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치원의 시 고의(古意)

2016. 2. 15. 15:04


최치원의 시 고의 해석과 함께 올려드립니다.


고의(古意)


  - 최치원


狐能化美女  호능화미녀     
狸亦作書生  이역작서생     
誰知異類物  수지이류물    
幻惑同人形  환혹동인형    
變化尙非難  변화상비난    
操心良獨難  조심량독난     
欲辨眞與僞  욕변진여위      
願磨心鏡看  원마심경간    

 

여우는 능히 미녀로 화하고       
삵쾡이 또한 서생으로 둔갑하네     
그 누가 알랴 속 다른 동물들이      
사람 형상하여 속이고 홀리는 것을     
변화하기는 오히려 어렵지 않으나       
어진 마음 다지기는 참으로 어렵구나      
진실과 거짓을 가려보려 하거든      
원컨대 마음의 거울 닦고 보려므나


| 2007.05.28 수정됨

      





유불선의 뿌리, 신교(神敎)를 밝힌 고운 최치원
  이성욱(창원 상남도장)

   신교(神敎)는 본래 뭇 종교의 뿌리로 동방 한민족의 유구한 역사 속에 그 도맥(道脈)이 면면히 이어져 왔나니 일찍이 최치원(崔致遠)이 말하기를 “나라에 현묘(玄妙)한 도(道)가 있으니 풍류(風流)라 한다. … 실로 삼교를 포함하여(包含三敎) 접하는 모든 생명을 감화시키는 것(接化群生)이라” (道典 1:8:1~2)

   가야산으로 들어가 신선이 되어 사라졌다고 하는 최치원. 유불선의 뿌리가 신교(神敎)임을 밝혔고, 신라는 물론 당나라까지도 이름을 드날린 신라시대 최고의 문장가 최치원의 생애와 사상을 알아보고 신선의 도를 닦아온 선인들의 신교의 맥을 짚어보기로 하자.

   때를 만나지 못함을 슬퍼하며
 고운 최치원(崔致遠,857~?)은 신라시대의 학자로서 경주 최씨의 시조이다. 자는 고운(孤雲), 해운(海雲)이며, 경주 사량부 출생이다. 6두품 출신으로 어릴 적부터 자질을 인정받아 당나라에 유학하였으며, 귀국한 후에는 진성여왕에게 시무책을 올려 6두품이 오를 수 있는 최고 관등인 아찬에 올랐다. 고려 현종 때 문창후로 봉해졌고, 학문과 문학에서 깊은 업적을 남겨 문인들은 그를 ‘동국문종’이라고 추앙하고 있다. 또한 후일 가야산으로 들어가 신발만 남긴 채 신선이 되었다고 전해서 후인들에게 ‘유선(儒仙)’으로 불린다.
 
 경상도와 전북 일대에는 지금도 최치원의 행적이 전해진다. 옥구군에 있는 바위에는 최치원이 먹을 갈던 곳과 무릎자국이 남아있다고 하며, 해운대에서는 도술로 바위에 자신의 호를 새겼다고 한다. 유적뿐 아니라 출생설화를 비롯하여 전설도 많이 전해진다.
  조선시대 쓰여진 것으로 보이는 『최고운전』에 의하면, 최치원의 글 읽는 소리가 당나라 장안에까지 들릴 정도로 낭랑하였다고 한다. 이에 당나라에서는 신라에 큰 인재가 태어났음을 시기하여 사신을 보내 수수께끼를 내었는데, 최치원의 문장과 총명함에 놀란 당천자는 그를 장안으로 불러 죽이려 하였다. 그러나 뛰어난 기지와 용왕, 노구, 미녀 등의 도움으로 무사히 간계를 물리쳤다고 한다. 이로 미루어 볼 때 최고운은 분명 범상치 않은 인물이었음에 틀림없다.
  13세에 최치원은 당나라 유학의 길에 올라, 18세의 나이로 빈공과에 장원으로 급제했다. 881년에 「토황소격문(討黃巢檄文」를 지었는데, 황소의 난을 진압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이때 군무에 종사하면서 지은 글들은 훗날 『계원필경(桂苑筆耕)』 20권으로 엮어졌다.
  당시 당나라는 조금씩 국운이 기울어가고 있었고, 이방인인 최치원이 겪는 고독과 한계는 극에 달했다. 아픔과 좌절된 꿈을 시(詩)로 달래던 최치원은 결국 29세에 주위 관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부친의 병을 계기로 신라로 귀국하였다. 큰 포부를 안고 귀국했지만 최치원은 다시 골품제의 한계와 국정 문란으로 뜻을 펼 수가 없었다. 당시 신라사회는 중앙귀족들의 권력쟁탈과 함께 지배체제가 흔들리면서 도적 떼와 반란이 횡행했다.
 
 891년 양길과 궁예가 세력을 확장했고, 다음해에는 견훤이 자립하여 후백제를 세웠다. 망국의 그림자를 본 최치원은 마지막 힘을 짜내어 894년 진성여왕에게 <시무책 10조>를 올려 왕이 이를 가납하였으나 골품제의 모순과 왕권의 미약으로 그의 개혁의지는 실현되지 못했다.
  결국 어디서도 자신의 포부를 펼치지 못한 최치원은 40대의 나이에 관직을 버리고 풍류객으로 삶을 시작한다. 그에 대한 문헌의 기록은 904년을 끝으로 보이지 않는데 세간에서는 그가 신선이 되어 등천하였다고 전한다.

