뱁새는 숲속에 깃들어도저렇게 만족하구나 - 逍遙谷 / 무의자 진각혜심

2016. 2. 25. 0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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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9)]뱁새는 숲속에 깃들어도 저렇게 만족하구나 逍遙谷 / 무의자 진각혜심
경제풍월 기자  |  teuss@econotalking.kr



승인 2015.05.19  09:33:45


[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9)]

뱁새는 숲속에 깃들어도
저렇게 만족하구나

逍遙谷 / 무의자 진각혜심


   

글/ 張喜久(장희구 문학박사 / 문학평론가· 시조시인)

 

   장자의 제물론에 보면 소요유가 나오면서 붕정만리(鵬程萬里)라는 큰 뜻을 알게 한다. 작은 생각에 집착하기 보다는 큰 생각과 대담한 기상을 엿보게 한다. 조선 초 남이 장군의 담대한 남아이십미평국(男兒二十未平國)이란 시문에 나타난 기상도 접하며 큰 뜻을 이해하게 된다. 작가의 아호를 ‘무의자’라 했으니 아무데도 의지할 데 없는 사람을 빗대고 있음도 보였던 스님이었다. 대붕과 뱁새에 비유하면서 지팡이와 장삼이라는 현실로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逍遙谷(소요곡)  / 무의자 진각혜심


대붕은 바람타고 수만리 날아가나
뱁새는 숲속에서 깃들어 만족하고
장단은 자적하나니 지팡이가 제격이네.


大鵬風翼幾萬里    斤林巢足一枝
대붕풍익기만리    근안림소족일지
長短雖殊俱自適    瘦殘衲也相宜
장단수수구자적    수공잔납야상의


    뱁새는 숲속에 깃들여도 저렇게 만족하구나(逍遙谷)로 제목을 붙여본 칠언절구다. 작가는 무의자(無倚子) 진각혜심(眞覺慧諶:1178〜1234)으로 고려 후기의 승려다. 법명은 혜심(慧諶)이고, 시호는 진각국사(眞覺國師)라고 알려진다.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출가하기를 원하였지만 어머니가 허락하지 않았다고 한다. 1202년(신종 5)에 어머니가 죽자 비로소 출가했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대붕은 바람을 타고 수만 리를 날아가지만 / 뱁새는 숲 속 한 가지에 깃들여도 만족한다네 // 장단은 비록 다를지라도 함께 자적거리나니 / 야윈 지팡이에 다 떨어진 장삼이 제격이로다]라는 시심이다.
위 시제는 [골짜기를 소요하며 혹은 소요 골짜기에서]로 번역된다. 제목에서 보여주고 있듯이 소요유의 붕정만리(鵬程萬里)에서 ‘북쪽 바다에 물고기가 있는데, 이름하여 곤(鯤)이라 한다. 곤의 크기는 몇 천리나 되는지 알 수가 없다. 이것이 변하여 새가 되면 그 이름을 붕이라 한다’라고 했다. 장자의 철학 사상 첫 구절을 인용한데서 시적인 배경을 찾게 된다.


   시인은 자신의 머리가 희어짐을 느끼던 어느 순간에 누구나 허탈감에 젖어 보았던 경험은 있을게다. 잘난 인간이든 못난 인간이든 간에. 진각국사도 어느 날 문득 그런 느낌을 가졌을까? 아마 그랬던 모양이다. 본디 스님인 그였기에 세상사 근심을 할 이유가 없었기에 늙지 않을 줄 알았던 모양인데 ‘세월’이란 놈은 그의 머리에까지 흰머리를 재배(栽培)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화자는 대붕과 뱁새라는 장단은 비록 다를지라도 스스로의 도취적인 만족감을 나타내는 모습을 보게 된다. ‘너는 그래라’라고 말하고, ‘나는 이러마’ 식의 자기만족을 보였으니 야윈 지팡이에 떨어진 장삼이 제격이라는 시상을 떠올리게 되었다. ‘상하’가 일치하는 모습을 만나게 된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대붕 수만리 나나 뱁새 숲속에 만족, 장단 달라도 자적하니 지팡이에 떨어진 장삼’이라는 시인의 상상력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한자와 어구>
大鵬: 대붕, 큰 새 風: 바람 翼: 날다 幾萬里: 몇 만리 斤: 뱁새 林: 숲 巢: 낮에는 활동을 하다가 밤에 둥지로 깃들다 足: 만족하다 一枝: 한 가지 長短: 장단 雖殊: 비록 다르다 俱: 함께 自適: 자적하다 瘦: 야윈 지팡이 殘衲: 다 떨어진 장삼 也相宜: 제격이다(也는 뜻 없이 쓰인 어조사).  (계속) .

[본 기사는 월간 경제풍월 제189호 (2015년 5월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