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부임(赴任) 제4조 계행(啓行) 공청에 귀신과 요괴가 있다고 하거나 ...

2016. 3. 6. 09:43다산의 향기



       [18] 부임(赴任) 제4조 계행(啓行) 공청에 귀신과 요괴가 있다고 하거나 아전들이 금기(禁忌)를 고하더라도 마땅히 아울러 구애받지 말고 현혹된 습속들을 진정시켜야 한다. 목민심서 / 일표이서

2015.02.04. 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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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한(東漢) 때에 왕돈(王忳)미현(郿縣)의 수령에 임명받고 부임하여 시정(漦亭)에 이르니, 정장(亭長)이,

“정(亭)에는 귀신이 있어 지나가는 나그네를 자주 죽이니 잘 수가 없습니다.”

하였다. 이에 왕돈이,

“인(仁)은 흉사(凶邪)를 이기고 덕(德)은 상서롭지 못한 것을 물리치니 어찌 귀신을 피하랴.”

하고, 바로 정(亭)에 들어가 머물러 잤다. 밤중에 들으니 여자가 억울함을 말하되, 정장에게 죽음을 당하였다고 하였다. 왕돈이 이튿날 아침 유격(游檄)을 불러 힐문(詰問)하니, 죄를 낱낱이 자백하므로 곧 정장을 잡아 가두었다.
진(晉)나라 때 악광(樂廣)하남윤(河南尹)이 되었는데 관사(官舍)에 요괴(妖怪)가 많아 전임 부윤(府尹)은 감히 거처하지를 못하였다. 악광이 뒷날 벽 구멍 속에서 삵〔貍〕을 잡아 죽이니 드디어 요괴가 없어졌다.
양(梁)나라 때 부소(傅昭)좌호상서(左戶尙書)를 역임하고 안성현 내사(安成縣內史)가 되었다. 고을에서는 송(宋)이래로 병란(兵亂)이 연이었으므로 관사(官舍)는 흉가로 일컬어졌다. 밤중이나 새벽에 사람과 귀신이 서로 맞닥뜨려 재임자가 좋게 임기를 마치는 일이 거의 없었다. 부소가 도임하자, 어떤 사람이 밤에 보니 갑옷과 군기를 가진 군사가 나타나,

“부공(傅公)은 착한 사람이니 침범할 수가 없다.”

하고 공중으로 날아갔다. 이로부터 고을에는 드디어 변괴가 없어졌다.
조극선(趙克善)이 면천 군수(沔川郡守)가 되어 부임하러 가는데, 아전이 금기(禁忌)가 있다 하여 길을 둘러 갈 것을 청하였고, 귀신과 요괴가 있다 하여 아사(衙舍)를 옮길 것을 청하였으며, 또 택일(擇日)하여서 부임할 것을 청하였으나 모두 들어 주지 않았다.
또, 당(唐)나라 이길보(李吉甫)와 우리나라의 이위국(李緯國)은 모두 임지에서 죽은 전임자의 관직을 이었으나, 옛 관사(官舍)를 꺼리지 않았다. 뒤의 해관편(解官篇) - 은졸조(隱卒條) - 에 보이므로 여기서는 생략한다.




[주B-001]계행(啓行) : 부임의 행차이다.
[주D-001]동한(東漢) : 후한(後漢)의 별칭. 한 광무제(漢光武帝)가 동경(東京), 즉 낙양(洛陽)에 도읍한 때문에 이렇게 일컬어진 것이다. 전한(前漢)을 서한(西漢)이라 하는 데 대한 대칭(對稱)이다.


[주D-002]왕돈(王忳) : 후한(後漢) 사람으로 자는 소림(少林)이다. 미령(郿令)으로 있을 적에 원옥(寃獄)을 씻어주었다. 《後漢書 卷81 獨行列傳 王忳》
[주D-003]미현(郿縣) : 중국 섬서성(陝西省)에 있었던 현명이다.


