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권시(權諰, 1604-1672)가 두 아들에게 남긴 유서[兩兒遺書. 辛卯至月望日]

2015. 8. 13. 00:01잡주머니

 

 

 

 

 

       13. 너희가 소인됨을 면해야만 내가 눈을 감겠다 가훈과 유언 / 옛사람 내면풍경

 

2011.10.29. 19:04

 

복사 http://sambolove.blog.me/150122667438

전용뷰어 보기

 

 

 

-  권시(權諰, 1604-1672)가 두 아들에게 남긴 유서[兩兒遺書. 辛卯至月望日]

 

 

   수년 이래로 내가 점점 쇠약해짐을 느낀다. 올 가을부터는 하루가 다르고 한 달이 같지 않구나. 근래에는 설사병까지 앓아 기운이 다 떨어져 아예 드러누웠으니, 갈 때가 다 된 듯 하구나. 요행으로 다시 소생한다 해도 어찌 세상에서 기력이 오래 가겠느냐? 평소 마음에 둔 일이 많았다만, 하루 아침에 갑작스레 말을 못하게 될까 몹시 염려스러우니, 한번 듣고 나서는 천번 만번 마음에 새겨 시행하기 바란다.


   기아(愭兒)는 성품이 살리기를 좋아하고 죽이기를 싫어한다. 이는 천지가 만물을 내는 마음이요, 선조의 어질고 두터운 뜻을 잃지 않은 것이다. 다만 바탕이 약하고 기질이 조급한 것이 문제다. 게다가 고집 부리기를 좋아하니 온전한 성품을 이루는 데 부족할까 염려로구나.

힘써 평이하게 포용하는 국량을 넓혀 비루하고 인색한 싹을 없애서 강대(剛大)한 지경에 이르게 되길 바란다. 네가 타고난 바탕 위에서 독실하게 하려 한다면, ‘경(敬)’ ‘서(恕)’, 즉 공경과 용서란 글자가 가장 중요할 것이다. 기질을 바로 잡으려면 고요히 침묵하며 천명에 귀 기울여 변화를 꾀해야 한다. 특히 자장(子張)‘명(明)’ 즉 밝음에 대해 물었던 대목을 너는 마땅히 죽을 때까지 외우도록 해라. 자장이 어떤 사람이더냐? 그런데도 공자께서는 오히려 이것으로 다스리셨다. 하물며 너는 나약하고 결단성이 없으며, 조급한데도 너무 살피기만 하니, 어찌 이것을 경계로 삼지 않을 수 있겠느냐?


   옛사람은 또 말했다. “임금이 환관이나 궁첩(宮妾)을 만나는 시간이 적고, 어진 선비나 대부를 만나는 시간이 많다면 어진 성군이 되지 못할까 염려하지 않는다.” 참으로 지극한 말이라 하겠다. 어찌 임금만 그렇겠느냐? 선비도 다를 게 없다. 내가 죽은 뒤에는 네 아우에게 집안일과 어머니 봉양을 맡기고, 너는 밖으로 나가 유학하도록 해라. 집에 들어와서는 아침저녁으로 문안을 드리는 일 외에는 틀어박혀 책을 읽어 절차탁마하여 성취를 이루어 내 명성을 더럽힘이 없어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소인이 됨을 면해야만 내가 눈을 감을 수 있겠구나.


   유아(惟兒)야! 옛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가르치지 않고서 죽게 만드는 것을 ‘폭(暴)’이라 한다.” 너는 성품이 ‘폭’에 가깝다. 힘써 편벽된 것을 바로잡아 인(仁)을 이루도록 해라. 너는 공손치 않은 것을 좋아하는데, 공손치 않은 것은 불인(不仁)에 가깝다. 공손치 않다는 것은 행동거지가 거만한 것만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대개 우주 만물과 천하 만사를 아무렇지 않게 여기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때문에 네 아비가 가르쳐 이루게 하려는 뜻에 마음을 쏟고 애를 쓰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역량이 미치지 못하면 문득 조급하게 성을 내고 함부로 망령되이 굴어, 남몰래 비웃으며 이를 좋지 않게 여긴다. 네 아비나 네 형의 조급함에 비하면 낫긴 해도, 진실로 지성으로 사물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 이대로 가면 불인(不仁)하게 될 터이니, 보통 일이 아니다. 네가 능히 아비의 말을 알아듣겠느냐?


