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청자 : 철화, 철채, 철유, 퇴화, 진사, 연리문자 and 백자

2016. 2. 21. 21:41도자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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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청자 : 철화, 철채, 철유, 퇴화, 진사, 연리문자 and 백자  


철화.철채.상감철 유자

철화 청자는 8~10%의 산화철이 함유된 흑토를 묽게 개어 태토 위에 붓으로 문양을 그리고 청자유를 씌운 것으로 회고려, 회청자, 철회 청자라고 불리어 왔다. 철화 기법은 중국 남북조시대부터 비롯되어 오대.북송시대의 월주요 및 자주요와 서촌요 등에서 사용하던 장식 기법 중 하나인데, 이 기법이 우리나라에 전해져 청자에 사용하기 시작한 때는 10시기 후기로 추정된다. 크게 성행한 때는 11세기로, 이때 고려 철화 청자의 특징적인 조형미를 완성하게 된다. 철화문은 색상의 차이가 크고 문양을 그리는 붓의 힘찬 동작과 속도감이 있는 표현 등이 음.양각문에 비하여 강렬한 인상을 주는데, 아마도 이러하 장식 효과 때문에 철화 기법이 유행하였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12세기에 상감 기법이 기술적으로 안정되고 고급화되면서 상대적으로 철화 기법은 단순화.조질화를 거듭하게 되는데, ㅊ러화의 농도가 흐려지고 간단한 초화문 계통의 문양이 몇 가닥 선으로 그려지는 경향이 나타난다. 당연히 철화 문양의 힘이 약해지고 속도감이 떨어지면서 단순화되고 간략화되다가 소멸하게 된다.

철채 청자는 청자 태유로 만든 그릇 전면에 흑토를 바르고 청자유를 씌운 것으로 마치 흑유를 입힌 흑자처럼 보인다. 분장된 흑토를 긁어내 바탕의 청자색이 드러나게 문양을 새기는 철채박지문 기법이나, 긁어 낸 문양 부분에 백토를 두껍게 칠해 넣어 흑색 바탕에 흰색 문양을 나타내는 철채 퇴화(堆花)기법을 사용하여 문양을 넣고 초벌구이를 한 후 청자유를 씌워 본벌구이를 하여 완성한다. 그릇의 벼대가 청자토이고 유약이 투명한 청자유이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색은 검은색이라도 청자로 분류하는 것이다. 이렇게 윤기 있는 검은색 바탕에 큼직한 흰색 문양을 그린 철채 청자는 조용하고 단아한 순청자가 주는 느낌과 달리 강하고 활달한 느낌을 준다. 상감철유자는 유약 자체가 짙은 적갈색이나 흑색에 가까운 거의 불투명한 색유를 부분적으로 바르고 문양 부분에 백토를 상감한 것으로, 고려시대 13세기 전기의 청자 가마터에서 청자와 함께 제작된다. 따라서 조형이나 장식 기법이 청자와 대체로 유사하지만 청자유의 투명한 성질과는 반대로 불투명한 성질을 가짐으로 별도의 시문 방법이 사용되었다. 이 기법은 계획적인 조작과 고도의 숙련이 필요한 기술이지만 백상감 면에 유약을 씌우지 않아 표면이 거칠며 붓으로 바른 철유의 표면도 일정치 않은 결점이 있다. 이러한 결점 때문에 제작 기간이 그리 길지 않았다고 생각되며 현존하는 자료도 몇 점에 지나지 않는다.


퇴화청자

청자 태토의 표면에 물에 갠 흑토와 백토를 사용하여 마치 물감으로 그림을 그리듯 문양을 그려 넣고 그 위에 청자 유약을 씌운 것으로 회고려繪高麗, 백니白泥畵, 퇴선수堆線手 등으로 부렸던 것이다. 최근에는 이 종류의 청자가 철화 청자를 의미하는 회고려의 조형과 분명히 구분되고 흑토와 백토로 시문한 부분이 조금씩 도드라져 있기 때문에 단순한 선은 퇴선문, 점은 퇴점문으로, 구체적인 형태로 문양을 그린 것은 퇴화문으로 부르고 있다. 물론 붓으로 그린다는 점에서 철화 청자와 공통점이 있지만 형태 및 문양 소재와 구성 등 조형 감각은 상감 청자에 더 가까운 편이다. 일부 정교한 퇴화문의 경우 꼼꼼하게 관찰하지 않으면 상감문으로 착각할 정도로 유사한 부분이 많다.

퇴화문은 유태색이 우수한 고급 청자와 수준이 조금 낮은 청자에 따라 시문하는 방법이 다르다. 고급 청자의 경우 중심 문양으로 음.양각 기법이나 상형 기법, 상감 기법을 넣고 주변 문양으로 단순한 퇴화 기법의 선과 점을 넣는 반면, 약간 질이 낮은 청자의 경우는 본격적인 주문양으로 퇴화 기법을 사용한다. 주로 백토를 사용하여(흑토는 조금씩 사용한다) 국화.모란.버들.야생화.운학.나비 등을 간략하게 선묘하거나 백토를 문양의 윤곽까지 대퉁 바른 후 마치 분청사기의 박지 기법과 같이 배경을 긁어 내어 문양의 윤곽을 나타나게 하는 방법도 쓴다. 문양 소재가 대부분 상감 기법과 일치하고, 또 퇴화에 사용하는 흑토.백토와 음각 기법을 함께 응용하면 바로 상감 기법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퇴화 기법은 상감 청자의 발생 배경과 관련이 깊다고 생각된다.

