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치원의 시한수 술한잔

2016. 2. 15.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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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날씨 더운데 최치원의 시한수 술한잔
  •     등록자명 : 청양꼬추     조회수 : 1,651     등록일자 : 2006.08.04                                                                    

                                                                                                                                                                       

  • 최치원의 시를 퍼왔습니다 (노양숙)양 읽어보세요  
    이름 청양꼬추  등록일  2006.08.02  
    IP  211.221.58.159  
    최치원의시


       계원필경(桂苑筆耕)과 고운어르신문집을 통해서 보면 그의 문체별 종류는 표(表), 장(狀), 서(書), 부(賦), 비명(碑銘), 시(詩) 등 23류(類)나 되 어 퍽도 다채롭다.

    이 중에서 시는 몇수나 될까? 박노춘(朴魯春)은 119수라 하였고, (최치원 작품류 소고란 논문에서) 이보다 10여년 뒤에 쓴 김중렬 (金重烈)의 논문에서는 126수라고 하였다.

    본고(本稿)에서는 이렇듯 많은 시를 다 다룰 수는 없으므로 이 중에서 대표작만 골라 재당시기(在唐時期)와 귀국후, 그리고 은둔생활시기로 구분하여 그때 그때 의 처지에 따른 어르신의 시심(詩心)을 음미 감상해 보려고 한다.




    쓸쓸한 가을 바람 애닯은 노래

    세상엔 날 알아 주는 이 없고

    깊은 밤 창 밖에는 비 듣는 소리

    등불 아래 마음은 고국을 달리네



    秋風唯苦吟 (추풍유고음) 世路少知音 (세로소지음)

    窓外三更雨 (창외삼경우) 燈前萬里心 (등전만리심)

    <秋夜雨中--추야우중>



    [가을밤 비가 내리는 가운데]는 만리타국에서 애닯도록 고국을 그리워하는 심정을 쓴 것이다.비가 오는 날이면 들떴던 마음도 차분해 지는 것이 인지 상정일 것인데 하물며 쓸쓸한 가을, 밤비 조차 내리는지라 어찌 두고 온 고국 생각이 간절하지 않겠는가?





    나그네집 깊은 가을 비는 내리고

    창 아래 고요한 밤 차거운 등불

    가엾다 시름 속에 앉았노라니

    내 정녕 참선하는 중이로구나



    旅館窮秋雨 (여관궁추우) 寒窓靜夜燈 (한창정야등)

    自憐愁裏坐 (자련수리좌) 眞箇定中僧 (진개정중승)

    <郵亭夜雨--우정야우>



       이 시는 그가 22세 때 고변(高騈)의 기용으로 관역순관(館驛巡官)으로 재직하던 시절의 작품인 듯하다. 타관인지라 하숙 아니면 여관생활일 텐데 가을 밤비내리는 한창(寒窓) 아래 가물거리는 등불 아래서 이것 저것 생각에 잠겨 홀로 앉 았으니 그 모습이 흡사 선정(禪定)에 든 스님 같았으리라.



    거칠은 밭 언덕 쓸쓸한 곳에

    탐스런 꽃송이 가지 눌렀네

    첫여름 비 갤 무렵 가벼운 향기

    보리 누름 바람결에 비낀 그림자

    수레 탄 어느 누가 와서 보리요

    벌나비만 부질없이 서로 엿보네

    본시부터 천한 데 태어났기로

    사람들의 버림받음 참고 견디네



    寂寞荒田側 (적막황전측) 繁花壓柔枝 (번화압유지)

    香輕梅雨歇 (향경매우헐) 影帶麥風歌 (영대맥풍가)

    車馬誰見賞 (거마수견상) 蜂蝶徒相窺 (봉접도상규)

    自慙生地賤 (자참생지천) 堪恨人棄遺 (감한인기유)

    <蜀葵花--촉규화 *접시꽃>



    밭가에 아무렇게나 피어있는 접시꽃은 눈여겨보는 사람이 없는 푸대접 받는 꽃이다. 도당유학생인 자신이 격고있는 설움을 접시꽃에 빗대어 쓴것이리라.



    메뿌리 웅굿중굿 강물은 넘실넘실

    집과 산 거울인듯 서로 마주 비치는데

    돛단배 바람 태워 어디로 가버렸나

    나는 새 어느결에 자취 없이 살아지듯.