   네가 송시열의 사위가 되고서도 성년이 되도록 병으로 읽지 않고 게을러 배우지 않으면서 오만하게 자족하였다. 그런데도 내가 너를 금하지 않았던 것은 어째서이겠느냐? 너희가 배우려 들면 단지 책을 읽은 뒤에 배움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일용의 생활이 바로 배움인 것이다. 배우려 들면 성인의 법과 선현의 가르침이 모두 남아 있어, 너 스스로 알게 되니 내가 무엇을 말하겠느냐? 배우려고만 한다면 너는 네 아비보다 훨씬 나은 사람이 될 듯 싶다만 네가 내켜하질 않으니 어찌한단 말이냐. 네 아비는 배우려 했지만 능히 하지 못하였고, 내 자식은 배울 수 있는데도 하려들지 않으니 다 글렀구나. 내가 죽은 뒤에 집안일을 처리하고 어미를 봉양하는 것은 네 스스로 맡도록 해라. 그리하여 네 형으로 하여금 먼 곳에 배우러 다니며 독서하여 마침내 성취함이 있게 한다면 그나마 다행이겠다.


   나는 태어난 지 겨우 네 해가 되었을 때 어머니께서 세상을 뜨셨고, 관례를 치르고 혼인을 하자마자 아버님께서 세상을 뜨셨다. 내가 부모가 계셨어도 그 삶을 보양하지 못했고, 그 뜻을 잇지 못했다. 50년간 세상에 살면서 한 것이라곤 불효뿐이로구나. 아버님께서는 평생 배움에 뜻을 두는 것을 좋게 보셨다. 일찍이 말씀하시기를, “매사에 반드시 옳음을 추구해서, 2류로 떨어짐이 없어야 한다.”고 하셨다. 또 말씀하시기를, “모름지기 배워서 허물 듣는 것을 기뻐해야 하니, 작은 허물과 큰 잘못이 흔히 스스로 허물 듣기를 기뻐하지 않는 데에서 뿌리내리게 된다.”고 하셨다. 또 말씀하셨다. “인(仁)이란 두루 미치는 방법이니, 이는 모두 공부에 착수해서 힘을 얻어 남을 일깨우는 말이다. 두루 미치는 방법은 대개 자기에게 미루어 남에게 미쳐, 남과 내가 나란히 서는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매번 세상 사람들은 책을 읽으면서 실지 얻기를 구하지 않고, 다만 입과 귀로 명리(名利)의 꺼리로 삼으면서, 책을 읽으면서 실지를 구하고, 생각이 떠오르면 반드시 기록하는 것을 두고 참람하게 의심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선인께서 평생 품으신 뜻이 이 글에 드러나 있다. 주한열(周翰說)유공진(柳公袗)이 보고 읽은 후에 독실한 군자라고 했다. 내가 일찍이 번다한 것을 깎아내어 간결하게 해서 후세에 전하기 위해 서둘러 간행하여, 선인께서 자신을 이루고 남을 이루게 하려 하신 뜻에 부응하려 한 것이 오래되었다. 돌아보건대 내가 불초하여 감당치 못하는 바가 있었으므로 나이가 조금 더 들기를 기다렸으니, 이는 안목이 조금 나아지기를 바랐던 것이다. 하지만 어리석고 게으름이 날로 심해지고, 가난하고 군색하여 일에 힘 쏟을 틈이 없어 날짜를 미루며 일할 겨를도 없이 오늘에 이르고 말았다. 내가 죽은 뒤에 너희는 내 뜻을 헤아려 유아(惟兒)영보(英甫, 송시열)에게 부탁해서 네 아비의 뜻을 이루어 줄 것을 청하도록 해라. 영보가 유아의 말을 듣고서 기꺼이 죽은 벗의 소원을 이뤄준다면 얼마나 다행이겠느냐. 윤서방에게 빌어 날 위해 그 뜻을 불쌍히 여겨 시례(詩禮)를 익히는 여가에 장차 이 글을 세 차례 찬찬히 살펴보아 이 계획을 이루어 준다면 내가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이다.

