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편지

2016. 2. 12. 03:56다산의 향기



       스승의 편지 자료 / 보정산방

2010.08.28.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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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다산 정약용 선생이 제자 황상(黃裳, 1788-1863?)에게 보낸 편지를 모아 엮은 서간첩을 볼 기회가 있었다. 황상이 스승에게 받은 편지를 한 장 한 장 모아 한 권의 책으로 묶은 것이다. 다산과 황상 두 사제 간의 감동적인 만남에 대해서는 벌써 여러 차례 글로 쓴 바 있지만, 이번 편지첩을 통해 새삼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버린 위대한 스승의 체취를 오롯이 되새길 수 있었다.


편지래야 대부분 몇 줄 안 되는 짧은 메모 같은 것들이다. 하지만 강진 유배 초기, 동문 밖 주막 시절의 일상을 잘 보여주고 있을 뿐 아니라, 두 사제 간에 오간 마음자리가 곡진히 담겨있어 더욱 감동스러웠다.


첫 번째 편지는 이렇다.

   편지와 시를 보았다. 시 또한 굳세어 읽을만 해서 몹시 기뻤다. 『이소(離騷)』를 숙독하면 마땅히 점차 맛이 있을 게다. 도연명은 책을 읽을 때 깊은 이해를 구하지 않았었다. 이 또한 한 방법일 것이니라. 빈칸을 쳐둔 종이를 필시 끼워간 모양이로구나. 네 건망증은 도무지 고치기가 어렵겠다. 이번에 부쳐 오너라. 다 적지 않는다.


   다산이 동문 밖 주막에서 연 서당의 강학에 15세 소년 황상은 처음 참여했다. 저같이 둔한 아이도 공부 할 수 있나요? 쭈볏쭈볏 이렇게 묻는 소년에게 다산은 공부는 바로 너 같은 사람이 하는 거라며 오직 마음을 다잡아 부지런히만 한다면 큰 학문을 이룰 수 있다고 직접 글을 써주며 격려했다. 소년은 너무도 감격해서, 다음날부터 전심을 다해 공부에만 몰두 했다. 이 편지는 첫 만남 이후 한 두 해 쯤 지난 뒤의 것이다. 황상의 습작시를 읽고 칭찬하고, 책 읽는 요령도 훈수해 주었다. 공책에 글씨를 반듯하게 쓰기 위해 빈칸을 쳐둔 종이를 끼운 채 황상이 집으로 가자, 그의 건망증을 탓하며 어서 가져오라고 야단치는 대목도 정겹다.



   황상이 19세 때 아들을 낳자 다산은 축하 편지에 또 이렇게 썼다.

   네가 능히 아들을 낳았다니 기쁨을 형언할 수 없다. 내 아들은 아직 이러한 일이 없으니, 네 아들이 내 손자와 무에 다르겠느냐? 새로 부자(附子)를 써서 이 아들을 얻었으므로 이름은 천웅(天雄)이라 하는 것이 좋겠다. 와서 내 축하를 받도록 해라.

제자를 자식처럼 아낀 스승의 사랑이 물씬 느껴진다. 1804년 4월에 황상이 학질에 걸려 고생할 때는 편지를 보내 병세가 어떠한지를 물었다. 심한 학질을 앓으면서도 꼿꼿이 앉아 공부를 손에서 놓지 않는 제자를 기특해하며, 학질이 뚝 떨어지라고 「절학가(截瘧歌)」란 장시를 지어주기도 했다. 자신도 학질을 앓아보아 그 고통이 어떤 줄을 잘 아는데, 너는 그 와중에도 책을 읽고 베껴 쓰기를 멈추지 않으니, 나보다도 훨씬 훌륭한 인물이 될 게 틀림없다고 칭찬한 내용이다.


황상이 신혼의 단맛에 빠져 공부를 게을리 하는 기색을 보이자, 다산은 “네 말씨와 외모, 행동을 보니 점점 태만해져서, 규방 가운데서 멋대로 놀며 빠져 지내느라 문학 공부는 어느새 까마득해지고 말았다. 이렇게 한다면 마침내 하우(下愚)의 사람이 된 뒤에야 그치게 될 것이다. 텅 비어 실지가 없으니 소견이 참으로 걱정스럽다.”라고 따끔하게 나무랐다.



   가장 슬픈 편지는 맨 끝에 실려 있다. 앞쪽의 편지와는 무려 30년의 간격이 있다. 다산이 세상을 뜨던 1836년에 황상은 17일을 걸어 마재로 스승을 찾아갔다. 사제는 멀리서 서로를 그리다가 18년만에 감격의 해후를 했다. 제자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다음은 돌아가는 황상에게 써준 다산의 마지막 편지다.

   준엽이는 이미 고인이 되었고, 안석이는 여태 서객(書客)으로 있고 보니, 하나는 슬프고 하나는 불쌍하다. 내가 아침 저녁으로 아프다. 부고를 듣는 날에는 군이 마땅히 연암과 함께 산중에서 한 차례 곡하고, 지난 일을 얘기하며 함께 그치도록 해라.

준엽과 안석은 모두 주막 시절의 제자들이다. 하나는 일찍 세상을 떴고, 하나는 여태 아전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을 애틋해했다. 늙고 병든 스승은 세상 뜰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았다. 그래서 오십 줄의 제자에게 내 부고를 듣더라도 서울까지 올라 올 생각 말고, 강진에서 한번 곡만 하라고 당부한 것이다. 그리고는 제자에게 선물로 책과 붓, 부채와 여비까지 꼼꼼히 챙겨 주었다. 다산은 이 글을 쓴 며칠 뒤에 세상을 떴다. 강진으로 돌아가던 제자는 도중에 부고를 듣고 다시 마재로 가서 스승의 빈소를 지켰다.


황상이 75세 때 쓴 글을 보면 15세 때 스승의 격려를 받은 이후 60년 동안 하루도 그 지성스런 가르침을 잊은 적이 없노라고 적었다. 그의 평생은 스승의 가르침을 한 마디도 빠짐없이 지키고 실천한 과정이었다. 그는 스승 사후에야 추사(秋史) 형제의 지우를 입어, 뒤늦게 중앙 문단에 이름을 날렸다. 추사는 당대에 이런 작품은 다시 없다며 그의 시에 대해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우연한 스승의 격려 한 마디가 한 사람의 인생을 이렇게 바꿔 놓았다. 한 장 한 장 스승에게서 받은 편지 조각을 풀칠해서 책으로 묶은 제자의 정성과, 그 속에 담긴 스승의 애틋한 마음이 읽는 내내 깊은 울림으로 다가왔다.

 

[출처] 스승의 편지|작성자 새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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