    <황산강 임경대, 혹은 양산 임경대라고도함>

    煙巒簇簇水溶溶 (연만족족수용용) 鏡裏人家對碧峰 (경리인가대벽봉)

    何處孤帆飽風去 (하처고범포풍거) 瞥然飛鳥杳無종 (별연비조묘무종)<*종=足+從>



    <黃山江臨鏡臺,或 梁山臨鏡臺-황산강임경대, 혹 양산임경대>



       연전에 나는 부산일보 기사를 읽고 물금 뒷산을 올라 임경대를 찾아 본 적이 있 었다. 그러나 그 정확한 위치는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 산에서 바라보는 낙동강의 경치는 이 시에 묘사된 그대로였다.수없이 많은 메뿌리들이 강을 따라 웅굿중굿 둘러 서있고 강물은 넘실넘실 유유이 흘러가는데 다만 돛단배만 없었을 뿐이었다.



    칡 덩굴 부여잡고 구름봉에 올라

    굽어보니 온 누리가 텅 빈듯

    산들은 올망졸망 손바닥에 놓이고

    만사 가슴 속이 탁 틔이네

    탑 그림자 해 가의 눈이요

    솨솨 솔 소리는 반공의 바람일세

    구름과 노을이 응당 나를 웃을 것이

    진세(塵世)로 다시 걸음을 돌리다니



    <제 운봉사>

    문葛上雲峰 (문갈상운봉) 平觀世界空 (평관세계공) <*문=좌방변+門>

    千山分掌上 (천산분장상) 萬事豁胸中 (만사활흉중)

    塔影日邊雪 (탑영일변설) 松聲天半風 (송성천반풍)

    煙霞應笑我 (연하응소아) 回步入塵籠 (회보입진롱)



    <題雲峰寺-제운봉사>



       이 시는 문경(聞慶)의 금용사(金龍寺)에서 읊은 시다. 구름봉에 올랐더니 온 누 리가 다 빈듯하고 천산이 모두 손바닥 위에 놓이는 듯 하여 모든 시름 잊고 가슴 이 탁 틔이는 것 같았는데 다시 티끌 세상으로 발길을 옴기려니 연하(煙霞)도 빈정대며 비웃는 것 같다고 하였다. 산수간을 방랑 하면서도 세속과 인연을 끊지 못 하는 마음의 갈등을 읽을 수 있다.



    구름 가에 정사(精舍)를 지어 놓고서

    조용한 선정(禪定)에 근 50년간

    지팡이는 산 밖에 나본 일 없고

    붓은 서울로 가는 글월 안 쓰네

    대(竹) 홈에 샘물 소리 졸졸

    송창(松窓)에 햇빛이 성그네

    맑고 높은 경지(境地)에 읊다 못하여

    눈 감고 진여(眞如)를 깨치려네.



    <운문서 난야 지광상인에게>

    雲畔構精盧 (운반구정로) 安禪四紀餘 (안선사기여)

    공無出山步 (공무출산보) 筆絶入京書 (필절입경서) <*공=지팡이공자>

    竹架泉聲緊 (죽가천성긴) 松령日影疎 (송령일령소) <*령=木+靈>

    境高吟不盡 (경고음부진) 瞑目悟眞如 (명목오진여)



    <贈雲門蘭若智光上人- 증운문난야지광상인>



       운문(雲門)은 청도(淸道)에 있는 운문사(雲門寺)다. 속세를 떠나서 수도(修道) 에 정진(精進)하여 진여(眞如)를 깨치려는 스님을 흠모하여 읊은 시다. 그러나 산 밖에 나가는 일도 없고 서울로 보낼 서신(書信)도 끊었다는 표현은 어쩌면 자신의 은둔생활을 두고 한 말일 수도 있을 것이다.

    ※진여(眞如)는 진실여상(眞實如常)의 뜻. 즉, 우주 만유의 실체, 불생불멸의 진리를 말함. 난야(蘭若)는 절, 사원(寺院)



    금강지 위의 말씀 하나하나 깨치고

    철위산 사이의 번뇌에서 구원했네.

    비구가 해인사의 불경을 강론하니

    화엄경이 이로부터 삼절(三絶)을 이루리.

    용당의 묘한 설법 용궁에 들어가

    용수보살이 그곳에서 화엄경 전해왔네.

    용국의 용신도 정녕 기뻐하고

    용산은 의용의 화엄경 전해온 큰 공로 표창하리.

