였다. 이 시에서 기대하는 뜻이 마침내 어디에 있겠느냐? 너는 자질이 민첩하고 성품이 굳세, 내가 몹시 기쁘다. 다만 너는 책을 많이 읽지 않고 받은 기운도 가볍고 맑은 데에 치우쳐 있다. 바라건대 모름지기 십분 힘을 쏟아 기질을 변화시켜, 반드시 본 마음을 회복하고 구습을 벗어던져 자포자기로 돌아가는 일이 없도록 해라. 《시경》에 “따스하고 공손한 사람, 도덕의 바탕일세.”라고 했으니, 항상 이 말을 가슴에 품어 잃지 않도록 해라. 그러면 선인(善人)과 군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삼가 앞의 시에 차운하여 주노니[시는 문집에 실려 있다〕, 너는 힘쓸지어다. 네 병든 아비의 희망을 저버리지 말아다오.


先考在河上病劇時, 作詩戒我曰: “學問他日得尊榮, 雜藝徒能喪性情. 一語踐行斯亦足, 萬言空誦竟何成. 愛親敬長根基地, 誠意修身次第程. 汝父一生長抱病, 尋常望汝振家聲.” 我少時性未全鈍, 欲着力於學問上. 父兄望之切, 自期亦不淺, 而立志不固, 終未免枉過半生. 此詩期待之意, 竟安在哉. 汝之資質敏捷, 性又耿介, 吾甚喜之. 但汝讀書不多, 受氣亦偏於輕淸, 望須十分着力, 變化氣質, 要必復其初而革其舊, 則庶不歸於自暴自棄之地矣. 詩云, 溫溫恭人, 維德之基. 常以此言, 服膺而不失, 則庶可爲善人君子矣. 玆用敬次先韻〔詩見集中〕以贈之, 汝其勖哉. 無負汝病父之望.

예전 아버지가 자신에게 준 당부를 이루지 못해, 이를 다시 자신의 아들에게 전해주는 부정이 뜨겁다.


    그는 또 자식을 위해 근독(謹獨), 불기(不欺), 개과천선 등에 대한 내용을 경전과 현유(賢儒)의 글에서 뽑아 엮어 《조문록(朝聞錄)》을 엮었다. 《조문록》은 〈조문록(朝聞錄)〉,〈조문보록(朝聞補錄)〉, 〈조문속록(朝聞續錄)〉, 〈조문부록(朝聞附錄)〉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러 경전에서 간추린 글과 함께 끝에는 〈가세유훈(家世遺訓)〉이 실려 있다.
끝 부분에 〈조문록후지(朝聞錄後識)〉가 실려 있는데, 아들 김학기(金學基)와 조카 김종원(金宗源)을 권면하는 내용이 들어 있다. 김종원은 노경임(盧景任)의 외손이며 김윤(金鋆)의 아들로 저자의 문인이기도 했다. 세상을 뜨기 다섯 달 전에 아들과 조카를 위해 마음을 쏟아 쓴 글이다. 함께 읽어 본다.

   이 책에 기록한 것은 모두 밑에서부터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올라가는 공부에 절실한 내용들이다. 긴요한 것은 오로지 근독(謹獨)에 달려 있으니 너희들은 알아두지 않으면 안 된다. 송나라 때 가암(賈黯)은 “내가 범중엄 공의 ‘불기(不欺)’란 두 글자의 가르침을 얻어, 평생 써도 다 쓰지 못하였다”고 말했다. 그러니 하물며 이 한 권의 책이야 말해 무엇 하겠느냐. 마침 내가 병이 위독하여 정신이 어지럽다. 병이 낫기를 기다려 중요한 말을 다시 편집하여 빠진 내용을 보충하려 했다만, 짧은 시일 사이에 능히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보니, 이후에 바라는 바는 오로지 너희에게 달려 있는 셈이다. 반드시 상세하게 증정(證正)함을 더하여 빠진 부분을 보완하여 완전한 책을 만들도록 해라. 도를 아는 군자에게 나무람을 받게 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하지만 모름지기 너희들이 독서하여 이룸이 있기를 기다린 뒤라야 바야흐로 이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병든 사람이 오늘 노망든 것처럼 한다면 이 책을 완성하는 것이 또한 어렵지 않겠느냐? 너희는 힘쓰도록 해라. 숭정 12년 3월 25일에 쓴다.


此編所錄, 皆切於下學上達之工夫, 而其緊要處, 專在於謹獨上, 汝不可不知也. 宋賈黯曰, 吾得范公不欺二字, 平生用不盡, 況此一卷書乎. 適余疾篤, 精神昏憒. 擬待病蘇, 續輯要語, 以補其缺, 而顧非時月間所能就. 此後所望, 全在於汝等, 必須詳加證正, 增補闕遺, 以成完書, 勿使取譏於知道之君子. 然須待汝等讀書而有成然後, 方可做得此事. 若如病夫今日之鹵莽, 則此錄之成, 不亦難乎. 汝等其勉之哉. 崇禎十二年三月二十五日, 識.

 

 



   더하여 김휴는 죽기 하루 전에 자신의 죽음을 예견하고 스스로 만시를 지었다. 품은 뜻을 이루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는 안타까움이 잘 드러나 있다. 제목은 〈임종자만(臨終自輓)〉이다.

배움에 뜻 두고도 學何有志
이룬 것 하나 없네. 竟無所成
예를 실천 하려다가 禮何欲履
죽음에 이르렀네. 而至滅生
위로 부모 저버렸고 上負爾親
아래로 나를 등졌구나. 下負爾身
너 무슨 낯이 있어 爾何顏面
돌아가 선인 뵐까? 歸見先人

평생을 노력하고도 자신의 삶 앞에 한 없이 부끄러운 선인들의 삶의 자세가 우리를 또 부끄럽게 한다.

 

 

 

[출처] 12. 술꾼 아비의 훈계|작성자 새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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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로그 미 <다산을 찾아서> 새오늘 님의 자료 중에서 전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