   붓을 휘둘러 난을 토벌하다
 최치원의 문집을 모은 『계원필경』 서문을 보면, 최치원을 당나라에 유학 보내며 아버지는 “10년 안에 과거에 합격하지 못한다면 내 아들이 아니다”라고 하였다. 이에 최치원은 “다른 사람이 백번하면, 나는 천번하였다(人百之己千之)”라고 하며 유학시절의 역경을 적고 있다. 그러나 최치원의 남다른 학문열은 결코 출세를 위한 것만은 아니었다.
  “수없이 생각해 보아도 학문하는 것만 못합니다. 평생에 노력한 것이 오히려 헛될까 두려워서 출세의 길에 경쟁하지 않고 다만 유교의 道를 따랐습니다.… 오직 도가 장차 없어지는 것을 근심할 뿐 어찌 사람들이 나를 쉽게 알아주지 않음을 말하겠습니까?” 『계원필경 卷17』
  또한 최치원의 남다른 철학과 정신이 더욱 잘 드러나는 것은 남아있는 저작과 시문을 통해서이다. 그 중 당나라 유학의 고독을 담은 「추야우중」과 말년에 은거하며 속세의 길을 훌쩍 뛰어넘은 경지가 잘 드러난 「가야산 독서당」이 대중에 널리 회자되고 있다.
  또한 황소의 난의 기세를 통렬하게 꺾고, 치민(治民)의 대의를 담은 『토황소격문』은 당대에 견줄만한 작품을 찾기 힘든 명문이다. 더욱이 역사상 붓으로 난을 토벌한 이는 고운 최치원 외에 유례를 찾기 힘들다. 이런 경력에 힘입어 고려시대에는 후(侯)로 봉해졌고 심지어 조선문인들은 문천자(文天子)로 까지 숭상하였다.
  “햇빛이 활짝 퍼졌으니
 어찌 요망한 기운을 그대로 두겠는가!
 하늘그물이 높게 달렸으니 반드시 흉적을 베리라!”

 (토황소격문 中)
  저술로는 『계원필경』 20권과 『사륙집四六集』 1권, 문집 30권 등이 있었고, 사서(史書)로는 『제왕연대력』과 불교와 관련하여 법장화상전 1권과 사산비명四山碑銘 등이 전하며 <동문선>에 시문 약간이 기록되어 있다. 그 외에도 방대한 저술이 있지만 전하여 오지 못하여 아쉬움이 남는다.

   “우리나라에 현묘한 도가 있으니…”
 최치원은 스스로 자신을 ‘유자(儒者)’로 자처하였다고는 하나 그의 사상은 유불선을 자유롭게 넘나들었다. 그는 중국의 선, 불, 유는 한민족의 본래 신교(神敎)가 다시 역수입된 것으로 보았다. 특히 그가 쓴 <난랑비 서문>은 한민족에 면면히 내려왔던 신교의 정신을 확연히 드러내주는데 여기에서 최치원은 신교가 유·불·선의 뿌리임을 밝히고 있다.
  國有玄妙之道하니 曰風流라.
 국유현묘지도 / 왈풍류
 設敎之源備詳仙史하니 實內包含三敎하야 接化群生
 설교지원 / 비상선사 / 실내포함삼교 / 접화군생
 且如入則孝於家하고 出則忠於國魯司寇之旨也
 차여입즉효어가 / 출즉충어국 / 노사구지지야
 處無爲之事하고 行不言之敎周柱史之宗也
 처무위지사 / 행불언지교 / 주주사지종야
 諸惡莫作하고 諸善奉行竺乾太子之化也라.
 제악막작 / 제선봉행 / 축건태자지화야
 (『삼국사기』 「신라본기 진흥왕조 난랑비 서문」)
  “우리나라에 현묘한 도가 있으니 이를 ‘풍류’라 한다. 가르침을 베푸는 근원은 선사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거니와, 실로 삼교를 포함하여 접하는 모든 생명을 감화시키는 것이 있다. 예를 들어 보면, 이는 곧 집으로 들어와서는 부모에게 효도하고 밖으로 나가서는 나라에 충성하는 것은 공자가 가르쳤던 뜻이요, 매사에 무위로 대하고 말없는 가르침을 행함은 노자의 가르침이며, 악한 일을 하지 말고 모든 착한 일을 받들어 행하라는 것은 석가모니의 교화니라.”

   마지막 화랑, 최치원
 최치원은 문인으로서의 면모뿐 아니라, 선인으로서의 구도행 역시 후대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말년에는 시해법의 일종인 ‘가야도인법’을 저술하여 전하였다고 한다.
  신라 중기 화랑인 물계자나 사랑(四郞)의 전설에서 보여지듯, 화랑의 정신은 멋과 풍류였다.1)
  『청학집靑鶴集』을 쓴 조여적은 조선 단학의 계보가 광성자(廣成子)-명유(明由)-환인(桓因)-환웅(桓雄)-단군-문박-영랑-보덕-도선-최치원-위한조-편운자(片運子)로 이어졌다고 주장했다.2)
  반면 『해동전도록』에서는 태상노군에서 종리권 여동빈으로 이어지는 중국 도교가 종리권에서 당나라 유학생이었던 최승우를 거쳐 최치원을 통해 우리나라로 흘러 들어와 김시습 등으로 이어졌다고 보기도 한다.
  최치원은 비록 신라를 다시 부흥시키는 데는 실패했지만, 자신이 진정한 풍류객의 길을 걸었고, 뛰어난 필치로 화랑의 정신을 후세에 전했다는 점에서 신라의 마지막 화랑이라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최치원이 말한 바대로 유불선의 뿌리이며, 우리 민족 문화의 뿌리인 ‘신교’는 수천년 역사의 굴절 속에서도 꿋꿋이 전해져 후대에 최수운의 ‘동학’으로 이어졌으며, 이제 가을의 원시반본(原始返本)의 자연섭리에 의해 상제님의 천지공사 속에서 완성되었다. 이제 후천개벽의 시운을 맞아 그 얼과 혼을 받은 증산도의 초립동이들이 다시 세계 무대의 주인공으로 나아갈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밤이 깊어 가매 더욱 흥을 내어 북을 치시며
 시 한 수를 읊어 주시니 이러하니라.
  
時節花明三月雨
風流酒洗百年塵이라
 시절화명삼월우 풍류주세백년진
 철 꽃은 내 도덕의 삼월 비에 밝게 피고
 온 세상의 백년 티끌 내 무극대도의 풍류주로
 씻어 내니 우리의 득의지추(得意之秋) 아닐런가.
 (道典 5:155:7~9)

 



