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 분재 및 원예 생활 복원 1.꽃꽂이에 대한 심취(心醉) 2) 관경변상도 (觀經變相圖)의 꽃꽂이

2016. 4. 25. 18:35야생화, 식물 & 버섯 이야기


고려시대 분재 및 원예 생활 복원 1.꽃꽂이에 대한 심취(心醉) 2) 관경변상 (觀經變相圖)의 꽃꽂이| 분재사고려시대

심천(心泉) 2011.02.26 12:52

      


고려시대 분재 및 원예 생활 복원 1.꽃꽂이에 대한 심취(心醉)

 

2) 관경변상도 (觀經變相圖)의 꽃꽂이


고려 시대에 그려진 관경변상도 중 현재 일본에 있는 관경변상도에는 이 꽃꽂이의 모습이 상상적으로 변용되지 않고 사실적으로 그대로 드러난다. ( 일본에 전하는 관경변상도는 고려말 왜구들에 의해 약탈된 것이 대부분이다.) 고려시대 꽃꽂이가 어느 정도 성행했으며 어떤 방식으로 행해졌는지를 보여준다. 아울러 고려인들의 불교신앙이 꽃꽂이 문화 발달의 바탕이었음을 추측할 수 있게 한다.

앙이 깊을수록 정성이 더해졌을 것이고 그것이 꽃꽂이의 다채로움과 아름다움으로 나타났을 것이다.

 

관경변상도 (觀經變相圖)


관무량수경의 내용을 그린 불화로 극락정토가 묘사되어 있다. 관경서분변상도와 관경16관변상도로 나뉘어져 있다. 관경서분변상도 《관무량수경》의 서분(序分), 관경16관변상도는 《관무량수경》의 정종분(正宗分)을 알기 쉽게 그림으로 그려 설명한 불화이다.
현존하는 고려시대 관경서분변상도의 대표적인 도상은 일본의 대은사와 서복사에 소장되어 있으며 특히 대은사의 불화는 1321 (충선왕 3)에 그려진 것으로 긴 화면에 네 장면이 압축묘사되어 있다. 현존하는 고려시대 관경16관변상도 16관의 구성이
좌우 대칭으로 정확하게 화면이 구성되어 있는 도상은 일본의 서복사(西福寺), 인송사(隣松寺), 지은원(知恩院)에서 소장하고
 있다. 이 중 인송사와 지은원의 두 불화는 16관의 도상 구성이 일치하는 것으로 보아 모두 1323(충숙왕 10)에 제작된 것으로 보여진다. 


관경변상도 (觀經變相圖)

   넓게는 벽화(壁畵)나 벽에 거는 탱화(幀畵) 등을 포함한 불교회화(佛敎繪畵) 전반뿐 아니라 설화적 내용이 주류를 이루는 고대 인도의 부조(浮彫)까지도 의미한다. 좁게는 경전의 첫머리 혹은 권() 머리를 도해(圖解)하는 사경화(寫經畵)와 판경화(版經畵)만을 통상 변상도로 이해하기도 한다. 또한 진리의 내용[眞相]을 변화하여 나타낸 것이라 하여 변상(變相)이라고도 한다.   (이상 네이버 백과사전)

 

 

2-1) 일본 지은원(知恩院) 관경변상도의 화병 꽃꽂이

   일본 지은원의 관경변상도는 화병을 활용한 꽃꽂이를 보여준다.

 

<2-1)-1. 일본 지은원 관경변상도 일부. 1323(충숙왕 10)>

 



   그림의 가운데 왼쪽의 향로와 더불어 가운데 화병에 풍성하게 꽃이 꽂혀 있다. 이를 확대해서 보도록 한다.

 

 

<2-1)-2. 일본 지은원 관경변상도 공양화 부분 확대도>

 

꽃은 역시 모란이다. 이 그림에서의 공양화는 화병(항아리)을 사용하고 있다. 공양화의 용기로는 화병, 수반, 꽃바구니가 주로 쓰이는데 화분을 사용한 경우도 볼 수 있다. 가장 먼저 공양구로 쓰인 것은 화병일 것이다. 화병이 갖는 꽃꽂이 형태의 제약을 벗어나고 싶은 욕구가 수반을 만들었을 것이고 이 수반으로 해서 꽃꽂이의 다양한 표현이 가능해졌다.

그러나 화병의 꽃꽂이 - 곧 병화(甁花) -는 그것이 가질 수 있는 깊은 맛으로 하여 종교를 떠나서도 사랑을 받았으니, 문인, 선비들의 사랑을 받아서 고려시대는 많은 청자 화병을 낳았고, 조선조의 허균 <병화사(甁花史)>를 쓰는 데까지 이르렀다.


바구니를 화기(花器)  쓴 경우는 <해인사 대적광전 벽화>에서 볼 수 있다.

위 그림에서 화병 오른쪽의 것은 뒷벽에 걸쳐놓는 방식으로 진열하고 있는데 사진상 무엇인가 분명히 확인되지 않지만, 현재 아직 그 용도를 알지 못하고 있는, 고려시대의 도판(圖板)이 아닌가 한다. 그런데 그림의 내용이 <분재>의 형상을 닮아서 조사할 필요가 있다. 일본 서복사의 관경변상도에도 분재를 닮은 형상이 나타난다.