    마갈반제성에 광명이 두루 비치고

    차구반국에 불법이 더욱 빛나네.

    오늘 아침 지혜의 해가 동쪽에서 떴으니

    문수보살이 동묘에 강림했음을 알겠네.

    하늘이 말하길 비교는 하늘에서 내린다더니

    해인의 참된 법이 바다에서 나왔네.

    좋을시고 우리나라 해인의 뜻 일어나니

    아마도 하늘 뜻은 천재(희랑-希朗)에게 맡기나 보다.

    도수의 높은 담론 용수가 해석하고

    동림의 고아한 뜻은 남림에서 번역했네.

    빈공이 피안(열반)에서 금성을 떨쳤지만

    가야에서 불적 이은 희랑만 하랴.

    많고 넓은 모임 그 수는 의심스러우나

    현묘한 화엄경은 결함이 없네.

    유통을 말하여 나타나는 증험을 미루어 보면

    종래의 다하지 못한 말 유달리 기이하리.



    <증 희랑 화상>

    步得金剛地上說 (보득금강지상설) 扶薩鐵圍山間結 (부살철위산간결)

    苾芻海印寺講經 (필추해인사강경) 雜花從此成三絶 (잡화종차성삼절)

    龍堂妙說入龍宮 (용당묘설입용궁) 龍猛能傳龍種功 (용맹능전용종공)

    龍國龍神定歡喜 (용국용신정환희) 龍山益表義龍雄 (용산익표의용웅)

    磨갈提城光遍照 (마갈제성광편조) 遮拘盤國法增耀 (차구반국법증요)*갈=羊+曷

    今朝慧日出扶桑 (금조혜일출부상) 認得文殊降東廟 (인득문수강동묘)

    天言秘敎從天授 (천언비교종천수) 海印眞詮出海來 (해인진전출해래)

    好是海隅興海義 (호시해우흥해의) 只應天意委天才 (지응천의위천재)

    道樹高談龍樹釋 (도수고담용수석) 東林雅志南林譯 (동림아지남림역)

    斌公彼岸震金聲 (빈공피안진금성) 何似伽倻繼佛跡 (하사가야계불적)

    三三廣會數堪疑 (삼삼광회수감의) 十十圓宗義不虧 (십십원종의불휴)

    若說流通推現驗 (약설유통추현험) 經來未盡語偏奇 (경래미진어편기)



    <贈希朗和尙-증희랑화상>



       희랑(希朗)은 신라 말 고려 초의 중으로 해인사에서 화엄경을 강의하였다. 화엄경의 요지는 모든 것은 오로지 마음에 달렸다는 것을 설한 것으로,위로 는 보리를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제도하는 보살의 도를 닦아 우주의 진리를 깨닫는 것을 이상으로 하고 있다.

    어르신은 유.불.선(儒.佛.仙)에 다 정통하였다. 이 시를 읽어 보면 마치 대덕 (大德) 큰스님으로부터 불법에 대한 설법을 듣는듯한 느낌이 든다. 산문(散 文)인 사산비명(四山碑銘)과 시문(詩文)인 증금산사주(贈金山寺主),증재곡난 야독거승(贈梓谷蘭若獨居僧),제운봉사(題雲峰寺),증운문난야지광상인(贈雲門 蘭若智光上人),기호원상인(寄顥源上人)등은 이 증희랑화상(贈希朗和尙)을 합 쳐 어르신의 불교사상을 알 수 있게하는 자료일 것이다.



    종일 머리 숙여 붓끝을 희홍하니

    사람마다 입을 막아 통정하기 어려워

    시끄러운 세상 멀리 떠난건 즐거우나

    그리운 풍정(風情) 못내 버릴 수 없네.

    개인 놀 단풍길에 그림자 섯갈리고

    비오는 밤 흰 구름 여울에 소리 연했다.

    읊는 정은 경치를 대하니 속박이 없고

    사해(四海)의 깊은 기틀 도(道)를 생각하니 편안하네.



