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 경의 뜻을 읊은 시[經義詩] [1] 제7권 / 다산시문집

2016. 1. 14. 21:43

 

 

 

       시(詩) 경의 뜻을 읊은 시[經義詩] [1] 제7권 / 다산시문집

2011.01.19.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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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경에 대하여[詩] 5수
 
고인은 온갖 방도로 임금 마음을 바로잡아 / 古人百計格君心
장님이 외고 악관이 외어 소금에 올렸는데 / 矇誦工歌被素琴
국풍과 소아 대아까지 모조리 가져다가 / 全把國風兼二雅
곧장 임금 간하는 글로 간주하였네 / 直須看作諫書林

풍과 부와 비와 흥이 모두가 풍인데 / 風賦比興都是風
바른 말 하는 체재가 서로 같지 않아라 / 正言體裁不相同
육시를 평등하게 열거하여 조리가 없고 / 六詩平列無經緯
오언을 바칠 때는 공을 칭송하지 않도다 / 納五言時未頌功

기물(器物)에 새겨진 죄악의 사실들도 밉기만 한데 / 鼎彝紀惡尙堪憎
읊어주고 노래로 탄다면 왜 응징(膺懲)이 않되겠나 / 于誦于絃豈不懲
악기는 그대로 있으나 시도가 없어졌기에 / 樂器未遷詩道喪
춘추의 포폄이 이에 서로 이어졌다오 / 春秋袞鉞乃相承

화류가의 음란한 풍은 본디 노래도 없지만 / 猝邪淫冶本無歌
설령 노래가 있다 해도 채집하면 무엇하랴 / 設有謳唫采奈何
순 임금이 지방 순수할 땐 이 법이 없었으니 / 虞帝巡方無此法
누가 태산 모퉁이까지 시를 갖다 바치리오 / 獻詩誰到太山阿

소서가 대모 소모에게 전해 내려왔는데 / 小序傳流大小毛
위굉이 윤색한 건 다 더듬어 찾은 거로세 / 衛宏潤色總摸撈
자양이 벽파한 것은 참으로 호쾌하여라 / 紫陽劈破眞豪快
공자 이후 이천 년간에 견식이 가장 높았네 / 垂二千年隻眼高
 

 

[주D-001]장님이 …… 올렸는데 : 옛날에 장님은 임금 앞에서 규잠(規箴)이 되는 말을 외고, 악관(樂官)은 임금 앞에서 시(詩)를 외어 임금을 간(諫)했던 일을 이른 말이다. 소금(素琴)은 꾸미지 않은 거문고를 말한다.
[주D-002]육시(六詩) : 《시경(詩經)》의 육의(六義), 즉 풍(風)ㆍ부(賦)ㆍ비(比)ㆍ흥(興)ㆍ아(雅)ㆍ송(頌)을 이른 말이다.

 

[주D-003]오언(五言) : 인(仁)ㆍ의(義)ㆍ예(禮)ㆍ지(智)ㆍ신(信) 오덕(五德)에 맞는 말로, 즉 임금에게 간하는 말을 뜻한다.
[주D-004]소서(小序)가 …… 내려왔는데 : 소서는 자하(子夏)가 지었다는 《시경》의 각 편(各篇) 첫머리에《서경(書經)》과 같이 쓰여 있는 서문을 대서(大序)와 소서로 나눈 것을 이르는데, 대서와 소서의 구분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說)이 있다. 대모(大毛)는 《시경》의 훈고전(訓詁傳)을 지은 전국 시대의 모형(毛亨)을 말하고, 소모(小毛)는 모형의 훈고전을 전수한 한(漢) 나라 때의 모장(毛萇)을 말한다.

 

[주D-005]위굉(衛宏) : 후한(後漢) 때 사람으로《모시(毛詩)》를 전수받고 시서(詩序)를 더 윤색하였다 한다.
[주D-006]자양(紫陽)이 벽파한 것 : 자양은 주희(朱熹)의 호인데, 벽파했다는 것은 곧 주희가《시경》의 옛 훈고전들을 모두 합하여 취사선택을 가해서 집전(集傳)을 만들어 놓은 것을 가리킨 말이다.
 
 

 

2. 서경에 대하여[書] 5수
 
두림의 칠자상서를 굉순에게 전수하여 / 杜林漆序授宏巡
참다운 공벽 유서의 노맥이었는데 / 孔壁遺書路脈眞
이십팔 편을 고밀이 주해하였건마는 / 二十八篇高密注
정관 이후로 행해지지 않은 게 애석하구려
/ 貞觀以後惜沈淪

어떤 물건인지 간사한 무리 매중진이 / 何物姦徒梅仲眞
위순전 가우모로 사람을 퍽이나 속여서 / 僞舜假禹厚欺人
이십오 편을 모두 제멋대로 얽어냈는데
/ 二十五篇都撰了
고경의 글귀도 간혹 여기저기 섞이었었지 / 古經殘句或璘霦

홍문관의 학사요 오경의 스승으로서 / 弘文學士五經材
정의를 모두 칙지에 따라 찬술했는데
/ 正義皆經勅旨裁
청컨대 그대는 치의의 소를 취해 보게나 / 請君看取緇衣疏
한 조각 참다운 심정이 노출되었네
/ 一片眞情露出來

문체의 어렵고 순평함이 경위처럼 판연하여 / 文體艱平判渭涇
자양 부자의 혜안으로 분명하게 살폈는데 / 紫陽慧眼燭分明
전한 후한의 유림전을 엄격히 조사해 보면 / 嚴査兩漢儒林傳
말을 들어 보거나 기색을 살필 것도 없다오 / 不待辭聽又色聽

