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2. 21. 22:05ㆍ도자 이야기
국립중앙박물관-천하제일 비색청자 특별전- 교과서 속 국보를 직접 볼 수 있는 기회
국립중앙박물관 -천하제일 비색청자 특별전(2012. 10. 16~12.16)
국보(청자상감운학문매병,포류수금문정병,원숭이모양연적)
국립중앙박물관 홈페이지-http://www.museum.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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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 비색청자-동영상
국립중앙박물관-천하제일 비색청자 특별전- 교과서 속 국보를 직접 볼 수 있는 기회! 가을풍경 -호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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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시기간 : 2012년 10월 16일(화) ~ 12월 16일(일)
■ 전시장소 :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 [이촌역 2번 출구 150m, 도보 8분 거리]http://www.museum.go.kr
■ 전시유물 : <청자 사자 장식 향로> 등 350여점
- 국보 : <청자 사자 장식 향로>(국보 60호) 등 18건
- 보물 : <청자 상감 신축명 국화 모란문 벼루>(보물 1382호) 등 11점
- 일부 기간만 전시되는 작품(10월 16일~11월 25일, 6주간 전시) :
간송미술관 소장 <청자 상감 운학문 매병>(국보68호), <청자 상감 포류수금문 정병>(국보66호), <청자 원숭이 모양 연적>(국보270호)
- 문의_02-2077-9000
지난 11월 7일 저녁 국립중앙박물관 측의 파워블로거 초청으로 ‘천하제일 비색청자’ 전시를 보았습니다. 이 전시는 지난 16일부터 오는 12월 16일까지 전시 되며 국보 18점과 보물 11점, 일본 중요문화재로 지정된 고려청자 2점을 포함 고려청자 350여점이 한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이 전시는 특히 지난 1989년 ‘고려청자 명품’ 특별전 이후 23년 만에 열린 전시회라고 합니다.
비색의 뜻은?
송나라 태평노인이 지은 것으로 전해지는 책 ‘수중금’에서 천하제일의 색으로 고려비색을 뽑은 데서 땄다고 합니다. 지난 동해안 자전거 여행하면서 동해에서 느낀 비취색, 연초록색에 말로 다 표현 할 수 없는 그 오묘한 색이 바로 비색이었습니다. 옥색과 비취색이라고 표현하기도 힘들 정도 묘하게 전해지는 맑고 깊은 색감, 직접 보셔야만 전달이 가능합니다.
특히 일본으로 반출돼 일본 중요문화재로 선정된 ‘청자 구룡형 정병’은 구경하기 쉽지 않은 작품으로 국내에 처음 전시됐고, 간송 전형필 선생이 기와집 스무채 값으로 인수했다는 일화가 있는 고려청자의 대표작인 ‘청자 상감운학문 매병’은 정교한 상감기술의 진수를 볼 수 있는 작품입니다.
‘천하제일 비색청자’전 미리보기
1부 ‘고려청자의 시작과 전개’
한반도에서 청자를 제작하게 된 시발점은 통일신라시대부터 꾸준히 유입된 중국 자기에서 찾을 수 있다. 이 시기에는 차를 마시는 용도의 도자기. 즉 음다문화를 위한 청자나 백자가 중점적으로 수입되었다. 중국도자에 대한 선망과 수요욕구는 제작에서 새로운 자기 제작을 가능하게 한 배경이 되었다.
고려청자의 전개는 초기. 중기. 후기로 나눌 수 있다. 초기는 늦어도 10세기 중반에 시작하여 초기 청자와 중기 청자의 시기적 구분 기준이 되고 있는 한국식 햇무리굽 완의 생산이 끝나는 11세기 말까지다. 중기는 다종다양한 도자기가 청자를 중심으로 생산되는 12세기부터 중국 원대 도자기의 영향이 나타나는 13세기 후반이다. 후기 13세기 후반에서 고려왕조가 끝나는 1392년까지로 볼 수 있지만 그 영향은 조선 초까지 지속되어 상감분청사기로 이어진다.
2부 ‘청자, 고려를 보는 창窓’
청자의 다양한 쓰임새를 각각의 소주제로 나눠 전시했다. 고급청자는 왕실과 중앙귀족들이 주로 사용한 것으로서 당시 상류층 사람들의 일상을 들여다볼 수 있고, 화장과 관련된 청자유병과 합, 화장상자 등에서는 당시 귀족층 여성들의 화려한 모습을 떠올릴 수 있다.
