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시장에서 쓰이는 분원이라 말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조선시대 궁중의 관청인 사옹원(司饔院)이 필요한 그릇을 조달하기 위해 지방에 만든 분원(分院)이란 의미이다. 둘째는 그런 분원에서 만들어진 백자, 즉 분원 제작의 백자를 가리키는 말이다.
사옹원은 궁중 내에 필요한 음식을 담당하던 관청이었던 만큼 많은 도자기를 필요로 했다. 건국 초기에 조선 왕실은 각 지방의 민간 가마에서 구워진 도자기를 진상 받아 사용했다. 그러나 이를 집중적으로 관리할 필요가 생기면서 1470년 무렵 경기도 광주의 남한강가에 사옹원의 지방 조직인 분원을 설치했다. 그런 점에서 분원은 왕실 운영의 관영 사기공장이란 의미도 된다.
분원은 도자기를 굽는데 필요한 질 좋은 태토와 땔나무를 조달하기 위해 거의 10년 단위로 주변을 이동했다. 그러나 1751년 이후는 지금의 경기도 광주군 분원리에 가마를 고정하고 필요할 때마다 거꾸로 주위에서 배로 땔나무와 태토를 운반해 와서 도자기를 구웠다.
분원 도자기 또는 분원 백자라는 말은 일반적으로 18세기 이후에 분원리에서 만들어진 상품(上品) 도자기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고 있다.
920년대 초부터 분원 가마터를 답사했던 아사카와 노리다카(淺川伯橋)가 그린 광주 일대의 가마터 그림. 파랗게 칠해진 한강 물줄기가 만나는 곳에 바로 분원이 위치해 있는 것이 보인다.(한지에 수묵담채로 그려진 이 그림은 2011년 4월부터 7월까지 오사카 동양도자미술관에서 열린 「스즈키 마사오(鈴木正男) 기증-아사카와 노리다카(淺川伯橋)가 사랑한 한국 도자기」전에 소개됐다. 스즈키 마사오는 아사카와의 사위이다. 사이즈는 61.0x41.8c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