백 편에 대한 서문복생이 전수한 것을 / 百篇之序伏生傳
공벽보다 앞의 것이라고 반고가 말했어라 / 班固言之孔壁前
애석해라, 간악한 무리 파괴의 손을 만나 / 惜被姦徒離毁手
공자의 진본은 이미 사라져 버렸네그려 / 宣尼眞本已隨煙
 
[주D-001]두림(杜林)의 …… 전수하여 : 두림은 후한 때의 경학자이고, 굉순(宏巡)은 두림의 제자인 위굉(衛宏)과 서순(徐巡)을 합칭한 말인데, 두림이 일찍이 칠서(漆書)로 된《고문상서(古文尙書)》를 얻어 매우 소중히 간직해 오다가, 마침내 위굉ㆍ서순을 만나 그들에게 전수함으로써《고문상서》가 세상에 전해지게 되었다고 한다.《後漢書 卷27》
[주D-002]공벽 유서(孔壁遺書) : 한(漢) 나라 때 노 공왕(魯恭王)이 궁(宮)을 넓히기 위하여 공자(孔子)의 구택(舊宅)을 헐다가 그 벽(壁) 속에서 얻은 《고문상서(古文尙書)》ㆍ《예기(禮記)》ㆍ《논어(論語)》ㆍ《효경(孝經)》등을 가리킨다.

 

[주D-003]이십팔 …… 애석하구려 : 고밀(高密)은 후한(後漢)의 정현(鄭玄)이 고밀 사람이므로 그를 이르는데,《금문상서(今文尙書)》이십팔 편(二十八篇)에 대해서 정현이 일찍이 주해(註解)를 해 놓았으나, 당 태종(唐太宗) 정관(貞觀) 연간에 공영달(孔穎達)이 《상서정의(尙書正義)》를 지으면서 동진 원제(東晉元帝) 때 매색(梅賾)이 만든 《위공전(僞孔傳)》만을 오로지 채택하고, 정현의 주해에 대해서는 위작(僞作)이라고 단정하여 이를 배척해 버린 데서 온 말이다.
[주D-004]어떤 …… 얽어냈는데 : 매중진(梅仲眞)은 곧 매색(梅賾)을 가리킴. 중진은 그의 자. 그가 동진 원제에 바친《위공전》은 요전(堯典)ㆍ순전(舜典) 등에 서로 출입(出入)된 구절이 있었고, 위작(僞作)한 것이 모두 25편이었다고 한다.

 

[주D-005]홍문관(弘文館)의 …… 찬술했는데 : 당(唐) 나라 초기에 공영달(孔穎達)이 칙지(勅旨)를 받들어 여러 학사(學士)들과 함께 오경(五經)의 정의(正義)를 찬술한 것을 이른 말이다.
[주D-006]치의(緇衣)의 …… 노출되었네 : 치의는《예기》의 편명. 치의는 본디 정(鄭) 나라 시(詩)로서 어진 이 좋아하는 것을 노래한 것인데, 치의편의 소(疏)에서 공영달(孔穎達)은 “치의는 어진 이 좋아하기를 후히 함을 훌륭하게 여긴 것이다.” 하였다.

 

[주D-007]경위(涇渭) : 경수(涇水)는 흐리고 위수(渭水)는 맑으므로, 전하여 사물의 청탁시비를 비유한 말이다.
[주D-008]백 편(百篇)에 대한 서문(序文) : 한(漢) 나라 때 공안국(公安國)의 《고문상서(古文尙書)》 서(序)에 “상고의 글을 상서라 하는데, 백 편의 뜻을 세상에서 들을 수가 없다.[以其上古之書 謂之上書 百篇之義 世莫得聞]”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9]복생(伏生)이 전수한 것 : 복생은 곧 복승(伏勝)을 이름. 복승은 진 시황(秦始皇)이 분서(焚書)할 때 백 편의 상서를 벽 속에 감춰 두었다가 한 나라가 일어난 뒤에 이 글을 찾아보니, 다 없어지고 29편만 남았으므로 이를 가지고 후진을 가르친 결과, 구양생(歐陽生)ㆍ공안국 등에게 전수되었다 한다《漢書 卷88》
[주D-010]반고(班固)가 말했어라 : 반고의 《한서》에서 복생(伏生)이 고문상서를 구양생ㆍ공안국 등에게 전수한 사실을 기록한 것을 뜻한다.
 

 

 
3. 예경에 대하여[禮] 5수
 
지금의 홀기는 바로 옛날의 용경인데 / 今之笏記古容經
남은 글 십칠 편이 이 세상에 떨어졌네 / 十七殘篇此世零
아, 공벽의 고문은 워낙 알 수가 없으나 / 孔壁古文嗟未解
강성의 주석에서 혹 사실이 드러나기도 / 康成注內或相形

대부의 강복을 방기로부터 하는 것을 / 大夫降服自旁期
중용에 나오는 말과 어긋나지 않도다 / 斯與中庸義不違
다만 이 유비가 사상례를 수업했는데 / 只是孺悲受喪禮
생가는 또 후인들의 시에 섞여 나왔네 / 笙歌又雜後來詩

주례는 분명 낙읍을 정할 때에 나왔으니 / 周禮明生卜洛時
직방한 대문만 보아도 응당 알 수 있으리 / 職方一段覽應知
만일 동천한 뒤에 주례를 편찬했다면 / 若云編在東遷後
어떻게 분배하여 구기를 만들었겠는가 / 何得分排作九畿

