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말기 회화전’ 암흑기에 피어난 ‘회화의 꽃’

경향신문 | 입력 2006.10.17. 18:03

   세도정치와 열강의 침략으로 특징지워지는 조선 말기(19세기 중반~1910년)는 흔히 조선왕조의 암흑기로 불린다.

그러나 문화의 관점에서 이 시기는 매우 흥미롭다. 청나라의 앞선 문물이 수입되면서 우리 문화의 다변화가 촉진됐다. 앞서 문화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계층이 모두 사대부였던 것과 달리 이 시기에는 문화 생산자 및 소비자가 중인계층으로까지 확대됐다. 역관, 의원 등 중인들이 새로운 문화 향유층으로 자리를 잡고, 실력 있는 중인 출신 여항문인들이 시·서·화 창작에 활발히 참여했다. 추사 김정희를 필두로 한 일군의 작가들이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던 때이다.


장승업의 ‘영모도 대련’(부분)
남계우의 ‘화접도’


   그럼에도 이 시기는 제대로 조명되지 못했다. 당연히 조선 말기를 집중적으로 다룬 전시도 드물었다. 그런 점에서 19일부터 서울 한남동 삼성미술관 리움이 마련하는 '조선말기 회화전-화원·전통·새로운 발견' 의미가 깊다. 19세기부터 일제 강점 초기까지 조선 말기 화단의 변화상을 80여점의 서화를 통해 일목요연하게 훑어볼 수 있다.

조선 말기 화단의 특징은 전시의 부제인 '화원, 전통, 새로운 발견'이라는 키워드로 요약할 수 있다. 조선시대 궁중 도화서에 소속된 직업화가를 가리키는 화원들은 조선 화단을 이끈 한 축이다. 주로 왕실의 크고 작은 행사를 그렸던 이들의 그림은 보통 화려한 색채와 섬세한 묘사, 능숙한 솜씨가 특징이다. 그러나 조선시대 말기 화원들은 서양화법을 받아들인 중국 청대 회화의 영향을 받아 개성적인 화풍을 선보였다. 산수·영모·기명절지·사군자 등 여러 방면에 뛰어난 명필 장승업은 교과서적인 화원화풍에서 벗어나 대담한 구성과 생동감 넘치는 묘사력을 자랑했다. 젊은 시절 대원군의 초상화를 그려 신필(神筆)이라는 이름을 얻은 채용신은 1900년 입궐해 역대 왕의 어진을 그리면서 사실주의 화법을 도입해 정교한 초상화를 제작했다. 조선의 마지막 화원 안중식, 조석진의 그림도 함께 전시된다.

  '전통'은 화원의 반대편인 문인화가들에 의해 계승·발전됐다. 당시 문인화단의 수장인 추사 김정희는 형태 묘사보다는 문기(文氣)를 중시하는 청나라의 남종화론을 받아들였는데 이는 허련, 조희룡, 이하응, 정학교, 민영익 등의 그림을 통해 확인된다. 조희룡은 매화도를 잘 그렸으며 대원군 이하응의 묵란도 솜씨는 일품이다.

'새로운 발견'은 화원이나 문인화가들에게서는 발견하기 힘든 새로운 기법과 독특한 소재와 형식을 사용한 화가들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이른바 신감각파 화가로 불리는 김수철은 남종산수화에 바탕을 뒀지만 사물을 간략히 묘사하면서 독특한 색감을 사용했고, 홍세섭은 현대적인 화면 구성을 자랑한다. 또 나비를 잘 그려 '남나비'로 불렸던 남계우의 '화접도', 풍속화를 제작한 김준근의 그림이 함께 전시된다.

부속행사로는 11월11일에 '조선말기 회화전 심포지엄'이 열리며 일반인을 위한 강연도 준비돼 있다. 11월25일에는 유홍준 문화재청장이 '추사 김정희의 삶과 예술'을, 12월16일에는 이태호 명지대 교수가 '다산 정약용과 추사 김정희'를 주제로 강연을 한다. 관람료는 5,000원, 전시는 내년 1월28일까지 열린다. (02)2014-6901

〈윤민용기자 vist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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