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화의 전통마을과 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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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화의 전통마을과 누정| 경북문화유적이야기

한마음 | 조회 36 |추천 0 | 2015.07.07. 08:05

                

  • 봉화의 전통마을과 누정

      


    1. 봉화의 전통마을

      우리나라의 전통마을은 대부분 동성(同姓)의 친족집단이 집성촌을 이루는 형태로 남아 있다. 이와 같은 형태의 마을을 동성마을 [同姓村]이라 하는데, 동성마을은 17세기 이후 사회경제적 변화와 부계혈통을 중심으로 하는 성리학적 종법(宗法) 제도가 정착되면서 형성되었다. 사족들은 이름난 조상을 매개로 종가(宗家)와 사당(祠堂), 서원(書院)과 누정(樓亭) 등을 건립하여 서로 결속을 다지고 타 문중과의 경쟁을 통해서 그들의 기반을 다져나갔다. 현재 알려져 있는 전통마을의 대부분은 이러한 사정에서 형성되고 발전되었다.

  •   봉화군에 남아 있는 전통마을도 예외가 아니다. 봉화의 전통마을도 동성을 중심으로 하는 문중을 매개로 17세기 이후에 형성되었다. 17세기 이전에도 촌락은 존재하였지만 이때는 남녀균분(男女均分) 상속과 가족의 일원들이 돌아가며 제사를 지내는 윤회봉사가 관행으로 정착되었던 까닭에 마을은 대체로 동족마을[同族村: 이성잡거촌(異姓雜居村)]의 형태를 띠었다. 그러다가 17세기 이후 사회경제적인 변화와 더불어 성리학적 예제(禮制)의 정착으로 상속제도도 균분상속에서 장자(長子) 상속으로 바뀌게 되면서 부계혈통 중심으로 가족제도가 재편되었다. 이로써 촌락의 형태가 동족마을에서 동성마을로 변모하게 된 것이다.
     
      봉화의 대표적인 전통마을인 닭실의 안동권씨 문중, 해저의 의성김씨 문중, 물야 오록의 풍산김씨 문중, 법전의 진주강씨 문중, 황전의 의성김씨 문중 등도 모두 동성마을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들 마을 안에는 대부분 종가와 사당, 재실, 누정 등이 아직까지 남아 있다. 이들은 조상의 유덕을 기리고 후학을 양성하는 데 힘을 기울여 훌륭한 인물을 배출하기도 하였고, 나라가 어려울 때는 의연히 일어나 목숨도 두려워하지 않는 결연한 의지를 보여주기도 하였다.
     
     1) 닭실 마을
      봉화읍 유곡리에 있다. 안동권씨 집성촌으로 조선전기 때의 문신 충재(冲齋) 권벌(權橃)이 마을의 문호를 열었다. 닭이 알을 품고 있는 형상을 닮았다고 하여 ‘닭실’이라 일컬어지며, 경주의 양동, 안동의 내앞·하회와 함께 3남의 4길지 중 한곳으로 알려져 있다. 이 마을에서는 문과 16명을 비롯하여 사마 59명, 의병장 3명 등 무수한 인물이 배출되어 문필부절(文筆不絶), 충절지향(忠節之鄕)으로 불려지고 있으며, 주변의 풍광이 수려하고 청암정(靑巖亭), 석천정사(石泉精舍), 삼계서원(三溪書院) 등의 관련유적과 유물이 많아 명승 제60호로 지정되었다.

     

    ▼ 닭실마을

     

     

  • 2) 바래미 마을
      봉화읍 해저리에 있다. 의성김씨 집성촌으로 일명 ‘바래미 마을’로 통칭되기도 한다. 조선 중기 때의 문신 팔오헌 김성구(八吾軒 金聲久)가 처음 들어와 정착하여 마을을 열었다. 300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이 마을에서는 문과급제자 17명과 생원·진사급제자 63명을 배출되어 봉화를 대표하는 반촌(班村)으로 자리매김 되었으며, 특히 구한말에는 독립운동가가 많이 나와 안동 내앞마을(川前村)과 함께 독립운동의 성지로 평가되고 있다. 이 마을은 만회고택(晩悔古宅), 영규헌(映奎軒), 단사정(丹砂亭), 남호구택(南湖舊宅) 등 많은 문화재와 고색창연한 고택들이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선비마을 다운 기품을 보여준다. 
         
