茶山의 梅鳥圖, 또 다른 한 폭

2016. 1. 27. 20:13美學 이야기


   


 茶山의 梅鳥圖, 또 다른 한 폭 | 내 맘대로 그림 읽기 

            

알래스카 2011.03.11 15:30
http://blog.daum.net/wongis/7087894               


 

 

1810년 두릉에서 다산초당으로 편지와 함께 치마가 배달되었다.

빛바랜 낡은 치마, 아내가 시집올 때 입었던 옷, 어언 34년, 떨어져 산 세월이 어느덧 10년이다.

다산 정약용(1762~1836)은 보기와달리 곰살궂은 데가 있었다.

친한 벗과 제자를 위해 낡아 헤진 천을 잘라 멋진 글과 글씨를 써서 예쁜 첩으로 만들어 선물하곤 했다.

가위로 잘래내서 배접하고 공책을 만드니 세 책이 되었다.

두 아들에게 줄 훈계의 말을 적기로 한다. 이른바「하피첩(霞피帖)」세 권이다.

하피첩을 만들고도 자투리 천이 남았다.

3년 뒤에 이 자투리 천 조각에 시집간 딸을 위해 매조도(梅鳥圖) 한 폭을 그려주기로 한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펄펄 나는 저 새가 내 뜰 매화에 쉬네  

       꽃다운 향기 매워 기꺼이 찾아왔지.

       머물러 지내면서 집안을 즐겁게 하렴 

       꽃이 활짝 피었으니 열매도 많겠구나.

 

 

아래 위 두 겹으로 매화 가지가 가로 걸렸다. 아랫쪽 가지에 멧새 두 마리가  엇갈려 앉았다.

이 그림은 구도와 묘사가 빼어날 뿐만 아니라 그 안에 담긴 부정이 뭉클한 감동을 준다. 

2009년 6월, 다산의 매조도 한 폭이 새롭게 공개되었다.

글씨도 그림도 영락없는 그의 솜씨다.

자투리 천이 더 남았던 것일까? 구도도 비슷하고 크기도 똑같다.

그런데 새를 한 마리만 그렸다. 두 그림은 셋트다.

누구에게 그려준 그림일까?

 




  

 

 

  

     묵은 가지 다 썩어서 그루터기 되려더니 

     푸른 가지 뻗더니만  꽃을 다 피웠구려.

     어디선가 날아온 채색 깃의 작은 새 

     한 마리만 남아서 하늘가를 떠돌리.

 

 

해묵은 가지가 다 썩어 둥치만 남았다.

그런데 다 죽은 줄 알았던 둥치에서 푸른 가지가 쭉 뻗어 나오더니 꽃가지를 활짝 피우는 것이 아닌가.

기쁨은 그 뿐이 아니다. 채색 깃을 지닌 작은 새 한 마리 날아들어 꽃가지에 앉은 것이다.

 

 

다산은 초당 생활 중에 얻은 소실에게서 홍임(弘任)이란 딸을 두었다.

딸을 시집 보내고 그림과 시를 보내준 뒤 잇달아 딸을 얻었던 것이다.

당시 다산은 해배의 명령이 내려진 상태라 집행통보만 기다리고 있었다.

얼마 안 있어 내가 이곳을 떠나게 되면, 저 어린 것이 여기 혼자 남아 하늘가를 맴돌며 울겠지.

그 생각을 하니 마음이 짠해서 갓 태어난 딸을 위해 똑같은 크기의 그림 한 폭을 더 그렸던 것이다.

 

후일담이 있다.

정작 다산의 해배는 위 그림을 그리고 나서도 5년이 지난 1818년에 이루어졌다.

두릉으로 돌아오면서 다산은 홍임 모녀를 함께 데려왔던 듯하다.

하지만 모녀는 두릉에 머물지 못하고 다산초당으로 쫒겨 내려왔다.

