所見 /袁枚(1716~1798) 淸 관료문인, 隨園 主

2013. 7. 14. 09:26

 

 

 

所見 (소견) - 袁枚 (원매)

 

牧童騎黃牛 (목동기황우)

歌聲振林樾 (가성진림월)

意欲捕鳴蟬 (의욕포명선)

忽然閉口立 (홀연폐구립)

 

목동의 거동

 

목동이 황소를 타고 가네

노랫소리가 숲 속에 울려퍼지네

매미를 잡으려는지

돌연 입을 다물고 섰네.

 

황소 등에 타고 흥겹게 노래 부르며 가던 목동이 돌연 입을 다물고 서버렸다.

매미를 잡으려고 그러나 보다. 웃음을 자아내는 장면이다.

 

袁枚 (원매) ; 淸 1716 ~1798

자는 자재(子才), 호는 간재(簡齋)·수원노인(隨園老人). 절강성[浙江省] 전당(錢塘:지금의 항저우[杭州]) 사람이다. 1739년(乾隆 4)에 진사가 되었으며, 일찍이 강녕(江寧) 등지에서 지현(知縣)을 지냈다. 관직을 사임한 후에는 강녕에 거주하면서 소창산(小倉山)에 조경용 풍치림을 만들어 수원(隨園)이라고 불렀다. 그는 유가의 전통적인 '시교'(詩敎)와 의고적인 '격조설'(格調說)을 반대하면서 작자의 성정(性情)을 꾸밈없이 표현해야 한다는 성령설(性靈說)을 주장했다. 일부 작품에서는 한대의 유학과 정주학파(程朱學派)의 이학(理學)을 비판하기도 했으며, 민생의 고통을 반영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시는 대부분이 서경·서정시인데, 〈수서정야좌 水西亭夜坐〉가 그 예이다. 그는 변문(騈文)과 산문에도 뛰어나 〈제매문 祭妹文〉과 같은 유명한 작품을 남기기도 했다. 저작으로는 〈소창산방집 小倉山房集〉·〈수원시화 隨園詩話〉·〈자불어 子不語〉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