동관을 굳이 백공으로 논할 것이 아니요 / 冬官未必百工論
장객과 사의 또한 문류가 다른 것일세 / 掌客司儀亦異門
가련하여라 매씨가 정한 동관 대문에선 / 可憐梅氏冬官節
천관 소재의 글을 검토하지 않았네그려
/ 不檢天官小宰文

예기는 또한 아득히 먼 옛날의 고경이라 / 禮記迢迢亦古經
한유가 수정한 건 워낙 일부분이거니와 / 漢儒修潤本零星
면재가 나누어 부친 것도 소략하여서 / 勉齋分附猶疏略
세밀함이 끝내 부응하기 어려워라
/ 細櫛終難副考亭
 
[주D-001]용경(容經) : 가의(賈誼)의 저서인《신서(新書)》의 편명인데, 내용은 곧 지(志)ㆍ용(容)ㆍ시(視)ㆍ언(言)ㆍ좌(坐)ㆍ행(行)ㆍ궤(跪)ㆍ배(排) 등에 있어 동작 절도(動作節度) 등의 법칙에 관하여 서술한 것이다.
[주D-002]남은 …… 편 : 한(漢) 나라 초기에 노(魯)의 고당생(高堂生)이 진화(秦火)에 타다 남은 예경(禮經) 17편을 전수함으로써 뒤에 대덕(戴德)ㆍ대성(戴聖)에 이르러 대대적으로 전(傳)이 편찬되었다 한다.《漢書 卷88》

 

[주D-003]강성(康成) : 후한 때의 경학자로《예기》등의 주석을 낸 정현(鄭玄)의 자이다.
[주D-004]대부(大夫)의 …… 것 : 강복(降服)은 자신이 입어야 할 상복(喪服)에 대하여 한 등급을 내려 입는 것을 말하고, 방기(旁期)는 곧 방계 족친(旁系族親)으로서 기년복(期年服)에 해당하는 상복을 뜻한다.

 

[주D-005]중용(中庸)에 나오는 말 : 《중용(中庸)》 18장에 “기년상은 대부에까지 미친다.[期之喪達乎大夫]” 한 데 대하여, 그 주석에 의하면, 대부(大夫)의 방친(旁親)으로 기년복을 입어야 할 자리에 대해서는 한 등급을 내려 대공복(大功服)으로 입는 것을 이른 말이라고 하였다.
[주D-006]유비(孺悲)가 사상례를 수업했는데 : 유비는 노 애공(魯哀公)의 신하 이름인데, 휼우(恤由)라는 사람의 초상 때에 애공이 유비를 시켜 공자(孔子)에게 가서 사상례(士喪禮)을 배워 오게 했던 데서 온 말이다.《禮記 雜記》

 

[주D-007]생가(笙歌)는 …… 나왔네 : 생가는 생황을 연주하며 노래하는 것을 이름.《예기(禮記)》 단궁(檀弓)에 의하면, 공자가 일찍이 대상(大祥)을 마친 10일 후에야 생가가 제대로 되었다고 하였으므로, 여기서는 곧 후인(後人)들 역시 즐거운 일에 생가를 사용하였음을 이른 말인 듯하나, 자세하지 않다.
[주D-008]낙읍(洛邑)을 정할 때 : 주 성왕(周成王) 때 주공(周公)이 낙읍에다 왕성(王城)을 경영했던 것을 이른 말이다.

 

[주D-009]직방(職方) : 《주례》의 편명인 직방씨(職方氏)의 준말이다.
[주D-010]동천(東遷) : 주 유왕(周幽王)이 견융(犬戎)에게 살해된 뒤에 그의 아들인 평왕(平王)이 동쪽 낙읍으로 왕도(王都)를 옮긴 일을 가리킨다.

 

[주D-011]구기(九畿) : 주대(周代)에 왕기(王畿)를 사방 천 리(四方千里)로 하고, 그 주위를 전후좌우로 각각 5백 리마다 일기(一畿)로 구획하여, 후복(侯服)ㆍ전복(甸服)ㆍ남복(男服)ㆍ채복(采服)ㆍ위복(衛服)ㆍ만복(蠻服)ㆍ이복(夷服)ㆍ진복(鎭服)ㆍ번복(藩服)으로 한 것을 말한다.《周禮 職方氏》
[주D-012]동관(冬官)을 …… 아니요 : 동관은 주(周) 나라 때 육관(六官)의 하나로 토목(土木)ㆍ공작(工作) 등의 일을 맡은 관직명인데, 그 일이《주례(周禮)》 동관노공기(冬官考工記)에 적혀 있다. 그러나 그 유래를 살펴보면, 한무제(漢武帝) 때 어느 이씨(李氏) 여인이《주례》를 얻어 하간헌왕(河間獻王)에게 바쳤는데, 그 가운데 동관(冬官) 1편이 빠졌으므로, 하간헌왕이 천금을 걸고 이를 구했으나 얻지 못하여, 마침내 고공기(考工記)를 취해다가 그 빠진 부분을 보충해서 도합 6편으로 만들어 나라에 바쳤었기 때문에, 여기서는 곧 이 일을 가지고 동관 고공기를 신임할 수 없다는 뜻에서 한 말이다.

 

[주D-013]장객(掌客)과 …… 것일세 : 주 나라 때 장객과 사의(司儀)는 모두 빈객에 관한 일들을 맡은 관명(官名)인데, 여기서는 이들이 법 집행을 맡은《주례(周禮)》 하관(夏官) 소사구(小司寇)에 편입되었기 때문에 한 말인 듯하다.
[주D-014]가련하여라 …… 않았네그려 : 여기서 말한 매씨(梅氏)는 바로 《위공전(僞孔傳)》을 지어 올린 진(晉)의 매색(梅賾)을 가리킨 듯한데, 여기서 말한 이《주례》동관에 대해서는 자세하지 않다.