다산이 아들에게 준 편지에서 "네 어머니의 속이 좁다"고 탄식한 일도 있고 보면 앞 뒤 사정이 그려진다.

남편을 유배지로 떠나보낸 후 갖은 뒷바라지에 지쳐버린 아내를 납득시킬 수는 없었을 것이다.

 


소실 정씨와 딸 홍임의 사연은 지은이를 알 수 없는 「남당사(南塘詞)」절구 16수에 절절이 남아있다.

 

딸의 총명함이 제 아비와 똑같아서

아비 찾아 울면서 왜 안 오냐고 묻는구나.

한나라는 소통국도 속량하여 왔다는데

무슨 죄로 아이 지금 또 유배를 산단 말가.

 

흙나무의 마음인가 돌사람이란 말가

고금을 통틀어서 마침내 짝 없으리.

깨진 거울 둥글게 될 가망이야 없다 해도

그대 집 父子 은정 차마 어이 끊을까.

 

그녀의 목소리에는 이미 원망이 깊다. 어찌 이럴 수가 있는가?

우리 두 사람이 다시 만나 깨진 거울을 다시 둥글게 하는 것은 바라지도 않겠다.

하지만 당신의 피붙이인 저것만은 아비가 데려가야 할 것 아닌가?

날마다 아비 찾는 저 칭얼거림을 어찌 듣는단 말인가?

 

 



강진에 두고 온 소실의 딸에게 주었어야 할 이 그림을 왜 이인행에게 보냈을까?

우선 그림을 그린 싯점과 보낸 싯점 사이에 9년의 시간적 거리가 있다.

다산은 처음 그림을 그린 후 자신이 계속 보관해왔다.

이후 무슨 생각에서인지 이인행에게 보냈다.

더 이상 자신이 그림을 지니고 있기가 부담스러운 일이 생겼던 듯하다.

홍임이가 세상을 떴거나 아예 연락이 두절된 상황이었을 것이다.

 

 

 

以上은 정민교수가 『한국학 그림과 만나다』(P118~134)에서 쓴 글을 요약한 것입니다.

이제부터 제 의견을 붙여보도록 하겠습니다.

 


 

다산이 저 <매조도>를, 34년간 입었다던 부인 치마를 찢어서 그렸다니까,

그림을 그릴 당시 나이가 40대 후반 쯤 되었겠습니다

지금 나이로 치면 50대 후반이나 60대 초반 나이뻘이 된다고 봐야 합니다.

 

소실 정씨라고 했는데,

함께 살림을 차리고 산 것이 아니니까 소실이라고 부르는 건 적당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아무리 유배를 왔더라도 내노라는 양반이 과부와 놀아나지는 않았을 것이고, 

20세 전후의 여인이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신분은 모르겠네요.

그러면 50대 후반의 남자과 20살짜리 처녀가 만나서 사랑을 나눈 겁니다.

 

이런 일은 다산만 나무랄 일은 아닙니다. 당시엔 흔했습니다. 퇴계 이황까지도 그랬으니까요.

아무리 남녀간의 특수성을 감안한다곤 해도 쪽팔리는 일이긴 하죠.

스무살 짜리 여자애랑과도 대화가 통한다는 말 아닙니까?

퇴계나 다산 같은 대학자 입장에서는 얼마나 쪽팔리는 일입니까?

 

 

다산이 홍임이에게 벌써 건네줬어야 할 그림을 9년씩이나 꿍치고 있었던 이유가 무엇일까요?

저 그림을 그리고나서 5년 뒤에 해배가 되어서 집에 돌아왔다고 했잖습니까?

그렇다면 홍임이가 다섯살이 될 때까지 강진에 같이 살면서도 안 줬다는 말이 됩니다.

뭘까요? 그 이유가?

그림은 분명히 홍임이를 위해서 그린 것이 맞습니다.

 

자, 이것은 다산이 통빡을 굴린 것입니다.

