涵虛得通 辰山大師 獻茶垂語|

2016. 3. 27. 04:27茶詩



       [스크랩] 涵虛得通 辰山大師 獻茶垂語| 걸망 속에 건져 올린 단상들

원효 | 조회 14 |추천 0 | 2015.06.07. 21:24


 

 

 



一椀茶出一片心 일완다출일편심

 

一片心在一椀茶 일편심재일완다

 

當用一椀茶一嘗 당용일완다일상

 

一嘗應生無量樂 일상응생무량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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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주발 茶는 一片의 心에서 우러나오는 것임이요

一片의 心은 한 주발의 茶에 있는 것임이니,

한 주발의 茶를 한 번 맛 보아야 하느니.

한번 차 맛보면 生에 있어서 한량 없는 즐거움이 되나이다.

 

조선 초기 함허득통 스님이 사형인 진산대사에게 차와 향을 올리면서 지어올린 다시(茶詩) 입니다.

함허득통(涵虛得通)의 진산대사(辰山大師)에 대한 헌다수어(獻茶垂語)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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涵虛得通禪師의 詩


천고운담기미량(天高雲淡氣微凉) = 구름 없는 하늘 드높아 가을기운 서늘하고


월백청풍미자장(月白淸風味自長) = 달은 희고 바람 맑아 참 좋구나.


요억연명삼경취(遙憶淵明三逕趣) = 도연명의 세 갈래 길 생각하면서


국화총리와문향(菊花叢裏臥聞香) = 누워 쉬면서 국화 향기에 취해본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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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허득통(涵虛得通 : 1376-1433) 선사(禪師)는 나옹(懶翁), 무학(無學)의 법맥(法脈)을 이어

조선조(朝鮮朝)의 불교(佛敎) 뿌리를 심어 지킨 스님이다.


그가 가을의 서정(抒情)을 읊은 시(詩)가 어록(語錄)속에 들어 있다.

 

배불정책(排佛政策)에 맞서 <현정론(顯正論)>을 짓고, <원각경소(圓覺經疏)>와 <금강경오가해설(金剛經五家解說)>의 等을 지어 어려운 시대(時代)의 정법수호(正法守護)를 爲해 진력(盡力)했다.

 

그런 그가 어느 해 가을 국화향기(菊花香氣) 속에 도연명(陶淵明)을 생각(生覺)하면서 잠시(暫時) 회포(懷抱)에 젖어 본 모양(貌樣)이다.

  

지안스님의 선시산책(涵虛得通禪師의 詩)  佛敎禪詩  2011/10/15 17:52

 

삼경취(三逕趣)란 도연명(陶淵明)이 살던 집 뜰에 소나무(松) 길과 대나무(竹) 길 국화(菊花) 길의 세 갈래 작은 길이 있었는데, 이는 선비의 지조(志操)를 상징(象徵)하는 것이라 알려져 왔다,


曹溪宗 考試委員長


/출처:지안스님의 선시산책(涵虛得通禪師의 詩) 작성자 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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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다수어(獻茶垂語) 涵虛得通지음(1368-1433)茶詩

 2005.12.29. 15:17


진산대사(珍山大師) 헌다수어(獻茶垂語)

涵虛得通지음 (1368-1433)


心地虛虛 大禪師 大師兄 마음의 본바탕이 크고 화락하신 대선사대사형이시여!

當以不聞聞 聽我無說說 들음이 없는 들음으로, 저의 설함이 없는 설을 들어

보소서

山僧 昨晩 才入山下路 제가 어제 밤에는 근근이 산 아랫길로 들어서

不向壇 下立 早與齊眉擊目 불단을 향하지 않고 그 아래에 서서 경애하고 자세히 응 시하면서

早與燒香設茶 早與商量介事了也 재빨리 향 피우고 차올리며, 자질구레한 일을 헤 아려 잘 생각했었는데

今日到來 更不用燒香設茶 오늘에 와서는 다시금 향 사르고 차올리지 않았으며

更不用商量介事, 然雖如是 자질구레한 일을 상량하기 않았습니다. 그러나 비록 이와 같으나

事無一向理無偏取亦不放 일에는 한결같음이 없고, 이치에는 치우치게 취할 것 도 없고, 또한 놓아 버릴 것도 없습니다.

重新致禮 亦不妨 更與商量 거듭 새롭게 예를 올리는 것도 또한 무방하다고 여겨 다시 헤아려 생각합니다.


遂拈香云 제가 향을 집어 들고 사룁니다.


一片香從五分香 한 조각 향은 오분향에서 나오고

五分香具一片香 오분향에는 일편향을 다 갖추고 있습니다.