퇴화 기법은 북송 요주요 청자와 남송 용천요 청자 및 하남천목에 유사한 예가 있어 중국 기술의 영향으로 발생하였을 가능성이 높다. 그려에서는 10세기 후반부터 11세기 사이에 선과 점을 그리는 단순한 기법으로 시작하여 11세기에는 철화 청자의 보조 문양으로 주로 사용되다가 상감 기법이 성행하기 시작하는 12세기에 독립된 시문 기법으로 발전하여 다양한 표현 기법과 독자적 특징을 나타내게 되었다. 그러나 12세기 후기부터 퇴화 기법으로 중심 문야을 넣는 예가 점점 줄어들면서 퇴화문의 독자적 특징은 사라져 버리고 보조 문양으로 이용되다가 13세기 후기에 소멸한다.


진사청자.연리문자.백자

   진사 청자는 산화동 안료로 시문하고 청자유를 씌운 것을 말하며 일반적으로 붉은색을 띠기 때문에 진사라고 부른다. 물론 안료의 명칭을 따라 동채.동화라고 하는 경우도 있지만 산화동이 환원염에서는 붉은 색으로, 산화염에서는 녹색으로 발색하는 특징을 갖기 때문에 우리나라 청자와 같이 환원염을 기준으로 한 경우는 붉은색을 의미하는 진사로 부르는 편이 적당하다. 진사 기법은 시문 기법에 따라 그럿 전면에 진사를 바르고 청자유를 씌워 전면에 마치 붉은색 유약을 바른 것 같은 효과를 내거나, 상감  청자의 백상감문 일부와 퇴화문에 부분적으로 조금씩 설채하는 방법을 쓰는데, 녹색을 띠는 회청색 바탕과 백색 상감, 그리고 진사의 붉은색의 조화는 정교한 고급 기술인 상감 기법을 한층 더 화려하게 보이도록 한다. 진사 기법은 상감 기법과 함께 고려의 독보적인 장식 기법으로 새로운 것을 찾아내려 했던 고려인들의 창조적 성과라고 할 수 있다.



청자진사 연화문 표형주전자(靑磁辰砂 蓮華文 瓢形酒煎子)


 

청자 상감진사모란문매병 보물346호

 




   연리문자練理文磁는 청자토와 흑토, 백토를 적당히 반죽하여 각각의 색으로 무늬지게 만들고 청자유를 씌운 것이다. 이 기법은 성질이 다른 점토를 적당히 혼합하여 그릇을 만든 것으로 제작 과정에서 파손되기 쉬운 단점이 있지만 혼합된 상태에 따라 다양한 질감과 무늬를 나타낼 수 있다. 청자 기술이 최고 수준에 올랐던 12세기에 소량 제작되었으나 유례는 아주 드물다. 백자는 청자가 발생한 직후부터 제작되기 시작하였으나 생산량은 아주 적은 편이다. 조형에 있어서도 백자만이 갖는 독자적 성격이 나타나지 않아서 일반적으로 청자에 포함시키고 있다. 다시 말하면 기형과 시문 기법, 문양 등 소재들이 청자와 똑같다. 특히 고급 백자들은 청자 가마에서 청자와 같은 제작 과정을 거쳐 소량 제작되어 기형과 장식 기법, 유약 등 모든 제작 요소들이 청자와 똑같고 단지 태토만 백색이다. 따라서 고려시대 백자의 일반적 현상은 완전한 자기질로서 담청색을 띠는 백색이 아니라 마치 계란 껍질의 색과 같은 유백색으로 자기질보다 한단계 낮은 도기질 수준이다.



철화 문양이 그려진 매병은 크게 두 가지 형식으로 나뉜다. 즉 문양의 밀도가 높고 힘차며 대담하게 그려진 것으로 양감이 크고 몸체의 완만한 곡선이 굽까지 연결되는 형식과 문양이 왜소하고 주저하듯 하며 몸체의 양감이 줄어들고 아래에서 좁아졌다가 다시 벌어져 굽으로 연결되는 형식이다.

청자 합은 처음에는 금속기를 모델로 제작되어 각지고 예리한 면이 그대로 나타나지만 제작이 거듭됨에 따라 태토의 부드러운 성질에 적응하여 둥글고 완만하게 변하는 경향을 띠고 있다. 대부분 소문과 음각이 시문된 합은 비교적 각지고 예리하며 연결부도 정교하지만 양각과 상감 합의 경우 둥글고 완만하며 연결부도 윤곽만을 남기고 있는 경우를 보면 금속기적인 성격에서 점차 도자기적인 성격으로 변화됨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 청자의 특징 중에 하나는 문양 기법이 아주 아양하며 또 몇 가지 기법을 응용하여 새로운 기법을 만들어 내는 데 있다. 고려 청자는 조각칼로 문양을 새기거나 흑토와 백토 및 진사 등의 채료를 붓으로 그리는 화문이 대부분을 차지하며 이 두 기법을 응용한 상감 기법이 문양의 중심이 되어 있다. 그러나 철채 청자는 외견상 흑자와 같이 보이지만 청자 태토에 청자 유약을 씌운 분명한 청자이며, 여기에 음각이나 퇴화 기법을 응용하여 청자와는 다른 독특한 감각의 장식미를 보여준다.

