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 다니면서 참 많이도 불렀던 설악가!!
눈덮힌 설악에 능선을 걸어가면서도 부르고..
달빛에 야영하면서도 부르고..
계곡에서 술 한 잔 기울리면서도 불렀던.. 그 설악가!!
설악가를 부르며 다니던 그 시절이 그립습니다..
2008.8.30 백두대간 산행 중 설악 공룡에서 바라 본 천화대 침봉들, 좌측 거봉이 범봉임.
이하 일부 소설임
대한민국의 능선 중에 가장 아름다운 설악산 공룡능선에서 갈라져나간 천화대의 ‘석주길’. (펌)
<1969년대 고(故) 엄홍석, 신현주 두 분의 이름 끝자를 따서 명명된 것입니다.>
설악산에 하늘에서 꽃이 내려와 앉았다는 천화대(天花臺)에 석주길 이라고 하는 릿지코스가 있습니다.
"천 가지의 꽃이 피어있다" "바위에 피어있는 꽃" "하늘 꽃"이라는 숫한 설을 남긴 천화대는 그 만큼
아름답다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 입니다.
천화대는 비선대에서 철 계단을지나 천불동 계곡방향으로 가다보면 우측에 초입이 시작됩니다.
끝 지점인 공룡능선에서는 비선대 방향으로는 동북쪽으로 연결되어 있고 외설악을 대표하는
30개 이상의 크고 작은 봉우리를 넘어야하는 구간 입니다
희야봉에서는 범봉을 앞에 두고 설악골과 잦은바위골 로 길이 갈라지고 맞은편으로는 범봉과 공룡능선으로
이어집니다. 특히 잦은바위골에 다다르면 50m,100m 폭포는 장관을 이룹니다.
천화대에서는 화채봉과 동해바다가 보이며 북동쪽으로 울산암이 바라보이는 곳 이기도 합니다.
풍광과 조망 또한 좋아서 등반 내내 발길을 멈추곤 합니다.
이중 설악골에서 범봉사이에 성곽과도 같은 침니로 이어진 리지구간이 석주길 입니다.
석주길에 얽힌 가슴저린 이야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당시 요델산악회의 송준호, 엄홍석, 신현주 세 사람은 서로 자일 파트너였고
동시에, 절친한 친구이자 연인 사이 이었다고 합니다.
어느 날 송준호는 사랑보다는 우정을 지키기 위해
다시 말해 세 사람의 순수하고 소중한 관계를 지키기 위해
엄홍석과 신현주의 곁을 홀연히 떠납니다.
송준호가 떠난 얼마 후 엄홍석과 신현주는 연인 사이가 되었고,
두 사람은 설악산 천화대 천당폭으로 빙벽등반을 하러 갑니다.
그러나 빙벽을 오르던 중 신현주가 그만 실족을 하자
당시 빌레이(확보)를 보던 엄홍석은 연인인 그녀의 추락거리를 줄이기 위해서
빙벽 아래로 자신의 몸을 날립니다.
그러나 빙벽에 설치한 확보물이 하중을 견디지 못했고
두 연인은 한 자일에 묶인 채 추락하여 목숨을 잃고 맙니다....
그 후 두 친구를 먼저 보내고 혼자 남은 송준호는
악우인 엄홍석과 신현주의 넋을 달래 68년 7월 지금의 천화대 석주길을 개척하며
엄홍석의 이름 끝 자인 "석"과 신현주의 끝 자인 "주"를 딴 석주길이라는 길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산악계에서는 처음 길을 개척한사람에게 "명명(命名)권" 을 주게 되는데
송준호에게 명명권을 주어 두 사람의 석주길 이라는 길이 설악산 천화대에 생기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석주길’이라고 새긴 동판을 만들어
천화대와 만나는 바위봉우리의 이마 부분에 붙여 두 사람의 영전에 바쳤습니다.
하지만 송준호 역시 1973년 초 토왕폭을 단독으로 오르다가 실족하여
먼저 간 두 친구의 영혼을 뒤따르게 되고
그의 시신은 그토록 사랑하던 친구인 엄홍석과 신현주의 곁에 뭍히게 됩니다.