 

[주D-015]면재(勉齋)가 …… 어려워라 : 면재는 주희(朱熹)의 사위이며 제자인 황간(黃幹)의 호이고, 고정(考亭)은 주희의 호이다. 주희가 일찍이 예서(禮書)를 편찮하였다가 상례(喪禮)ㆍ제례(祭禮) 두 편을 황간에게 맡겨 이를 완성하게 하였었다.《宋史 卷430》
 
 

 

4. 악경에 대하여[樂] 5수
 
주 나라 노래 곡조는 한 나라 때도 있었으니 / 周歌曲折漢猶存
노고의 방원이 설고와는 구분이 있었네 / 魯鼓方圓薛有分
대무의 육성은 대략 상고할 수가 있으나 / 大武六成粗可考
그 나머지 고악은 전혀 흔적도 없다오 / 之餘古樂蕩無魂

육률은 율마다 각각 오성을 갖추었기에 / 六律各具一五聲
소리마다 음양이 있어 율이 이뤄지는데 / 聲有陰陽律以成
굳이 오성을 가져다 육률에 배합했으니 / 剛把五聲爲六律
오종은 마냥 묵묵해라 어느 때나 울릴런고 / 五鐘常啞幾時鳴

추생이 율을 불었다는 건 근거 없는 말이니 / 鄒生吹律說憑空
화악과 환궁 두 쪽에 다 통하지 않는구려 / 龢樂還宮兩不通
주구의 무역에 관한 설이 있음을 힘입어 / 賴有州鳩無射說
육평과 삼기를 비로소 깨치게 되었네
/ 六平三紀始開蒙

양적과 회남은 법이 본디 차이가 있어 / 陽翟淮南法本差
종과 율의 분수의 샘만 공연히 많아라 / 鐘分律數算空多
장가들어 자식 낳는단 건 부질없는 일이라 / 娶妻生子渾閒事
가기만 하고 안 돌아오는 너를 어찌하랴 / 有往無還奈汝何

관씨의 궁음은 한가운데에 두어서 / 管氏宮音建在中
삼분손익에 따라서 오성이 끝나나니 / 三分損益五聲終
이를 십이율에 옮기면 어찌 합할 수 있으랴 / 移之十二烏能合
양지와 삼천을 합한 게 바로 육동이라오 / 兩地參天是六同
 
[주D-001]노고(魯鼓)의 …… 있었네 : 노고는 노 나라의 북이고, 설고(薛鼓)는 설 나라의 북이며, 방원(方圓)은 북을 칠 때에 음절(音節)을 기록하는 부호(符號)인데, 예를 들면 고(鼓)를 칠 때에 음절은 방(方 □)으로 표시하고 비(鼙)를 칠 때의 음절은 원(圓 ○)으로 표시한 것을 뜻한다. 노고와 설고의 구분은 곧 음절이 서로 길고 짧고 한 데에 있었다.《禮記 投壺》
[주D-002]대무(大武)의 육성(六成) : 대무는 무왕(武王)의 음악을 말하고, 육성은 여섯 단계로 무악(舞樂)을 연주하는 것을 이른 말로, 자세한 것은 《예기(禮記)》 악기(樂記)에 나타나 있다.

 

[주D-003]육률(六律)은 …… 갖추었기에 : 육률은 십이율(十二律) 중의 양음(陽音)에 속하는 황종(黃鐘)ㆍ태주(太簇)ㆍ고선(姑洗)ㆍ유빈(蕤賓)ㆍ이축(夷則)ㆍ무역(無射)을 말하고, 오성(五聲)은 곧 궁(宮)ㆍ상(商)ㆍ각(角)ㆍ치(徵)ㆍ우(羽) 오음(五音)을 말한다.
[주D-004]오종(五種) : 청종(靑鐘)ㆍ적종(赤鐘)ㆍ황종(黃鐘)ㆍ경종(景鐘)ㆍ흑종(黑鐘)을 말하는데, 여기서는 이 또한 오음의 뜻으로 쓰인 듯하다.

 

[주D-005]추생(鄒生)이 율을 불었다 : 추생은 전국 시대 제(齊) 나라 추연(鄒衍)을 이르는데, 그가 연 혜왕(燕惠王)을 섬길 적에 혜왕이 다른 신하의 참소하는 말을 믿고 그를 하옥시키자 때아닌 5월에 서리가 내렸고, 또 북방은 기후가 차서 오곡(五穀)이 자라지 못했는데, 그가 율(律)을 불어 기후를 다습게 하자 벼와 기장이 자랐다고 한 데서 온 말이다.《列子 湯問》
[주D-006]화악(龢樂)과 …… 않는구려 : 화악은 오음(五音)을 가지고 악곡(樂曲)을 조율시키는 것을 말한 것으로, 《국어(國語)》 주어(周語)에 “오성으로 악을 고르고 율로써 오성을 균평하게 한다.[聲以龢樂 律以平聲]” 한 데서 온 말이고, 환궁(還宮)은 《예기(禮記)》 예운(禮運)에 “오성과 육률과 십이율관은 돌아가면서 서로 궁이 된다.[五聲六律十二管還相爲宮]”고 한데서 온 말이다.

