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상익의 의학 파노라마](7) 한국인과 암 사망률

2016. 3. 19. 00:41건강 이야기



[황상익의 의학 파노라마](7) 한국인과 암 사망률

황상익 | 서울대 의대 교수·의사학

ㆍ암 사망도 양극화… 선진국형 질병서 후진국형 질병으로 변화



▲ 수명 연장 감안 ‘연령 표준화’ 후 암 사망률 계산하면 선진국은 줄지만 후진국선 계속 늘어… 한국도 지난 20년간 10만명당 사망률 계속 감소세

   오늘날 한국인들을 괴롭히고 있는 질병은 어떤 것들일까. 통계청은 1983년부터 매해 사망원인 통계를 발표하고 있다. 그 이전은 국가의 공식적인 통계가 없어 사망원인을 정확하게 파악하기 어렵다. 유럽 선진국들과 미국은 물론 1890년대부터 비교적 믿을 만한 사망원인 통계를 작성해온 일본에 비해서도 거의 100년이 뒤지는 셈이다. (일제강점기에 조선총독부가 사망원인 통계를 작성하긴 했지만 정확도와 신뢰도가 대단히 낮아, 그 자료를 이용하는 경우 매우 주의해야 한다.)


   주지하다시피 한국인 사망원인 1위는 암이다. 단연 1등이다. 사망원인 통계는 암, 심장질환 등 어떤 특정한 원인으로 특정 연도 1년 동안 인구 10만명당 몇 명이 죽는가 하는 식으로 작성한다. 가장 최근 자료인 2012년 통계를 보면, 암으로 사망하는 한국인은 남녀 합쳐 인구 10만명당 146.5명이다. 이 정도의 암 사망률은 선진국 중 중간쯤 된다. 남성은 184.5명, 여성은 108.5명으로 남성이 여성보다 70%가량 많다. 사망원인 2등은 심장질환으로 남녀 모두 50명 남짓 된다. 3등은 흔히 뇌졸중이라고 일컫는 뇌혈관질환이다. 심장질환과 뇌혈관질환을 합쳐도 암에는 훨씬 미치지 못한다. 4등은 무엇일까? 자살이다. 자살이 4등까지 오른 건 최근의 일이다. 자살이 이렇게 많이 늘어난 것은 우리 사회의 부정적인 측면을 반영하는 것일 터이다. 5등은 당뇨병이다. 그 다음으로 폐렴, 만성 하기도(호흡기)질환, 간질환, 운수사고(교통사고)가 뒤를 잇는다. 자살과 사고가 각기 4등과 9등을 차지하고는 있지만 대부분의 사망원인은 질병이다. 그중에서도 암, 순환계질환, 대사성질환 등 만성 퇴행성 질환이라고 통칭하는 병들이 큰 문제가 되고 있다.



■ 암 사망률 단순 증가는 고령화 때문


   197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큰 문제였던 전염병은 이제 이런 자료에서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국가가 사망원인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1983년부터 2012년까지 30년 사이에 가장 뚜렷하게 나타난 변화는 암으로 인한 사망이 빠르게 증가했다는 점이다. 암이 뇌혈관질환과 심장질환을 합친 순환계질환을 앞서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후반이다. 그 이후 암으로 인한 사망은 계속 늘어난 반면, 뇌혈관질환은 감소하고 심장질환은 대체로 제자리걸음을 해서 이제는 암이 압도적인 1등이 되었다. 그밖에 자살, 당뇨병, 폐렴으로 인한 사망이 암만큼은 아니지만 꾸준히 늘어났다.

