桃花洞小酌[도화동소작] - 도화동의 조그만 술자리 松潭 宋柟壽[송담 송남수]

2016. 2. 3. 22:59


桃花洞小酌[도화동소작] | 송담 송남수

돌지둥[宋錫周] 2015.08.05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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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桃花洞小酌[도화동소작]   松潭 宋柟壽[송담 송남수]

      도화동의 조그만 술자리

 

九十翁携八十翁[구십옹휴팔십옹] : 구십 노인이 팔십 노인을 이끌고

桃花洞裏一樽同[도화동리일준동] : 도화동 안에서 술통 하나를 함께하였네.

誰將此日羣仙會[수장차일군선회] : 누가 무릇 이날 여러 신선들의 만남을

收入龍眠尺素中[수입룡면척소중] : 용면의 작은 편지지 속에 거두어 들일까 ?

 

桃花洞[도화동] : 성북구 성북동을 가리키던 이름으로, 예전에 이 계곡에 복숭아나무를 많이 심어

               봄이면 도성 사람들이 복숭아꽃을 구경하기 위해 찾아 나섰던 데서 마을 이름이 유래됨

               紅桃洞[홍도동], 桃花洞[도화동],복사동으로도 불렸다.

龍眠[용면] : 나라 李公麟[이공린], 벼슬을 그만두고 龍眠山[용면산]에 들어가 지내며

               龍眠居士[용면거사]라 호를 짓고  날마다 용면산을 그렸다고 함.

               그가 그린 山莊圖[산장도]는 세상의 보물로 일컬어졌으며 특히 인물의 묘사에 뛰어나

               顧愷之[고개지]張僧繇[장승요]에 버금간다는 평가를 받았다. [宋史 卷444]

尺素[척소] : 尺書[척서], 尺牘[척독], 尺素書[척소서],

               짧은 便紙[편지], 편지를 보통 길이 한 자쯤 되는 종이에 썼으므로 일컫는 말.

 

이 구는 용면이 그린 신선도와 같이 누가 그려주길 노래한 듯......



幷小叙[병소서] : 아울러 작게 진술하다.


申同知濟伯公九十二歲[신동지제백공구십이세] : 신동지 제백공이 92세 이고

桃花洞主人李宜仲八十二歲[도화동주인이의중팔십이세] : 도화동 주인 이의중이 82세였다.

宜仲公置酒邀余[의중공치주요여] : 의중공이 술자리를 마련하고 나를 불렀다.

余以七十八歲參席末[여이칠십팔세참석말] : 내가 78세로 말석에 참석하였다.

眞曠世奇會[진광세기회] : 참으로 세상에 매우 드문 기이한 모임이다.

梨園老娼錦樓仙後莫愁年皆六十[이원노창금루선후막수년개육십] : 이원의 늙은 기생

                               금루 선후 막수의 나이 모두 60이었다.

歌者注介七十七歲[가자주개칠십칠세] : 노래하는자 주개는 77세이고

玉只六十歲。爭來做歡[옥지육십세 쟁래주환] : 옥지는 60세이니 다투어 와서 기쁘게 만들었다

捨嬋姸而取老醜[사선연이취로추] : 곱고 아름다운것을 버리고 늙고 추한것을 취함은

亦人惟求舊之義[역인유구지의] : 사람도 역시 구의를 취함은 옳바른 도리이리라.

月沙相公晩際來會。恣意歌詠[월사상공만제래회 자의가영] : 월사상공도 저물즈음 모임에 와서

                          마음놓고 노래하고 시를 읊었다.

穩做劇談。夜深還家[온주극담 야심환가] : 편안하게 짓고 쾌활하게 이야기하다 밤이 깊어 돌아왔다.

 

申同知濟伯[신동지제백] : 申橃[신벌(발) : 1523-1616] 자를 濟伯[제백].
   효자로 천거를 받아 30세에 司宰監 參奉[사재감참봉]으로 기용되고, 뒤에 掌樂院 直長)[장악원직장]

   宗簿寺 主簿[종부시주부]를 지낸 후 安山郡守)[안산군수] 信川縣監[신천현감]을 거쳐

   礪山[여산], 丹陽[단양], 溫陽[온양] 군수를 역임, 뒤에 相禮[상례]가 되었다.

   80세에 老人職[노인직]으로 堂上[당상]에 오르고

   아들 양주목사 應榘[응구]가 자기 아버지의 나이가 90이 되었으므로 은전을 베풀어줄 것을 아뢰자

   왕이 實職除授[실직제수]를 명하여 1612년(광해군 4)에 同知中樞院事[동지중추원사]를 추증함.

   인품이 근엄하고 겸손하였으며, 직산현감 자리를 떠난 뒤 읍민이 송덕비를 세우자, 이를 철거하도록 하였다. 


宜仲[이의중 :  李義健[이의건 : 1533-1621]  字[자]宜中[의중], 號[호]峒隱[동은]이다.
   과거를 안 보려고 버티다 어머니의 명에 의해 32살인 1564년(명종 19) 司馬試[사마시]及第[급제]하여 
   종7품인 敦寧府 直長[돈녕부 직장]이 되었으나 어머니가 별세하자 곧 사퇴하였다.
   어머니가 병으로 위독해졌을 때 銀魚[은어]를 먹고 싶어 하였으나 철이 아직 일러 미처 올리지 못하고 별세한 탓에
   그후 벼슬이 주어져도 모두 사양하고 경기도 포천군 백운산 아래 草亭[초정]에 살았다.
   白沙 李恒福[백사 이항복 : 1556-1618]에 의하여 정5품인 六曹 正郞[육조 정랑] 벼슬이 내려졌으나 사양한 후로는
   正郞[이정랑]으로 불리었다.
   경기도 廣州[광주]秀谷書院[수곡서원]과 경기도 포천군玉屛書院[옥병서원]에 제향되었다.


梨園[이원] : 院[장악원] 坊[좌방] 坊[우방] 아울러 이르던 .

   좌방 아악, 우방 속악 맡아보았다.[기생을 가르침]

月沙[월사] : 李廷龜[이정구 : 1563-1635] 자는 聖徵[성징], 호는 月沙[월사], 保晩堂[보안당]

    癡庵[치암], 秋崖[추애], 習靜[습정].

    문장으로 유명해 張維[장유], 李植[이식], 申欽[신흠] 더불어 漢文四大家[한문4대가]로 일컬어진다.

    문인인 崔有海[최유해]가 간행한 시문집 月沙集[월사집]이 전한다.
 

松潭集卷之一[송담집권지일]   七言絶句[칠언절구]  1686간행본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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