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다완

2016. 4. 13. 14:27도자 이야기



       조선다완| 자유 게시판

먼강 | 조회 163 |추천 0 | 2016.03.18. 23:37

 

   조선시대 우리에겐 말차문화가 없었습니다.

1380년경 홍무제 주원장의 가루차 폐지의 칙령에따라 약 500년이상 내려오던 가루차문화는 사라져 버리고 잎차로 바뀌게 되죠.

조선도 마찬가지로 고려말기까지 내려오던 말차는 조선조 들어 명나라의 영향으로 잎차문화로 넘어 가개되며

고려 후반까지 만들어지던 청자 다완은 더이상 만들어 지지 않습니다.


   조선 찻사발이라 여기며 허풍을 떨고 있는 조선 사발들은 조선시대 우리 차문화와는 아무런 연관이 없으며

일본인들이 자신들이 차를 마시기 위해 조선의 가마에서 자기들의 정치 상황(막부정치)에 따르는 찻사발을 만들어 간것입니다.

우리의 제기. 막사발 등을 말한다는 것은 일본의 차문화를 몰라도 너무 모르면서 하는 억측에 불과한 주장일 뿐입니다.

일본의 차인들은 절대 남들이 사용했던 제기나 그릇 등은 사용하지 않는 관습이 아주 강하죠.

1500년대 부산의 삼포에는 500명에서  많게는 2000명에 이르는 상인들이 조선반도의 물품을 수입해가려 머물고 있었죠.

그들이 조선땅에 사발을 걷으러 다녔다는 이야기는 코미디입니다.

총명한 상인들이 조선의 가마에 가면 원하는 기형대로 마음껏 주문하여 구입해 갈 수 있는데 뭣하러 어렵게 걷어 갔을까요 ?

긴이야기는 필요 없겠죠?


   조선사발의 실체를 올바르게 알게 된다면 얼마나 부끄럽고 치욕의 역사인지 알게 될것입니다.

중국인들은 홍차와 함께 서양에 주문품으로 만들어 수출했던 수출용 홍차다구를 자기문화재라 여기지 않습니다.

도공의 손과 재료는 중국의 것이지만 차구가 담고있는 문화적 내용은 서양이라는 해석이죠.

그래서 중국의 컬랙터들은 수출용 홍차다구를 수집품목에 넣지를 않는 것이고 값이 중국 국내용 차구에 비해 아주 저평가되고 있습니다.

   하물며 중국인들 조차도 그만큼의 역사에 근거한 문화사를 제대로 인식하며 실천하는데 우리들이 생각해 볼 부분이 많다고 할 수 있겠죠.

무조건 우리 도공이 만들었다 하여 우리문화재라 할 수는 없습니다.
















































   현재 일본에서 전해지는 조선에서 만들어간 다완들입니다

이 다완들의 비례감을 지닌 다완은 우리의 박물관 어디에도 깨어진 사발 하나도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