 

[주D-007]주구(州鳩)의 …… 되었네 : 주구는 주 경왕(周景王)의 악관(樂官) 이름. 주 경왕이 무역종(無射鐘)을 만들면서 악관 주구에게 율려(律呂)에 대하여 물으니, 주구가 대답하기를 “옛날 신고(神瞽 천도(天道)를 알았던 옛 악정(樂正)이라고 함)가 중화(中和)의 성음을 합하여 이를 헤아려서 음악을 만들어, 율려의 장단(長短)을 재서[度] 종소리를 화평하게 골라 백관(百官)의 법칙으로 삼고, 삼(三 천신(天神)ㆍ지기(地祇)ㆍ인귀(人鬼))으로써 회합시키고 육(六 육률)으로써 균형있게 하였으며 십이율에서 완성하였으니,[紀之以三 平之以六 成於十二] 이것이 곧 천도(天道)이다.”고 했던 데서 온 말이다.《國語 周語》
[주D-008]양적(陽翟)과 회남(淮南) : 양적은 양적대고(陽翟大賈) 여불위(呂不韋)를 가리킨 것으로, 전하여 여불위의 저서인《여씨춘추(呂氏春秋)》를 말하고, 회남은 곧《회남자(淮南子)》를 가리킨 말인데,《여씨춘추》와 《회남자》에는 악률(樂律)에 관한 설들이 있다.

 

[주D-009]장가들어 …… 건 : 양(陽)인 율(律)이 음(陰)인 여(呂)와 교합하여 아들을 낳는다는 뜻으로, 즉 삼분손익(三分損益)의 법칙에 따라, 양률이 음률을 낳을 때는 하생(下生)이라 하여 3분의 1을 덜어 주고, 을률이 양률을 낳을 때는 상생(上生)이라 하여 3분의 1을 더해 주는데, 예를 들면 황종(黃鐘)의 길이가 9촌인 경우, 황종이 임종(林鐘)을 낳는 것은 하생이 되어 임종의 길이가 6촌이 되고, 임종이 태주(太簇)를 낳는 것은 상생이 되어 태주의 길이가 8촌이 되는 유로써 서로 생(生)하는 것을 말한다.

 

[주D-010]관씨(管氏) : 누구인지 자세하지 않다.
[주D-011]양지(兩地)와 …… 육동(六同)이라오 : 양지는 지수(地數)인 2를 말하고 삼천(參天)은 천수(天數)인 3을 말한 것으로, 지수 2와 천수 3을 서로 곱하면 6이 된다. 그리고 육동은 십이율 가운데 음성(陰聲)에 속한 여섯 가지 소리, 즉 육려(六呂)를 달리 이른 말이다.
 
 

 

5. 역경에 대하여[易] 5수
 
옛날에 주석을 낸 사람이 삼십삼 인인데 / 古箋三十有三家
집해에서 혹 덜 걸러진 것도 있기는 하나 / 集解淘金或見沙
이것이 바로 우리 집 세전의 유물이기에 / 此是靑氈舊遺物
열 겹으로 단단히 싸고 한번 만져 보노라 / 十回扃鏁一摩挲

승강왕래는 속일 수 없는 일이거니와 / 升降往來不可誣
우양견시는 어찌 공연히 붙인 말이리오 / 牛羊犬豕豈徒呼
삼성의 남긴 글을 땅에 떨어뜨리어라 / 三聖遺文屬墜地
이름난 가문에 이런 목저노가 나왔네그려 / 名門生此牧猪奴

획이 변하고 괘가 변한 걸 효라고 하는데 / 劃動卦變是名爻
채묵으로 용얘기하며 강교에 있었네 / 蔡墨談龍在絳郊
획으로 효를 만들어 탑처럼 쌓아올려라 / 以劃爲爻壘似塔
복희씨가 죽었으니 다시 누가 조롱을 할꼬 / 庖犧沒矣更誰嘲

재윤은 시초점에 없을 수가 없거니와 / 再閏蓍家不可無
중부와 소과는 묘하게 추기를 돌리도다 / 中孚小過妙旋樞
대연수 오십에 대해선 설들이 분분하지만 / 大衍五十紛紛說
손꼽아 보니 이제는 부절을 맞춘 듯하구려 / 屈指如今似合符

선천괘의 도획이 희주에 이르기까지 / 先天圖劃薄姬周
순역의 안배를 놓고 지척을 시름했는데 / 順逆安排咫尺愁
일찍이 왕자합에게 편지 한 장 수답한 데서 / 一紙會酬王子合
회옹의 정론이 천추에 빛나는구려
/ 晦翁定論照千秋
 
[주D-001]승강왕래(升降往來) : 《주역(周易)》에서 말하는 천지음양(天地陰陽)의 영허(盈虛)ㆍ소식(消息)과 승강ㆍ왕래하는 이치를 이른 말이다.
[주D-002]우양견시(牛羊犬豕) : 《주역》계사(繫辭)에 “곤괘는 소이고 감괘는 돼지이고 간괘는 개이고 태괘는 양이다.[坤爲牛 坎爲豕 艮爲狗 兌爲羊]” 한 데서 온 말로, 이것은 곧 동물(動物)에서 괘상(卦象)을 취한 것이다.

 

[주D-003]삼성(三聖) : 여기서는 곧 《주역》을 찬한 세 성인으로, 복희씨(伏羲氏) ㆍ주 문왕(周文王) ㆍ공자(孔子)를 이른 말이다.
[주D-004]목저노(牧豬奴) : 돼지나 소를 먹이는 무식한 사람이라는 뜻으로 쓰인 말이다.

