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양은 옛 요양으로 고구려 막힐부 발해 동평부 요나라 동평군이 되었다가 후에 연경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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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양은 옛 요양으로 고구려 막힐부 발해 동평부

요나라 동평군이 되었다가 후에 연경이 된다. | 발해영토


history author | 2014.04.03. 18:27

                 


辽山县:元五乡。《河东图》云:“和顺县,晋大夫梁余子养邑。秦伐阏与,赵奢救之,曰:‘譬如两鼠闘穴中,将勇者胜。’”是此地也。在汉为涅县之地。后魏于此置阳河县,俱属上党郡。晋改为轑阳县,属乐平郡。后魏太武并入武乡,明帝改轑阳为辽阳。隋初改置辽山县,属并州,因县西北轑山为名。箕山,在县西四十五里。上有许由冡,按《伯夷列传》曰:“余登箕山,上有许由冡。”后魏《风土记》云:“太原郡箕山有许由冡。”别说又云:“在今洛州洛阳县,不当在此。”

태평환우기(송때 지리지)


요산현은  한나라때 널현이고 북위때 양하현이고 상당군에 속했다.진나라때 동평군에 속했다. 북위 명제때 요양으로 바꾸었고 수나라초기에는 요산현을 설치했다.  기산이 현서남45리에 있는데 산위에 허유무덤이 있다. 북위풍토기에 태원군 기산현에 허유무덤이 있다고 한다. 다른 기록에는 지금 낙주 낙양현에 있다.

 

 

 

 

 

정주시 기산 허유묘



 

허창시 허유묘



 



허창시에는 기산이 없는데 정주시   서남쪽에는 기산이 있다.

그렇다면 북송때 지어진 태평환우기의 지리대로라면  낙양과 정주시의 중간일대는 바로 요주라고 부르던 곳이고 요산과 기산이 있는 곳이며 동평이라고도 불렀으며 널현이라고도 부른 곳이다. 게다가 태원군의 관할이기도 하다.

 

 

거란지리도를 보면 당시 태원군은 하동바로 옆에 있었다.

 

 

현재 하동의 위치를 감안하더라도 북송의 태원군은 낙양의 서쪽일대에 있었고

이는 요나라의 연경이 바로 옛 요양근처임도 알수 있다.

 


불녈(拂涅)의 옛땅에는 동평부(東平府)를 두어 이주(伊州)ㆍ몽주(蒙州)ㆍ타주(沱州)ㆍ흑주(黑州)ㆍ비주(比州)의 5주를 관할하였고

신당서발해전

 

공교롭게도 발해역시 녈이라는 땅을 차지하고 있었는데 다른말로 동평이라고 불렀다. 태평환우기의 기록과 일치하는 것이다.

 

http://cafe.daum.net/manjumongolcorea/TwTv/86 낙양이 요나라수도 연경이고 발해 동평

 

   왜 요나라가 저곳을 중요하게 여겼냐면 치우의 구려국이 원래 저곳에 있었기 떄문이다. 즉 치우무덤도 있고 고구려의 전신인 구려국도 있었고 또한 유전자조사에서도 우리민족의 주요 Y염색체는 화산에서 낙양일대에서 살다가 동북방으로 이주한것으로 중국학계에서 규명했다

 

또한 자료를 찾아보니 석경당의 무덤이 근처에 있는데 치우처럼 몸통뼈만 묻혔다는 전설이 있다고 한다. 아마도 치우무덤이 후대에 후진의 왕 석경당의 무덤으로 변조된 것이 아닐까 한다.

 

 

四年春正月丙申,射虎東山。二月丙寅,修遼陽故城,以漢民、渤海戶實之,改為東平郡,置防禦使

요사

919년 요양 옛성을 수리해서 발해인과 한인을 채워서 동평군으로 개명했다.


 韓州,東平軍,下,刺史。本稿離國舊治柳河縣。高麗置頡府,都督、頡二州。<二三>渤海因之。今廢。太宗置三河、榆河二州。聖宗並二州置。隸延昌宮,兵事屬北女直兵馬司。統縣一:柳河縣。本渤海粵喜縣地,並萬安縣置。

요사

한주동평군은 본래 고리국인데 구치소는 유하현이다 고구려가 막힐부를 두고 막주 힐주 두주를 두었는데 발해도 그리했다. 태종이 삼하와 유하 2개주를 두었다


南京留守司。太宗天顯三年升東平郡為南京,治遼陽。十三年以幽州為南京

요사

928년에 동평군을 남경으로 했고 치소는 요양이다.938년에 유주를 남경으로 했다.

 

치우의 고리국즉 구려국은 고구려의 막힐부가 되고 발해에서는 불녈부혹은 동평부로 개명한 것이다.

요나라가 점령해서 동평군으로 했는데 후에 연경으로 삼은 것이다.

 

 

오른편 산맥이 1000여 리를 가서 동남쪽에는 연경(燕京)ㆍ요주(遼州)ㆍ계주(薊州)ㆍ해주(海州)가 되는데, 한 큰 야산(野山)이 아득히 보이고 이북은 장성이 된다. > 고전번역서 > 부연일기(赴燕日記) > 주견제사(主見諸事) >

옛부터의 지리개념은 연경동쪽이 요주, 계주, 해주(수양산이 있는 곳)이다.

 

 


공교롭게도 낙양을 연경이라 하면 근처에 해주 와 요주 계주가 모두 존재한다. 

지금 지리개념대로라면 베이징근처에는 해주는 없다.

 그러나 기록에 해주가 연경근처에 존재하는 것으로 봐서

청나라 이전에는 분명히 연경 해주 요주 계주가 바로 근처에 있던 것이다.

 

당나라이전 요주는 원래 하동일대였다.

그러나 당태종이 고구려 요동성즉 낙양성을 점령한 후 요주로 이름을 바꾸었는데

북송시대가 되면 당태종의 요주가 마치 당이전시기 요주로 오인된 것이다.

그리고 당태종의 요주는 지금 제원시일대로 옮겨지게 된다.

 

 

청조일통지도 요주가 제원시일대로 나온다.



cafe.daum.net/manjumongolcorea/TwTv/96  다물회(고토수복과 역사회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