유병이라 불리는 광구의 작고 납작한 이 작은 병은 고려 청자 전반에 걸쳐 제작된 인기있던 기종이다. 높이 대 폭의 비례는 대체로 1:1인 것과 2:3인 것, 1:2인 것으로 나뉘는데 소문과 음각 및 철화 청자는 1:1과 2:3의 비례이며, 상감청자는 1:2비례가 대부분이지만 전기 상감 청자의 경우 2:3인 경우가 일부 있다. 이 철채 청자 유병은 2:3의 비례로 구연과 목이 다소 높으며 탄력 있는 몸통과 넓고 낮은 굽을 하고 있다.

철채 청자
태토와 유약이 청자와 같다. 
분위기가 청자의 깨끗한 맛과 대조적인 활달하고 힘찬 기운을 느끼게 한다.

철유상감 청자
태토는 청자태토에 짙은 적갈색이나 흑색의 불투명한 유약을 바름
박지한 부분에 백토로 상감한 후,
적갈색(흑색) 유약을 백토상감 外 부분에만 바른다.
유약이 칠해져 있지 않은 백토상감 부분은 거칠다.
유약이 칠해져 있는 바깥부분도 <붓>으로 칠하므로 일정치 않은 결점을 가진다.
그런 단점들로 인해 고도의 숙련된 기술이 필요한 반면, 제작 기간은 짧다.



철유(또는 흑유)는 유약 자체가 짙은 적갈색이나 흑갈색에 가까운 거의 불투명한 것으로써 고려시대 청자 가마터에서 청자와 함께 제작된다. 따라서 조형이나 장식 기법이 청자의 그것과 대체로 유사하지만 유약이 청자유의 투명한 성질과는 반대로 불투명한 성질을 갖기 때문에 별도의 시문 방법이 사용되고 있다. 이 철유 상감 기법은 청자 태토로 그릇을 만든 후 문양이나 문양의 배경에 백토를 상감하고 그 나머지 청자 태토 면에는 붓으로 철유를 칠하는 방법으로 제작된다. 상감되지 않은 청자 태토 면에 철유를 칠하는데 마치 검은 바탕에 문양을 오려 낸 흰색 종이를 붙인 듯한 효과를 보인다. 이 방법은 계획적인 조작과 고도의 숙련이 필요한 기술이지만 백상감 면에 유약을 씌우지 않아 표면이 거칠며 붓으로 바른 철유의 표면도 일정치 않은 결점이 나타나 있다. 이러한 결점 때문에 제작 기간이 그리 길지 않았다고 생각되며 현존하는 자료도 몇 점에 지나지 않는다. 유약은 보통 청자유의 경우 철분 함량이 전체 유약 성분의 1~2%인데 비해 철유는 약 7~8%로 철분 함량이 높다.



이 주전자는 전체적인 구조는 물론 연화좌 위에 봉황을 장식한 뚜껑과 손잡이의 형태 등을 볼 때 금속 주자와 대체로 유사하다. 금속기의 경우 어깨가 편평하며 굽이 높고 벌어지는 경향이 일반적으로 나타나지만 부드러운 태토로 제작할 경우 이와 같이 곡면화되고 굽이 낮아지는 현상을 볼 수 있다. 주구와 손잡이는 대나무 줄기의 형태를 그대로 응용하여 만들었다. 전면에 백퇴화로 연당초문을 그리고 아래쪽 연판과 일부분에만 흑퇴화를 넣었다. 뚜껑의 연화좌 화판에도 백퇴화를 하고 그 아래 목까지 길게 연판문대를 늘어 뜨렸다. 어깨와 몸통 전면에 걸쳐 좌우 양면에 큰 연못을 넣고 주변에는 당초문을 꽉 차게 그려 넣었다. 연꽃의 세부는 가는 음각선으로 긁어 표현하였으며 당초문과 연판문에도 외곽선을 음각해서 윤곽을 뚜렷하게 만들었다. 여기에 그려진 백퇴화는 대체로 농도가 약한 편이어서 덧칠한 곳과 처음 붓이 닿은 곳은 백색으로 진하게 나타나지만 얇은 부분은 밑의 태토색이 비쳐 보이기도 한다. 태토에 미립의 불순물이 있지만 대체로 양호한 편이며 유층에 기포가 있고 균열은 거의 없다. 모래 섞인 내화토비짐을 받쳤다.


진사채로 장식한 청자는 크게 두 가지 계통이 있다. 하나는 최고 수준의 상감 청자(드물게 고급 소문 청자)에 사용된 경우이며 다른 하나는 퇴화 청자에 사용된 경우다. 그러나 두계통 모두 주문양은 상감이나 퇴화로 넣고 보조 장식으로 핵심 부분만 진사채하여 강조하는 것은 똑같다. 예를 들면 모란의 꽃잎이나, 용의 눈동자, 포도당초문의 포도 알, 그리고 국화문의 화심과 같이 문양의 핵심 부분에만 붉은 진사를 조금 써서 장식하게 된다.