3부 ‘창조성의 발현, 상감象嵌’
고려 특유의 도자공예기법인 상감기법에 대해 집중적으로 다뤘다. 상감은 백토와 자토가 흑백대비를 이루어 화려한 장식효과를 극대화한 고려만의 독특한 도자장식 기법. 고려인들의 높은 기술적 수준과 그들만의 정서를 도자기로 훌륭하게 표현한 높은 예술적 성취를 볼 수 있다.
4부 ‘천하제일을 말하다’
‘천하제일’로 꼽을 만한 고려청자 22점을 선별했다. 우리의 자존심이 될 만한 진정한 명품들로, 별도의 공간에서 자연광에 가까운 조명 효과를 내도록 해 비색청자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전시했다. 국내에 처음 전시되는 일본 야마토 문화관 소장 일본 중요문화재 ‘청자 구룡형 정병’, 오사카 시립동양도자미술관의 ‘청자동자·동녀형 연적’ 등도 만날 수 있다.
다양한 장식기법으로 만들어졌다는 청자 투각칠보문 향로와 목에 방울을 단 사자를 형상화한 ‘청자 사자장식 향로’ 등 교과서에서 봤던 작품들의 아름다움을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 비색과 더불어 상감기법이 만들어내는 섬세하고 우아한 무늬는 청자의 가치를 한층 더 높여줍니다.
이규보 [동국이상국집]권8
푸른 자기 술잔을 구워내어
열에서 우수한 하나를 골랐구나
선명하게 푸른 옥빛이 나니
몇 번이나 매연 속에 파묻혔었나
영롱하기는 수정처럼 맑고
단단하기는 돌과 맞먹네
이제 알겠네 술잔 만든 솜씨는
하늘의 조화를 빌려왔나 보구려
1부 ‘고려청자의 시작과 전개’
1부-‘고려청자의 시작과 전개’에서는 생산-유통-소비로 이어지는
생산체제와 고려청자의 전반적인 흐름을 소개합니다.
초기 청자의 전개
초기 청자는 중국 오대십국시대의 월요와 가마 축조 방식, 제작 양상 등이 매우 유사하여 청자 제작 기술이 10세기경에 중구에서 유입되었음을 알 수 있다. 10세기에 만들어진 청자는 올리브그린색을 띠며 주력 생산 기종은 차를 마실 때 사용하는 완이었다. 11세기에는 청자 생산지가 확대되면서 전라남도 강진을 중심으로 가마가 운영되었으며 이때부터 고려청자의 색이 서서히 맑은 비취색을 띠게 된다.
절정과 확산
12세기 초 사회가 안정되고 중국의 다양한 도자 문화가 유입되면서 국내에서 다양한 기법의 청자를 생산하게 되었다. 그리고 내부적으로 금속.칠기 등의 공예품이 함께 발달하였다.
강진과 부안으로 대표되는 중심 가마의 역할이 부각되고 동시에 다른 지역에서도 저급한 질의 청자 생환이 확대되었다. 이 시기에 생산된 도자 기형 중 특히 발의 수량이 즐ㅇ가하여 잔의 종류 역시 풍부해진 경향을 보인다. 똑 각종 형태의 접시를 비롯하여 식기류 및 다양한 일상용 기물이 제작되었다. 장식 기법은 음각.양각.압출양각.상감.퇴촤.철화.동화.투각.첩화.상형 등이 총 망라되어, 하려하고 세련미 넘치는 모습으로 제작되었다.
청자의 생산과 유통
도자 제작 초기 단계에서 고려 수도인 개경 주변에 가마들이 위치하였으나 11세기에는 전라도 지역으로 이동하였다. 이후 강진과 부안이 대표적인 생산지가 되어 왕실과 중앙 관청에서 사용될 도자기를 제작하여 공납하였다.
당시 최대 소비지인 개경은 강진. 부안과 먼 거리에 있어 운송에 어려움이 있었으나, 성종 11년에 완성된 조운제를 활용하면서 해결되었다. 그러나 개경으로 향하던 중 물살이 급한 곳을 지나거나 기상악재를 만나 좌초되는 경우가 많았다.
최근 서해안에서 끊이지 않고 발견되는 해저 인양품 가운데 가장 많은 수량을 차지하는 것이 도자기다. 침몰 선박에서 인양되는 도자기는 완도. 보령 원산도. 무안도리포. 군산 야미도.비안도.무녀도.십이동파도.태안 대섬. 마도 등 서해 해안선지역에서 확인되고 있다.
2부-‘청자, 고려를 보는 창’은 청자의 공예적 속성에 초점을 맞추어 주제별로 그 쓰임새를 살펴봅니다.