    終日低頭弄筆端 (종일저두농필단) 人人杜口話心難 (인인두구화심난)

    遠離塵世雖堪喜 (원리진세수감희) 爭奈風情未肯란 (쟁나풍정미긍란)*<란=門안에柬>

    影鬪晴霞紅葉逕 (영투청하홍엽경) 聲連夜雨白雲湍 (성연야우백운단)

    吟魂對景無羈絆 (음혼대경무기반) 四海深機憶道安 (사해심기억도안)



    <寄顥源上人-기호원상인>



       이 시는 쌍계사에서 공부 하고 있을 때에 호원 상인에게 부친 시다.일체의 세사를 물리치고 글 읽고 글씨 쓰고 시 읊고 하면서 자연에 자적하여 나날을 보냈을 쌍계사에는 그가 왕명을 받들어 손수 글 짓고 쓴 진감선사대공탑비(眞鑑禪師大空塔碑)가 있고, 화개동천에는 쌍계석문의 친필,세이암(洗耳巖),삼신동 각자,환학대(喚鶴臺),정금천(停琴川)등 많은 유적이 있다.그러기에 쌍계사에 들렸든 후학들도 선생을 추모하는 시를 남겼는바 그 일례를 들면



    점필재 金宗直 詩(김종직 시)



    雙溪寺裏憶孤雲 (쌍계사리억고운) 時事紛紛不可聞 (시사분분불가문)

    海東歸來還浪迹 (해동귀래환랑적) 祗綠野鶴本鷄群 (지록야학본계군)



    쌍계사에서 고운선생을 생각하니,

    당시의 일이 분분하여 들을길 없네.

    고국에 돌아와서도 사방으로 방랑하니,

    푸른 들판에 학이 닭무리에 끼었네.



    石川  林德齡 詩(석천 임덕령 시)



    致遠仙人也 (치원선인야) 최치원은 신선 같은 사람이더라

    飄然謝世氣 (표연사세기) 표연이 세상의 사악(邪惡)에서 벗어 났도다.

    短碑猶有字 (단비유유자) 짧은 비석에는 오히려 글자가 있는데

    深洞本無墳 (심동본무분) 깊은 골짜기에는 본래 무덤이 없도다.

    濁世身如寄 (탁세신여기) 탁한 세상에 잠간 몸을 부쳤다가

    靑天鶴不群 (청천학불군) 청천에 학과 같이 혼자 날더라.

    高山安可仰 (고산안가앙) 높은 산 같은 분을 어찌 우러러 보리요

    聊此읍淸芬 (료차읍청분) 애오라지 이 맑은 향기를 얻었도다.<*읍=좌방변+邑>




  • 狂奔疊石吼重巒 (광분첩석후중만) 미친 물 바위치며 산을 울리어

    人語難分咫尺間 (인어난분지척간) 지척에서 하는 말도 분간 못 할네

    常恐是非聲到耳 (상공시비성도이) 행여나 세상 시비 귀에 들릴까

    故敎流水盡籠山 (고교유수진롱산) 흐르는 물을 시켜 산을 감쌌네.





    <題伽倻山讀書堂-제가야산독서당>



       이 시는 농산정(籠山亭),혹은 가야산홍류동(伽倻山紅流洞)시라고도 불리우며 홍류동 계석상(溪石上)에 자작자제(自作自題)한 세상에 가장 잘 알려진 작품이 다. 어르신은 방랑길에서 돌아와 가족을 데리고 가야산으로 입산한 뒤로는 세상 의 시시비비(是是非非)를 귀 밖으로 돌리고 자연의 품에 안겨 살면서 출세간적 기개(出世間的氣槪)를 보였다.그러기에 그의 삶은 고결(高潔)과 청정(淸淨) 뿐 이 었을 것이다.



    화개동시(花開洞詩)



    東國花開洞 (동국화개동) 동쪽나라 화개동은

    壺中別有天 (호중별유천) 병 속의 딴 세계라,

    仙人推玉枕 (선인추옥침) 신선이 옥침(玉枕)을 베니

    身世훌千年 (신세훌천년) 순식간에 천년이 되었네.<*훌=홀연훌忽也>

    萬壑雷聲起 (만학뢰성기) 일만 골짝이엔 우뢰 소리 울리고

    千峯雨色新 (천봉우색신) 일천 봉우링엔 비 맞은 초목 새로워,

    山僧忘歲月 (산승망세월) 산승은 세월을 잊고

    惟記葉間春 (유기엽간춘) 나무 잎으로 봄을 기억하네.

    雨餘多竹色 (우여다죽색) 비 뒤에 댓빛이 고아

    移坐白雲間 (이좌백운간) 자리를 흰 구름 사이로 옮기고

    寂寂因忘我 (적적인망아) 적막해 나를 잊었는데

    松風枕上來 (송풍침상래) 솔 바람이 베개 위를 스치네.