 **********************
 1)
< 화랑세기 >에는 “화랑이란 선의 무리(仙徒)이다. … 선도들은 다만 신(神)을 받드는 일을 주로 하여 국공(國公)들이 그들을 따라 나란히 다녔고, 후일에 선도들은 도의(道義)로써 서로 면려(勉勵)하였으므로, 이에 어진 재상과 충성스런 신하가 이로부터 선발되었고, 훌륭한 장수와 용감한 병졸이 여기에서 나왔으니 화랑의 역사는 알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라고 전한다.
 《계림유사(鷄林類事)》를 보면, “단(檀)은 배달(倍達)이고, 국(國)은 나라(那羅)이며, 군(君)은 임검(任儉)이다.(檀倍達 國那羅 君任儉)”라는 기록이 있다. 풍월도(風月道)의 ‘풍(風)’이 옛날에는 ‘발함 풍’이라 하였는데, ‘바람’, ‘배람’이라고도 한다. 그리고 ‘월(月)’은 ‘달 월’이다. 이것을 이두식으로 읽게 되면 ‘발달길’또는 ‘배달(倍達)길’이 된다. 또한 풍류도라 할 때 ‘류(流)’ 자는 ‘흐를 류’ 또는 ‘달아날 류’라 한다. 그렇다면 풍류도 역시 ‘배달길’이 된다고 하겠다. 신라에서는 맨 처음 풍월주(風月主)라 하였다가 뒷날 화랑(花娘, 花郞)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2) 광성자와 명유는 중국정사에서 상고의 신선으로 모셔지는 신비의 인물이다. 그리고 환인은 『환단고기』에서 ‘승유지기(乘遊至氣) 묘계자연(妙契自然)’ 하였다고 전하며, 환웅 역시 주문을 읽고 단을 복용하여 신령한 경지에 다다랐다고 한다. 단군임검 또한 삼국사기에 선인(仙人)왕검이라 칭하고 있다.

    === 선(仙)의 맥을 이은 인물들===============
 신채호 선생은 『규원사화』 등의 기록을 바탕으로 한민족의 선(仙)이 한민족 고유의 것이며 이것이 일제치하 독립운동으로까지 이어지는 ‘낭가사상’이라고 보았다.
  이런 선인들은 한민족 건국과정에서 주체로 참여하였으며 국가의 위란 시마다 구국의 투혼을 보여왔다. 배달국의 제세핵랑군에서 시작된 선인의 맥은 고구려의 조의선인, 백제의 무사도, 신라의 화랑, 고려의 국자랑으로 이어지며, 묘청의 서경천도운동을 끝으로 은둔의 길을 걷게 된다.
  을지문덕, 연개소문, 김유신, 우륵, 의상대사, 원효대사, 강감찬, 김시습, 정북창, 이지함, 곽재우, 권극중 등 낯익은 이름들이 선인의 맥을 이은 인물들이다. 이외에도 무명으로 시해선(尸解仙)이나 천선(天仙)이 된 이들은 수없이 많다. 이들은 세상과 담을 쌓고 풍류로써 자연과 벗하다가도 국가의 위난 시나 대변국기에는 어김없이 세상을 위하여 봉사하고, 헌신함을 꺼리지 않았다.
  최치원 역시도 「낭혜화상비문」에서 장생을 구하여 학을 타고 날아다니며 고고함을 구하는 중국 선도를 깎아 내리며, 오히려 중생을 구제하여 세상을 위해 몸을 적시는 진정한 선의 길을 제시하였다.


    <참고자료>
 『삼국사기』권46(열전 제6) 최치원
 「최치원의 삼교융화사상에 관한 연구」, 하갑룡, 부산대학교
 「고운 최치원 시집1」, 김진영 외역, 민속원, 1997


 

*고운서예대전 출품자는 개별 혹은 모아서 출품하세요. 장산은 그 때 중국에 있을테니까요. 9/15 도착
 

 도움이 되엇으면 좋겠네요~~

피아노맨   2010.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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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詩산책(17)]-최치원의 酬吳巒秀才惜別二絶句

기사입력 : 2012.08.16 07:52 (최종수정 2015.02.27 14:57)


 
酬吳巒秀才惜別二絶句(내 지금 보내는 뜻)


孤雲 崔致遠 지음/銀朝 장현주 옮김


榮祿危時未及親 영록위시미급친

莫嗟岐路暫勞身 막차기로잠로신

今朝遠別無他語 금조원별무타어

一片心須不愧人 일편심수불괴인



殘日塞鴻高的的 잔일새홍고적적

暮烟汀樹遠依依 모연정수원의의

此時回首情何限 차시회수정하한

天際孤帆窣浪飛 천제고범솔랑비



아직 福祿으로선 마루 이뤄 부모를 명예롭게 못하였느니

갈림길에서 잠시 몸 고단함을 탄식하지 말으오

오늘 아침엘랑 머얼리로 헤어지느니 다른 할 말 무에 있겠소

모름지기 사람한테나 수치스럽지 않을 한 조각 맘이면 될 걸



해자락 남은 변방엔 기러기 높이 나름이 자명하고

모락이는 저녁연기 물가 나무녘을 빗겨 먼 데

고개 돌려 바라보나니 내 지금 보내는 뜻을 어찌 측량할 수 있으리

저 하늘 가 외롭디 외론 돛배 하나 불쑥 표랑하듯 나를 제



<別設>



烟(연)은

눈물이 어리거나,

안개가 끼거나,

이슬비가 내리거나,

그을음이 앉거나



그래서 아리땁게 보이는

묵직한 山의 눌변








蜀葵花(접시꽃) 최치원-신라시인에 묻다 한국 고전 / 한국(Korean)문학

2013.04.14. 18:07

         http://blog.naver.com/lavender002/70165688382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의 시(詩)

*고운 최치원(崔致遠, 857∼?): 통일신라 말기의 학자이자 문장가

 

 


가야산에서

狂奔疊石吼重巒 바위 골짝 치닫는 물 첩첩 산골 뒤흔드니

人語難分咫尺間 사람 말은 지척에도 분간하기 어려워라

常恐是非聲到耳 세속의 시비소리 행여나 들릴세라

故敎流水盡籠山 흐르는 계곡 물로 산 둘러치게 했나

 

 

계원필경 ‘12월화우이제야견시

與君相見且歌吟 그대여, 우리 오늘 만났으니 시나 읊고

莫恨流年挫壯心 더 큰 꿈 이루지 못한 건 한탄하지 말자.

幸得東風已迎路 다행히 봄바람이 우리를 길 맞이하리니

好花時節到鷄林 꽃피는 좋은 철에 계림에 도착하는 걸.(’)

   

 

‘贈山僧’

僧乎莫道 靑山好 스님들이여, 청산이 좋다고 말씀들 하지 마시오.

山好何事 更出山 산이 좋다면 왜 자주 산 밖으로 나오시는가.

試看後日 吾踪跡 두고 보시라. 나의 뒷날 자취를

一入靑山 更不還 한번 청산에 들면 다시는 밖으로 나오지 않을 테니.

