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말하는 조선다완이라 함은 국내의 편년사적 시각으로 구분한다면 1392년 조선개국부터 1910년까지를 말해야 되겠다. 하지만 조선자기의 명맥이 실질적으로 끊어진 시기는 1883년 조선의 마지막 관요생산지인 경기도 분원이 해체되는 시기라고 본다. 본 서에서의 시대구분은, 조선다완이라 규정하는 고려다완의 한정된 범위의 임의적 시대구분임을 밝혀둔다. 이 분류는 일본 차인들의 분류, 일본 학자들의 견해를 필자의 입장에서 재해석한 것이다..
<일본차계에서 전해져 오고 다완을 중심으로(각 박물관 미술관 및 문헌상에서 등장하는 자료를 토대로 함) 구분을 다음과 같이 구분해 볼 수 있겠다>
제1기 고려말기 조선다완의 여명기 1350년부터 1537년까지 조선개국부터 차회기에 최초의 고려다완이라는 표현이 등장
이시기는 고려시대에 제작된 청자나, 도기가 일본차계에 거의 보이질 않고 있다. 거의 전무하다고 보아야하겠다.
제2기 조선다완의 발전기 1537년-1591년 리큐 사후까지 일본 "茶會記" 에 고려다완의 처음 등장부터 리큐의 할복까지
제3기 조선다완의 융성기<공급기> 1592년-1643 임진왜란 이후 주문다완 발주 직전까지
제4기 조선다완의 폭발기<공급안정기> 1644-1717 <숙종년간> 주문다완시기 부산가마 운영되던 시기였다
제5기 조선다완의 쇠퇴기< 일본으로부터 주문이 끊기다> 1717 이후
주문의 수요가 줄어듦은 일본 자체 내에서 차인들의 기호에 맞춘, 수요자의 욕구를 채워줄 수 있는 다완이 자체공급이 가능해진 시기를 말한다. 일본 내의 사기장들이 다완제작이 가능해지면서 조선에 직접 주문제작한 다완의 매력이 반감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임진 정유재란 당시 일본에 끌러간 조선의 사기장과 후예들이 일본 차인들의 주문에 맞춰 일본 내에서 생산이 가능해졌음을 알수 있는 시기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