當用一片香一薰 응당 한 조각 향으로써 한 줄기 향기를 내나니

一薰薰發五分身 한 줄기 한 줄기의 향기는 오분신에서 발하는 것입니다.


便揷奉茶云 제가 향을 꽂고 차를 받들어 올리며 사룁니다.


一椀茶出一片心 이 한 사발의 차는 한 조각 마음에서 우러나온 것이며

一片心在一椀茶 한 조각의 마음이 한 사발의 차 속에 담겨 있는 것입니다.

當用一椀茶一嘗 마땅히 한 사발의 차를 한 번 맛 보십시오

一嘗應生無量樂 이 차를 한 번 맛보시면 응당 한량없는 즐거움이 생길 것 입니다.

便獻 이 차를 올립니다.


*才; 근근히. 겨우. 비로소 재 齋眉; 밥상을 눈썹 있는 데까지 받들어 올린다는 뜻.서로 깊이 경애함. 擊目; 직접 보다. 介事;자질구레한 일.



   조선 초기의 함허득통(1368-1433)스님이 사형인 진산대사에게 헌다하면서 남긴 헌다수어이다. 이 속에 있는 우리에게 차시로 알려진 시구가 있는데, 우리가 널리 외우기도 하고 차실에 많이 걸어두기도 한다. 이 시 속에는 “하나에 모든 것이 담겨있고, 또 여러 것 가운데 하나가 있고(一中一切多中一), 하나는 곧 모든 것이요, 모든 것은 곧 하나이다(一卽一切多卽一). 한 티끌에 우주가 들어있고(一微塵中含十方), 그 모든 티끌들이 다 그러하여라(一切塵中亦如是)...” 라고 하는 , 즉 의상조사의 (華嚴一乘法界圖)에 나오는 것과 같은 화엄사상의 흔적이 들어있다. 차를 하는 사람들의 근본정신, 즉 ‘차의 정신 ’ 가운데 화(和)의 정신은 매우 큰 부분이다. 같은 찻 자리에 모인 사람들이 신분. 직위. 나이 . 성별. 재산. 능력 등등이 차별이 없이 하나가 될 수 있는 곳이 바로 찻 자리이다. 찻 자리의 주인과 손님과의 관계도 그렇고 손님끼리도 화합이 최우선이다. 차회끼리 서열 다툼을 하거나, 차회가 정치적인 단체처럼 행동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은 아니다. 차는 차의 범위를 벗어나면 벌써 본래면목을 잃게 된다. ‘和敬淸寂’에서도 和를 가장 강조하고 있는 이유가 있다. 평등과 조화의 논리로서, 신분적 제약을 뛰어넘어 사회적으로 실천되었던 의상대사가 강조했던 ‘和 ’의 정신을 우리도 한 번 실천해보자. ‘정신’이 없는 차는 빈 껍질에 불과하다. 조선 초기 무학 대사의 제자 함허득통(1368-1433)스님이 그의 대사형인 진산대사에게 향과 차를 올리면서 하신 ‘헌다수어’이다. 차인의 평범하지만 독특한 심상을 엿 볼 수 있어 신선한 풍미를 흐르게 한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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辰山大師(진산대사) 獻茶垂語(헌다수어) 함허대사


심지(心地)가 허융(虛隆)한 대선사 진산 대사시여

마땅히 들음이 없는 들음으로 나의 설(說)함이 없는 설을 들어 보소서.

산승이 지난 밤에 근근히 산 아랫길에 들어

불단을 향하지 않고 그 아래 서서 재빨리 공물을 높이 떠받들어 뚫어


지게 바라보고 재빨리 향을 피우고 차를 올렸는데 오늘에 오도니 다시는 향을 사르지도 않고 차를 올리지도 않으며 다시 자질구레한 일을 상량(商量) 하지도 않더이다. 비록 그러하나 사(事)에는 한결같음이 없고 이(理)에는 치우침이 없이 취(取)하고 또한 놓지를 않으며, 거듭하여 새롭게 치례(致禮)를 하고 또한 놓지 않으며 다시 상량 하더이다.


마침내 향을 집어들고 말하기를

일편향(一片香)은 오분향(五分香)에 따를 것이요

한 향기 한 향기마다 그 향기가 오분신에서 발 하는 것임이로다. 하더이다.


문득 향을 꽂고 차를 받들어 올리고 말하기를 한 주발 다(茶)는 일편심에서 우러나오는 것임이요  

일편심은 한 주발의 다(茶)에 있는 것임이니,

마땅히 한 주발의 다를 쓰고 한번 맛보아야 하느리라. 하였으니,

한번 차 맛을 맛봄은 생(生)에 있어서 한량없는 약(藥)이오매,

오로지 이를 삼가 바치오이다.

涵虛大師 함허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