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부안유천 상감청자는 국보 - (4회)부안·강진·해남 청자 비교

2016. 3. 1. 03:23도자 이야기



      

문화기획
<1부>부안유천 상감청자는 국보 - (4회)부안·강진·해남 청자 비교
승인 2008.01.09  


      
    


  
  
   고려시대 서남해안을 중심으로 전국에 많은 도자 요장(窯場)들이 명멸하였으나 그 가운데 일군을 이루며 고려 도자문화를 대표하는 곳이 전라북도 부안(100여기)전라남도 강진(200여기)·해남(200여기)지역의 요장들이다.

   이들 요장이 위치한 전라도 지역은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한국 도자생산의 핵심지역으로 수많은 가마터가 분포하고 있다. 특히 고려 청자의 중심지로 그 기원과 발전에 있어 매우 중요한 곳이다. 이들 지역은 고려청자 대량의 요장을 운영하면서 개성 등 중요 소비지의 대부분을 담당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 각 지역별 청자의 특징

▶ 부안 청자
   부안지역 청자가마는 전남 강진지역 청자가마와 함께 고려시대 고급(양질)청자 생산의 쌍벽을 이루는 곳이다. 부안청자를 대표하는 가마터는 보안면 유천리(사적 제69호, 45기)와 진서면 진서리(사적 제70호, 40여기)이다. 이 중 진서리가 유천리보다 앞서 운영되었는데 태토가 거칠고 유약은 얇게 시유되었으며, 짙은 녹색을 띠는 등 유천리나 강진지역에 비해 그 질이 떨어진다.
   부안청자를 대표하는 유천리 청자의 경우 유약은 녹색이 짙거나 투명하며, 굽 받침은 규석이 많다. 큰 기형은 모래가 섞인 거친 내화토 비짐을 받치고 있다. 문양은 음각·양각·투각기법과 함께 상감기법이 널리 쓰였다.

   부안청자의 특징인 상감문양은 이전 시기보다 대형화되고 활달한 기운을 지니며, 정교하면서도 화려하여 고려청자의 면모를 일신하고 있다. 즉, 기형은 대형화하고 다양해지며 장식기법도 투각, 양각, 음각, 철화, 퇴화 등을 상감기법과 혼용하여 사용하고 있다. 또한 청자의 굽바닥에 장인들의 이름으로 판단되는 ‘효문(孝文)’, ‘효구(孝久)’, ‘조청(照淸)’, ‘의장(義藏)’, ‘돈장(敦章)’, ‘응지( 應志)’ 등의 명문이 음각되어 있어 생산지를 확인해 주는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 강진청자

   강진지역 청자가마터는 대구면(사적 제68호) 일대와 칠량면 삼흥리(기념물 제81호) 명주리 일대에 분포한다. 이 중 핵심은 대구면 일대로 특히 용문천(龍門川)을 중심으로 발달했다. 이곳은 1914년 처음 알려지면서부터 지금까지 한국 도자사에서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또한 이 곳에서 제작된 청자들은 한국 도자를 대표하는 명품들이 대부분으로 한국 미술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대구면 가마터는 크게 용운리계율리, 사당리, 수동리 등 4개 지역으로 구분된다. 가마는 용문천 상류인 용운리에서 발생하여 용문천을 따라 바닷가인 사당리까지 매우 넓게 분포하고 있다. 이 지역에서 확인된 가마터는 현재 200여기로 우리나라 양질 청자 가마터의 5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시기적으로는 자기 발생기부터 14세기 쇠퇴 소멸기까지 고려시대 전 기간 동안의 가마가 조사되고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 청자 발생과 세련기, 절정기, 확산기의 전 과정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곳으로 다종 다양한 모든 종류의 청자와 백자 등이 확인된다. 그리고 국가에서 자기 제작을 통제하였던 자기소(磁器所)가 있던 관요의 성격을 지니고 있어 간지명과 ‘상약국’, ‘준비색’, ‘정릉’ 등 공납과 관련된 명문이나 관사명 등의 명문이 있다.


▶ 해남청자

   해남지역 청자가마터는 화원면(기념물 제220호, 60여기) 일대와 산이면(사적 제310호, 100여기) 일대에 분포한다. 해남 청자에 대한 연구는 1983년 산이면 진산리 일대의 청자 가마터가 알려지면서 시작되었다. 이후 1998년 화원면 신덕리 일대에서 초기청자 가마터가 새롭게 조사되어 해남 청자의 중요성은 더욱 부각되었다.

   해남청자는 강진과 부안지역 청자에 비해 대부분 질이 떨어져 지방과 하급 관청 등의 수요를 위해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즉 해남과 강진은 수요층에 따른 역할 분담 또는 용도 등에 따른 품질 분화가 이루어 졌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해남에서도 일부 고급품이 제작되고 있는데 화원면의 경우 완은 질 좋은 태토와 유약을 사용하였으며 내저면에 받침 흔이 없고 갑발 내에서 번조하여 제품이 매우 우수하다.

