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ㅡ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2013. 6. 27. 10:15

 

 

 

 

    지난 10월 6일, 세계적인 문학상으로 손꼽히는 노벨 문학상의 수상자가 발표됐다. 노벨 문학상은 노벨상의 여러 분야 중 단연 독보적인 권위를 지니고 있다. 1901년 프랑스 시인 쉴리 프뤼돔에게 첫 번째 상이 수여된 이래 100여 년 동안 명맥을 유지하고 있으며 매년 수상자 추측에도 많은 관심이 쏠린다. 노벨 문학상은 발표 직전까지 모든 과정이 비밀에 부쳐지는 교황 선출 방식과 비슷해서 그 결과를 예측하기가 매우 어렵다. 올해도 수상자를 둘러싼 갖가지 추측들이 흘러나왔고, “그 동안 소외되었던 미국과 아시아권 작가가 수상할 가능성도 대륙 안배 차원에서 매우 높다”라는 의견도 있었다.


 



 

 


    수많은 추측을 뒤로 하고 2011년 노벨 문학상에 선정된 사람은 스웨덴의 시인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다. 스웨덴 한림원은 6일 스톡홀름에서 노벨 문학상 수상자를 발표하며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는 압축되고 반투명한 이미지를 통해 현실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을 제시했다”“그는 역사와 기억, 자연, 죽음 같은 중대한 질문에 대해 집필해왔다. 그의 시는 경제성과 구체성, 그리고 신랄한 비유로 특징 지을 수 있다”고 선정 이유를 설명했다. 시상식은 오는 12월 10일 열리고, 수상자인 트란스트뢰메르에게는 상금으로 1천만 크로네(약 17억 원)가 지급된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셀 수 없이 많은 상을 발 아래 둔 상’이라는 명칭을 지닌 노벨 문학상은 늘 세계인의 주목을 받는다. 노벨 문학상 수상은 살아생전은 물론 사후에도, 인류사에도 이름을 남기는 자랑스러운 업적이다. 현재는 노벨 문학상에서의 서구의 강세가 지속되고 있지만 최근 계속해서 아시아권 작가와 한국의 문인들이 후보로 선정되고 있어 가까운 미래 우리나라에서도 노벨 문학상 수상자가 나올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게 한다. 이에 강력한 후보를 제치고 올해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의 작품세계와 함께 올해 후보로 거론된 한국의 시인 고은 작가의 작품세계를 함께 알아보려 한다. 두 작가 모두 ‘시인’이라는 점에서 문학 안에서 ‘시’가 가지는 역할과 함께 시의 깊은 맛도 음미할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한국인의 노벨 문학상 수상을 위한 초석의 의미 또한 발견할 수 있을 듯하다.

 



2011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세상을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반신마비의 ‘말똥가리 시인’

 


 


    ‘스웨덴의 국민시인’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는 스웨덴 국민에게 ‘말똥가리 시인’이라는 애칭으로 불린다. 세상을 높은 곳에서 바라보고 자연세계를 세밀하고 예리한 초점으로 묘사하는 그는 노벨 문학상 제정 이후 스웨덴 출신의 일곱 번째 작가가 됐다. 올해 80살인 트란스트뢰메르는 23살 때 ‘17편의 시’로 데뷔해 ‘여정의 비밀’ ‘미완의 천국’ 등을 내며 스웨덴 자연시의 전통 위에 모더니즘의 세계를 펼쳤다. 지금까지 총 10편이 넘는 시집을 냈지만 전체 시는 2백 편에 불과해 ‘과작(寡作) 시인’으로 불린다. 그는 스칸디나비아 지역에서 생존해 있는 시인 중 가장 유명한 사람 중 한 명으로, 혹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이 지역 문단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작가로 지목되고 있다.