유배를 온 죄인이 소실을 두었다는 것,, 딸까지 낳았다는 것,,

문제 삼기에  충분하지요. 아마 죽임을 당할 수도 있는 죄일 겁니다.

그래서 알려지길 바라지 않았던 것입니다.

 

처음에는 분명히 정씨와 홍임이를 생각하여 애틋한 정으로 그려주려고 맘을 먹었겟지요.

그러나 막상 건네주려고 보니까, 그림이 증거물이 되겠다,라는 걸 퍼뜩 깨달은 겁니다. 

어느 정도 다산을 이해해주려고 합니다.

 

 

다산이 돌아올 때 홍임이 모녀를 데리고 왔다는 말은 후대에 지어낸 말로 생각됩니다.

다산이 데려오려고도 하지 않았을 뿐더러, 정씨가 서울까지 쫒아오겠다는 생각도 하지 않았을 겁니다.

전라도 여자들은 세상물정에 환하면서도 속으로 삭힐 줄 압니다.

 

 

끝으로 두 작품을 비교해보면 한눈에 봐도 차이가 많이 납니다.

위엣 작품은 신경을 잔뜩 써서 그림도 그렸고, 글씨도 썼습니다. 특히 글씨가 멋져보입니다.

그러나 아래에 홍임이한테 주려던 매조도(梅鳥圖)는 적당히 그린 것 같습니다. 허술해 보입니다.

KBS 진품명품에 나온다면, 위엣 건 2천만원, 아래 홍임이 꺼는 300만원 정도 되겠네요.







댓글


  • 세라비
  • 2011.03.11 19:17
  • 답글 | 신고
  • 생각나는 시가 있네요. 옮깁니다!



                                                                   숨은 딸   / 오탁번



                                         나도 숨은 딸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서
                                         '아빠 ' 부르면서 카네이션 꽂아주며
                                         내 볼에 뽀뽀해줄 보조개도 예쁜 내 딸 !
                                         '어험, 어험'하며 처음에는 멋쩍겠지만
                                         내심으로야 뛸듯이 좋을거야
                                         아내는 뾰로통해서 눈흘기겠지만
                                         덤으로 생긴 딸 설마 구박은 안 하겠지
                                         보름달 따올 만큼 힘세던 내 젊은 날
                                         숨겨 논 딸 하나 못 만들고 무얼 했을까
                                         숨겨 논 딸이 없어 민망하긴 하지만
                                         제발로 숨어버린 딸은 많을지도 몰라
                                         아득한 젊음의 새벽길에서
                                         눈물 훔치며 떠났던 여자들이
                                         나한테 차마 말을 하지 못하고
                                         딸 하나씩 몰래 낳아 키웠을지도 몰라


                                         숨어버린 딸이 운명의 해후를 위해
                                         광속으로 달려와 내 앞에 선다면
                                         dna 검사 없이 바로 내 딸을 삼을거야
                                         호적에도 바로 올리고 재산도 나눠주고
                                         큰 눈동자 빛나던
                                         내 젊은 날의 흑백사진 보여줄 거야
                                         아아, 우주의 어느 행성 새벽 바닷가에서
                                         사랑의 불장난으로 태어난 어여쁜 내 딸아
                                         지구가 혜성에 부딪쳐 파멸하는 날이 오면
                                         나는 숨어있던 내 딸을 데리고
                                         빙하기를 견디며 살아 남아 있을거야
                                         몇 천 년 몇 만 년이 흐르고
                                         빙하에 짓눌렸던 한반도가 다시 떠오르면
                                         나는 내 딸을 데리고 화석에서 뛰어나와
                                         세상에서 제일 예쁜 집 한 채 지을거야





    그리곤... 노코멘트~~ ^^


    아아아아아아아~ 너무도 공감이 가는 시입니다.... 아아아아아아~~~!!!!
    (훌쩍)








                              - 다음 블로그 < 그 어느날 오후 > 알래스카 님의 글 중에서 전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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