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4. 27. 02:39ㆍ美學 이야기
제37강(치운/趙熙龍조희룡) 1789정조(13년)~1866 대학원 강의실(운)
제37강(치운/趙熙龍조희룡) 1789정조(13년)~1866 □ 왜 옛 화가를 공부하는가 ˚ 좋은 화가의 정신과 삶의 모습을 내 인생의 좋은 길잡이로 본받는다. ˚ 선배화가를 배우고 익히며 공부하는 자세는 공부하는 사람의 필수 덕목 ˚ 옛 화가의 기법 화법을 통해서 온고지신 법고창신法古創新을 삼는다 □ 글과 그림에 묻혀산 조희룡, 탐미 예술세계의 모습 ˚주로 19세기에 활동, 18세기부터 여항閭巷文學 발달한 시기(양반→백성) →18세기에 오면서 민에 대한 인식과 사회현실에 대한 관심의 형상화. 정치 이념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운 순수예술을 구가(우물가, 시장) ˚ 유화입시由畵入詩(그림으로 시에 들어간다), 由畵入文(그림으로 문장에) ˚ 남다른 환상적기 법은 비고비금非古非今, 예도 아니고 지금도 아닌 표현 →사대부의 여기에서 문인화 본격, 전문예술로 변화시켜 ˚ 고고한 선비의 높은 정신과 사유思惟를 표출하는데 가치를 둠 →문인화의 사의寫意성 보다 사의에 형사形似를 보태고 →기예技藝와 재예才藝에 학문의 기운을 더하여 형식과 내용을 갖춤 ˚ 추사 김정희의 "완당바람" 접합接合 → 書卷氣 文字香의 높은 정신 세계를 그려내는 기운을 연마해야 한다. (책을 많이 읽어 깊은 학식을 가진 사람의 기운과 문자의 향기로움) ˚ 구학연하丘壑煙霞(언덕구, 골짜기학, 연기연, 노을하)로 탐미 예술 모색 □ 매화를 사랑하다 백발이 되었네 ˚ 너무 허약해 입은 옷이 힘에 버거울 정도여서 스스로 오래 못살 것으로 생각 ˚ 난초를 그리는 것이 비록 작은 재주이지만 성령을 즐겁게 기를 수 있다 ˚ 장수할 상이 아닌데 늙은 나이가 되었고 매화를 사랑하다 백발이 되었네 ˚ 매화와 난은 사람에 정情이 생겨나게 한다, 정이 많으면 수명도 길다 ˚ 향은 사람을 그윽하게 하고, 술은 사람을 원대하게 하고, 돌은 사람을 빼 어 나게 하고, 거문고는 사람을 고요하게 하고, 차는 사람을 상쾌하게 한다, 대나무는 사람을 차겁게 하고, 바둑은 사람을 한가하게 하고, 지팡이는 사람을 가볍게 하고, 미인은 사람을 가련하게 하고, 매화나 난초가 여기에 들이 않는 건 꽃에 운치를 비교 할 수 없고 한글자로 적당히 표현할 수 없어서이다 ˚ 도봉산 천축사에 놀러 감,이재관(어진을 그렸음), 이학전(난초그림이) ˚ 헌종말엽 "금강산 그려 오라"는 명을 받고 6개월간 금강산 유람, ˚ 벽오사碧梧社라는 시동인(여항문학 발달)...임자도로 유배 ˚ 김정희 스승으로 알려지고 있으나 기록은 없다/이론 론쟁이 있다 □ 매화/ 용그리는 법으로 매화를 그린다 ˚ 먹을 퍼뜨려 구름을 이루고 물을 뿌려 안개를, 승천한 것 내려 오는것. 굽어보며 바람을 일으키는 것, 노하여 노려 보는 것, 걸터앉아 바위를 굽어 보는 것 서로 바라보는 것, 서로 싸우는 것, 운무를 타고 뛰어오르고 모래 바닥에서 싸우고 물에서 솟아 나오는 것, 여의주를 장난삼아 다투는 것, 몸 전체가 드러나는 것. ˚ 매화도는 파묵법으로 굵고 거친 줄기를 잡은 후 무수히 많은 매화꽃 배치 ˚ 일생 매화그림에 빠져 매화일색/병풍, 매화차, 매화서옥장연, 매화시 읽어 ˚ 매화를 선생님이라 불러, 미불은 돌을 장인丈人이라 불러 ˚ 매화 사람의 수壽를 기른다, 매화를 좋아함이 고산 처사와 같다 □ 낙신부洛神賦를 읽듯 난을 그린다 ˚ 왕유(왕마힐), 난초를 그리는 것은 낙신부 열세줄을 읽는 것 같이 하라 난을 그릴 때는 마땅히 마음을 재계하고 생각을 깨끗이 하여야 ˚ 마음을 같이 하는 말은 그 향기가 난초와 같다, 난초의 성품 기운으로 한다 ˚ 난을 먼저 배우고서 시나 글씨에 들어 갈 수 없다 ˚ 한 붓으로 완성 할 수 있는 건 오직 난 뿐, 