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문가의 찻자리](完) 조선 후기 홍현주의 어머니 영수합 서씨의 차 생활

2016. 2. 1. 10:06茶詩



      

원광디지털대학교 국제차문화교류협력재단 후원 - 명문가의 찻자리 (完)


조선 후기 홍현주의 어머니

영수합 서씨의 차 생활



송해경(원광디지털대학교 차문화경영학과 교수)




비 개인 뒤 갓 돋은 달 밝으니,(족수당)
흐르는 그림자 성긴 발에 어리네(영수합)
먼데서 오신 손님은 흥도 많으셔(영수합)
밝은 빛을 모두 싫어하지 않는구나(석주)

허공은 밝고 하늘은 넓고 넓은데(석주)
이슬은 내려서 옷을 적시네(길주)
누각은 허공 속에 걸려 있고(길주)
달은 산봉우리에 걸려 있네(원주)
구름 안에 들어가면 구름 밖은 고요한데(원주)
나무 사이사이로 별들은 걸려 있네(현주)
밤을 재촉하여 등을 걸었는데(현주)
바람이 노래하니 호각소리 짧아지는구나(족수당)
서로 보고 환소 하며(족수당)
둥글게 모여 앉아 술에 취한다(영수합)

붓을 휘둘러 시를 지으니(영수합)
이루지 못하면 벌주로서 술잔을 기울이네(석주)
빙 돌아 서 있는 아름다운 나무들에게(석주)
반찬과 소금 갖추어 공양한다(길주)
차는 익어 시정에 젖어드니(길주)
거문고 맑은 소리 고운 손에 울린다(원주)
참으로 다정하고 즐거운 이 마음을(원주)
가도 가도 버릴 수 없구려(현주)
머리 들어보니 은하수는 기우는데(현주)
이 기쁨 달님에게 물어 본다(족수당)




    유한당 홍씨의 《유한당 시고》에 나오는 <연구(聯句)>라는 시의 일부이다. 이 시는 정조의 부마사위이며, 초의에게 《동다송》을 짓게 한 해거도인 홍현주의 가족들이 둘러앉아 차회를 즐기며 한 구절씩 읊어 지은 연작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가족들이 둘러앉아 연작시를 짓는다는 것은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일일 것이다.


   한 편의 시 안에 시와 차, 술 그리고 거문고를 즐기고 있는 화목한 가정의 저녁 차회가 그림처럼 묘사되어 있다. ‘바쁘다, 바빠’를 외치며 숨 가쁘게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여유로움을 자아내는 이 한 편의 시는 분명 다른 차시와는 다른 측면이 있다. 이 시에 등장하는 인물들(괄호 안은 작자 명)은 모두 시문에 능하였던 홍현주의 가족들이라는 점이 그렇다.


  조선 후기 차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명문가로서는 단연 홍현주(1793~1865) 일가를 들 수 있다. 해거 홍현주는 아버지 홍인모(1755~1812)와 여류 시인인 영수합 서씨(1753~1823) 사이 3남 2녀 중 3남으로, 숙선옹주와 결혼하였고 영명위에 올랐다. 아버지 족수당 홍인모는 영의정을 지낸 홍락성의 자제로 호조 참의와 우부승지를 지냈다. 그는 학문도 매우 깊어 경사, 음양, 의약, 병서 및 도교, 불교에도 통달하였다고 하며, 무려 2천여 편의 시가 《족수당집》에 전하고 있다.


   홍현주의 어머니인 영수합 서씨는 유교의 남녀차별 사회 속에서도 여성이라는 신분의 한계를 넘어 192편의 시가 실린 《영수합고》라는 문집을 발행하였으며, 그 안에는 10편의 차시가 실려 있다. 2천여 편의 시를 지을 만큼 시에 뛰어났던 홍인모는 아들들이 어릴 때부터 시를 가르쳤으며, 영수합 서씨의 엄격하면서도 자애로운 자녀 교육은 아들 삼형제 모두를 당대의 뛰어난 문장가로 만들었다.


   홍현주의 큰형인 연천 홍석주(1774~1842)는 규장각의 초계문신(抄啓文臣)으로 있으면서 ‘호문왕(好文王)’이라고 불릴 정도로 학문을 좋아했던 대학자였다. 둘째형 항해 홍길주(1786~1841)는 16세에 관료의 꿈을 접고, 혼자 책을 읽으며 《수여난필》, 《수여방필》이라는 수필집을 지었으며, 수학에 취미가 깊었던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수학과 천문학에도 조예가 깊었다고 한다. 서울대 과학문화연구센터 전용훈 연구원은 유학자 홍길주가 나눗셈과 뺄셈만으로 제곱근을 구했다는 사실을 옛 문헌 조사 결과 확인했다고 밝혀 그를 새롭게 조명하고 있다. 여자 형제로서는 유한당 홍원주가 있다. 그녀는 자신의 문집인 《유한당시고》에서 부모 형제간의 우애와 화목을 다지는 시 200여 편을 남기고 있다.


   홍현주의 부인인 숙선옹주는 궁궐에서부터 오랫동안 차를 마셔 차에 매우 익숙하였다고 하며, 시어머니와 나눈 다시가 전해지고 있다. 홍현주는 숙선옹주가 일찍 세상을 뜨자 불교에 깊이 심취하였고, 차를 즐겨 마시면서 차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추사 김정희의 소개로 그는 초의 선사를 알게 되었으며, 초의 선사를 비롯한 여러 문인들과 함께 자신의 별장에서 차회나 시회를 자주 가졌고, 여러 편의 다시를 남겼다. 그가 의도했던 바는 아니겠지만 당시 전다박사로 유명하였던 초의 선사에게 《동다송》 저술을 권유함으로써, 우리나라 최고의 다서가 탄생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홍현주의 모든 가족들이 시문학에 뛰어난 재능을 지녔으며, 가족 간의 화목과 우애가 돈독하였던 것은 어머니 영수합 서씨의 영향이 컸다고 한다. 영수합 서씨는 남편 홍인모가 만년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부임하였을 때 시를 통해 대화하였으며, 나이 오십에 율시(律詩) 한 권을 열흘이 채 못 되어 지었을 정도로 뛰어난 재능을 발휘하였다.


《차의 세계》2007년 12월호 참조

기사 작성일 : 12/14/2007 1:47:26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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