  항아리가 꽃꽂이의 용기로 쓰이고 있다는 것은 꽃꽂이의 기원이 토기 출현의 시기에 거의 가까울 수 있을 것임을 추정하게 한다. 우라나라에서도 화병(花甁)은 삼국 시대의 벽화와 금속공예에서 그 모습을 확실하게 드러내고 있다. 한국의 병화사(甁花史)는 그 기원을 그 이전의 언제로 잡아야 할 것인지 연구조사가 필요하다.

 

 

2) 일본 서복사 관경변상도의 수반 공양화 3

일본 서복사의 관경변상도에서는 아미타불의 앞과 좌우에 수반을 활용한 꽃꽂이를 볼 수 있다.

 

<2-2)-1 일본서복사 관경변상도 하반부도>

 

일본 서복사 관경변상도의 하반부를 편의상 잘라낸 그림인데 맨 위 가운데의 본존불(아미타불)에서 좀 떨어져 좌우와 앞에 역삼각형으로 빨간색, 흰색, 빨간색 형상이 보이는데 이것들이 공양화이다. 이를 각각 확대해 보면 아래와 같다.

 


<2-2)-2 일본서복사 관경변상도 왼쪽 수반화 부분 확대도(야생화)>

 

아미타불 왼쪽의 공양화로 야생화이다. 반구형으로 꽃과 잎을 넉넉하고 풍성하게 채워 넣고 있다. 수반의 형태는 현재 전하는 수반보다는 공교한 형태로 <수덕사 공양화>의 수반 형태에 가까운데 이 관경변상도의 또 하나의 수반도 이와 같은 형태여서 고려조 당시의 수반은 오히려 이와 같은 형태가 일반적이었던 것이 아닌가 한다.


 

    <2-2)-3 일본 서복사 관경변상도 오른쪽 수반화 부분 확대도(수생화)>

 

아미타불 오른쪽의 수반화로 수생화이다. 주위에 돌아가며 물풀을 꽂아 하부 꽃꽂이의 풍성함에 물풀이 만들어내는 여백과 선미(線美)를 더하고 있다.

고려인들의 꽃꽂이가 매우 다채로웠음을 보여준다. 당대에 선호하던 화종인 모란이나 작약 외에 야생화와 수생화까지 꽃꽂이 하고 있었으니 꽃꽂이에 있어서 당대 고려인들이 지닌 화초에 대한 다양한 관심과 예민한 미의식(美意識)을 확인할 수 있다. 수반은 앞의 형태와는 다소 달라서 중간에 잘록한 부분이 없이 바로 펼쳐서 위로 들어올린 형태인데 상당한 장식문을 그려져 꽃의 풍성함과 어울리도록 만들어진 것이다.



 

<2-2)-4. 일본 서복사 관경변상도 정면 수반화 부분 확대도(야생화)>

 

반구형 꽃꽂이이다. 수반이 화병보다 더 넉넉하고 풍성하게 꽃을 펼쳐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역시 수반의 형태는 허리가 잘록한 형태이다. 도예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불화에 나타나는 수반의 형태도 자세히 살필 필요가 있다.

화대로 사용되고 있는 것은 세 경우 모두 불가의 좌대나 장식물들인데, 고려의 화기(花器)들이 대체로 일습(一襲;set)으로 완결된 형태라는 사실은, 멀리로는 석기 시대 주거 양식에 기인하는 토기의 기대(器臺;그릇받침) 전통이 작용한 결과이고, 고려조 당대의 요인으로는 종교적으로 공경해야 할 대상의 존재 때문으로 보인다. 존엄한 존재에게는 주는 것이 아니라 바치는 것이고, 직접 건네는 것이 아니라 그 에 바치는 것이기에 쌓아 올려서 바치는 것이다. 이러한 종교적 의식이 내면화되어 고려조에는 <받침 그릇>이 발달했을 것이다. 고려조의 유물에서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는 잔탁(盞托) 그리고 청자 화대(花臺)를 그 사례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아래의 부분확대도는 상세히 조사할 필요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일본 서복사 관경변상도의 맨 아래 부분을 확대한 것인데 오른쪽에 분재와 비슷한 형상이 있다.


 

<2-2)-5. 일본 서복사 관경변상도 맨 아래 부분 확대도(야생화)>

 

  가운데는 연화화생을 그린 것으로 보이는데, 그 왼쪽 위에는 <수월관음도>에서 보던 연꽃송이 그림이 있고, 오른쪽 위에 문제의 형상이 있다. 화대 위에 놓여 있는데, 꽃으로 보면 꽃꽂이처럼 보이지만, 화기의 형태라는 관점에서 보면 화병으로 볼 수는 없고 맨 아래를 수반으로 한 꽃꽂이로 보기에는 물을 담을 수 있는 용량이 너무 적다. 형태상으로는 분재로 보이는데 상부가 동일한 수종의 분재인지, 이수종 합식의 분재인지, 독특한 형태의 꽃꽂이인지 확인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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