 

 

길을 가다가[途中作]

東飄西轉路岐塵 동서로 떠도는 길, 헷갈리고 먼지투성인데

獨策??幾苦辛 여읜 말 홀로 채찍하며 얼마나 고생했던가.

不是不知歸去好 귀향함이 좋은 줄 내 모르는 바 아니지만

只緣歸去又家貧 돌아간다 한들 또 집이 가난한 것을.

 

 

題伽倻山讀書堂’.

狂奔疊石吼重巒 미친 듯 바위 위를 내달으며 산을 울리는 물소리에

人語難分咫尺間 사람의 이야기는 지척에서도 알아듣기 어렵다.

常恐是非聲到耳 옳다 그르단 세상 시비소리 귀에 들릴까봐

故敎流水盡籠山 흐르는 물을 시켜 온 산을 감쌌다.

 

 

 


秋夜雨中

秋風唯苦吟 쓸쓸한 가을 바람 애닯은 노래

世路少知音 세상엔 날 알아 주는 이 없고

窓外三更雨 깊은 밤 창밖에는 비 듣는 소리

燈前萬里心 등불 아랜 만리 먼 길 외로운 마음.

 

 

 


장안의 旅舍 이웃에 于愼微장관이 살기에 시를 지어 부친다

上國羈棲久 상국에 와 객지생활 하도 오래니

多慙萬里人 만리 타향의 부끄러운 사람

那?顔氏巷 안자의 누항 같은 살림으로써

得接孟家 맹씨처럼 좋은 이웃에 살게 되다니

守道唯?古 도 지키어 옛글 공부 뿐

交情豈憚貧 사귀는 깊은정은 가난타고 싫어하리

他鄕少知己 타향에 알아 줄 이 없으니

莫厭訪君頻 그대 자주 찾아감 싫다지 마소.

 

 

 


寓興(생각을 붙여)

願言利門 너 부디 이익길엔 생각을 끊고

不使損遺體 부모주신 귀한 몸, 상치 말아라.

爭奈探珠者 어찌타 眞珠를 캐는 저 사람

輕生入海底 목숨 걸고 바다 밑을 들어 가는고.

身榮塵易染 몸이 영화 티끌에 더럽혀지기 쉽고

心垢水難洗 마음에 낀 때는 물로도 씻기 어렵다.

澹泊與誰論 누구와 담담한 맛 의논하랴

世路嗜甘醴 세상사람들은 달고 취함 즐기는 것을.

 

 

 途中作(도중에서 지음)

東飄西轉路岐塵 동서로 떠도는 몸 티끌길에

獨策??幾苦辛 외로운 채찍 파리한 말 얼마나 고생했노

不是不知歸去好 돌아감이 좋은줄 모르는게 아니지만

只緣歸去又家貧 돌아간다 한들 또 집이 가난한 것을.

 

 

蜀葵花(접시 꽃)

寂寞荒田側 거친 밭 언덕 적막한 곳에

繁花壓柔枝 탐스런 꽃송이가 약한 가지 누르고 있다...

香輕梅雨 첫여름 비갤무렵 가벼운 향기

影帶麥風歌 보리 누름 바람결에 비낀 그림자

車馬誰見賞 수레 탄 사람 누가 보아줄까.

蜂蝶徒相窺 그저 벌 나비만 와서 엿볼 뿐.

自慙生地賤 천하게 태어난 것이 부끄러워

堪恨人棄遺 세상에서 버림받아도 참고 견딘다.

 

 

등윤주자화사>

登臨暫隔路 塵(등임잠격로기진) 절에 올라 속세 먼지 잠시 떠났다만

吟想興亡恨益新(음상흥망한익신) 흥망을 생각하니 한은 더욱 새롭구나

畵角聲中朝暮浪(화각성중조모랑) 뿔나팔 소리에 아침 저녁 물결 일고

靑山影裏古今人(청산영리고금인) 청산의 그림자에 고금의 사람 있네

霜 玉樹花無主(상최옥수화무주) 옥 같은 나무 서리가 꺽고 꽃도 주인 없는데

風暖金陵草自春(풍난금능초자춘) 금릉 땅엔 봄바람 불어 풀만 홀로 봄을 맞네

뇌有謝家餘景在(뇌유사가여경재) 사시 집안 옛 풍광 그마저 남아있어

長敎詩客 精神(장교시객상정신) 시인에게 길이길이 회고의 정 젖게 하네

 

 

 


江南女 강남의 여인

江南蕩風俗 강남땅은 풍속이 음탕하기에

養女嬌且憐 딸을 길러 아리땁고 예뻐라

性冶恥針線 놀아나는 성품은 바느질을 싫어하고

粧成調管絃 단장 마치고 관현을 희롱하네

所學非雅音 고상한 곡조 배우지 않았기에

多被春心牽 그 소리 대개 춘정에 이끌리네

自謂芳華色 스스로 꽃답고 아름다운 그 얼굴

長占?陽年 언제나 청춘일줄 생각하네

却笑?舍女 아침내내 베털에서 북을 놀리는

終朝弄機? 이웃집 딸을 도리어 비웃나니

機?縱勞身 비록 베를 짜느라 몸을 괴롭혀도

羅衣不到汝 마침내 비단옷은 너에게 안간다고

 

 

古意 고의

狐能化美女 여우는 능히 미인으로 화하고

狸亦作書生 살쾡이는 글하는 선비로 화하네

誰知異類物 그 누가 알리 동물들이

幻惑同人形 사람 모양을 지어 속이고 홀리는 것을

變化尙非艱 변화하기 오히려 어럽잖으나

操心良獨難 마음가지기 진실로 어려워라

欲辨眞與僞 그 참과 거짓을 분별하려거든

願磨心鏡看 원컨데 마음 거울을 딱고 보소.

 

 

郵亭夜雨 나그넷집 밤비

旅館窮秋雨 나그넷집 깊은 가을 비는 내리고

寒窓靜夜燈 창아래 고요한 밤 차거운 등불

自憐愁裏坐 가엾다 시름속에 앉았노라니

眞箇定中僧 내 정영 참선하는 중이로구나.

山陽與鄕友話別 산양땅에서 고향친구와 작별하며

相逢?樂楚山春 서로 만나 잠시 초산의 봄을 즐겼더니

又欲分離官滿巾 다시 헤어지려니 눈물이 수건에 가득하네

莫怪臨風偏?望 바람앞에 슬피 바라봄을 괴히 여기지 말라

異鄕難遇故鄕人 타향에서 고향사람 만나기 참 어려운 것을.