 

[주D-005]채묵(蔡墨)으로 …… 있었네 : 채(蔡)는 거북을 말한 것으로, 채묵은 바로 거북점을 칠 적에 거북껍데기에 먹으로 획을 그은 다음 이를 태워서 길흉(吉凶)을 점치는 것을 말한다. 강교(絳郊)에 있었다는 것은 한(漢) 나라 때 《주역》을 모방하여 《태현경(太玄經)》을 저술한 양웅(揚雄)이 바로 강주 지역인 하수(河水)ㆍ분수(汾水) 사이에서 학자들을 교수(敎授)하였기 때문에 곧 그를 가리킨 말인 듯하나 자세하지 않다.
[주D-006]재윤(再閏)은 …… 없거니와 : 재윤은 5년 동안에 윤월(閏月)이 두 번 드는 것을 말하는데, 시초[蓍]로 점을 칠 적에 대연수(大衍數) 50에서 49를 사용하되 맨 처음 이를 둘로 나누어 천지(天地)를 본뜨고, 하나를 걸어 삼재(三才)를 본뜨고, …… 남은 수를 손가락 사이에 끼워 윤월을 본뜸으로써 5년 만에 다시 윤월이 들게 되는 데서 온 말이다.《周易 繫辭》

 

[주D-007]중부(中孚)와 …… 돌리도다 : 중부의 괘상(卦象)은 ‘’으로서 이음(二陰)이 안에 있고 사양(四陽)이 밖에 있으며, 소과(小過)의 괘상은 중부괘와 정반대로 ‘’ 이렇게 되어 있어 사음이 밖에 있고 이양이 안에 있는데, 자세한 것은 본 괘사(卦辭)를 참조.
[주D-008]대연수(大衍數) …… 분분하지만 : 대연수란 천수(天數) 25와 지수(地數) 30을 합친 55에서 그 대수(大數) 50을 말한 것인데, 실제로 점을 칠 때에는 이 50에서 다시 하나를 빼고 49만을 사용하게 되어 있는바, 이에 대하여 역대에 걸쳐 왕필(王弼)ㆍ경방(京房)ㆍ마융(馬融)ㆍ정현(鄭玄) 등 수많은 경학자들의 개인적인 학설이 분분했음을 이른 말이다.《周易 繫辭》

 

[주D-009]선천괘(先天卦)의 …… 빛나는구려 : 희주(姬周)는 희성(姬姓)인 주 문왕(周文王)을 이름. 송(宋) 나라 때 소옹(邵雍)이《주역(周易)》에 관하여 복희씨(伏羲氏)의 선천괘위도(先天卦位圖)와 주 문왕의 후천괘위도(後天卦位圖)를 작성하였는데, 주희(朱熹)의 문인인 왕우(王遇 자가 자합(子合)임)가 주희에게 팔괘(八卦)의 방위(方位)에 대해서 묻자, 주희의 답서에 “강절(康節 소옹의 시호)의 말에 ‘복회씨의 팔괘로 말하면 건(乾)의 위치는 본디 남쪽에 있고, 곤(坤)의 위치는 본디 북쪽에 있었던 것인데, 문왕이《주역》을 거듭 정할 적에 이 방위를 바꾸었다.’고 하여 그 설이 매우 많으나, 대개는 견강부회와 천착에 가깝기 때문에 나는 일찍이 거기에 깊이 유의하지 않았으니, …… 이것을 의당 빼 버려야 할 것이요 굳이 억지로 통하려고 할 것이 없다.”고 한 데서 온 말이다.《朱子大全 卷49 答王子合》
 
 

 

6. 춘추에 대하여[春秋] 5수
 
한 글자 엄히 벌 줌과 한 글자 포양함을 / 一字嚴誅一字褒
선유들이 여기에서 털끝을 다투었는데 / 先儒到此競毫毛
이제 와서 서로 비례하여 바로잡아 보면은 / 如今比例相讐校
똑같은 죄와 공이 경우에 따라 달라졌네 / 同罪同功異所遭

민공은 하시를 쓰고 예는 주 나라를 따르되 / 民功用夏禮周正
왕이란 글자 표시 없고 달도 분명치 않네 / 王字無標月不明
이것이 곧 사가의 관례에 따른 필법인데 / 此是史家隨例筆
존왕의 대의는 문왕을 따라 나왔다오 / 尊王大義逐文生

정원에 수조한 것은 당우 때부터였는데 / 正元受祖自唐虞
유고공의 금년에도 이 예는 똑같거늘 / 有故今年此禮俱
어찌 즉위를 기록하지 않을 수 있으랴
/ 卽位不書寧有是
후일 적을 벌 주는 데 관계될 것도 아니라오 / 非關他日賊將誅

진이 처음 납하지 않았단 글을 못 보았나니 / 未見秦初不臘文
불경과 서장은 또한 말할 것도 없다오 / 不更庶長且休云
진완과 필만에 대하여 포장시킨 말들은 / 陳完畢萬鋪張說
끝내 운옹의 혜안에 분간이 되고 말았네
/ 終被雲翁慧眼分

간책엔 원래 춘추에 주가 달리지 않았고 / 策書元不註春秋
공곡이 먼저 냈으니 누가 압두를 하리오 / 公穀先行孰壓頭
유가가 중간에 교활한 행위를 부렸지만 / 劉賈中間逞狡獪
경 해석하는 문구를 어찌 다른 데서 구하랴 / 解經文句豈他求