    스톡홀름대에서 심리학을 전공한 그는 교도소와 장애인 시설, 마약중독 차 치료센터에서 상담사로 일하기도 했다. 그러던 1990년 뇌중풍으로 쓰러지면서 반신마비가 와 현재 사람들과 대화조차 어려운 상채다. 즐겨 치던 피아노도 이제는 왼손으로밖에 연주할 수 없다고 한다. 한 해 4-5편 정도의 시만을 발표하며 차분하고, 조용하고, 시류에 흔들림 없는 ‘침묵의 시’를 생산해 온 그의 시는 스웨덴 자연시의 토착적이고 심미적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다. 초기 작품에서 스웨덴 자연시의 전통을 보여준 그는 자유분방한 상상력으로 시의 영역을 확대해 현실정치나 사회와 벽을 쌓았다는 비판도 받았지만 자기만의 작품 세계를 꿋꿋이 지켜왔다. 잠과 깨어남, 꿈과 현실, 무의식과 의식 간의 경계지역을 탐구하고 있기에 그의 시 한 편 한 편이 담고 있는 시적 공간은 광대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트란스트뢰메르의 작품은 독일어, 핀란드어, 헝가리어, 영어 등 5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돼 독일의 페트라르카 문학상, 보니어 시상, 노이슈타트 국제 문학상 등 세계적인 문학상도 다수 받았다.

    국내에 출간된 그의 책은 <기억이 나를 본다>가 유일하다. <기억이 나를 본다>는 2004년 출간된 시선집으로 ‘오늘의 세계 시인’ 시리즈 가운데 하나다. 사과나무, 벚나무, 호수, 잔디밭, 햇볕, 얼음, 눈, 붉은 벽돌집 등 시에 등장하는 소재만으로도 북유럽을 여행하는 듯한 느낌을 들게 한다. 스웨덴의 차갑고 투명하며 깨끗한 자연 속에서 그는 우리가 모두 공감하는 보편적 우주를 창조해 냈다. 고은 시인이 책임∙편집한 작품으로도 유명하다.

 

한국의 시를 전세계에 알린 유력자, 고은
이름없는 공간에 삶의 의미를 둔 ‘민족 시인’


 


고은 시인은 9년 연속 노벨 문학상 후보에 올랐지만 올해도 고배를 마셨다. 꾸준히 후보로 올랐던 고은 시인은 노벨 문학상 베팅에서 배당률 14대 1로 6위에 오르며 강력한 후보로 점쳐졌지만, 수상에는 실패했다. 고은 시인은 만해문학상, 대산문학상, 스웨덴 시카다상 등을 수상했으며 매년 노벨문학상 후보 중 한 사람으로 거론된다. 유력한 수상 후보자임에도 불구, 고은 시인이 번번히 고배를 마셔야 했던 이유를 놓고 한국 문학계는 한글 번역의 문제점을 그 첫 번째 이유로 꼽고 수준 높은 번역과 역량 있는 번역가 양성이 시급하다고 전한다. 2001년 설립된 한국문학번역원 등이 번역출판과 번역가 양성에 나서고 있지만 외국에 소개된 한국문학은 1500여 종에 불과하다.

올해로 등단 50주년을 맞은 고은은 한때 불교 승려로 시작 활동을 하던 중 1958년 <현대문학>에서 ‘봄밥의 말씀’ ‘눈길’ ‘천은사운’ 등을 추천 받아 등단한 시인이다. 1960년에는 첫 시집 <피안감성>을 간행하였으며 1962년에는 승려에서 시인으로 환속해 어두운 독재시대에 맞서는 재야운동가로서의 험난한 길을 걷기도 하였다. 초기시는 주로 허무와 무상을 탐미적으로 노래한 반면 이후 어두운 시대상황과 맞물리면서 현실에 대한 치열한 참여의식과 역사의식을 표출하였다. 그 후 고은 시인은 영웅주의에 물들지 않고 진솔한 삶의 내면을 드러내는 독특한 시 세계를 보여주었다.

그에게 시를 왜 쓰냐고 물으니 “여기까지 오는 길 44년을 나는 어설픈 농부였고 새였고 울음의 무당인가 하였다. 그러는 동안 말이 종교였다”고 대답하였다. 스스로의 시를 어설픈 농부였노라, 새였노라, 울음의 무당이라고 표현하는 그의 시는 산문이 가지지 못한 치열함을 담고 있기도 하다. 우리 역사와 정서, 선, 사회 문제를 넘나드는 방대한 작품 세계를 펼쳐온 고은 시인은 약 25년 동안 5,600여 명의 인물로 한국 역사를 더듬어 온 연작시 시리즈 <만인보>를 엮었다. 1968년부터 2010년까지 총 30여 권 3천 8백여 편의 시집으로 연작된 인물 대서사시인 <만인보>는 민족이 다양한 모습을 형상화 한 작품으로 평가해 노벨 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는 그의 대표작이 되었다.