진사는 문양의 핵심 요소에 최소한으로 설채하여 큰 효과를 얻는 방법이 일반적이다. 그 원인은 진사의 붉은색이 녹색을 띠는 회청색 바탕과 보색 관계이며 또 붉은색을 남용함으로써 정갈하고 단아한 청자의 조형미를 침해 당하지 않도록 견제하려는 의도로 짐작된다. 그러나 전면을 붉은 바탕으로 하고 문양 장식을 없앤다면 청자가 추구해 왔던 단아한 세련미와 절제미를 잃지 않는 범위에서 새로운 효과를 볼 수도 있다.


청자 연리문 잔
청자토와 백자토, 그리고 흑색의 태토를 적당히 반죽하여 그릇을 만든 후 표면을 깍아 내면 회청색과 백색, 흑색의 세가지 색이 마치 대리석 무늬와 같이 나타나는데, 이 잔은 이러한 연리문 기법으로 성형한 후 맑고 투명한 청자유를 씌워 구워 낸 것이다. 이 기법은 중국 성당(8세기)의 당삼채 기법 중 하나로, 저화도의 도기질로 주로 제작되었으며 드물게 오대에서 북송대(10~12세기 전기)까지 제작되었다. 중국의 연리문은 마치 판박이 같은 태토무늬판을 조작한 인공적인 연리문이 대부분이지만 고려의 연리문은 마치 물과 기름을 휘저은 듯한 자연스러운 무늬가 특징이다.

연리문은 각각 다른 태토를 조합하는 정도에 따라 다양한 색상과 질감이 나올 수 있다. 지금까지 조사된 자료에 의하면 연리문 자기를 제작하던 가마터는 전라남도 강진 한 곳뿐이다. 이 가마터는 고려시대 최대 규모로, 최고급의 청자를 제작하던 곳으로 높은 수준의 장식 기법이 성행했던 곳이다. 따라서 이곳에서 제작된 연리문 자기 역시 당시 도자기의 중심을 이루던 청자의 조형 범위 내에서 제작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백자 소문 매병
고려시대에는 청자가 모든 도자기의 조형을 주도하였다. 따라서 백자나 흑자의 경우 독자적으로 개성 있는 형태나 장식 기법, 문양 소재 등을 형성 발전시키지 못하고 청자의 흐름에 동승하게 된다. 즉, 태토의 색만 다를 뿐 모든 조형 요소들이 청자와 똑같이 제작되는데, 백자 상감모란유로문 매병의 경우와 같이 태토의 색만 백색일 뿐 다른 모든 요소들이 청자와 똑같다는 사실을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우수한 백자는 고급 청자를 제작하던 가마터에서 제작되었다. 물론 대부분 청자를 제작하고 백자는 같은 조건에서 소량만이 생산되었다. 이때 청자 태토보다 백자 태토의 자기화 온도가 높아서 완전히 자화되지 않고 마치 석고의 질감과 같은 경질 도기 상태로 남게 되며, 유태색은 약간 엷은 녹색이 감도는 유백색을 띠게 된다.


백자 상감모란유로문 매병 - 국립중앙박물관
현존하는 상감 백자 중에서 장식과 조형이 가장 세련되고 자기화가 잘 이루어져 백색도가 높은 작품이다. 매병의 규모는 다소 작지만 구연의 형태와 어깨의 양감, 아랫도리의 곡선 등에서 12세기 후반 상감 청자 전성기의 매병 형태를 그대로 따르고 있으며 여기에 양각 기법과 역상감을 포함한 다양한 시문 기법이 동원되고 있다. (12세기) 이 작품은 몸통을 여섯 등분하여 골주름을 파내고 목 바로 밑 어깨에는 정교한 양각의 여의두문대와 넓은 연판문대를 두르고 윤곽선 안쪽과 연잎 중심에 청자토를 상감하였다. 여섯 면으로 나누어진 몸체의 중심에는 능화형菱花形 화창을 설치하였는데 먼저 흑토로 화창의 외곽을 선상감한 후 그안을 모두 청자토로 면상감하였다. 다시 청자토 면에 모란절지문, 버들, 갈대를 흑상감하고 갈대와 버들 주변에 학과 모란 꽃송이를 백상감하였다. 아래에도 연판문을 양각한 후 연잎의 내면에 청자토를 면상감하였다. 이렇게 양각 문양 위에 다시 상감하는 경우는 일반상감 청자에서도 시도된 바 없는 예로서 최상의 공력을 드린 결과로 볼 수 있다. 백자 태토는 미립으로 정선되었고 유태색은 엷은 녹색이 감도는 유백색이다. 청자 태토부분의 유태는 녹색이 짙으며 전면에 수지상 빙렬이 있다. 흑상감이 일부 녹아 번져 있으며 굽 바닥 여덟 군데에 모래 섞인 내화토비짐을 받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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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글] 청자진사 연화문 표형주전자(靑磁辰砂 蓮華文 瓢形酒煎子)| [自由奔放] 路邊情談