고려청자는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던 공예품이기 때문에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생활방식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예를 들면 상 위에 올려놓았던 식기부터 꾸밈과 단장을 위한 화장용기, 여가생활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어준 청자 의자와 향로. 그리고 화량몽을 꾸게 만들었던 청자 베개 등은 고려시대 사람들의 발자취를 느낄 수 있다. 또한 단순한 그릇 용도 이외에 각종 행사나 종교의례에 사용했던 청자들도 알려져 있으며 집을 아름답게 장식하기 위해서 만든 청자 기와와 자판 전 등도 확인된다. 청자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은 무덤의 부장품으로까지 이어져 오늘날 우리에게 고려시대 사람들에 관한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청자로 장식된 집
그들의 풍습은 음식을 아끼되 거처를 꾸미는 것을 좋아한다.
꿩이 나는 듯한 화려함에 용마루는 잇달아 붉고 푸른빛으로 장식하였다.
-서긍 선화봉사고려도정 중에-
고려시대 사람들은 집 꾸미는 취미가 남달랐던 것으로 보인다. 아름답게 집을 장식하는데 있어 청자를 활용하였는데, 이 때 사용된 것이 청자 기와, 장식용 자판 , 전, 연봉 등이 있다. 당시 사람들에게 청자는 그릇 그 이상의 의미였던 것이다.
무덤에 묻힌 도자기
고려시대 무덤은 신분과 직급에 따라 규모 및 부장품이 다르게 구성되었다. 왕실과 중앙귀족 같은 최상위 계층의 경우 석실묘 하위 관료층이나 평민은 토광묘를 사용하였다. 무덤에는 도자기. 도기. 금속기 등이 부장되었는데 가장 많은 수량을 차지하는 것이 청자다.
상 위에 놓인 청자
그릇은 음식문화와 그 운명을 함께 한다. 고려청자 역시 당시 사람들이 향유했던 음식문화에 큰 영향을 받으며 제작되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차와 술이다. 신라 말부터 유입된 차 문화는 고려사회에 널리 유행하였다. 왕과 귀족. 승려 등 상류층뿐만 아니라 일반 백성들까지 차 마시는 것을 즐겼다. 차를 마시는 이유는 첫째 차의 맛 때문이며, 둘째 차의 약효를 얻기 위해서다. 이처럼 차 마시는 문화가 확산되면서 자연스럽게 다도구가 발달하게 되었고 여러 가지 형태의 청좌 완과 잔 그리고 주자가 만들어졌다.
여가를 즐기다.
고려시대 사람들은 어떤 활동을 하며 여가를 즐겼을까? 고래시대 대표적인 문인으로 알려진 이규보는 그의 글에서 호젓한 정자에 친한 문사 몇몇을 초대하여 술과 차를 곁들여 거문고를 타고 바둑 두기와 시 짓기로 여유로운 시간 보내기를 의망하고 있다. 아마도 대부분의 문인들이 이처럼 여가를 즐겼을 것이다. 고려시대 문인들이 즐겨했던 시와 문장 짓기를 위해서는 다양한 문방구도 필요했다. 현재 청자로 만들어진 문방구 중에는 연적이 가장 많다. 이 외에도 필가 묵호, 벼루, 인장 등이 청자로 만들어져 문인들의 사랑을 받았다.
고려청자는 각종 문방구류. 낮잠을 위한 베개, 모임의 분위기를 동우는 향로, 바둑 두기를 할 때 필요한 청자 의자 등 다양하게 제작되어 당시 사람들의 여가 생활을 한층 풍부하게 만들었다.
종교와 고려청자
고려시대 불교와 도교 의식에는 다양한 청자가 사용되었다. 특히 불교는 고려의 국교였기 때문에 각종 불교용구가 많이 사용되었다. 그 중 청자로 만들어진 불교용구로는 탑 등에 안치된 사리구나 이중으로 만들어진 경통. 관음보살의 지물로 알려진 정병. 나한신앙과 관련된 나한상 등이 있다. 특히 사리구로 사용된 청자가 많이 확인되는데, 주로 향목을 넣은 합이나 경통. 공양구로 보이는 발 등이 있다.
도교는 왕실에서 국가와 왕실의 안녕을 위해 신봉하였다. 고려청자 가운데 삼일요전배 등 도교의 신이나 의례 명칭이 표기된 예가 있다. 이러한 청자는 도교 관련 의례 시 제물을 담는 그릇으로 사용된 것이다. 이밖에도 새가 장식된 관을 쓴 인물이 소맷자락이 넓은 도포를 입고 선도를 든 채 앉아 있는 모습의 청자 주자가 알려져 있어 고려청자를 통해 당시 유행했던 종교의 일면을 확인할 수 있다.
