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상익의 의학 파노라마](4) “건강들 하십니까?”

2016. 3. 12. 01:34건강 이야기



       [황상익의 의학 파노라마](4) “건강들 하십니까?”

 글쓴이 : 감이당 | 작성일 : 14-09-25 16:27
조회 : 930  



ㆍ한국인, 수명은 최상위권인데 ‘건강 만족도’는 왜 하위권일까
ㆍ기대수명 높고 영아사망률 낮아 객관적 자료 OECD 국가 중 상위권에 속해…주관적 만족도는 회원국 34곳 중 33위, 일본이 꼴찌

■ OECD, 2년마다 회원국 보건지표 발표

   선진국들 모임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2년에 한번씩 <한눈에 보는 OECD 보건지표>(Health at a Glance. OECD Indicators)라는 소책자를 통해 회원국들의 건강실태를 발표한다. 거기에는 각국 국민들의 ‘주관적 건강만족도’도 실려 있다. 가장 최근인 2013년에 발표된 자료를 보면 한국인 가운데 “자신의 건강상태가 좋다”라고 답한 사람은 37%(남성 40%, 여성 34%)로 34개 회원국 중 33위이다.

OECD 평균치는 69%이고, 1등은 응답자의 90%가 스스로 건강상태가 좋다고 만족을 표시한 미국이 차지했다. 꼴등은? 일본으로 30%만이 건강상태가 좋다고 응답했다. 2011년 발표 자료에는 미국이 1등, 한국이 31등, 일본이 33등으로 나와 있으며, 그 이전도 별로 다르지 않다. 객관적 지표와 주관적 인식이 차이가 큰 경우, 해석하기가 난감하다. 평균수명, 영아사망률 등에서 최상위권에 있는 일본과 한국이 주관적 만족도는 바닥이고, 반면에 객관적으로는 OECD 평균에도 미치지 못하는 미국이 만족도는 으뜸이라니.

이런 자료들을 보면서 문득 떠오르는 단어가 있다. ‘감사결핍증’. 물론 의학적 병명은 아니다. 이제 꼭 40년이 되어가는 1974년 1월9일, 당시 유신정우회(維新政友會) 회장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지도자들에게 감사할 줄 모르는 감사결핍증을 버리지 않는 한 복을 받을 수 없을 것”이다. 한국인들에게 보내는 경고장이자 불신지옥식 저주이다. 이승만 정권과 박정희 정권에서 국무총리를 지낸 유일한 인물인 백두진이 왜 이런 발언을 했는지는 설명이 필요할 것이다.

■ 객관적 지표 평균 이하인 미국이 주관적 만족도 1위



1972년 ‘10월 유신’이 선포되고 1년 동안은 쥐죽은 듯 조용하던 한국사회가 1973년 10월2일 서울대 문리대 학생 시위를 계기로 꿈틀대기 시작했다. 12월24일 함석헌과 장준하 등을 중심으로 ‘개헌 청원 100만인 서명 운동’이 시작되고 급속히 지지를 얻어가자 유신 정권은 보름 뒤인 1974년 1월8일 ‘대통령 긴급조치’ 1호와 2호를 선포했다. 조치의 골자는 유신헌법에 대한 일체의 개정·폐지 논의 금지와 그에 관한 보도 금지, 위반자는 영장 없이 체포·구속하여 비상군법회의에서 심판·처단하는 것이었다. 긴급조치가 발표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고무찬양이 이어졌다. 그 중에서도 백미는 10월 유신의 진정한 의도와 권력층의 면면한 속내를 담고 있는 감사결핍증 발언이었다.이 감사결핍증과 건강상태에 대한 한국인들의 (불)만족도가 관련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현실에 만족하지 않는 게 과연 부정적인 것일까? 그것은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더 나은 미래를 만드는 필수적인 요소는 아닐까? 더 근본적으로, 한국사회가 정치·경제·문화적으로나 건강면에서도 급격히 개선·발전해온 동력은 도대체 무엇일까?

통계청은 예년과 마찬가지로 12월초에 한국인의 2012년 생명표 발표했다. (왜 1년이나 지나서 발표하는지는 연재 1회에서 언급했다.) 이에 따르면, 2012년 현재 한국인의 평균수명(출생시 평균 기대여명)은 81.4세(남성 77.9세, 여성 84.6세)이다. 여성이 남성보다 평균 6.7년 더 오래 사는데, 수명의 남녀 차이는 1970년 이래 가장 좁혀진 것이지만 아직도 OECD 평균 5.5년보다는 큰 편이다.

관련 연구를 보면 대체로 남녀가 평등한 국가일수록 수명 차이도 작다. 남성들의 건강과 수명 증진을 위해서도 남녀평등은 더욱 진전되어야 할 일이다. 이번에는 평균수명과 더불어 가장 중요한 건강지표인 영아사망률을 살펴보자. 남자아기는 출생아 1000명당 3.14명, 여자아기는 2.67명, 남녀 합해 2.91명으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한국인의 건강 수준이 세계 최상위권에 속한다는 것은 이제 상식이다. 그럼 어떤 과정을 거쳐 이런 수준에 도달했고 앞으로는 어떻게 될지를 유엔 인구국(United Nations Population Division)이 2013년 6월에 발표한 <세계인구전망보고서: 2012년 개정판>(World Population Prospects: The 2012 Revision)을 통해 알아보자. (그래픽1, 2 참조)

유엔 인구국에서 전 세계 국가들을 대상으로 인구 및 보건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1950년대 이래 몇 가지 경우를 제외하고 거의 모든 국가의 건강 수준이 획기적으로 개선되었다. 세계인의 평균수명은 1950년대초 46.9세에서 오늘날 70.0세로 23세가량 늘어났으며, 영아사망률은 135에서 37로, 3분의 1 이하로 떨어졌다. 이전 시대에는 꿈도 꿀 수 없었던 엄청난 변화가 두어 세대 만에 일어났다. 가히 신인류의 탄생이라고 할 만하다.

