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일백이십 일 동안을 아파 누웠다가 마침 용문산 수종사에서 온 현계 영공을 만났는바,
영공이 장차 남쪽으로 천진암에 가서 노닐고자 하므로 애써 영공을 따라 나섰다. 그리고 인하여 석천옹을 방문하여 함께 갔는데, 우리 세 집의 소년들과 계림ㆍ성구ㆍ규백도 따라갔다. 수남에 이르러 짓다[病伏十有二旬 適逢玄谿令公從龍門 水鍾而至 將南游天眞菴 勉而從之 仍訪石泉翁偕適 三家少年及季林聖九規伯亦從焉 到水南作] 열초(洌樵)
명사의 산구경하자는 이야기가 名士看山話내 마음을 혼연히 감동시켰네 欣然動我心지금 사정은 유랑하는 것뿐이려니와 時宜唯漫浪더구나 천성이 산림을 좋아함에랴 天性況山林
백사장 따스하니 봄풀이 광활하고 沙暖春蕪遠봉우리 조밀하니 송백이 푸르구려 峯稠晩翠深근력 부친 것 걱정할 것 없어라 不愁筋力短가는 곳마다 짙은 그늘 있다오 行處有繁陰
2. 상천진사시에 차운하다[次韻上天眞寺] 석천(石泉)
적막은 우리의 도가 아니기에 適莫非吾道되는 대로 하고 마음을 정하지 않네 從他不住心말고삐 나란히 하여 불일을 즐기고 倂騎貪佛日뜻에 따라 절집에 앉아 있노니 隨意坐禪林
첩첩 벼랑은 옛 암자를 갈무리했고 疊崿藏菴古높은 구름은 손을 깊이 끌어들이네 高雲引客深서서히 다니다 늦게야 골짝 나오니 依遲出谷晩어느덧 사방의 산들이 어두워졌네 不覺四山陰
[주D-001]적막(適莫) : 적(適)은 어느 사물에 열중하는 것을 말하고, 막(莫)은 그 반대로 싫어하는 것을 말함. 공자가 이르기를, “군자는 적하지도 않고 막하지도 않아서 의리를 따를 뿐이다.” 한 데서 온 말이다. 《論語 里仁》
[주D-002]불일(佛日) : 부처의 지혜. 불교의 진리. 법력(法力)이 널리 중생을 제도함이 마치 대지를 고루 비추는 태양과 같다는 말이다.
3. 상천진사시에 차운하다 현계(玄谿)
속연 끊는 건 내 본성이 아니요 絶俗曾非性그윽함을 즐김은 이 무슨 마음인고 耽幽卽底心병든 회포엔 수석이 꼭 알맞고 病懷宜水石한가한 경계는 곧 구름 숲이로세 閑界是雲林
떠도는 자취는 삼신산을 편력했고 浪跡三山遍맑은 술은 깊은 숲 속에 있어라 淸樽萬木深심신을 수양코자 이틀을 묵노라니 神怡須信宿말도 꽃다운 그늘에서 자누나 歸馬亦芳陰
4. 상천진사시에 차운하다 양산(楊山)
보름 동안을 시원하게 잘 지내니 旬五冷然善죽음이 다가옴도 서운치 않네그려 行休不悋心우연히 넝쿨진 풀을 찾다가 偶因尋蔓草거듭 총림에 들어옴을 깨달았네 重覺入叢林
넝쿨풀 위엔 연기와 놀이 잠겨 있고 苕上煙霞祕언덕에는 오랜 세월이 흘렀어라 丘中歲月深친구들과 덕을 강론하기는 어려우나 寅緣慙講德서책은 시간 나는 대로 본다오 書帙見隨陰
5. 상천진사시에 차운하다 학연(學淵)
일찍이 붉은 잎에 시 쓰던 그곳을 紅葉題詩處 거듭 오니 나그네 마음 슬퍼라 重來愴客心 문에 드니 맛좋은 술을 권하고 入門勸芳醑 석양빛은 높은 숲에 가려졌네 落日翳喬林
부서진 물방아엔 샘물이 흩어지고 破碓泉聲散 쓸쓸한 집엔 풀이 무성하구려 荒寮草色深 스님이 이틀 밤을 묵게 허락했으니 伊蒲容信宿 해거름이 그늘어온들 무슨 걱정이랴 何事怕輕陰
[주D-001]붉은 …… 곳 : 당 희종(唐僖宗) 때 우우(于祐)가 어구(御溝)에서 시(詩)가 적힌 붉은 나뭇잎 하나를 주웠는데, 그 시에 “흐르는 물은 어이 그리 급한고, 깊은 궁중은 종일토록 한가롭네. 다정히도 붉은 잎새 작별하나니, 인간이 있는 곳으로 잘 가거라.[流水何太急 深官盡日閒 殷勤謝紅葉 好去到人間]” 하였으므로, 우우 역시 붉은 나뭇잎에다 “일찍이 나뭇잎에 깊은 원망 쓴 것을 보았나니, 나뭇잎에 시 써서 누구에게 부쳤던고?[曾聞葉上題紅怨 葉上題詩寄阿誰]”라는 시를 써서 다시 어구에 흘려 보낸 결과, 이 시는 당시 궁녀(宮女)였던 한 부인(韓夫人)이 주웠다. 그런데 뒤에 희종이 궁녀들을 풀어 시집을 보내게 되자, 공교롭게 우우와 한 부인이 서로 결혼을 하게 되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어떻게 비유한 말인지 자세하지 않다.