     

   한국에서 가장 큰 보건의료 문제인 암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시대별 또는 국가 사이에 암의 발생률이나 사망률을 비교하기 위해서는 연령 구성을 ‘표준화’해야 한다. 암 발병과 암으로 인한 사망은 어떤 나이에서든 생기지만 연령이 증가할수록 발생률, 유병률, 사망률이 증가한다. 암 유병률(정확한 표현으로는 암 유병자 분율)을 보면 0~14세는 0.08%이다. 0세부터 14세까지 암을 앓고 있는 사람이 그 연령층의 0.08%, 즉 1만명 가운데 8명이라는 뜻이다. 15~34세는 0.28%, 35~64세는 2.46%, 65세 이상은 6.94%이고 전체로는 1.9%이다. 65세 이상 연령층은 현재 100명 중 7명이 암을 앓고 있다. 특히 암을 앓는 65세 이상의 남성은 100명 중 거의 10명이나 되고, 여성은 그 절반인 5명가량이다. 이렇듯 암은 나이가 들수록 환자도 사망자도 많아진다. 이런 이유로 다른 조건들이 같다면 고연령자가 많은 인구집단은 그렇지 않은 인구집단보다 암 발생률, 사망률이 높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연령 구성이 다른 인구집단의 암 발생률, 사망률 등을 비교하기 위해서는 표준인구를 이용해 연령 표준화를 해야 한다. (암뿐만이 아니라 다른 질병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보자. 미국은 암 사망률이 1900년에는 인구 10만명당 64명, 2005년에는 184명이었다. 100여년 사이에 거의 3배가 된 것이다. 그런데 연령 표준화를 해서 비교하면 1900년은 115명, 2005년은 186명으로 그 기간에 1.6배로 늘어났다. (2000년도의 인구를 표준인구로 삼아 계산한 것이다.) 3배 증가가 1.6배 증가로 바뀐 것은 통계를 이용한 눈속임이 아니다. 암 사망률이 지난 100년 사이에 늘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그 가운데 많은 부분은 인구의 연령 구성이 달라져, 즉 인구가 고령화되었기 때문에 생겨난 현상이라는 뜻이다.



■ 한국인 남녀 암 사망원인 1위 폐암


   한국으로 돌아오자.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한국은 미국 등과 달리 1983년 이전은 사망원인에 관한 신뢰할 만한 통계 자료가 없다. 그래서 아쉽지만 지난 30년 동안의 변화만을 살펴볼 수밖에 없다. 한계가 있지만 그 이전 시대에 관해서는 다른 나라 자료들을 통해 간접적으로 파악할 도리밖에 없다. 미국이나 유럽 나라들보다 인종적 특성, 역사 과정, 사회경제적 여건이 우리와 비슷한 일본의 관련 통계 자료를 뒤적이는 데에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한국의 암 사망률은 1983년 인구 10만명당 72명에서 2012년 152명으로 2배 이상이 되었다. 그런데 연령 표준화를 하면(한국도 2000년도 인구를 표준인구로 해서 계산하고 있다) 1983년 102명, 2012년 98명으로 거의 같다. 미세한 차이지만 암으로 인한 사망이 오히려 줄어들었다. 연령 표준화하기 전 암 사망률 값이 30년 사이에 2배로 증가한 것은 연령 구성이 달라졌기 때문일 따름이다. 암 사망률이 높은 고연령층 인구가 증가해 암으로 인한 사망이 늘어난 것처럼 보이는 것일 뿐, ‘실제로는’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암 사망률은 같다. 그러면 그 사이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암으로 인한 사망률은 1983년 인구 10만명당 102명에서 계속 늘어나 1994년 128명으로 정점을 찍은 뒤 그 뒤로는 거꾸로 감소하여 지금에 이르렀다. 지난 20년 사이에는 암 사망률이 증가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감소했다. 한국만 그런 것이 아니라 암 사망률 감소는 선진국에서도 공통적으로 볼 수 있는 현상이다. 그리고 한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에서는 암 사망률이 앞으로도 계속 감소할 것이 거의 틀림없다. 그럼 후진국은 어떤가? 후진국에서는 대체로 암 사망률이 계속 증가하고 있다. 암 사망률 증가, 감소 여부에 따라 후진국과 선진국을 가릴 수 있는 정도다. 요컨대 암은 과거의 ‘선진국형 질병’에서 ‘후진국형 질병’으로 의미와 특성이 변화해 가고 있다.