吾自數年來, 漸覺衰暮. 自今秋來, 日異而月不同. 近患泄症, 氣運澌盡, 頹然而臥, 殆其逝矣. 幸而得甦, 然是豈久於世氣力耶. 平日關念事多, 甚恐一朝溘然不能發言, 畫一聞後, 乞千萬銘心施行.
愭兒性好生惡殺, 是天地生物之心, 而不失祖先仁厚之意. 但恨其質弱氣躁, 且喜太執, 恐不足以成其性. 力恢平易包容之量, 以消鄙吝之萌, 冀至剛大之域. 欲汝因其材而篤焉, 則敬恕字最要. 欲以矯其質, 則靜嘿凝命, 庶幾變化. 且子張問明章, 汝宜平生誦之. 子張何人也. 而孔子猶以此治之, 况汝弱而無斷, 躁而太察, 安得不以此爲戒.
且古人云, 人君接䆠官宮妾時少, 接賢士大夫之時多, 則不患不至賢聖矣. 至哉言乎. 何獨人君. 夫士尙然. 吾死後, 付汝弟幹蠱養母. 汝則出遊學. 入則定省外, 齋居讀書, 琢磨成就, 無忝我聲, 得免小人之歸, 則吾庶幾瞑目矣.
惟兒, 古人云: ‘不敎而殺, 謂之暴.’ 汝性近暴. 力矯其偏, 以成其仁. 汝好不恭, 不恭近不仁, 不恭非獨謂容止簡傲而已. 盖謂視宇宙天下萬物萬事, 如無有. 故視乃翁屑屑䂓䂓於敎悔成物之志, 力量不及, 便至躁怒顚妄, 則竊笑而不善之. 其比乃父乃兄之躁則善矣. 苟無至誠愛物之心以將之, 則便不仁矣, 非細故也. 汝能會乃父之言乎.
汝得英甫, 而病不讀懶不學, 傲然自足, 吾無禁汝, 何也. 汝輩欲學, 不獨讀書然後爲學, 日用是學, 欲學則聖法先訓具在, 汝自知之, 吾何言. 欲學則汝可望矣. 似非乃父輩也, 奈汝不肯何. 汝父欲學而不能, 吾兒可學而不欲, 其已矣. 吾死後, 幹盎養母, 汝自任之, 俾汝兄得以遊學讀書, 終有所成則幸矣.
吾生纔四周歲, 先妣見背, 纔冠纔娶, 而先人見背. 吾有父母, 旣不得養其生, 又不得繼其志, 半百生世, 只輸一不孝. 先人平生志學爲善, 嘗曰: “每事必求是, 毋落第二義.” 又曰: “須學喜聞過, 小過大惡, 多自不喜聞過上作根窠.” 又曰: “仁是周遍法, 是皆着功得力, 而誨人之語. 周遍法, 盖推已度物, 人我竝立之謂也. 每以世人讀書, 不求實得, 只爲口耳名利之資. 讀書實求, 有思必錄, 名之僭疑.”
先人平生之志, 見於斯書. 周翰說柳公袗見而讀之曰: “篤實君子人也.” 余嘗欲刪繁就簡, 圖爲傳後易行之計, 以酬先人成己成物之志, 久矣. 顧吾不肖, 有所不堪, 欲待吾年稍老, 庶冀見或少進. 愚蒙偸惰日甚, 貧窘事力未敷, 遷延未暇, 以至于今. 吾死後, 汝輩體吾意, 惟兒託英甫, 請成乃父之志. 英甫聽惟兒, 肯遂亡友之願, 則何幸如之. 乞尹婿爲我憐其志, 鯉庭詩禮之暇, 將此書三復精閱, 得成此計, 則權某死無恨矣.

 

 



   탄옹(炭翁) 권시(權諰, 1604-1672)가 두 아들에게 남긴 유서다. 건강이 하루가 다르게 악화되어 가므로 혹 뜻밖의 변고가 있기 전에 간곡한 당부를 남기노라고 했다.


   큰 아들 기(愭)와 둘째 아들 유(惟)에게 각각 당부의 말을 적었다. 자식들의 성품을 솔직히 다 말하고, 더하여 자신의 바람을 얹었다. 바탕은 착하지만 허약한 몸에 급한 성질을 지녔고, 고집이 센 첫째에게는 포용력과 결단성을 촉구했다. 급한 성질은 경(敬)으로 다잡고, 고집불통은 서(恕)로써 다스려 나갈 것을 주문했다. 둘째에게는 편벽된 성질로 불손하고 난폭한 성질을 지녀 공부도 하지 않고, 사물을 사랑하는 마음도 없는 점을 나무랐다. 자신의 벗인 영보(英甫) 송시열과 혼인을 맺고 그에게 나아가 글을 읽게 했는데도 병 핑계로 게으름을 부리며 멋대로 구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머리가 있어 노력하면 큰 성취를 거둘 수 있는데도 노력하지 않는 것을 지적했다.


   두 아들에게 사후의 역할 분담을 말한 대목도 눈길을 끈다. 큰아들에게는 유학을 가서 학문으로 성취할 것을 당부했고, 둘째에게는 집안 살림을 맡겼다. 둘째는 공부로 성취할 재목이 아니라고 보았던 걸까? 이어 할아버지의 글을 몇 단락 인용하고 나서, 벗 영보에게 자신이 정리하려다 미처 끝내지 못한 정리 작업을 마무리 지어달라고 부탁할 것을 당부했다. 집안의 명예를 실추시키지 않으려는 아버지의 안타까운 마음이 구절마다 묻어난다. 이런 유서를 받아든 자식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권시의 본관은 안동, 자는 사성(思誠), 호는 탄옹(炭翁)이다. 송시열과 같은 기호학파예론에 밝았다. 권시는 함양박씨(咸陽朴氏) 박지경(朴知警)의 딸을 아내로 맞아 슬하에 2남 3녀를 두었다. 장자 권기(權愭)는 1623년(권시의 나이 20세) 2월 17일 인천(仁川)에서 태어났는데, 1665년(권시의 나이 62세)에야 현종이 온천에 행행하여 실시한 정시(庭試)에서 을과(乙科)로 합격하였다. 이후 지평, 사간, 승지, 대사간 등의 벼슬을 역임하였다. 둘째아들 권유(權維)는 권기와는 두 살 터울로 1625년 권시가 스물둘이 되던 해에 태어났는데, 정릉참봉(貞陵參奉) 등의 벼슬을 역임하였다. 이 글은 1651년(辛卯, 권시의 나이 48세)에 지은 것이다. 큰아들 권기가 정시에 합격하기 14년 전이다. 권시는 권기가 정시에 합격한 것을 보고 7년 뒤에 세상을 떠났다.