 

 

 


題芋江驛亭 제 우강역정

沙汀立馬待回舟 모래 기슭에 말 세우고 돌아오는 배를 기다리니

一帶烟波萬古愁 일대연파가 만고의 시름일세

直得山平兼水渴 산이 평지되고 물이 또한 맑아져야

人問離別始應休 인간세상 비로소 이별이 없게 될 것을

 

 

春日邀知友不至 봄날에 벗을 청하였으나 오지 않아 절구의 시를 부친다

每憶長安舊苦辛 매양 장안에서 고생하던 일 생각하면

那堪虛擲故園春 차마 어찌 고원의 봄을 헛되이 보내리

今朝又負遊山約 오늘 아침 도 산놀이 약속을 저바리는 구나

悔識塵中名利人 뉘우치노라 티끌속의 명리인 알게 된 것을.

 

 

留別西京金少尹峻 서경 금소윤준과 작별

相逢信宿又分離 서로 만나 수일만에 또 헤어지게 되니

愁見?中更有? 갈림길에 또 갈림있는 것이 시름겹구나

手裏桂香銷欲盡 손 가운데 계향은 다 녹으려는데

別君無處話心期 그대와 이제 헤어져 마음 얘기 나눌 자 다시 없구나

 

 

 


贈金川寺主 금천사 주지에게 주다

白雲溪畔?仁祠흰 구름 시냇가에 절을 지어

三十年來此住持 서른해 내리 이 주지 일세

笑指門前一條路 웃으며 가리키노니 문앞의 한줄기 길이

?離山下有千? 조금 곧 산아래를 떠나면 천가닥이 되네

 

 

 


贈梓谷蘭若獨居僧 재곡난야에 혼자 사는 중에게

除聽松風耳不喧 솔바람 소리 밖엔 다른 소리 들리잖고

結茅深倚白雲根 깊숙히 구름 밑에 띳집 하나 매었구나

世人知路?應恨 세상사람 길 아는 것 응당 도로 원망하리

石上?苔汚?痕 티끌 묻은 신발자국 바위 이끼 더럽히네

 

 

 


黃山江臨鏡臺 황산강 임경대

烟巒簇簇水溶溶 메 뿌리 웅긋 중긋 강물은 넘실넘실

鏡裏人家對碧峯 집과 산 거울인듯 서로 마주 비치는데

何處孤帆飽風去 돛단배 바람태워 어디로 가버렸나

瞥然飛鳥杳無? 나는 새 어느결에 자취없이 사라지듯.

 

 

 


登潤州慈和寺上房 윤주 자화사 상방에 올라

登臨?隔路?塵 산에 올라오니 갈래길 먼지 잠시 멀어졌으나

吟想興亡恨益新 흥망을 되씹으니 한이 더욱 새로와라

?角聲中朝暮浪 화각소리 가운데 아침 저녁 물결인데

靑山影裏古今人 푸른산 그림자 속엔 고금인물 몇몇인고

霜?玉樹花無主 옥수에 서리 치니 꽃은 임자도 없구나

風暖金陵艸自春 금릉 따스한 바람에 풀은 절로 봄이로고

賴有謝家餘境在 사가의 남은 경지 남아 있어

長敎詩客爽精神 시객의 정신 길이 상쾌하게 하네.

 

 

 


秋日 再經??縣 寄李長官 가을날에 우치현을 다시 지나며 이장관에게 부침

孤蓬再此接恩輝 외로운 손이 두번 예서 신세지니

吟對秋風恨有違 가을 바람에 읊조리며 어긴 일 다시 서러워지옵네

門柳已凋新歲葉 문 앞 버들은 새 잎 벌써 시들었건만

旅人猶着去年衣 나그네 옷은 아직 작년 입던 그대로

路迷?漢愁中老 하늘같이 먼 길에 시름 속 늙어가는 몸

家隔烟波夢裏歸 바다 건너 내 집엔 꿈에니 돌아갈까

自笑身如春社燕 우습다 이몸은 봄 사일의 제비인가

?樑高處又來飛 그림 들보 높은 곳에 또 와 노니는 구나

 

 

 


送吳進士巒歸江南 오진사 만이 강남으로 돌아감을 전송하면서

自識君來幾度別 그대와 안 뒤 몇번째 이별인가

此回相別恨重重 이번 서로 갈림에는 한이 더욱 겹쳐옵네

干戈到處方多事 전쟁은 가는 곳마다 한창 수선한데

詩酒何時得再逢 어느 때나 다시 만나 시와 술을 같이 할까

遠樹參差江畔路 먼 나무는 강변길에 우뚝 우뚝

寒雲零落馬前峯 찬 구름은 말 앞 뫼에 떨어지네

行行遇景傳新作 가다가 경치 좋거든 새작을 전해주게

莫學?康盡放? 게으런 혜강의 버릇 제발 배우지 마소.

 

 

 


暮春卽事 和顧雲友使 늦은 봄 즉흥으로 동료사자 고운에게 회답하며

東風遍閱百般香 봄바람에 온갖 꽃 향내를 겪어 왔네만

意緖偏饒柳帶長 정서는 기나긴 버들가지에 더욱 끌리네

蘇武書回深塞盡 소무의 글월은 변방서 돌아오고

莊周夢逐落花忙 장주의 꿈은 낙화를 쫓아 바쁘네

好憑殘景朝朝醉 남은 경치 빙자하여 아침마다 취하노니

難把離心寸寸量 이별의 정은 촌촌이 헤아리기 어려우이

正是浴沂時節日 때는 정히 기수에 멱감는 시절

舊遊魂斷白雲鄕 옛 놀던일 생각하니 혼이 흰 구름 위에로.

 

 

 


和張進士喬村居病中見寄 장진사 교가 마을에 살면서 병중에 부친 시를 화답한다

一種詩名四海傳 시의 명성 사해에 떨치니

浪仙爭得似松年 낭선이 송년과 어떠한가

不惟騷雅標新格 소아가 신격을 드러내어

能把行藏繼古賢 능히 행장을 갖고 옛 어진이를 이었도다

藜杖夜携孤嶼月 교교한 달 아래 명아주 지팡이 짚고

葦簾朝捲遠村烟 갈대 주렴에는 먼 마을 연기 걷히고

病來吟寄?濱句 병이 들자 장빈 글귀를 읊어

因付漁翁入郭船 성에 들어가는 어옹의 뱃편에 부치노라.