   통칭해서 암이라고 부르지만 위암, 유방암, 갑상샘(선)암 등 암에는 종류가 매우 많다. 그 가운데 한국인 사망원인 1위는 남녀 합쳐 폐암이다. 이어 간암, 위암, 대장암, 유방암, 자궁경부암 순이다. 위암은 2000년 이전에는 줄곧 1위 자리를 지켜왔지만 폐암과 간암에 연속 추월당해 이제는 3위다. 그 자리도 곧 대장암에 물려줄 추세다. 위암은 한국이나 일본, 칠레 등과 같이 쌀을 주식으로 하는 나라들에서 얼마 전까지 1위였고, 미국과 유럽 국가들에서도 1950년대 무렵까지 사망자가 가장 많은 암이었다. 식생활의 변화와 전반적인 생활수준 향상에 따라 위암은 위력을 잃게 되었다.


   한국인 남성 사망률 1위의 암은 폐암이고 간암, 위암이 뒤를 잇는다. 여성에게도 폐암이 1등이고 대장암, 위암이 뒤를 잇는다. 폐암이 남녀 모두 1등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만, 남성이 인구 10만명당 48.3명인 데 반해 여성은 17.8명으로 적다. 여성의 폐암 사망자 수는 남성의 간암(33.7명), 위암(24.2명)에도 미치지 못한다. 암은 여전히 남성의 생명을 훨씬 많이 뺏어가고 있는 질병이다. 여성에서 2, 3, 4위를 차지하는 것은 대장암과 위암, 간암이다. 언뜻 생각하는 것과 달리 여성 특유의 유방암과 자궁경부암은 그 다음 순위다. 연령에 따라서도 문제가 되는 암의 종류가 달라진다.



■ 10대·20대 사망순위 1위 ‘백혈병’


   암 중에서 10대와 20대 사망 순위 1등은 무엇일까? 백혈병이다. 1970년 개봉한 미국 영화 <러브 스토리>의 20대 여주인공 제니(알리 맥그로)는 백혈병 때문에 사랑하는 남편을 남겨두고 저 세상으로 떠난다. 이 영화 이후 여주인공이 백혈병을 앓다 죽거나 살아나는 영화와 드라마가 속출했다. 지금 여러 가지 점에서 화제를 불러일으키며 상영 중인 <또 하나의 약속>의 윤미(박희정)는 제니보다 더 어린 나이에 백혈병으로 고생하다 사랑하는 아빠와 엄마의 절규를 뒤로 하고 눈도 제대로 감지 못한 채 세상을 하직한다. 두 영화 속의 질병은 공통적으로 백혈병이지만, 40년 전의 영화에서는 낭만적인 질병으로 묘사되었고, 오늘의 영화에서는 그리고 현실에서는 탐욕스럽고 반인간적인 자본이 힘없는 노동자를 파괴하는 것을 드러내는 매개체다. 10대, 20대 사망률 2위 암은 뇌암이다. 하지만 두 가지 모두 인구 10만명당 불과 1.2명, 0.6~0.8명에 지나지 않는다. 상당히 환자 수가 적은 질병인 것이다. 그래서 영화와 현실에서 더욱 비극적으로 다가온다.


   30대에서는 위암(10만명당 2.9명)이, 40대와 50대에서는 간암이 1등을 차지한다. 40대의 간암 사망률은 12.1명이지만, 50대가 되면 36.2명으로 껑충 늘어난다. 암은 중년 이후의 큰 문젯거리임이 여기서도 확인된다. 40대에서 3위로 상위에 오른 폐암은 50대에서 한 계단 올라 2위를 차지하고 60대부터는 단연 1위의 자리를 누린다. 사망률도 90.2명(60대), 235.8명(70대), 362.2명(80대)으로 점점 더 기승을 부린다. 어떤 점에서 암과의 전쟁은 폐암과의 투쟁을 뜻하기도 한다.


이번 회에서는 암으로 인한 사망에 대해 주로 알아보았다. 다음번에는 암 문제의 다른 측면들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