   용문산(龍門山)의 본명은 미지산(彌智山)이고 용문은 그 절의 명칭이다. 경기도 내의 여러 산들이 모두 산맥이 고단하고 지맥도 짧아서, 충만하고 깊고 웅장한 기운이 없다. 그런데 오직 용문산의 됨됨이는 크고 두텁고 중첩하여 동부가 매우 깊어서 그 암석은 여기저기에 모아져 있고 물은 여기저기서 쏟아져 내리어, 비록 기이하고 가파르고 정밀하게 빼어난 장관은 없으나 요컨대 모두 뼈와 살이 골고루 분포되고 재덕이 겸전하여, 교묘하기로 말하면 너무 교묘하거나 흐리멍덩하기로 말하면 너무 흐리멍덩한 금강산이나 덕유산과는 같지 않다. 그러므로 산을 아는 이들이 이 산을 귀하게 여긴다. 나의 집은 열수(洌水) 가에 있으므로 동쪽으로 수 리(數里)만 나가면 용문산의 한두 봉우리가 벌써 보인다. 그런데 내가 젊어서는 일이 많았고 중년에는 떠돌아다녔으며 이미 돌아온 뒤에는 노쇠하고 또 병들어 마음대로 유람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이미 돌아온 다음 해인 기묘년 가을에 사천사(斜川寺)에서 놀고 절벽 위의 수월암(水月菴)을 경유하여 마침내 백운봉(白雲峯)에 올랐으니 여기가 바로 용문산 남쪽의 절정인 것이다. 또 때로 벽계(檗谿)의 동점(銅店)에서 노닐곤 했는데 여기도 용문산의 서쪽 기슭이다. 금년 가을에 재차 용문산에서 노닐었는바, 구월 십오일에 용문사에서 자고 그 다음날은 봉황대(鳳凰臺)에서 놀다가 돌아왔는데, 두 해 동안 경력한 곳이 용문산 승경의 절반도 되지 않는다. 그러나 근력이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억지로 더할 수도 없다. 그러니 설암사(雪菴寺)와 상원사(上院寺)의 그윽한 경치나 윤필사(潤筆寺)와 죽장사(竹杖寺)의 험준한 경치에 대해서는 마치 재물을 아끼는 자가 재물을 절약하여 쓰듯이 우선 내년을 기다리기로 하노라.
 

 

[주D-001]민공(民功)은 …… 따르되 : 민공은 백성들의 농사일을 말하고, 하시(夏時)는 인월(寅月)을 세수(歲首)로 삼은 하(夏) 나라의 역(曆)을 말한다.
[주D-002]정원(正元)에 …… 때부터였는데 : 정원은 정월 초하루를 말하고, 수조(受祖)는 임금 자리를 종묘(宗廟)에서 선위받는다는 뜻으로, 정월 초하룻날에 요(堯) 임금이 그만둔 천자(天子)의 자리를 순(舜) 임금이 종묘에서 선위받았던 일을 이른 말이다.《書經 舜典》

 

[주D-003]유고공(有故公)의 …… 있으랴 : 여기서 유고공은 바로 노 정공(魯定公)을 이름. 노 소공(魯昭公)이 건후(乾侯)에 있다가 지난해에 객사(客死)하여 금년 6월에야 시신이 노나라에 들어왔으므로, 춘추(春秋) 경문(經文)에서 정월 즉위(正月卽位)를 쓰지 않았는데,《곡량전(穀梁傳)》에서 정공에게 정월 즉위를 쓰지 않은 것은 곧 소공의 상차가 아직 밖에 있어 유고(有故)한 임금이기 때문이었다고 해석한 데서 온 말이다. 자세한 것은《곡량전(穀梁傳)》 정공(定公) 원년(元年)에 보인다.
[주D-004]진(秦)이 …… 보았나니 : 진 혜문군(秦惠文君) 12년에 처음으로 납제(臘祭)를 거행하여 그 후로 여러 대(代)를 이어 오다가 진 시황(秦始皇) 31년 12월에 이르러서는 이름을 ‘가평(嘉平)’으로 바꾸었다.《史記 秦本記, 秦始皇本記》

 

[주D-005]불경(不更)과 서장(庶長) : 모두 진(秦) 나라 때의 작위(爵位)의 이름이다.
[주D-006]진완(陳完)과 …… 말았네 : 운옹(雲翁)은 호가 운곡노인(雲谷老人)인 주희(朱熹)를 이르는데, 주희의《자치통감강목(資治通鑑綱目)》에 의하면, 진완은 진 공자 완(陳公子完)으로서 처음 제(齊) 나라에 망명하여 환공(桓公)을 섬겨 경(卿)이 되고 뒤에 전(田)으로 성을 바꾸었는데, 그의 11세손인 전화(田和)가 끝내 제 나라를 찬탈하였고, 필만(畢萬)은 본디 필공고(畢公高)의 후예로서 진 헌공(晉獻公)을 섬겨 맨 처음 위(魏)에 봉해졌고, 그 후손은 진(晉)의 경(卿)이 되었고, 또 그 후손에서 끝내 위 문후(魏文侯)가 나와서 위나라를 차지하게 되었다는 내용이 기재되어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 진완과 필만을 포장시켰다는 것은 곧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에서 진완과 필만의 세가(世家)를 기술하는 가운데, 점을 쳐 본 결과 후손이 크게 될 것이라든지, 또는 후손이 반드시 나라를 가지게 될 것이라든지 하여, 마치 그들이 왕기(王氣)를 타고난 인물들인 양 우상화한 것을 가리킨 말이다.《史記 魏世家. 田敬仲完世家》, 《資治通鑑綱目 卷1》

 

[주D-007]공곡(公穀) : 《춘추》에 주(註)를 낸 공양고(公羊高)와 곡량적(穀梁赤)을 합칭한 말인데, 이들의 주해는 특히《춘추》의 경문(經文)에 매우 충실했다고 한다.
[주D-008]유가(劉賈) : 전한(前漢) 때의 경학자(經學者)인 유향(劉向)과 후한 때의 경학자인 가규(賈逵)를 합칭한 말인데, 이들은 특히《좌씨전(左氏傳)》을 매우 숭상하여 강론과 저술을 많이 하였으므로 이른 말이다.
 