노산 | 2015.11.06. 06:57


      -국보순례- 청자진사 연화문 표형주전자(靑磁辰砂 蓮華文 瓢形酒煎子) 高麗 13世紀 / 國寶 133 號 표주박모양 을 본떠 만든 청자진사주전자(酒煎子)로, 만곡(彎曲)한 손잡이 위에 개구리와 끝이 굽은 주구(注口)가 대칭(對稱)으로 달려 있다. 동체(胴體)의 표면에 2∼3단의 연판(蓮瓣)을 양각하여, 동체의 상부와 하부를 크고 작은 연봉오리가 연결된 형상으로 표현하였는데 각 연판에는 가는 음각선 으로 엽맥(葉脈)을 표현하고 가장자리에 진홍색의 진사안료 를 가채(加彩)하였으며 잎의 중앙(中央)에는 수직(手織)한 작은 백퇴점(白堆點)을 베풀었다. 목부분에는 연못에서 피어 오른 연잎 달린 연봉오리를 안아들고 있는 동자(童子)를 대칭되게 조각하였으며, 손잡이 위에도 개구리모양의 고리장식을 하였는데, 동자와 개구리의 눈에는 철사점(鐵砂點)이 찍혀 있다. 주구(注口)는 연잎을 길게 말아 붙인듯한 형태로 밑둥에 짧은 연줄기를 붙여 사실적(事實的)으로 표현(表現)하고 그 주위에 진사채(塵沙彩)로 장식하였다. 광택이 있고 투명한 담록색의 유약(釉藥)이 두껍게 시유(施釉)되었으나 아래 일부는 용융상태가 고르지 못하며, 유속에는 미세(微細)한 기포(氣泡)가 형성되어 있다. 굽은 낮고 깎음새가 단정하며, 적갈색 흙모래 비짐을 받쳐 번조 하였다. 고려 무신정권(高麗武臣政權)의 최고 실력자(實力者)였던 최항(崔沆;∼1258, 崔忠獻의 孫子)의 묘 에서 지석(墓誌石)과 함께 강화도(江華島)에서 출토되었다고 하며, 주구(注口)와 손잡이 일부가 수리(修理)되었다. 이 주전자는 연꽃을 소재로하여 갖가지 장식 의장을 베푼 조형적 창의성(造型的創意性)이 빼어날 뿐 아니라, 고려청자에 사용된 각종의 장식수법(藏識手法)이 한꺼번에 구사(構思)되어 있으며 특히 세계 최초로 고려인이 창안한 진사채(辰砂彩)장식이 많이 치장(治粧)되어 있어 수많은 청자 가운데서도 그 예술성과 호화로움이 단연 뛰어나다. 더구나 제작년대까지 추정할 수 있어 학술적(學術的)으로도 대단히 귀중한 작품(作品)이다. - 湖巖美術館 -


      노산 이선승지 以善勝之 ♬배경음악:경음악♬/소리:박종순 / 장구:유흥복 / 대금:우종실


cafe.daum.net/cj001/33Wv/144   충장공






청자 상감진사모란문매병 보물346호| º------------보물,소장

珍品名品 | 2016.01.03. 01:41


 

 

 

청자 상감진사모란문매병 보물346호

 

 

 

소 재 지;서울 용산구 용산동 6가 국립중앙박물관

 

 

 

   고려 중기에 만들어진 청자 상감 매병(靑磁象嵌梅甁)으로 높이 34.6㎝, 아가리 지름 5.6㎝, 밑지름 13.5㎝이다. 붉은색 안료인 진사를 사용하여 주된 문양인 모란을 상감 처리했다. 어깨가 풍만하고 허리의 곡선이 매끄러우며, 작은 아가리가 매우 기품있게 마무리 되었고, 4엽의 연꽃 테두리 안에 국화와 덩굴을 흑백상감하였다. 몸통의 3면에는 모란을 크게 흑백상감한 후 모란꽃잎 끝에 붉은 안료를 상감해 넣었다. 굽다리 둘레에는 번개무늬를 연이어 둘렀고, 그 위로는 백상감으로 연꽃잎 모양의 테두리를 만들고, 꽃잎 안에 흑상감으로 풀을 장식해 넣었다. 이와 같이 전체를 3부분으로 나누고, 밑부분에 연꽃잎으로 띠를 두르는 형식은 12세기 전반 순청자 매병에서 보이는 특징이다. 특히 모란 꽃잎 끝에 붉은색 안료를 사용하여, 춤추는 듯한 생기를 더해주고 있다. 

 

 

 

 cafe.daum.net/dlfkzm198/6oNi/208   부동산 珍品名品


                                                       

                                        


035 - 청자 퇴화연당초문 주전자 - 청자 연꽃넝쿨무늬주전자| 국립박물관

홍승표 | 2010.06.04. 10:24


청자 연꽃넝쿨무늬주전자

 

 

 

 

 

 

 

 

   금속기에서 기형(器形)을 따온 몸체에 동물과 식물을 상형한 귀때부리와 손잡이, 뚜껑이 잘 조화된 작품이다.

뚜껑은 통(筒) 모양 위에 화려한 연화좌(蓮花座)를 두 단 만들고 위쪽 연화좌 위에 봉황이 앉아 있는 모습이다.

원래는 받침대인 승반과 짝을 이루고 있었으나 승반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지금은 남아있지 않다

 

   금속기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다소 강한 분위기를 지닌 몸체에

죽순에서 막 뻗어오르는 대나무 모양을 본뜬 귀때부리와 역시 대나무를 휘어 붙인 모양의 손잡이가 달려 있다.

여러 겹으로 된 뚜껑의 연화좌 가운데 안쪽 꽃잎에 백토를 칠해 장식했다.