그림이지만 두번 그릴 수 없다 ˚ 난혜蘭蕙는 돌에 가장 잘 어울리는데 한번의 운필로 이룰 수 있어야 ˚ 김정희/조희룡 같은 무리들이 자신의 난법을 배우지만 정신을 배울 수 없다? ˚ 난초를 그리는 일이 비록 작은 재주 이지만 성령聖靈을 서령을 즐겁게 할수 있다 □ 노한 기운으로 대나무를 그린다 ˚ 기쁜 기운으로 난을以喜氣寫蘭, 노한 기운으로 대나무 怒氣寫竹를 ˚ 한번의 붓힘으로 힘차게 쑥 그어 완강하고 견고함을 드러내야 ˚ 깡마른 늙은이의 뼈마디처럼, 품위있고 아취있는 자태를 표현, 사선 구도 ˚ 대나무에는 구름을 치솟는 기상, 치솟는 기운을 표현해야 ˚ 급히 치솟는 기운, 속이 텅빈 대나무의 가벼움, 깡마른 노인의 고집같은 꼿꼿함 그러면서도 어디에도 구속되지 않는 방자함의 구도와 완성이 필요. ˚ 한그루일 때는 수척하게, 두그루는 모아서, 셋은 서로 다투게, 넷은 어루러지게 ˚ 농담을 조절하고 성김과 치밀함을 잘 배치해야 한다 □ 가장 추하게 괴석을 그린다 ˚ 돌은 산의 몸이고 땅의 뼈이다. 괴석그림은 못나게 그려야 운치가 있다 ˚ 미불이 임강태수 시절 괴석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고을로 옮겨 놓고 급히 자리를 깔고 "내가 석형을 보고싶어한 것이 스무해나 되었오"라는 고사가 유명. ˚ 돌을 그릴 적엔 마땅히 칠분의 돌그림과 삼분의 금간金簡을 가져야 매화경과 만날 수 있다. 이 이치는 세심하세 살펴봐야 한다. ˚ 돌을 그림에 오악五嶽의 참 모습을 터득한 후라야 눕거나 서거나 가로세로 각기 제 자리를 얻을 수 있다(태산泰山=立산, 숭산嵩山=坐산, 항산恒山=臥山) ˚ 돌 없는 산은 없다, 돌에 대해서 또는 석 산에 대해서도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 조희룡 시대의 예술론...가슴에서...손에서... ˚ 천성에 맡겨라, 시를 쓸 때는 운에 맞추고 글을 쓸 때는 법첩에 맞게 써야 ˚ 가슴속에서 얻어지는...진솔眞率(진실 솔직)...자연스러운 천성에 맡기는것 "양자운이란 사람이 기이한 걸 좋아했기 때문에 기이하지 않았다" ˚ 예술은 꽃 사회는 흙이라면 비옥해야 꽃도 무성/ 여항시대 ˚ 진경산수와 풍속화가 유행하던 18세기는 사회 구조에 영향을 받은 바 크다 (김홍도1745~1806, 혜원 신윤복1758~, 김정희1786~1856, 대원군1820~1893) ˚ 소동파(소식) 대나무 그림은 "가슴속에 대나무가 이루어져야"라고 말했고 조희룡은, 나는 "가슴에도 손에도 있지 않다, 천예 天倪에 맞길 뿐이다. 대응 (천예天倪 *어린이 예, 천진天眞...깊이 새겨봐야...) ˚ 문인화가 비록 사의를 드러내는 것이지만, 조희룡은 "그렇다고 가슴속에 간직한 문자향 서권기만으로는 곤란하다"고 생각 총명한 사람이라도 배워서 능하지 못한 사람이 있고, 어리석어도 능한 사람이 ˚ 인품이 높으면 화필도 높다?/인품은 타고나는 것이지 아무리 책을 읽어도(반박) 습작을 많이 해야지... 그냥 높아진다는건 아니다(김정희에 대한 반론). ˚ 젊어서 벽癖이 있었다..심할 때는 잠자는 것도 잊고 먹는 것도 잊었다 ˚ 공자는 논어에서 "지자불여호지자知者不如好之者,好者不如樂之者"라했다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 보다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 "난초를 치는 것이 비록 작은 재주이기는 하지만 난초 매화를 그리는 일이 성령聖靈을 기를 수 있어 안목이 넓어지고 기운이 맑아지니 어찌 병만 물리칠 뿐이겠는가... 장수할 상이 아닌데 늙은 나이가 되었고 난蘭 매화梅花사랑에 백발이白髮 되었구나.... □ 참고도서 조선의 화가 조희룡/이성혜/한길아트 조선시대 화론연구/유흥준/학고재 |
cafe.daum.net/guam2003/Ez6E/86 문인화(사군자,차묵화)(한번뿐인 인생)..