醑
미주 서
6. 상천진사시에 차운하다 종유(鍾儒)
강호에서 서로 잊은 지가 오래라 江湖相忘久천석에만 유독 관심이 있다오 泉石獨關心미진의 어귀를 다 함께 건너서 共渡迷津口멀리서 기수림을 찾아왔나니 遙尋祗樹林
남은 꽃은 한 봄이 저물었고 殘花一春晩새 소리는 만산에 그득하구려 啼鳥萬山深뽕나무 밑 인연이 무어 그리 중해서 桑下緣何重더디더디 어둔 골짝을 나오는고 遲遲出洞陰
[주D-001]강호(江湖)에서 …… 오래라 : 도에 뜻을 두었음을 비유한 말. 《장자(莊子)》 대종사(大宗師)에 “물고기는 강호에서 서로 잊고, 사람은 도술(道術)에서 서로 잊는다.”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2]미진(迷津) : 번뇌(煩惱)와 미망(迷妄)의 세계. 삼계(三戒)와 육도(六道). 현실의 세계. 피안(彼岸)에 대응한 차안(此岸)의 세계. 여기서는 절을 찾아가는 것을 차안의 나루를 건너서 피안의 세계로 가는 것을 비유한 것이다.
[주D-003]기수림(祇樹林) : 중인도(中印度)에 있던 기타 태자(祇陀太子) 소유의 수림(樹林)을 이르는데, 뒤에 여기에다 정사(精舍)를 지었으므로, 전하여 사찰의 뜻으로 쓰인다.
[주D-004]뽕나무 밑 인연 : 불자(佛者)는 은애(恩愛)의 정이 생길까 염려하여 뽕나무 밑에서 3일 밤을 계속 묵지 않는다는 데서 온 말이다.
7. 상천진사시에 차운하다 명연(命淵)
우연히 사찰의 경내에 이르니 偶到招提境조용하여 내 마음 맑아지누나 蕭然淨我心좋은 때에 어른들을 시종하여 佳辰陪杖屨조용한 놀음으로 운림을 찾아오니 幽事覓雲林
푸른 물은 멀리 홈통으로 끌어오고 碧水引筒遠노란 꾀꼬리는 나뭇잎 뒤에 숨었네 黃鸝隔葉深누가 능히 속된 생각 끊어 버리고 誰能割塵想산그늘 가까이 집을 마련하려나 卜宅近峯陰
8. 상천진사시에 차운하다 민섭(民燮)
한가한 날에 남은 봄을 전송하니 暇日殘春餞 이 놀이가 내 마음에 상쾌하구려 玆游愜我心 옷자락을 떨쳐 화택을 뛰어넘고 拂衣超火宅 붓을 뽑아 구름 숲을 윤색하도다 抽筆潤雲林
나막신은 멀리 시냇가를 밟아 오고 蠟屐穿溪遠 새 소리는 깊은 골짜기로 인도하네 禽聲引谷深 좋은 경치를 서로 저버리지 못하여 名區不相負 나의 집도 산 음지 쪽에 있다오 家住又山陰
[주D-001]화택(火宅) : 불교 용어로, 번뇌(煩腦)가 많은 속세를 이르는 말이다.
愜
쾌할 협 1. 쾌하다(快--: 마음이 유쾌하다) 2. 만족하다(滿足--) 3. 맞다 4. 마땅하다 5. 합당하다(合當--) 6. 두려워하다 7. 무서워하다 8. 따르다
屐
나막신 극 1. 나막신(신발의 하나)
9. 상천진사시에 차운하다 재굉(載宏)
산에 듦은 부처를 좋아함이 아니요 入山非喜佛좋은 곳이 마음에 즐거운 때문일세 佳處卽怡心나무꾼이 베는 통에 큰 나무 드물고 樵斧稀喬木참선의 등불은 소림에 폐해졌네 禪燈廢少林
무너진 담장엔 늦은 꽃이 피었고 壞墻花發晩몇 층 홈통엔 물이 깊이 내려오누나 層筧水來深산수는 평소에 좋아하던 것이라 丘壑平生想이리저리 배회하다 땅거미가 되었네 徘徊到夕陰
[주D-001]참선의 …… 폐해졌네 : 절에 참선하는 중이 없음을 비유한 말이다. 소림(少林)은 중국 하남성(河南省)에 있는 절 이름인데, 옛날 달마대사(達磨大師)가 이곳에서 9년 동안 면벽(面壁)하여 참선을 하였으므로 이른 말이다.
筧
대 홈통 견 1. 대 홈통(-桶: 물이 흐르거나 타고 내리도록 만든 물건) 2. 대나무의 이름
壑
골 학 1. 골, 산골짜기 2. 도랑(매우 좁고 작은 개울), 개천(-川: 개골창 물이 흘러 나가도록 길게 판 내) 3. 구렁(움쑥하게 팬 땅) 4. 해자(垓子) 5. 석굴(石窟), 암굴(巖窟)
10. 상천진사시에 차운하다 동석(東錫)
절은 퇴락했지만 오히려 절묘한데 寺破猶奇絶 맑고 한가함은 곧 내 본심이라오 淸閒卽素心 그윽한 새는 여름 나무에 깃들이고 幽禽棲夏木 급한 시냇물은 바람숲을 들레누나 急澗鬧風林
푸른 하늘엔 종소리 끊어지고 碧落鐘聲斷 황혼엔 그림 벽이 깊숙하도다 黃昏畫壁深 시 짓는 재주 졸렬하여 부끄러워라 詩才愧蕪拙 하음에게 응수할 계책이 없네그려 無計答何陰
鬧
시끄러울 료,시끄러울 요,시끄러울 뇨,시끄러울 요 1. 시끄럽다 2. 지껄이다 3. 흐트러지다 4. 성하다(盛--: 기운이나 세력이 한창 왕성하다) 5. 난만하다(爛漫--: 꽃이 활짝 많이 피어 화려하다) 6. 함부로 a. 시끄럽다 (뇨) b. 흐트러지다 (뇨) c. 성하다(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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