    春來花滿地 (춘래화만지) 봄에는 꽃이 땅에 가득하고

    秋去葉飛天 (추거엽비천) 가을엔 낙엽이 하늘을 덮었는데

    至道離文字 (지도이문자) 지극한 도(道)는 문자를 여이고

    元來在目前 (원래재목전) 원래 눈 앞에 있다네.

    澗月初生處 (간월초생처) 시냇 달 처음 나는 곳

    松風不動時 (송풍부동시) 솔 바람이 움직이지 않을때

    子規聲入耳 (자규성입이) 소쩍새 소리 귀에 들리니

    幽興自應知 (유흥자응지) 그윽한 흥취 알 수 있으리.

    擬說林泉興 (의설임천흥) 산중의 흥취 말은 들었다지만

    何人識此機 (하인식차기) 어느 사람이 이 기틀을 알리

    無心見月色 (무심견월색) 무심코 달 빛 보며

    默默坐忘機 (묵묵좌망기) 묵묵히 앉아 기틀을 잊었네.

    密旨何勞說 (밀지하노설) 진리를 말할 것 있나

    江澄月影通 (강징월영통) 강이 맑으니 달 그림자 통하고

    長風生前壑 (장풍생전학) 긴 바람은 앞 골짝이에서 불며

    赤葉秋山空 (적엽추산공) 단풍잎은 가을 산을 비었네.

    松上靑蘿結 (송상청라결) 소나무 위엔 담쟁이 덩쿨 얽혔고

    澗中流白月 (간중유백월) 시냇 가운데는 흰 달이 흐르네

    石泉吼一聲 (석천후일성) 절벽 위엔 폭포 소리 웅장하고

    萬壑多飛雪 (만학다비설) 온 골짜기엔 눈이 날리는 듯하네.





       이 친필시(親筆詩)는 화개동시(花開洞詩)라고도 하는데 쌍계사가 있는 화개면은 하동군의 최북단에 위치하고 있는바 옛부터 신선이 사는 선경(仙境)의 별유천지 (壺中別有天)라 하여 화개동천(花開洞天)이라 불리었다.

    선조신묘연간(宣祖辛卯年 間) 서기 1591년에 지리산에 있는 어떤 노승이 암굴에서 여러 질의 이서를 얻었는 데 당대의 학자요 시문가(詩文家)인 지봉(芝峰)에 의해 고운 어르신의 친작 친필로 확인 되어 지봉유설(芝峰類說)에 수재(收載)하였다.원래는 16수였는데 반은 소실되고 8수 만이 남아 있다.



    明月雙溪水 (명월쌍계수) 밝은 달은 시내물에 짝을 지었고

    淸風入詠樓 (청풍입영루) 맑은 바람은 읊조리는 다락에 들어오네

    昔年爲客處 (석년위객처) 옛날 나그네로 왔든 곳

    今日送君遊 (금일송군유) 오늘은 그대를 보내며 노네.



    라는 시도 이 친필시첩 16수 중의 하나라고도 한다.

    세상에서는 이런 것을 가지고 또 말 하되 어르신은 죽지 않고 신선이 되어 산간으로 돌아다니며 가끔 이런 시와 글씨를 써서 석벽 사이나 암굴 속에 더러 버린다고 한다.

    골품제도(骨品制度)라는 신라의 사회제도 하에서 선생의 신분은 육두품(六頭品)이었다.하긴 이 육두품도 난득(難得)이라 하여 당대의 지배계급임에는 틀림 없 었다.그러나 신라 사회의 주인은 진골이었기 때문에 최고 지식인으로서 많은 갈 등을 겪었으며 견디기 어려운 절망감을 느꼈다.

    어르신은 서기894년에 시무책십여조(時 務策十餘條)를 진성 여왕에게 올려서 문란한 정치를 바로 잡으려고 했다. 진골 귀족의 부패와 지방 토호들의 반란 등에 대한 개혁을 제시한 것이다.왕은 그를 아찬에 올렸으나 사회 모순을 외면하고 있던 진골 귀족 들은 그의 개혁안을 묵살 하였다. 결국 외직을 전전 하다가 그 아까운 학식과 경륜을 접어둔 채 산 (자연) 속으로 은둔했다.


    이 화개동시는 자연에 몰입한 어르신의 도가적(道家的)인 선풍(仙風)의 풍모(風貌)를 잘 보여준 시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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