     3) 창마
      물야면 오록 1리에 있다. 일명 ‘창마(倉村)’로 불린다. 조선중기 문신 노봉 김정(蘆峰 金人+政)이 마을의 문호를 연 이후로 망와 김영조(忘窩 金榮祖), 장암 김창조(藏菴 金昌祖), 학사 김응조(鶴沙 金應祖)의 자손들이 이주해 와 풍산김씨들이 집성촌을 이루게 되었다. 이 마을은 봉화지역의 전통마을 중에서도 옛 모습을 가장 잘 간직하고 있는 마을로써, 마을 안에는 노봉정사(蘆峰精舍), 장암정(藏菴亭), 화수정사(花樹精舍) 등 많은 문화재와 고색창연한 한옥들이 즐비하여 조선시대 양반마을의 전형적인 모습을 엿볼 수 있다.

     


    2. 봉화의 누정(樓亭)

     1) 봉화지방 누정의 현황 
      우리나라 전체 누정 가운데 영남지역의 누정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데, 그중에서 봉화지역이 다른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은 누정을 보유하고 있다. 봉화지방에 현존하는 누정은 약 100여 개로 추정된다. 또한 없어진 누정도 무려 70여 개소가 넘는다. 따라서 봉화지역에는 170여 개소의 누정이 곳곳에 산재해 있었던 셈이다. 이러한 사실에서 봉화를 ‘누정문화의 보고’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봉화지방의 누정은 깎아지른 절벽 위,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 옆 등 주변의 자연경관과 잘 어울리는 곳에 위치해 있어 자연과 더불어 삶을 같이 하려는 우리 선조들의 심미관을 잘 드러내 보여준다.
     
     봉화지방에 현존하는 누정은 주로 1600년대에서 1900년대 사이에 집중적으로 건립되었다. 또한 설립지역의 분포를 읍면별로 분석해보면 봉화읍과 법전면·춘양면 일대에 밀집 분포되어 있으며 경관이 수려한 지역보다는 마을에 소재하거나 마을 주변의 야산 아래에 위치하고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는 애당초 조상의 업적을 기리는 추모 공간, 학문수학, 후학양성의 목적으로 건립되었기 때문인 것으로 파악된다.

     

    < 봉화지방 누정의 현황 >



  •  2) 봉화지방 누정의 특징
     봉화지방 누정의 평면구성은 방형(方形)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온돌방과 툇마루를 둔 것이 특징이다. 건립목적이 학문 정진이면 온돌방을 필히 두었고, 혹은 복합문을 달아 공간 차단을 한 것은 툇마루를 설치하였다. 이는 경북 북부지방이 남부지방보다 다소 추운 지방에 속하기 때문이다. 일례로 춘양의 와선정(臥仙亭)과 닭실의 청암정(靑巖亭)은 찬 기운을 차단하기 위해 복합문을 설치하였다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봉화지방의 누정은 건립의 목적을 추모, 학문, 후학양성에 두었기에 다소 소극적이고 폐쇄적이며 정적인 구조를 보여준다. 이는 다른 지역의 누정이 풍류와 여흥을 즐기기 위한 목적으로 개방적인 건축적 구조를 보여주는 것과는 달리 봉화지방 누정의 특징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3) 누정에 걸린 현판들
      봉화지방의 누정에는 당대를 대표하는 서가들이 남긴 현판글씨가 많이 남아 있다. 현판자료에서 주목되는 것은 당대인들의 심미관과 예술미가 깃들어 있는 글씨이다. 이러한 현판 글씨는 누정의 이미지를 각인시킬 수 있는 핵심 요소가 될 수 있다. 현판의 글씨체와 작자에 따라 누정을 바라보며 느끼는 감흥과 그것의 가치가 달리 인식될 것이기 때문이다.