 

 

 


春曉偶書 봄 새벽

?耐東流水不回 흘러가는 더 물은 돌아 못 오고

只催詩景惱人來 봄빛만 사람을 괴롭히누나

含情朝雨細復細 애틋한 아침 비 부슬 거리고

弄?好花開未開 꽃들은 피고 맺고 저리 곱구나

亂世風光無主者 난리때라 좋은 경치 주인이 없고

浮生名利轉悠哉 뜬 세상 명리도 쓸 데 없는 것

思量可恨劉伶婦 아내는 원망스레 소매 붙들고

强勸夫郎疎酒盃 구태 어이 술잔 자주 못 들게 하나.

 

 

 


泛海 바다에 배를 띄움

掛席浮滄海 배를 푸른 바다에 띄우니

長風萬里通 긴 바람 만리를 통하였네

乘?思漢使 뗏목 탔든 한나라 사신이 생각나고

採藥憶秦童 불사약을 구하든 진나라 동자가 기억나네

日月無何外 해와 달은 허공 밖에 있고

乾坤太極中 하늘과 땅은 태극의 가운데 일세

蓬萊看咫尺 봉래산이 지척인듯

吾且訪仙翁 내 우선 신선을 찾어 보리라.

 

 

 


題雲峯寺 제 운봉사

?葛上雲峯 칡 덩굴 부여잡고 구름 봉에 올라

平看世界空 굽어보니 온 누리가 텅 빈 듯

千山分掌上 산들은 올망졸망 손바닥에 놓이고

萬事豁 ?中 만사는 가슴속이 탁 틔누나

塔影日邊雪 탑 그림자 해 가의 눈이요

松聲天半風 솨솨 솔 소리는 반공의 바람일세

烟霞應笑我 구름과 놀이 응당 나를 웃을 것이

回步入塵籠 진세로 다시 걸음 돌리다니

 

 

 


贈雲門蘭若智光上人 운문서 난야 지광상인에게

雲畔構精廬 구름가에 정사를 지어 놓고서

安禪四紀餘 조용한 선정에 근 오십년간

?無出山步 지팡이는 산 밖에 나본 일 없고

筆絶入京書 붓은 서울로 가는 글월 안 쓰네

竹架泉聲緊 대 홈에 샘물 소리 졸졸

松?日影疎 송창에 햇빛이 성그네

境高吟不盡 맑고 높은 경지에 읊다 못하여

瞑目悟眞如 눈 감고 진여를 깨치려네

 

 

 


題輿地圖 제 여지도

崑崙東走五山碧 곤륜산이 동으로 뻗어 다섯 산이 푸르렀고

星宿北流一水黃 성수는 북으로 흘러 황하가 누리었네

 

 

姑蘇臺 고소대

荒臺?鹿遊秋草 버려둔 고소대엔 가을 풀만 우거지고 제 세상 만난듯이 사슴들만 놀고있네

廢院牛羊下夕陽 염소와 소가 차지한 옛 집터에 석양 해가 비치네

 

 

 


碧松亭 벽송정

暮年歸臥松亭下 늙은 몸 송정 아래 돌아와 누었으니

一抹伽倻望裏靑 바라다 뵈는 것이 가야산 뿐이로구나 칠한 듯 푸르른 빛이 곱게 눈에 띠이네

   

 

陳情上太尉詩 (태위에게 진정한 시)

海內誰憐海外人

問津何處是通津

本求食祿非求利

只爲榮親不爲身

客路離愁江上雨

路園歸夢日邊春

濟川幸遇恩波廣

願濯凡纓十載塵

뉘라서 해외사람 보살펴 주리

묻노라 어디메가 내 갈 곳인가

부자는 내사 싫고 벼슬 살고저

어버이 위하여 그렇습니다

강상의 빗소리 이별의 시름

고향봄은 꿈속에 가물 거리네

제천이라 은파도 넓으시거니

씻어다오 갓끈에 낀 십년 먼지를

 

 

奉和座主尙書避難過維陽寵示 絶句三首(좌주상서가 난을 피하여 유양으로 가는 도중에 절구)

年年荊棘侵儒苑 處處烟塵滿戰場 豈料今朝覲宣父 豁開凡眼睹文章

유원은 갈수록 형극만 돋고

여기저기 싸움터엔 연기와 먼지

오늘아침 선부님께 절을 드리고

그 문장에 좁은 안목 넓힐 줄이야.

 

 

亂時無事不悲傷 鸞鳳驚飛出帝鄕 應念浴沂諸弟子 每逢春色耿離腸

난리 때라 일일이 아니 슬프리

난.봉은 다 제향을 떠나 가노라

기수에 목욕하던 제자께 그려

봄이 오면 이별의 애를 녹이네

 

 

濟川終望拯湮沈 喜捧淸詞浣俗襟 唯恨吟歸滄海去 泣珠何計報恩深

바라노라 흐린 세상 건져 주기를

씻었노라 글월 보고 속된 마음을

아득한 저 바다로 돌아를 가니

깊은 은혜 갚지 못해 눈물만 줄줄

 

 

 


歸燕吟獻太尉(귀연음으로써 태위에 드림)

秋去春來能守信 暖風?雨飽相? 再依大厦雖知許 久汚雕梁却自慙

深避鷹?投海島 羨他鴛鷺?江潭 只將名品齊黃雀 獨讓銜環意未甘

오가는 봄 가을이 꼭 신을 지켜

따슨 바람 서늘 비를 실컷 겪었네

또 다시 대하에 기대게 되니

조량을 더럽혀 어찌할가요

응.전을 피하느라 섬으로 갈땐

강담의 완.노가 부러웠다네

명품은 황작과 다름없는데

함환을 갖지 못해 섭섭합니다

 

 

酬楊贍秀才送別(양섬 수재의 송별을 답한다)

海?雖定隔年? 衣錦還鄕愧不才 暫別蕪城當葉落 遠尋蓬島?花開

谷鶯遙想高飛去 遼豕寧慙再獻來好把壯心謀後會 廣陵風月待銜杯

해 지나 바다를 건너 가지만

분에 넘친 금의환향 부끄럽구려

잎지는 무성땅에 이별 나눴고

봉도를 찾아 갈 땐 꽃이 피였네

교목을 기우리는 꾀꼬리거니

요시 어찌 다시 오길 꺼리겠는가

이 마음 잊지 말고 다시 모이어

광릉의 풍월에 술잔 나누세.