그렇게 석주길의 신화가 설악산에 태어났던 것입니다.....
그런데, 1973년 새해 첫 날밤 등반하루 전 그는 엄홍석과 신현주에게 마지막 편지를 남깁니다.
죽음을 예감이라도 한 듯 번지 없는 주소로 엽서를 보냅니다.
받는사람 "석주 귀하" 주소는 "벽에서 노루목" 보내는 사람 "준" 그것이 전부인...
그 후 송 준호 역시 1973년 초에 "토왕 폭"을 오르다가 실족사고로 인하여
먼저 간 두 친구의 영혼을 뒤따르게 되고 후일 송 준호 유품을
정리하다가 그가 남긴 엽서 한 통이 발견된다.
..........................................
받는 이 : 석주
주 소 : 목(노루목)으로
보내는 이 : 준
주 소 : 벽에서
..........................................
"잘 있었나.
그동안 나는 안정적인 생활을 하고 있네.
내일 벽과의 감격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되었네.
아니면 자네 품으로….
(이하 생략)
지금은 셋 모두 노루목에 묻혀 있다.
아래는 묘지의 충혼비에 새겨진 글이다.
- 내용 -
시간과 존재의 불협화음으로
공간을 활보하고 있는 악우들이여!
철학적 경이로써 모둠된 그대들의 자취는
훗날 이 인자한 산정을 찾는 이들의 교훈이 될 것이다.
추억을 침묵으로 승화시킨
사람들의 그 대담한 의지로
그대들은 설악에서 회생하리라.
73년 가을....
요델산악회는 송준호 추모등반을 설악산에서 갖고
용아장성의 14번째 암봉에 그의 추모동판을 새겼다.
한편 서울에서는 토왕성폭포 등반을 마치고 돌아오겠다던 송준호의 애인은
1973년 1월5일 오후2시 서울 중앙극장에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상영을 앞두고 그를 기다립니다.
그가 나타나지 않자 뇌리에 스쳐오는 송준호를 생각하며 극장가를 떠납니다.
송준호는 그녀가 짜준 목도리와 장갑 모자를 가슴에 품은 체 토왕폭에서 그의 곁을 영원히 떠나게 되었습니다.
송준호는 토왕폭을 등반 후 돌아와 그녀와 함께 스위스 등산학교를 유학 한 후 결혼하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 해 가을 산악회에서는 추모등반을 설악산 용아장성에서 이루어지게 되었는데 동판은 제14봉에 부착했습니다.
애인은 동판에 송준호에게 마지막 편지를 썼습니다. "고인의 뜻대로 강하게 살아가겠다고".
그 후 1974년 1월2일 1주기가 되던 해 송준호와도 산 친구인 한 사람이 설악의 노루목을 찾았습니다.
그는 산 친구인 송준호에게 절을 하며 약속합니다.
그녀와 함께 살아가겠다고...
그 이듬해 그들은 결혼해서 그들의 꿈이었던 목장을 이루고 살아가면서
설악가처럼 굽이져 흰띠두른 능선길 따라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송준호는 지금 설악산 노루목에 엄홍석 신현주와 함께 묻혀있으며 이들 세사람의 충혼비는 이러합니다.
"시간(時間)과 존재(存在)의 불협화음으로 공간을 활보하고 있는 악우(岳友)들이여!
철학적 경이로써 모둠된 그대들의 자취는 훗날 이 인자한 산정을 찾는 이들의 교훈일 것이다.
추억을 침묵으로 승화시킨 사람들, 그 대담한 의지로 회생하리라."
설악가는 세사람의 아름다운 사랑과 우정을 그리며 지어 졌다고 합니다.
지금은 구전으로 대학 산악부에서 많이 불려지고 있습니다.
<난 바람 넌 눈물>로 가요계에 데뷔한 산악인 가수 신현대님의 목소리로 들어 봅니다.
마지막 3절이 찐하고 슬프네요.
송준호가 죽은 친구(엄홍석, 신현주)를 생각하는 내용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