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 실학을 집대성했던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1762~1836) 선생의 인간적•예술적 면모를 조명할 수 있는 간찰•서첩 등 17점이 18일 최초로 공개되어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전남 강진군은 강진군청 회의실에서 자료를 보관해온 다산 제자의 후손들이 참석한 가운데 ‘요조첩(窈窕帖)’ ‘견월첩(見月帖)’ ‘품석정서(品石亭序)’ 등의 자료를 공개했다.
자료들 중 특히 관심을 모은 것은 다산과 추사 김정희, 그리고 ‘유배지’ 강진에서 가르쳤던 제자, 지인들과의 교유의 실상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들이었다.
‘요조첩’의 경우 1809년 다산이 아들의 친구이자 제자인 윤시유(尹詩有•1780~1833)가 재혼할 때 발문을 쓰고, 제자들과 지인들의 글을 모았다. 다산은 이 글에서 “아내를 사별한 지 1년도 못 되었는데 재혼한다면 빠르지 아니한가”라면서도 그의 재혼에 대해 조언했다. 다산은 강진에서의 두 번째 유배지였던 고성암에서 지낼 때 혜장(惠藏•1722~1811) 스님에게 시와 편지(‘견월첩’)를 주었고, 마지막 유배지였던 다산초당에서 바라본 12경(景)을 기록(‘품석정서’)했다.
다산이 김정희와 함께 다산의 제자인 황상(黃裳•1788~1870)이 살고 있던 지금의 강진군 대구면 항동을 찾아가 남긴 글도 전해졌다. 다산은 ‘남쪽 밭에 이슬 젖은 아욱을 꺾고, 동쪽 골짜기 누른 조를 밤에 찧는다’라는 시와 함께 ‘학질을 막는 방법’ 등을 건강이 좋지 않았던 황상에게 지어주었고, 추사는 그 자리에서 시구절의 일부인 ‘露葵黃粱社(노규황량사)’를 액을 없애는 제액(除厄)으로 써주었다. 이 글들은 다산 초당에 판각된 ‘보정산방(寶丁山房)’ 서첩에 포함됐다.
윤시유와 다산이 함께 그렸다는 지도도 공개됐다. 이 지도는 1802년 이후 제작된 것으로 보이며, 50리(里) 척(尺)으로 강진 앞바다를 중심으로 영암•강진•해남•완도•진도 방면의 여러 섬들을 거리표시와 함께 채색으로 그렸다. 한자 도서명 외에 ‘빗경(橫看)’ 등 한글 섬이름 5곳이 표기되기도 했다.
다산의 장남인 정학연과 손자 정대림이 지은 시를 기록한 서첩(丁酉山先生及各人筆帖:정유산선생급각인필첩)도 공개됐다.
안대회(安大會) 명지대 교수는 “그동안 다산의 학문적 면모에 가려져 잘 알려지지 못했던 인간적•예술적 면모에 대해서 깊이 조명할 수 있는 자료가 대거 발굴됐다”며 “앞으로 연구를 진행하면 다산의 전체적인 상을 파악하는 데 크게 기여할 수 있겠다”고 말했다.
정양모(鄭良模)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은 문화재지정 가능성과 관련, “다산이 가르친 제자들의 후손들이 소중하게 간직해온 자료들이어서 다산의 친필 원본임을 확신하고 있다”며 “자료들을 살펴본 결과, 국가지정문화재급 자료들이 다수 포함돼 있다”고 평가했다.
황주홍(黃柱洪) 강진군수는 오는 30일 다산관련 미공개 자료를 2차 공개키로 했다.
- 조선일보, 2005.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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