   산이면의 경우 철화청자와 철채청자 등이 매우 우수한데, 특히 장고와 항아리, 병, 주전자, 대야 등은 진산리에서만 출토되고 있다. 기종은 대접과 완, 접시, 화형접시, 병, 유병, 편병, 항아리 등으로 타 지역 가마에 비해 단순하다. 흑유(黑釉)는 신라통일기 전통 도기 제작 기법을 바탕으로 제작하고 있는데, 반구병과 편병, 유병, 항아리 등 저장용기 또는 운반용기를 중심으로 확인되고 있다.


## 각 청자의 공통점과 차이점

   부안과 강진, 해남지역의 요장이 위치한 곳은 겨울과 여름의 기온 차가 심하지 않아 일년 내내 온난하여 사람이 거주하기에 적당하다는 지역적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가마가 위치한 곳은 산기슭과 구릉지대로 땔감과 수량이 풍부하며, 해안에 접해 있어 바닷길을 통한 공급이 매우 원활하여 가마터가 발달하기에 아주 좋은 여건을 갖추고 있다.
특히 서해를 통해 앞선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중국 동해안에 인접한 월주요, 여주요, 남송관요, 용천요 등의 다양한 도자 문화들과 교류하면서 발전할 수 있었으며 전라도의 경우 농경을 중심으로 한 시기에는 상대적으로 경제적 여유가 많아 음식과 음주, 차문화 등 풍류 문화가 발달해 많은 도자를 수용하고 사용할 수 있는 여건이 갖추어져 있었다.

   한성욱 문화재청 감정위원은 “이 세 곳은 생산과 물류뿐만 아니라 소비지의 여건도 갖추고 있어 다른 지역에 비해 도자문화가 발전하였던 것으로 판단된다”며 “또 이를 발전시킬 수 있었던 우수한 문화와 기술 집단이 있었으며, 통제 발전시킬 수 있었던 운영 세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밝혔다.
강진은 초기 청자에서 말기청자까지 지속적으로 운영되었던 반면, 해남은 순청자와 철화청자 등이 생산되고 있어 고려전기에 중심적으로 운영되었음을 알 수 있다. 부안의 경우, 순청자와 상감청자 등이 제작되고 있어 고려 중기에 중심적으로 운영된 요장임을 알 수 있다.

   한 위원은 “해남과 부안이 전기와 중기의 중심 가마터로 변환되는 것은 해남이 원료 고갈 등의 원인으로 폐요(廢窯)되고 부안으로 새롭게 이동하였던 때문”이라며 “부안으로 이전되면서 상감문양의 독창성 확보와 품질의 보완이 이루어졌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즉, 해남의 대단위 요장을 대신할 새로운 생산지가 필요했고, 이를 부안이 계승 발전시켰던 것으로 판단된다는 것. 한편 강진은 고려시대 전기간 운영되었던 때문인지 기록이 단편적으로 남아 있으나 부안과 해남은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 이는 고려 문헌 기록의 중심이 되는 후기에 부안과 해남지역의 요장이 운영되지 않은 때문으로 학계에서는 추정하고 있다. 또 부안은 개인적인 장인 이름으로 추정되는 명문이 많은데 비해 강진은 관사명 등 공식적인 명문이 많은 것도 차이점이라 할 수 있다.

   청자의 질적인 면을 따져보면 강진과 부안에서 제작된 청자는 양질의 고급품으로 왕실과 귀족층, 대형 사찰 등이 소비 대상이었고, 해남 청자는 지방과 하급 관청 등의 수요를 위해 제작된 것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학설이다.
나선화 문화재청 문화재위원은 “해남 청자는 조질품이 중심으로 주로 거친 바탕 흙을 사용하며, 유약도 녹갈색조로 유면이 고르지 못한 것으로 봐서 부안과 강진에 비해 하급관리들을 위한 수요품이었을 가능성이 크다”“일상 음식기인 대접과 접시, 병 등이 중심으로 특수기종은 장구 등 소수에 지나지 않으며, 철화청자가 특징적이며 남부지역의 특징적 도자인 흑유가 제작되어 신라통일기의 전통도자 제작기법을 엿볼 수 있다”고 밝혔다.
나 위원은 이어 “그러나 무엇보다도 부안청자는 활달한 기운과 정교하면서도 화려한 상감청자가 특징으로 중국청자와 차별되는 독자적인 청자문화를 형성했다”“부안 역시 기종이 매우 다양하며, 그 가운데 유천리에서 생산된 청자도판(靑瓷陶板)과 백자가 다른 지역 가마에 비해 특징적”이라고 설명했다.

<기획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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