 

 

留別女道士(여 도사를 유별하다)

每恨塵中厄宦塗 數年深喜識麻姑 臨行與爲眞心說 海水何時得盡枯

벼슬길에 쪼들린 진세의 몸이

마고 신선 알게 되어 기뻤습니다

이 자리에 진심 털어 말을 하자면

저 바다는 어느 때나 다 마를까요.

 

 

酬進士楊贍送別(양섬 진사의 송별을 답한다)

海山遙望曉烟濃 百幅帆張萬里風 悲莫悲兮兒女事 不須??別離中

아슬한 산 봉우리 연기 서리고

풍석 조각 바람에 펄렁이누나

행여나 사내로서 계집애 같이

갈린다고 지나치게 슬퍼를 마소.

 

 

楚州張尙書水郭相迎 因以詩謝

(초주 장상서가 수곽에서 맞이하기로 시로써 사하다)

楚天蕭瑟碧雲秋 ??高飛訪葉舟 萬里乘?從此去預愁魂斷謝公樓

소실한 먼 하늘 가을 빛 맑고

여준은 조각배를 찾아 드누나.

여기서 만릿길을 떠나를 가면

사공루 그리워 어찌 하리까

 

 

酬吳巒秀才惜別二絶句(오만 수재의 석별을 수답하다)

榮祿危時未及親 莫嗟?路?勞身 今朝遠別無他語 一片心須不愧人

고관되면 친하기도 어렵웁나니

이별의 괴롬을 슬프다 마소

갈리는 이 자리에 딴말 있겠나

꺼리낌 없구려 일편단심.

殘日塞鴻高的的 暮烟汀樹遠依依 此時回首情何限 天際孤帆?浪飛

석양에 높이 뜬 변방 기러기

먼 숲은 아른 아른 연기 어렸네

고개 돌려 바라보니 한 없는 인정

물결에 떠 오른 저 하늘가로……

 

   

??絶頂欲摩天 海日初開一朶蓮 勢削不容凡樹木 格高唯惹好雲烟

點?寒影?新雪 ?玉淸音噴細泉 靜想蓬萊只如此 應當月夜會?仙

높다란 그 꼭대기 하늘에 닿을 듯

태양이 비춰준 한떨기 연꽃인양

깍아 세운 벼랑이라 범상한 수목 엄두인들 낼 것이며

높은 품위는 오직 구름.안개 만을 벗으로 하네.

술을 가르킨 찬 모습은 새로 내린 눈을 장식했고

옥 굴리는 맑은 소리 시내에서 흘러오네.

봉래산 생각하면 거기도 여기와 같아

청녕코 달밤이면 여러 신선 모이리라.

 

 

潮浪(조수 물결)

驟雪?霜千萬重 往來弦望?前? 見君終日能懷信 慙我趨時盡放?

石壁戰聲飛霹靂 雲峯倒影?芙蓉 因思宗慤長風語 壯氣橫生憶臥龍

눈 서리 휘날리듯 천만번 거듭되고

오가는 사리 조금에 먼저 길 되풀이 하네.

그대는 해 지도록 신의를 지키건만

이내 몸은 세속따라 지칠대로 지쳤네.

돌벽에 부딪침 우렁찬 소리는 벼락이 돌아온듯

구름 봉우리 꺼꾸러진 그림자 연꽃이 흔들 흔들.

종각의 거센바람을 타겠다는 말을 생각하니

웅장한 포부 가슴에 벅차 와룡을 추모해지네.

 

 

沙汀(조수에 밀린 모래 언덕)

遠看還似雪花飛 弱質由來不自持 聚散只憑潮浪? 高低況被海風吹

煙籠靜練人行絶 日射凝霜鶴步遲 別恨滿懷吟到夜 那堪又値月圓時

멀리 보면 마치 눈발이 날리는 듯

약한 몸이라. 언제 제몸을 가누지 못하네.

모이고 흩어지는 것은 조수물결에 맡기고

높아지고 낮아지는 것은 바다 바람에 의지되네.

연기가 비단폭에 자욱할 땐 인기척 끊어지고

햇빛이 서릿발에 비칠 때엔 학이 않아 쉬어가네.

떠나는 심정 섭섭하여 읊조리는 이 밤에

또 다시 달 마져 밝으니 그 정결 어이하리.

 

 

野燒(들판의 불붙은 품)

望中旌?忽?紛 疑是橫行出塞軍 猛焰燎空欺落日 狂煙遮野截歸雲

莫嫌牛馬皆妨牧 須喜狐狸盡喪? 只恐風驅上山去 虛敎玉石一時焚

바라보매 문득 깃발이 펄럭 펄럭

군사들이 변방을 쳐나가며 횡행하는듯

사나운 불꽃이 하늘을 찌르니 지는 해도 무색하고

미친 연기가 벌판에 뻗어 가는 구름 꿇는구나.

말소를 침에 방해된다 탓하지 마소

여우 삵이 모두 소굴을 잃음이 기쁘지 않은가.

다만 두려운건 바람이 산위에까지 몰고 가서

옥과 돌 차별도 없이 일시에 불붙는 일

 

 

 


杜鵑(진달래)

石?根危葉易乾 風霜偏覺見?殘 已饒野菊誇秋艶 應羨巖松保歲寒

可惜含芳臨碧海 誰能移植到朱欄 與凡草木還殊品 只恐樵夫一例看

돌 사이 박힌 뿌리 잎 마르기 쉬웁더라

풍상에 시달리어 병들은 듯 보여지네.

들국화는 가을 단장 자랑함에 맡겨 두고

바위 위의 소나무 강추위 이겨냄이 부러웁네.

가엾다 고움을 먹음고 외로이 바닷가에 섰건만

뉘라서 좋은 집 뜰앞에 옮겨다 심을가.

딴 초목과는 아무래도 다르련만

그래도 나무꾼은 분별없이 볼까 두려워.

   

 

海鷗(바다 갈매기)

慢隨花浪飄飄然 輕擺毛衣眞水仙 出沒自由塵外境 往來何妨洞中天

稻粱滋味好不識 風月性靈深可憐 想得漆園蝴蝶夢 只應知我對君眠

이리 저리 꽃물결 따라 나부끼는 그 모습

가볍게 털옷을 다듬고 나니 정말 물위의 신선일세.

자유로이 세상 밖을 드나들고

거침없이 선경을 가고오리.