통 모양의 뚜껑 아랫부분과 맞닿은 몸체의 목 부분에는 중심선을 자토로 내리그은

 백퇴화(白堆花) 연판문(蓮瓣文)이 이어져 있다. 몸체 전면에 풍만하고 유려한 연당초문(蓮唐草文)을 백토로 그렸고

아랫도리에는 연판문 띠를 돌렸으며 백토 무늬 둘레와 안쪽에 윤곽선을 음각하여 무늬를 도드라지게 했다.

당초의 순과 귀때부리의 죽순 껍질 가장자리 등에 간간이 자토를 칠해 액센트를 주었다.


   부분적으로 빙렬빙렬(氷裂)이 있는 담담한 비색유(翡色釉)가 비교적 얇게 입혀졌고

밑바닥에 내화토(耐火土) 비짐눈 자리가 남아 있다.

이러한 주자(注子)에는 모두 승반(承盤)이 딸려 있었겠지만

 대체로 따로 분리되어 전해지거나 경우가 많은데,

이 주자에도 깊숙한 승반이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cafe.daum.net/noninote/7SZD/67   청자 고려청자 - 홍승표010-2689-3792







강진 청자 박물관 ( 2015. 1. 3 )|  …─ 박물관 기행

미탁 |  2015.01.05. 20:49


 

강진 청자 박물관 전경





국내 유일의~~

이건 좀 아닌 것 같다,












청자상감연국모란문과형주자 (고려 13세기)


참외와 같은 몸체에 세로로 골을  낸 후 물을 따르는 주구와 물을 담는 수구 손잡이를 갖춘 주자이다.

크기와 유약의 투명도 전체적인 조형성과 정교한 상감 기법 등 모든 면에서 매우 우수하다.

몸체의 굴곡진 부분은 12개의 면으로 나누어 각각의 면을 따라 연꽃 가지 국화꽃 가지 모란꽃 가지등을 세로로 길게 상감하였다.

주구는 연잎을 말아 붙인 것처럼 조각하고 여러개의 가로 선을 새겨 사실감 있게 묘사하였으며

손잡이에는 세로로 선을 그어 굴곡지게 만들어 붙였다.

태도와 유약은 정제되어 곱지만 바닥면에 부분적으로 유약이 산화되어 녹갈색을 띠기도 한다.

굽바닥의 유약을 닦아낸 후 6곳에 거친 내화토 비집을 받쳐 구었다.


이 도자기는 구매 과정에서 말이 많았던 문제의 도자기 이다,

지금은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92호로 지정 되었다.





청자음각당초문완 (고려 12세기)


굽이 작고 위쪽으로 벌어져 구연이 살짝 벌어진 형태의 완이다,

구연의 일부가 파손되고 번조 과정에서 미세하게 기포가 터진 곳이 있으나 전체적으로 균형잡힌 형태이다,

안 바닥에 굽 지름과 거의 같은 크기의 원각이 있고 구연 바로 아래에 한줄의 음각선을 둘렀다.

원각의 외부와 구연 아래 음각선까지 꽃과 이파리 무늬가 정교하게 새겨져 있다.

한 송이 꽃과 가지를 대칭으로 새겼고 그 여백의 한 곳에는 꽃을 다른 곳에는 이파리만 새겼다.

굽은 지름이 작고 높이가 낮으며 너비도 좁다.

유약과 태토가 매우 정선되어 있으면 비색을 띤다,




청자 주전자(고려 12세기)


원형의 동체와 나팔 모양의 입 부문이 결합한 주자로 무늬는 없다.

손잡이 가운데에 깊은 선을 만들어 잡기 편한 구조이다.

뚜껑에는 보주형 손잡이가 달려있고 뚜껑과 손잡이를 끈으로 서로 연결할 수 있도록 고리가 달려 있다.

뚜껑은 평정형 접시처럼 아랫부분을 편평하게 성형하였으며 중앙 부분은 시유 후 유약을 닦아 내었다.

일부는 불안전한 번조로 용융 상태가 불량하다.

주자의 굽은 안 바닥을 깍아낸 안(속) 굽으로 굽 바닥의 유약을 닦아낸 후 백색 내화토 비짐을 받쳐 구었다.

(강경협 기증)





청자상감운학문매병 (고려 12세기)


고려청자 전성기의 당당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매병이다,

커다란 몸체에 구름과 학을 넉넉한 간격을 두고 배치하여 여백의 미를 충분히 살리고 있다.

구름은 위쪽 학은 아래쪽에 서로 엇갈리게 새겨 빈 공간에 규형감을 주었다.

구름은 아래에서 위로 피어 오르는 모습으로 구불구불하게 표현되었고 학은 깃털에서 발톱까지 섬세하게 표현되어

창공을 나는 모습과 날기를 멈추고 내려서러는 모습 등 각각 다양한 자세로 새겨져 있어 매병의 단하한 분위기에

변화를 주고 있다. 태토는 정선되었으나 유약은 일부 산화되어 부분 적으로 갈색을 띠기도 한다.





청자상감여지문대접( 고려 13세기)


높이가 낮고 입이 크며 몸체가 둥글게 벌어진 공을 반으로 잘라 놓은 듯한 모양의 대접이다.

그릇의 안 바닥 중심과 옆면 5곳에 여지나무 열매을 백상감 기법으로 새겼다.

