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다완

2016. 4. 13. 19:06도자 이야기



      




 조선 다완  
정암스님 2005-07-26 22:38:21, 조회 :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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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국보 26호인 천하 대명물.천하 제일의 찻사발이라 불리는'기자에몬'

이도다완은 과연 조선어디에서 만들어졌으며. 어느 선조 도공이 만들었을까?

왜성형이 비뚤어졌는가? 왜 매화피가 고르지 않고 고대의 가장자리에는 유약을 묻히지

않았는가?  왜 안쪽은 다른 다완과는 달리 깊이 파여져 있을까?

과연 잘 익은  비파색일까? 매화피는 어떤 유약이었을까? 입술이 닿는 입언저리 부분은

과연 젖혀 있을까? 궁금속에 궁금을 안고 기자에몬 이도다완을 재현 연구하고

기자에몬 이도 흙을 찿아 보개산 7부 능선을 오르내린 세월이 벌써20년.

그 세월 속에 가마에서 꺼내 깨버린 이도다완만도 이루 헤아릴수 없을 정도다.

지난 20여 년간 웅천 보개산 흙으로 이도다완을 재현해보겠다는 일념으로 혼신의 힘을

기울여온 도예가 웅천요 최웅택 씨가 지난 6월14일 일본에 국보26호로 지정되어 있는

기자에몬 이도다완을 직접 감상하고 돌아왔다.이는 지난 2004년 그의 요장을 방문했던

대덕사 고봉암 스님의 다도 유파인 고보리 엔슈류 종장의 도움으로 가능할 수 있었다.

이도다완을 재현하는 사기장이 일본 국보인 기자에몬 이도다완을  보아야만

옳은 재현이 가능하지 않겠냐는 최웅택 씨의 간절한 부탁에 감화되었던 것이다.

최웅택 씨는 이번을 계기로 기자에몬이 웅천산 삼백토 흙으로 만들어졌음을

더욱 확신할 수 있었다.

대이도다완의 재현을 위해

대이도의 흙을 찾아 누빈 세월 만큼이나 걸맞게 이제는 눈을 감고도 오르내릴

정도로 눈익은 웅천 보개산 능선들.

웅천의 선조 도공들이 400여 년 전부터 불을 지폈던 가마터로 찿아가

무덤가에서 이도다완의 흙은 도대체 어디에 있느냐고 물어보기도 하고.

고함을 질러보기도 하고.  해마다 울리는 웅천 선조 도예인 추모제 때마다

웅천 이도다완을 재현할 수 있도록 용기를 달라고 간절히 절도 올려보았다.

비판도 많고 질책도 많은  웅천이 분명 대이도의 고향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20년 이라는 외로운 세월을 걸어온 터.오직 웅천 보개산 흙으로 대이도다완을

재현해보겠다는 일념하에 웅천 이도다완의 재현과 연구에 박차를 가해왔다.

수년 전부터 주위 일본에서. 한국에서 다완 전문가들이 대이도다완의 흙과

닮아간다고. 유약과 닮아간다고.400여년 전 웅천 대이도다완과 흡사해간다는

위로와 격려가 귾이지 않았다.그때마다 나는 꼭 웅천흙으로 사나이의

 자부심을 걸고 기자에몬 이도다완을 꼭 재현해보리라 다짐했다.

웅천 고 도요지 부근에서 주워 모은 수백 점 파편들을 보면

대이도다완은 분명 웅천에서 변조된 것이 확실하다는 신념을 가진 이래

현재 일본에 소장되어 있는 기자에몬 이도다완을  한번 직접 만져보고.

물에 담가 변하는 색상도 보고 매화피도 만져보고.

두들겨 보기도 하는 것이 나의 오랜 숙원이였다. 이도다완 재현에는

책이 필요 없고. 말이 필요 없고.생각 또한 필요치 않았다.

오직 가슴과 머릿 속에 남은 감동으로 만이 재현이 실현될 수 있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었다.

 
정암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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