고량진미 좋은 맛도 알은채 아니하고

풍월의 참 맛을 지극히 사랑하네.

아마 남화 늙은 이의 나비 꿈도

응당 내가 그대를 상대로 조는 것과 같으리.

 

 

山頂危石(산 마루의 위험한 돌)

萬古天成勝琢磨 高高頂上立靑螺 永無飛溜侵凌得 唯有閒雲撥觸多

峻影每先迎海日 危形長恐墜潮波 縱饒蘊玉誰回顧 擧世謀身笑卞和

천연적인 모습 사람의 힘으로 깍아낸 것보다 나아서

높고 높은 꼭대기가 푸른 소라처럼 섰구나.

날르는 폭포 따위로는 도저히 업신어길수 없고

오직 한가한 구름 만이 찾아 드는 구나.

높은 그림자는 매양 바다에 뜨는 해를 먼저 맞이하고

위태로이 섰는 모습은 조수 물결에 떨어질까 겁나는 구나.

아무리 옥이 많이 쌓였든들 뉘라서 돌아볼까

온 세상이 모두 제몸 생각 뿐 변화를 비웃네.

 

 

詠曉

 

玉漏猶滴 銀河已回 彷彿而山川漸變 參差而物像將開 高低之烟景微分

 

認雲間之宮殿 遠近之軒車齊動 生陌上之塵埃 晃蕩天隅 蔥籠日域

 

殘星映遠林之梢 宿霧斂長郊之色 華亭風裏 依依而鶴?猶聞

 

巴峽月中 ??而猿啼已息 隱映靑? 村逈而?鳴茅屋 熹微朱閣 巢空而燕語雕樑

 

罷?斗於柳營之內 儼簪笏於桂殿之傍 邊城之牧馬頻嘶

 

平沙漠漠 遠江之孤帆盡去 古岸蒼蒼 漁 聲瀏 蓬艸露? 千山之翠嵐高下

 

四野之風烟深淺 誰家碧檻 ?啼而羅幕猶垂 幾處華堂

 

夢覺而珠簾未捲 是夜??  天地晴 蒼茫千里 ??八紘 漠水泛紅霞之影

 

疎鍾傳紫禁之聲 置思婦於深閨 紗窓漸白 臥愁人於古屋 暗??明

 

俄而曙色微分 晨光欲發 數行南飛之雁 一片西傾之月 動商路獨行之子

 

旅館猶? 駐孤城百戰之師 胡?未歇 砧杵聲寒 林巒影疎

 

斷?音於壁 肅霜華於遠墟 粧成金屋之中 靑蛾正盡 宴罷瓊樓之上

 

紅燭空餘 及其氣爽淸晨 魂澄碧落 ?高影於夷夏 蕩回陰於巖壑千門萬戶兮始開

 

洞乾坤之寥廓


 

새벽을 노래함

 

물시계 상기도 물이 떨어지고 있는데 은하는 벌써 돌아가고 말았네.

 

산천은 점점 변하여 가고 갖가지 물건이 떠오르니 높고 낮은 희미한 경치도 눈에 띄이며 구름 속의 궁전 뵈이고 수레 오가는 길에서 먼지이네.

 

멀고 먼 하늘가에 먼동이 트이더니 아름다운 기운이 감도는 새벽 별 힘없이 먼 숲위에 걸려있고 안개는 넓은 들의 빛을 거두고 먼 곳까지 새 빛이 퍼지네.

 

화정에서 듣던 학 우는 소리 지금도 들려오는 듯하고 파협 달 밝은 밤에 멀리 들리던 잔나비 슬픈 소리 이미 사라졌구나.

 

술 파는 집 푸른 깃발 은은히 보이고 촌 마을 초가집에서는 닭 우는 소리 들려 나오며 단청한 고대광실 희미하게 보이는데 제비는 등에서 나와 지저귀고 있네.

 

병영의 순라 피하고 벼슬아치 일찍이 의관 정제 엄약하며 변성의 기르는 말 자주 소리 지른다.

 

모래밭 길고 긴데 멀리 뵈는 강에 떠 있던 외로운 돛단배 다 사라지고 강 언덕은 오래된 연조를 말 하는듯 푸르고 푸르른데 고기잡이의 맑은 피리소리 들려 오고 쑥덤풀은 이슬이 담뿍 젖었구나.

 

맑은 산의 푸른 기운 혹은 높고 낮게 벌려 있고 사방의 들에는 바람연기 혹은 깊고 옅게 펼쳐 있고나 어느 뉘 집이런가 꾀꼬리 노래해도 비단방장 상기 드리어 있고 화려한 집 몇몇 곳은 꿈은 깨였으련만 구슬 발 아직도 거치지 아니하였네.

 

이때 온 누리 깨끗하고 천지는 맑고 맑아 천리 밖까지 푸르고 아득하며 온 사방이 환해지니 요수에는 붉은 놀의 그림자 떠오르고 이따금 들리는 종은 자금의 소리를 전하는듯.

 

임그린 아낙네 외로히 자는 깊은 방의 비단 창도 밝아오고 수심에 잠긴 사람 누워 있는 옛 집 어두운 창도 밝아 오더니 잠깐 사이 새벽빛 엷게 떠오르고 새벽 햇빛 나타나려 하자 몇 줄의 기러기는 남쪽으로 날아가고 한 조각 달은 서편으로 기울어졌네.

 

장사차 홀러 나선 사람 자리에서 일어났으나 여관 문은 상기도 잠겨 있고 벡번이나 싸웠을까 외로운 성안에 군사를 주둔하고 있으되 아직 오랑캐 피리 소리 그치지 아니했네.

 

옷 다듬는 소리 찬 기운을 풍기고 수풀의 그림자 성기었는데 귀뚜라미 소리는 사면에서 끊어졌고 서릿발이 먼 언덕에 어리니 금빛 같이 단장한 집에는 눈썹 곱게 그린 미인도 있었으련만 잔치 파한 옥으로 된 화려한 다락 위에는 속절없이 붉은 촛불만 남아 있구나.

 

이에 맑고 맑은 이른 아침이라 기분이 상쾌하여 맑은 내혼은 멀리 하늘높이 달리는듯한데 솟아 오르는 해는 높은 산을 밝게 하고 이에 따른 그림자 바위를 감도네.

 

이제는 집집마다 문이 비로서 열리고 고요하고 갑갑하던 온 세상도 활짝 열리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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