여지는 중국 남방에서 나는 식물로 서역이나 고려 일본은 물론 아프리카까지 전해졌으며 도자기를 비롯한

공예품에 무늬로 애용되었다. 그릇의 바깥면에는 몸체 중간에 넝쿨 무늬를 역상감 기법으로 넓게 두르고

그 사이사이 4곳에도 국화를 새겨 넣었다. 전체적으로 태토와 유약이 정선되어 있으며 유약도 굽 안 바닥까지

비색을 띠고 있다. 굽 안 바닥 3곳에 규석을 받쳐 구었다.  





청자상감국화문화형용두잔 (고려 13세기)


용머리 장식을 손잡이로 붙인 꽃 모양의 잔이다,

잔의 형태와 조각 기법 용머리 장식 등으로 볼 때 특별한 용도를 위해 만든 것으로 보이며 입술을 도려내고

외 측면 입술부에 한 줄의 음각선을 돌려 입술을 도톱하게 보이도록 하였다.

6장의 꽃잎은 중간에 2줄의 음각 선으로 깍아 12면으로 만들고 흑백상감으로 새로로 선을 새기고 빈 공간에 국화를

3단으로 시문 하였다. 손잡이 역할을 하는 용의 머리와 목은 세밀하게 조각하였는데 눈동자는 점토를 둥글게 빗어 붙였고

목은 비늘을 표현하기 위해 반달 모양의 도구를 이용해 촘촘히 눌러 표현 하였다.

금분이 칠해진 곳은 부분적인 수리를 한 흔적이다.




청자상감운학문합


납작한 형태의 뚜껑을 갖춘 합으로 비교적 지름이 큰 편이다,

이 정도 크기의 합은 속에 3~5개의 작은 합들이 들어 있는 경우가 있다.

뚜껑의 가장 중심에는 활짝 피어 있는 커다란 꽃 무늬를  그 둘레에는 구슬 무늬 장식띠를 둘렀다.

바깥으로는 2줄의 선을 돌리고 4마리 학과 빗방울 처럼 변형된 구름 무늬를 배치했다.

구슬 무늬와 학의 몸통은 도장을 찍어 규격이 같다,

몸체의 구연에도 번개 무늬띠가 상감되어 있다.

태토는 고운 편이지만 유약이 덜 녹아서 불투명하고 굽 바닥면이 희뿌옇게 남아있다.

굽 전체에 굵은 모래 비짐을 받쳐 구었다.





청자상감운학국화문개합 (고려 14세기)


커다란 발(鉢)에 뚜껑을 얹고 받침을 갖춘 한 벌의 합이다.

이 합의 크기와 형태 구성으로 보아 특수한 용도를 위한 것이라 추정된다,

뚜껑에는 용을 가략하게 표현한 손잡이 겸 꼭지를 붙였고 꼭지 둘레로 연꽃잎 국화꽃 구름과 학 무늬 띠를 차례로 돌렸고

바깥쪽 입술 부위에 번개 무늬띠를 돌리고 그 아래로 구름 무늬 둥근 원 무늬 속에 넣은 모란 무늬 연꽃 무늬를 둘러 장식하였다.

받침대는 탁잔과 비슷함 모양으로 윗 면에는 구름과 학무늬와 가장 자리에 만(卍)자 무늬를 아랫면에는 넝쿨 무늬를 방탕에 넣고

4곳에 국화 무늬를 넣었다. 굽 전체에 굵은 모래 비짐을 받쳐 구었다.





청자상감화훼조충문대접(고려 14세기)


옆선이 벌어지다가 입술에서 살짝 오므라든 형태의 대접이다.

대접의 안 쪽에는 대칭으로 2개의 꽃 무더기와 잎 줄기를 상감하고 그 문양 사이에는 각각 4마리의 새와 나비를 동일한 간경으로

새겨 넣었다. 바깥에는 위에는 가는 풀 무늬 띠를 아래에는 연잎 무늬 띠를 돌렸고 중간 면에는 4곳에 2줄의 원형 틀 속에 국화를

상감하고 남은 여백은 넝쿨 무늬로 여백을 메웠다. 이 굽바닥 가운데에 '木' 자를 장식적으로 변형시킨 부호가 도장찌는 기법으로

새겨져 있는데 이 부호는 청자의 주문과 납품등 유통과정과 연관이 있는 표식으로 지금까지 강진 용운리 47호 사당리 38호 41호

가마터에서만 발견되고 있으며 상감 청자에 많다.






청자퇴화연국문과형주자(고려 13세기)





청자상감운학문매병(고려 13세기)





청자철화선문과형주자(고려 12세기)





청자정병(고려 12세기)





청자상감국화문합(고려 13세기)





청자상감매로학접문사이호(고려 13세기)





청자음각과당초문주자(고려 12세기)





청자상감국화표형병(고려 14세기)





청자상감모란국화문탁잔(고려 13세기)





청자상감유로수금문병(고려 14세기)





청자상감'경오'명유로수금문대접(고려 1330년)



청자상감'기사명'유로수금문대접(고려 14세기)



청자상감연당초문소호(고려12세기)



청자음각연화문병(고려 12세기)



청자상감연하절지문과형주자(고려 13세기)





청자상감모란문정병(고려 13세기)



cafe.daum.net/inje66/NvIp/72   인제초등학교 동창회(제6회)




고려청자 사진(1)| 문화유산을 찾아서

이보 | 2009.01.06. 15:03
   

고려청자 사진(1)

 

국립중앙박물관/고려청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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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청자 사진(2)| 문화유산을 찾아서