     

    < 유명 서가의 현판목록 >

      



  • 4) 봉화의 대표적 누정

     ① 청암정(靑巖亭) / 명승 제60호
      봉화읍 유곡리 닭실마을에 있다. 이 정자는 충재 권벌(沖齋 權橃)이 기묘사화(己卯士禍)에 연루되어 유곡에 자리 잡아 15년간 도학연구에 몰두하여 장자인 권동보(權東輔, 1517~1591)와 함께 조선 중종(中宗) 21년(1526)에 건립한 건물이다. 거북이 모양의 바위위에 건립한 丁자형 건물로 모두 6칸이다. 트인 마루 옆에 2칸짜리 마루방을 만들고, 마루방 가로 퇴를 둘렀다. 건물을 빙 둘러 연못이 있고, 정자와 연못 사이에 돌다리를 만들어 놓았고 주위로는 향나무, 느티나무, 단풍나무 등을 심어 아름답게 꾸며 놓아 운치를 더해 주고 있다.

     

    ▼ 청암정

     

    ② 한수정(寒水亭)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47호
      춘양면 의양리에 위치한 정자로 원래 이 자리에는 조선 선조(宣祖) 29년(1534)에 권벌이 세운 거연헌(居然軒)이 있었다. 그러나 이 건물이 소실되자 그의 2대손 권래(權來)가 ‘찬물과 같이 맑은 정신으로 공부하라’는 뜻에서 ‘한수정(寒水亭)’이라 이름하고 중건한 것이다.  평면 T자형의 정면 3칸, 측면 2칸의 구조로 3면이 연못에 둘러싸여 정자와 주변경관이 잘 조화되어 있다.

     

     ▼ 한수정

     


  • ③ 종선정(種善亭)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64호
      상운면 문촌리에 위치한 종선정은 조선 명종(明宗) 9년(1554)에 여러 해 거듭된 한발(旱魃)과 흉년으로 기근자가 속출하자, 자신의 재물로 빈민을 돕고 농민들에게 종자(種子)를 무상으로 나누어 준 주부(主簿) 금응석(琴應石, 1508~1583) 선생의 선행을 흠모하여 세운 정자이다. 이와 같은 사실로 인하여 퇴계 이황 선생이 ‘종선정(種善亭)’이라 이름 짓고 친필로 현판을 써 주었다고 한다.

     

    ④ 도암정(陶巖亭) / 민속자료 제54호
      봉화읍 거촌리 황전마을에 있는 도암정은 조선 효종(孝宗) 때의 문신 황파 김종걸(黃坡 金宗傑, 1628~1708)선생의 후손이 순조(純祖) 31년(1831)에 건립하여 시사공론(時事公論)과 시영(詩詠)을 즐기던 정자이다. 정자 앞에는 연못이 있고 정자 우측으로는 큰 바위와 노송이 우거져 주변 경관과 정자가 조화를 이루고 있어 조선시대 사대부들의 심미관을 잘 보여주는 건물로 평가된다.

     

    ▼ 도암정 

     


  • ⑤ 경체정(景棣亭) /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98호
      법전면 법전리 음지마을에 소재하며 병조참판(兵曹參判)을 재낸 강태중(姜泰重)이 강윤(姜潤, 1701~1781), 강완(姜浣), 강한(姜瀚) 3형제를 추모하기 위해 철종(哲宗) 9년(1858)에 건립하였다. 정면 2칸 측면 2칸이 팔작지붕으로 뒷마루를 설치하고 난간을 둘렀다. 현판은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熹, 1786~1859)의 친필로 알려져 있다.

     

    ▼ 경체정

     

     

    ※ 사진 제공 : 닭실마을- 봉화군, 그외- 권영조

  • 컬처라인 문화메신저 글쓴이 : 컬처라인 문화메신저 경상북도 북부권 11개 시군의 문화예술 관련 정보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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