PLUS+
작품으로 보는 세계 최고의 작가, 그 빛나는 영예
역대 노벨수상자와 수상작들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염소의 축제> - 2010년

2010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페루 작가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가 2000년에 발표한 소설이다. 32년간 도미니카 공화국을 지배했던 독재자 라파엘 레오니다스 트루히요의 암살 과정을 재구성한 작품으로 그의 역사적, 정치적 문제의식이 돋보이는 대표작이다. 바르가스 요사는 광범위한 역사적 자료를 바탕으로 사실에 입각한 기술을 하면서도, 다양한 인물의 관점을 빌려 작가적 상상력을 발휘하며 독재자의 마지막 나날을 새롭게 조명했다. 참혹한 독재의 역사를 통렬히 그리면서도, 시공간을 넘나들며 펼쳐지는 서사는 문학적이고 흥미진진함을 독자들에게 전달한다.




헤르타 뮐러 <숨그네> - 2009년
소설은 처참하다. 강제수용소에 이송된 열일곱 소년이 주인공이다. 소년은 수용소에서 인간성이 박탈된 비참한 삶을 배운다. 이 이야기는 헤르타 밀러와 연관성이 있다. 그녀는 독일계 소수민족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어머니는 우크라이나의 강제수용소에서 오년을 지냈다. 이 소설은 이차대전 후 독일계 소수민족이 처한 비극적 삶을 다룬 기록이다. 그러나 이 기록은 인간에 대한 깊은 애정과 절망, 삶과 죽음을 아름다운 언어로 승화했다. “상황은 처참했다. 문자는 아름다웠다. 비극은 시의 옷을 입어야 한다”는 헤르타 밀러의 말이 긴 울림을 준다.




르 클레지오 <황금 물고기> - 2008년
보통 노벨 문학상은 수상자를 발표하면서 수상작을 발표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2008년 르 클레지오가 노벨 문학상을 수상할 때는 수상작의 거론이 없었다. 작가의 한 작품보다는 작가가 써 내려간 수많은 작품을 대상으로 노벨 문학상을 수여하는 경우다. <황금 물고기>는 1997년 프랑스 갈리마르 사에서 출간되자마자 순수문학으로서는 이례적으로 장기간 베스트셀러 1위의 자리를 지킨 작품으로, 예닐곱 살 때 유아 인신매매단에 납치돼 팔려간 한 소녀의 인생역정을 다루고 있다. 인간의 본원적인 감성과 자연의 매혹이 영원한 침묵 속에 배어 있는 시원의 땅으로 찾아들어간, 필력 30년을 넘어선 작가 르 클레지오의 사상적 변모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도리스 레싱 <황금노트북> - 2007년
1962년 출간된 레싱의 대표작 <황금 노트북>은 한 여성 작가가 삶과 자유의 의미를 성찰하고 있는 작품으로, 여성의 문제를 실험적인 형식으로 담아낸 20세기의 고전이다. 영국과 식민지 아프리카를 배경으로 여성이 겪는 고통과 사랑, 결혼 생활을 다룬 작품으로 페미니즘 문학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을 뿐 아니라, 레싱의 다양한 문제의식이 다섯 빛깔 노트에 여성의 구체적인 일상을 통해 뛰어나게 형상화된 작품이기도 하다.





 


 

 


 

 기억이 나를 본다


 

  눈을 감는다.

  소리 없는 세계가 있고

  갈라진 틈이 있고

 

 

  집들, 나무들, 울타리들이 / 어둠의 소리 없는 눈사태 속에 확대된다

  색채들이 화르르 타오르고, 만물이 회전했다. 땅과 나는 서로 서로를 향하여 튀어 올랐다.

 

 

  햇빛 속에 서서 눈을 감으면 서서히 앞으로 밀려가는 느낌을 가지리라

  돌들은 바다로부터 한 걸음 한 걸음 뒷걸음질 쳐 여기에 와 있다

  형체 없는 기억들이 바다 바닥으로 내려가 그곳에서 낯선 조상으로 굳어진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알 수 없다. 다만 사슬이 부서지고, 부서지고,

  다시 붙고 다시 붙고 한다는 것만, 영원히

 

 

  하지만 오늘 나의 응시가 나를 떠났다.

  나의 눈멂이 사라졌다.

  검은 박쥐가 내 얼굴을 떠나 여름의 밝은 공간을 가위질하며

  돌아다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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