이보 | 2009.01.06. 15:06


고려청자 사진(2)

 

 

 청자상감=국화모란문"신축"명 벼루

 

 

 

 청자상감=모란당초문 대접

 

 

 

청자상감=모란당초문 분합

 

 

 

청자상감=연당초문 소호

 

 

 

청자음각=연화문 매병

 

 

 

 청자=광구병

 

 

 

       청자=구룡모양 삼족 향로

 [보물1027호]



Schumann Liederkreis Op. 39 Par Fischer Dieskau & incense burner of celadon porcelain


 

게시일: 2017. 2. 6.
incense burner of celadon porcelain
- Koryo Dynasty, 12C

 

 


청자=복숭아모양 연적

 

 

 

청자=쌍사자모양 베개

 

 

 

 청자=어룡모양 인장

 

 

 

            청자=오리모양 연적

 

 

 

청자음각=보상당초문 광구병

 

 

 

 청자=정병

 

 

 

청자=탁잔

 

 

 

     청자=골호

 

 

 

청자=매병

 

 

 

   청자반양각=모란문 장경병

 

 

 

청자반양각=연 당초문 호

 

 

 

          청자상감=갈대문 용머리 주전자

 

 

 

청자상감=국화 모란문 장경각 병

 

 

 

       청자상감=국화 운학문 주전자

 

 

 청자상감=모란문 정병

 

 

 

   청자상감=모란문 주전자

 

 

 

            청자상감=봉황 연 당초문 대접

 

 

 

청자상감=어문 대접

 

 

 

     청자상감=연판문 꽃모양 접시

 

 

 

    청자상감=연화유문 주전자.승반

 

 

 

청자상감=용봉 모란문 개합

 

 

청자상감=운문 표형 주전자

 

 

 

          청자상감=운학 모란 국화문 매병

 

 

청자상감=운학문 병

 

 

 

     청자상감=운학문 표형 주전자

 

 

 

청자상감=운학문 화분

 

 

 

        청자상감=초화문 팔각향로

 

 

 

           청자상감=포도 동자문 대접

 

 

 

   청자상감=포도 동자문 병

 

 

 

      청자상감=포도 동자문 사이개 호

 

 

 

    자상감=표류 운학문 편호

 

 

 

        청자상감=진사채 국당초문 기름병

 

 

 

             청자상감=진사채 모란문 기름병

 

 

 

       청자상감=진사채 모란문 표형 주전자

 

 

 

     청자상감=진사채 운학문 분합

 

 

 

       청자양각=모란 당초문 주전자

 

 

 

      청자양각=모란 당초문 호

 

 

 

청자양각=연판문 주전자

 

 

 

   청자양각=죽절.음각 당초문 원숭이장식 개호

 

 

 

    청자양각=죽절.음각 초화문 백퇴점 주전자

 

 

 

청자양각=죽절문 병

 

 

 

 청자양인각=도철문 방형 향로

 

 

 

   청자양인각=보상당초.상감 운학문 대접

 

 

 

   청자양인각=파어 포연문 접시

 

 

 

청자음각=만표문 표형 주전자

 

 

 

        청자음각=연당초.상감 국화 절지문 대접

 

 

 

청자음각=운룡문 잔받침

 

 

 

   청자음각=철채 영락문 합

 

 

 

      청자 =철채상감 삼엽문 매병

 

 

 

청자=철화 조충문 매병

 

 

 

    청자=퇴화 작양문 주전자.승반

 

 

 

      청자=투각상감 연화 칠보문 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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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청자 편년 설정에 관해서(도선님의 청자음각 합 뚜껑과 관련하여~)|  …─ 회원글사진방

우재 | 2016.01.27. 17:49





















(존칭없이 글을 써내려감을 양해바랍니다)


   도자기의 편년을  알 수 있는 근거는 발굴에 의한 편년 자료를 가장 기본  근거로 한다.

고려도자는 전국에 걸쳐 도요지가 산재해 있으나 초기청자를 거쳐(초기청자는 벽돌가마로 중부지방에 산재되어 있으며 최근 진안 도통리요지를 발굴한 결과 맨 하층에는 벽돌가마이며 그 위에 진흙가마로 형성되어있다) 질 좋은 청자가 생산되기 시작한 12세기 이후에는 강진과 부안 등지에서 생산되기 시작하였다.


   도선님의 합뚜껑을 13세기 초반으로 보는 근거는  (사진상으로보이는상태 그대로) 점토섞인 내화토 받침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전술하였듯이 2009년에 발굴조사된 대섬발굴조사보고서에 의하면 23000여점의 청자가 발굴되었으며 편년을 추정할 수 있은 목간이 함께 발굴되었다.1192년경으로 12세기 후반으로 추정하고있다.

그런데 여기서는 백색내화토받침과 규석받침은 보이지만, 점토섞인 내화토 받침은 안보인다는 사실이다.

2010년에 발굴조사된 태안 마도1호선 발굴조사보고서에는  상감청자와 함께 목간이 발견되었는데 그 편년은 1207년과 1208년이었다.여기서는  백색내화토받침과 점토섞인 내화토 받침이 같이 출토되어  점토섞인 내화토 받침은 13세기에 접어들어서 사용한 것으로 추정할수있다.

(위의 두점은 마도1호선에서 발굴된 청자이며 아래 두점은 대섬에서 발굴된 청자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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