   권시는 190편에 달하는 많은 편지를 남겼다. 그런데 특이한 가족 구성으로 인해 그 내용 또한 눈에 띄는 것이 많다. 권시는 노소대립의 중심에 있던 송시열과 윤선거와 사돈지간이었고, 윤휴와도 친분이 있었다. 둘째 아들 권유가 송시열을 딸과 결혼하였고, 윤선거(尹宣擧)의 아들인 명재(明齋) 윤증(尹拯)이 바로 그의 사위다. 이런 정황으로 인해 많은 편지에서 이들 사이의 갈등을 무마시키려는 노력과 고충을 드러내고 있다. 양 극단 사이를 균형 있게 조화시키려는 노력을 한 셈인데, 이 때문인지 그의 문집에는 자신을 경계하는 글이 꽤나 보인다.


   그 중〈수감자경지(隨感自警識)〉1622년(19세, 그해에 아버지 상을 당함)에 자신에게 경계가 될 만한 문구를 정리 놓은 것이고,〈붕우견경지(朋友見警識)〉는 붕우들로부터 받은 글에서 경계가 될 만한 것을 간추려 모아놓고 아울러 스스로 경계로 삼을 만한 말을 덧붙인 것이다. 이 외에도〈자평(自評)〉,〈자경(自警)〉,〈자계(自戒)〉등의 시도 남겼다. 특히〈자계(自戒)〉는 1633년 저자의 나이 30세 때에 지은 24수의 연작시이다. 이전까지 저자 자신의 언행(言行)을 반성하고 정리하며 앞으로는 자신을 수양하는 공부에 전념하겠다고 스스로 다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러한 반성과 다짐들은 고스란히 두 아들에게로 그대로 전이되는데, 앞서의〈양아유서〉와〈시양아(示兩兒)〉등의 시편을 통해 쉽게 확인할 수 있다.〈시양아(示兩兒)〉를 함께 읽어 본다.

네 아비 중도에 공부를 폐하여서 不見伊翁中道廢
한갓 늙어 흰머리만 물든 것을 못 보았나. 徒然老大雪毛侵
공연한 말 너흴 위해 은근히 외우노니 空言爲汝慇懃誦
진실된 마음으로 각고하여 공부하라. 刻苦工夫眞實心
너희는 젊은데도 노력하지 않으니 汝曹年少不努力
세월은 무정하게 하루하루 흘러간다. 歲月無情日日侵
성인 되고 현인 됨이 군자의 일이거니 爲聖爲賢君子事
남아라면 초심을 저버리지 말아야지. 男兒愼莫負初心
세상의 온갖 일 서책에 달렸으니 百無事在書房房
고요 속에 시서 익혀 배움 날로 성장하리. 靜裏詩書學日長
처자식 사랑함은 몸 망치는 일이거니 憐子愛妻壞了事
남아라면 몇 개의 굳센 마음 품어야지. 男兒幾箇是剛腸
툭 트인 커다란 공변된 이치 廓然大公理
하늘 뜻엔 치우침 전혀 없다네. 天意自無偏
너희는 억지로 일을 푼다며 小兒強解事
신세를 빈 배에 맡기는구나. 身世任虛舡

   젊어 노력하지 않으면 무정히 흘러버린 세월 앞에 안타까운 탄식만 남는다. 사람은 초심을 지켜 고요 속에 기운을 길러 배움을 성장시켜야 한다. 그렇지 않고 처자식 사랑에 폭 빠져서 굳센 본디 마음을 버리고 안락에 빠진다면 그것은 다름 아닌 제 한 몸을 망치는 길이다. 인생을 빈 배에 실으려 들지 마라. 큰 뜻을 품어 그 길로 매진하라.

 

 

 

[출처] 13. 너희가 소인됨을 면해야만 내가 눈을 감겠다|작성자 새오늘

http://sambolove.blog.me/150122667438

- 블로그 미 <다산을 찾아서> 새오늘 님의 자료 중에서 전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