 

 

7. 양근의 도중에서 짓다[楊根道中作] 경진년 가을
 
술 싣고 산구경하는 그 맛이 가장 좋아라 / 載酒看山味最長
하늘 높은 가을에 관습대로 치장을 했는데 / 高秋按例一治裝
앞길은 더 이상 험난한 곳이 없거니와 / 前程定復無奇險
소의 등에는 서풍이 진종일 서늘하구려 / 牛背西風盡日涼

폭건은 바람에 날리고 하늘은 기다란데 / 幅巾風颺野天長
동복의 산자 어깨엔 나그네 행장 메었네 / 山字僮肩荷客裝
내 몸은 서희 산수화 속의 경치가 되었는데 / 身作徐熙畫中景
작은 다리 단풍잎에 저녁 그늘 서늘하구려 / 小橋黃葉夕陰涼

그늘진 울타리 둘렀어라 수촌은 기다란데 / 夕陰籬柵水村長
일찍이 채색 그림을 화가가 그리었었지 / 罨畫曾經妙手裝
날 저물어 또 투숙할 장소를 구하는데 / 日盡且求投宿處
갈대꽃에 바람 급하고 기러기 소리 처량해라 / 荻花風緊雁聲涼
 

 

[주D-001]
산자(山字) 어깨 :
사람의 양쪽 어깨가 목과 합하여 산(山) 자 모양이 되기 때문에 이른 말이다.
 
 
8. 죽절령(竹節嶺)
 
따스한 햇살 농가에 비추어라 / 旭日照田家
문 앞엔 누런 송아지가 서 있네 / 門前黃犢立
서리 아침에 다시 길을 떠나서 / 霜朝復行邁
산 가까워지자 마음 더욱 급하여라 / 近山情更急
좁은 길로 죽절령을 지나노라니 / 徑由竹節嶺
산의 향기가 적삼에 오르누나 / 翠微覺衫裛
가을 산봉우리는 옥같이 맑아서 / 秋峯凈如玉
온화한 기상을 흡수할 만한지라 / 顔色溫可挹
저절로 마음이 편안하고 즐거워 / 自然心怡愉
도도한 정이 조급하기만 하구려 / 滔滔如不及
마치 도 닦은 사람을 만나듯이 / 似逢修潔人
덕스런 용모에 흠뻑 훈습되어 / 德容藹薰襲
우러러보며 다시 그 길을 가노니 / 仰止復行止
끝내는 그곳을 들어가게 되리라 / 庶幾終相入
 
 
9. 선령(船嶺)
 
지평 고을은 뭇 산이 둘러싸서 / 砥縣群山囿
이 고개가 바로 문이 되었는데 / 此嶺作門闥
산이 갈수록 깊다고만 생각했을 뿐 / 只謂山更深
냇빛의 광활함을 어찌 뜻하였으랴 / 豈意川光豁
절벽에 올라 깊은 못을 내려다보니 / 絶壁頫滙潭
슬픈 바람이 백발을 흩날리누나 / 悲風動衰髮
뭇 구렁은 용문산으로 기울고 / 衆壑傾龍門
계곡 물은 한데 모여 깊고 넓어라 / 奔流聚漻㵧
소 발굽은 또 나는 듯이 달리어 / 牛蹄復如飛
바람 일으키며 나무 끝을 가누나 / 颯颯行木末
이 몸은 항상 스스로 한가롭거니 / 此身常自閑
그윽한 경치 찾는 걸 누가 막으랴 / 幽探復誰遏
일찍이 노 나라 늙은이가 급급하게 / 嘗疑魯中叟
천하를 두루 다닌 걸
의심했나니 / 轍環乃如渴
슬프도다, 산 아래 오두막에서 / 哀哉山下屋
세모는 되었는데 어떻게 살아갈거나 / 歲暮何以活
 

 

[주D-001]
노(魯) 나라 …… 걸 :
노나라 늙은이는 곧 공자(孔子)를 이르는 말로, 공자가 세상에 도(道)를 행하기 위하여 일생 동안 천하를 두루 돌아다녔던 일을 말한다.
 
 
10. 당숙부의 산거에 대하여 거년에 지은 시운을 차하다[堂叔父山居次韻去年之作]
 
숙부께서 은거하시는 집은 / 叔父幽棲處
용문산이 집 뒤에 푸르른데 거년에 지은 시에는 “숙부가 은거하시는 곳엔 용문산이 문 앞에 푸르도다[叔父幽棲處 龍門對戶靑]” 하였는데, 지금 보니 그렇지 않으므로 이렇게 고친 것이다. / 龍門屋背靑
뜨락엔 태고 적의 눈이 보이고 / 庭瞻太古雪
처마에는 소미성이 비추이누나 / 檐照少微星
서울 부인이 농촌에서 늙어 가고 / 京婦田家老
어진 사람이 초야에 떨어졌는데 / 賢人草野零
좋은 산은 천만 겹이나 되건만 / 好山千萬疊
모정 하나 지을 땅도 없구려 / 無地起茅亭
 
[주D-001]소미성(少微星)이 비추이누나 : 처사(處士)가 있는 곳을 뜻함. 소미성이 처사의 위치에 있다 하여 이른 말이다.
 

 

 

[출처] 시(詩) 경의 뜻을 읊은 시[經義詩] [1]|작성자 새오늘

http://sambolove.blog.me/150101140780

- 블로그 미 <다산을 찾아서> 새오늘 님의 자료 중에서 전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