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후기 대표적 실학자인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1762-1836) 선생이 과거시험을 보기전 전남 화순군에 머물면서 학문을 쌓은 사실이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 사진은 화순 출신 강동원씨가 지난 1990년대 화순읍 동구리 동림사터 입구에 세운 `다산 정약용 선생 독서비'. /화순군청 제공
조선후기 대표적 실학자인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1762-1836) 선생이 과거시험을 보기전 전남 화순군에 머물면서 학문을 쌓은 사실이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 18일 다산연구소와 화순군에 따르면 다산은 16살 때인 1777년 아버지 정재원(丁載遠)이 화순현감으로 부임할 때 아버지와 함께 화순에 왔다.
다산은 화순에 살면서 동림사(東林寺.과거 화순읍에 있었던 절)에서 친형 정약전(丁若銓)과 함께 상당한 학문을 쌓았다.
다산은 화순에 머무는 2년동안 광주 무등산과 화순 동복(同福) 적벽(赤壁)을 유람하며 느낀 감상을 몇편의 시(詩)로 남기기도했다.
다산은 ‘적벽강 물염정’(勿染亭.동복 적벽에 송정순이 세운 정자 이름)이란 제목의 시에서 「가을 모래 위 오솔길이 또렷이 나 있는데 동구 밖엔 푸르스름히 구름이 피어날 듯... 특별히 사랑스런 산수가 외진 곳에 있어 명성이 퍼져 세상에 알려지지않았다오」라고 웅장하고 아름다운 화순 동복의 적벽을 감탄했다.
또 ‘무등산에 올라서’란 제목의 시에서 「무등산은 뭇사람 우러러 보는 곳 산꼭대기 험준한 곳엔 해묵은 눈이 있다. 태고적의 모습을 고치지 않아 본래대로 쌓여 있어 의연하구나... 천둥과 폭우에도 깍이지 않아 조물주 만든대로 보신을 했네...」라며 다산이 호연지기를 기르기위해 무등산에 올라 젊음을 만끽했음을 짐작케했다.
’동림사에서 글을 읽다’란 제목의 시에서는 “부지런히 애써 서경(書經)을 읽어야 어버이 바람 넉넉히 채워 드리지. 차마 새벽까지 잠들지 못하고 중형(정약전)과 함게 풍경 소리 들었노라... 젊은 시절 재주만 믿고 있다간 나이들면 대부분 바보스럽지. 이를 경계해 느리거나 소홀히 말자꾸나, 가는 세월 참으로 허무하거니」라며 젊은 시절 학문 을 닦는게 중요하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이와 관련, 화순 출신 강동원씨는 ”1990년대 초반 화순읍 동구리 동림사터 입구에 ‘다산 정약용 선생 독서비’를 세워 화순군민들과 함께 다산을 기리고 있다“고 말했다.
화순군 관계자는 18일 ”문헌을 보면 다산이 22살 때 과거시험에 합격하기 전 화순에 머물면서 학문에 정진한 사실을 알 수 있다“며 ”특히 무등산과 적벽을 유람하면서 자연스럽게 호연지기를 기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연합뉴스, 2005.07.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