3부-‘고려 공예의 정수, 상감’은 고려의 미감을 십분 발휘했던 상감기법을 집중 조명하여
공예품에서 상감이 지니는 기술적, 예술적 가치를 찾아봅니다.
상감 청자는 자기의 태토에 무늬를 새기고, 다른 종류의 흙을 메워 넣는 장식 기법이다. 서로 다른 재료를 사용하여 공예품을 장식하는 기법은 목공예품의 나전칠기 금속공예품의 입사기법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 이를 도자기에 응용한 것은 고려 장인의 창의적인 발상에서 나온 것이다.
상감기법의 문양은 매우 다양하다. 한 폭의 그림을 보는듯한 문양이 시문되어 회화적인 느낌이 강하게 나거나, 특정 문양이 반복적으로 표현되어 공예장식의 극치를 이루는 예도 많다.
모란무늬 항아리, 포도넝쿨무늬 표주박 모양 주자, 꽃무늬 정병, 연꽃넝쿨무늬 병
풍경인물무늬 편병, 참외모양 병, 연꽃잎무늬 참외 모양 병, 국화 모란무늬 참외 모양 병, 국화무늬 병
예술과 기술의 조화
현재 전하고 있는 문헌기록에서 상감의 시작시기와 발전과정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중국 도자의 영향 아래 자기 제작을 시작했던 고려 장인은 단순한 모방단계에서 벗어나 청자에 상감기법을 적극 수용하여 고려적인 미감을 선보였고 이것은 곧 고려청자를 대표하는 이미지로 각인되었다.
고려청자를 장식한 ‘상감’기법이 도자기에 시도된 것은 고려시대 사람들의 창조적인 응용력에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이처럼 예술과 기술을 융합하여 새로운 가치 창조를 실현하는 것은 새로운 문화를 만드는 원동력이다. 잠시 시선을 돌려 900년 전에 ㅁ나들어진 고려청자를 바라보자. 예술과 기술의 조화를 통해 새로운 아름다움을 창조한 고려시대 사람들의 안목을 생각해보자. 세상 모든 것이 변하여도 그들이 우리에게 해 주는 이야기는 변하지 않는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고려청자를 마주대하는 이유다.
소나무 인물 학무늬 매병, 물가 풍경 정병, 청동 물가풍경무늬 정병
고려청자, 다시 세상의 빛을 보다
고려의 수도인 개경에는 고급청자 최대 소비처인 궁궐과 여러 중앙관청이 있었고 주변 지역에는 왕릉과 귀족의 무덤이 다수 존재하고 있다.
현재 전하고 있는 우수한 품질의 고려청자는 이 같은 궁궐터와 무덤에서 나온 것들이며, 일제 강점기에 이왕가박물관 및 조선 총독부박물관에 소장되었다가 광복 후 국립박물관이 인수하였다. 이로써 국립중앙박물관은 고려청자 최대 소장처가 되었으며 이번 전시는 그러나 고려청자를 선보이는 자리다.
4부- ‘천하제일을 말하다’에서는 고려청자 중 걸작을 전시하여 이번 전시의 대미를 장식합니다.
남송대 태평노인이 집필한 [수중금]가운데 천하제일 즉, 세상에서 가장 으뜸인 것을 모아서 서술한 부분을 보면 “고려비색이 천하제일”이라는 구절이 있다. 도자기 종주국인 중국 사람이 고려청자를 으뜸으로 꼽는 것은 고려청자의 아름다움과 우수성이 멀리 중국까지 알려졌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고려청자의 시작은 중국 기술의 도입이었고 이후 여러 경로를 통해 중국 도자문화의 영향을 받았지만 고려시대 사람들의 생활 방식과 미의식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새로운 양식을 만들어냈으며, 질적. 양적으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다. 우리는 고려청자를 통해 당시 사람들의 생각과 생활방식을 들여다 볼 수 있고 그들이 표현한 서정적이면서도 예술적인 미감을 감상할 수 있다. 또한 창조성이 십분 발휘된 놀라운 기술적 성취도 확인할 수 있다.
원앙 모양 향로 뚜껑, 연꽃 모양 향로, 모란넝쿨무늬 조롱박 모양주자, 포도 동자무늬 조롱박 모양 주자와 받침
매화 대나무 학무늬 매병,구름학무늬 매병, 어룡모양 주전자, 사자장식 향로, 거북모양 주자
용 봉황 넝쿨무늬 편병, 용모양 정병
간송미술관 소장 <청자 상감 운학문 매병>(국보68호), <청자 상감 포류수금문 정병>(국보66호), <청자 원숭이 모양 연적>(국보27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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