[주D-004]정장(亭長) : 숙역(宿驛)의 장(長)이다. 진한(秦漢) 때의 제도로, 10리에 1정(亭)을 두고 정마다 장(長)이 있는데, 도적의 체포와 취조를 맡았다. 《後漢書 百官志5 亭里》
[주D-005]유격(游檄) : 관명. 한대(漢代)에 향리를 순찰하며 도적을 막는 일을 맡았다. 《漢書 卷19上 百官公卿表》


[주D-006]악광(樂廣) : 진(晉)나라 사람으로 자는 언보(彥甫)이다. 담론(談論)을 잘하였다. 벼슬은 하남윤(河南尹)ㆍ이부 상서(吏部尙書)를 지냈다. 《晉書 卷43 樂廣列傳》
[주D-007]하남윤(河南尹) : 하남은 부(府)의 이름. 윤(尹)은 부윤(府尹)으로 부(府)의 정사를 맡은 장관. 한(漢)나라 때 경조윤(京兆尹)을 부윤(府尹)이라 불렀고, 당대(唐代)에는 서도(西都)ㆍ동도(東都)ㆍ북도(北都) 등에 부윤을 두었고, 명(明)나라 때에는 순천부(順天府)에 부윤을 두었다.


[주D-008]부소(傅昭) : 양(梁)나라 사람으로 자는 무원(茂遠), 시호는 정(貞)이다. 제(齊)나라에 벼슬하여 상서좌승(尙書左丞)에 이르렀고, 양 무제(梁武帝) 때 좌호상서(左戶尙書)ㆍ안성내사(安成內史)를 지냈고, 산기상시(散騎常侍)에 이르렀다. 《南史 卷60 傅昭列傳》 《梁書 卷26 傅昭列傳》 ‘고을에서는……없어졌다’는 기사는 《남사(南史)》에서 인용하였다.
[주D-009]좌호상서(左戶尙書) : 관명으로 탁지상서(度支尙書)에 소속되었는데, 천하의 회계장부와 호적(戶籍) 등의 일을 맡았다. 원문의 좌우상서(左右尙書)는 《남사(南史)》에 의거, 좌호상서(左戶尙書)로 고쳤다.


[주D-010]안성현 내사(安成縣內史) : 안성현은 하남성(河南省)에 있었던 현명. 내사(內史)는 지방관의 이름. 한(漢)나라 때에는 경사(京師)를 맡아 다스렸고, 진(晉)나라 때에는 태수(太守)를 고쳐 내사성(內史省)이라 하였다.
[주D-011]송(宋) : 남북조(南北朝) 시대의 송(宋)으로, 즉 유유(劉裕)가 세운 송(宋)나라. 조광윤(趙匡胤)이 세운 조송(趙宋)과 구별하여 유송(劉宋)이라고도 한다.


[주D-012]조극선(趙克善) : 1595~1658. 조선 문신. 자는 유저(有諸), 호는 야곡(冶谷), 시호는 문목(文穆), 본관은 한양(漢陽)이다. 면천 군수(沔川郡守)ㆍ장령(掌令) 등을 지냈다. 저서에는 《야곡집(冶谷集)》이 있다.
[주D-013]이길보(李吉甫) : 당(唐)나라 사람으로 자는 홍헌(弘憲), 시호는 충의(忠懿)이다. 요주 자사(饒州刺史)로 부임하자, 전 자사(刺史)가 넷이나 죽어 주성(州城)에 요물이 있다 하여 버려 두고 거처하지 않았으나, 이길보는 풀을 베어 내고 일을 보았다. 저서에 《원화군현지(元和郡縣志)》가 있다. 《唐書 卷146 李栖筠列傳 李吉甫》 《舊唐書 卷148 李吉甫列傳》


[주D-014]이위국(李緯國) : 1597~? 조선 문신. 자는 태언(台彥), 호는 운포(雲浦),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상원 군수(祥原郡守)ㆍ이천 부사(伊川府使) 등을 역임하면서 선정을 베풀었고 청렴강직하기로 유명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