■ 2040년엔 평균수명 88.4세로 최장수국 일본 앞질러

이 시기 건강 면에서 대표적인 모범국가는 일본이다. 일본은 1945년 이전, 제국주의 국가 시절에는 구미 선진국은 물론이고 이탈리아나 에스파냐 같은 남유럽의 중진국보다도 건강 수준이 떨어졌다. 그러던 것이 제2차 세계대전 패전으로 제국주의의 족쇄가 풀리면서 1960년 무렵부터 선진국 수준으로 올라갔고 1980년대부터는 세계 제1의 건강 국가가 되었다.

< 그래픽1 >


그래프에서 한눈으로 볼 수 있듯이 일본보다 더 획기적으로 건강 수준이 개선된 것은 우리나라이다. 흔히 한국은 6·25전쟁 직후의 최빈국에서 오늘날의 경제선진국으로 발전했다고들 한다. 하지만 적어도 건강 수준은 세계 최하위국이 아니었다. 평균수명과 영아사망률 모두 1950년대에도 세계 평균값과 비슷하거나 조금 나았다. 건강 지표가 의료 수준과 그 보급 정도에 의해서만 결정되는 게 아니라 한 국가의 종합성적표라는 점을 생각하면 세계 최빈국 신화도 다시 꼼꼼히 따져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 그래픽2 >



60년 동안 이어진 건강 수준의 급속한 개선으로 이제 한국은 세계에서 손꼽히는 건강 국가가 되었다. 앞으로도 이러한 현상이 지속될까? 유엔 인구국의 예측에 따르면 평균수명은 2040년대 후반부터 우리나라(88.4세)가 일본을 앞질러 세계 최장수국이 되고, 영아사망률은 그보다 조금 앞서 2040년대 초에 세계 1위(1000명당 1.06명)로 올라서리라고 한다. 미래에 대한 전망이니 누구도 알 수 없는 일이다. 30년 뒤의 일을 예견하기에 앞서 우리나라는 이미 건강 최선진국이라는 사실이 중요하다. 오래 사는 게 반드시 좋은 일은 아닐지 모른다. 수명이 크게 늘어났어도 그 대부분을 병석에서 지낸다면 무슨 의미와 가치가 있을까? 아흔아홉 살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이삼일만 앓고 나흘 만에 세상을 뜨자는 ‘9988234’. 소박하게 말해 이런 소망과 관련 있는 개념이 건강수명(healthy life expectancy, HALE)이다. (사실은 그보다 훨씬 복잡한 정책상의 함의가 들어 있지만.) 그렇다고 병석에서 지내는 기간이 의미와 가치가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결코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이런 논란거리를 가지고 있지만 보건의료 정책 결정 등에 점차 유용성을 인정받고 있는 것이 건강수명이다.



< 표1 >



< 표2 >



미국 워싱턴 대학교 건강계측평가연구소(Institute for Health Metrics and Evaluation)의 최근 연구 자료에는 세계 187개 국가의 평균수명과 건강수명의 변화를 추적하여 1990년과 2010년 치를 비교한 결과가 나와 있다. (표1, 2 참조)

전 세계 남성의 평균수명은 1990년 62.8세에서 2010년 67.5세로 4.7세 늘어났으며 같은 기간 건강수명은 54.4세에서 58.3세로 3.9세 증가했다. 평균수명 증가에 비례해서 건강수명이 늘어났지만 병석에 누워 있는 등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하는 기간도 8.4년에서 9.2년으로 0.8년 길어졌다. 여성은 같은 기간에 평균수명은 5.1세, 건강수명은 4.0세 증가했고 정상 생활이 어려운 기간도 1.1년 증가했다. 남녀 모두 평균수명 증가치의 일부분은 병치레에 쓰인 것이다.

■ 수명 증가에 따라 병치레 기간도 늘어날 것

건강수명도 남녀 모두 일본인이 가장 길다. 1990년에도 그랬고 2010년에도 그렇다. 한국인의 건강수명은 어떨까? 표 2에서 보듯이 남성은 1990년 46위에서 2010년 10위로, 여성은 같은 기간에 20위에서 2위로 껑충 뛰었다. 한국인은 단순히 평균수명만 늘어난 것이 아니라 건강수명도 이제 세계 최상위권이 된 것이다. 축하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사안이 그리 단순하지는 않다. 조금 전에 언급했듯이 평균수명 증가에 따라 건강수명만이 아니라 병치레 기간도 늘어나기 때문이다. 또 대체로 평균수명이 많이 늘어날수록 병으로 고생하는 기간도 더 길어진다. 우리나라 남성은 지난 20년 동안 건강수명이 6.5년 증가한 반면 병치레 기간도 2.0년 길어졌다. 같은 기간 여성은 각각 4.2년과 2.4년 늘어났다.

병석에서 지내는 기간이 무의미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투병 과정에서 인격이 더욱 성숙해지고 삶의 내용도 더 풍부해지고 인간과 세상에 대한 이해와 사랑도 더 깊어졌다는 이야기도 적지 않게 들린다. 하지만 일부러 고행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병을 앓기보다 건강한 삶을 바란다. 그렇다고 병치레가 싫어 과거로 돌아갈 수도 없다. 새로운 문제를 새로운 방식으로 풀 수밖에 없다. 안주하고 순응만 해서 될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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