‘조선말기 회화전’ 암흑기에 피어난 ‘회화의 꽃’
세도정치와 열강의 침략으로 특징지워지는 조선 말기(19세기 중반~1910년)는 흔히 조선왕조의 암흑기로 불린다.
그러나 문화의 관점에서 이 시기는 매우 흥미롭다. 청나라의 앞선 문물이 수입되면서 우리 문화의 다변화가 촉진됐다. 앞서 문화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계층이 모두 사대부였던 것과 달리 이 시기에는 문화 생산자 및 소비자가 중인계층으로까지 확대됐다. 역관, 의원 등 중인들이 새로운 문화 향유층으로 자리를 잡고, 실력 있는 중인 출신 여항문인들이 시·서·화 창작에 활발히 참여했다. 추사 김정희를 필두로 한 일군의 작가들이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던 때이다.
그럼에도 이 시기는 제대로 조명되지 못했다. 당연히 조선 말기를 집중적으로 다룬 전시도 드물었다. 그런 점에서 19일부터 서울 한남동 삼성미술관 리움이 마련하는 '조선말기 회화전-화원·전통·새로운 발견'은 의미가 깊다. 19세기부터 일제 강점 초기까지 조선 말기 화단의 변화상을 80여점의 서화를 통해 일목요연하게 훑어볼 수 있다.
조선 말기 화단의 특징은 전시의 부제인 '화원, 전통, 새로운 발견'이라는 키워드로 요약할 수 있다. 조선시대 궁중 도화서에 소속된 직업화가를 가리키는 화원들은 조선 화단을 이끈 한 축이다. 주로 왕실의 크고 작은 행사를 그렸던 이들의 그림은 보통 화려한 색채와 섬세한 묘사, 능숙한 솜씨가 특징이다. 그러나 조선시대 말기 화원들은 서양화법을 받아들인 중국 청대 회화의 영향을 받아 개성적인 화풍을 선보였다. 산수·영모·기명절지·사군자 등 여러 방면에 뛰어난 명필 장승업은 교과서적인 화원화풍에서 벗어나 대담한 구성과 생동감 넘치는 묘사력을 자랑했다. 젊은 시절 대원군의 초상화를 그려 신필(神筆)이라는 이름을 얻은 채용신은 1900년 입궐해 역대 왕의 어진을 그리면서 사실주의 화법을 도입해 정교한 초상화를 제작했다. 조선의 마지막 화원 안중식, 조석진의 그림도 함께 전시된다.
'전통'은 화원의 반대편인 문인화가들에 의해 계승·발전됐다. 당시 문인화단의 수장인 추사 김정희는 형태 묘사보다는 문기(文氣)를 중시하는 청나라의 남종화론을 받아들였는데 이는 허련, 조희룡, 이하응, 정학교, 민영익 등의 그림을 통해 확인된다. 조희룡은 매화도를 잘 그렸으며 대원군 이하응의 묵란도 솜씨는 일품이다.
'새로운 발견'은 화원이나 문인화가들에게서는 발견하기 힘든 새로운 기법과 독특한 소재와 형식을 사용한 화가들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이른바 신감각파 화가로 불리는 김수철은 남종산수화에 바탕을 뒀지만 사물을 간략히 묘사하면서 독특한 색감을 사용했고, 홍세섭은 현대적인 화면 구성을 자랑한다. 또 나비를 잘 그려 '남나비'로 불렸던 남계우의 '화접도', 풍속화를 제작한 김준근의 그림이 함께 전시된다.
부속행사로는 11월11일에 '조선말기 회화전 심포지엄'이 열리며 일반인을 위한 강연도 준비돼 있다. 11월25일에는 유홍준 문화재청장이 '추사 김정희의 삶과 예술'을, 12월16일에는 이태호 명지대 교수가 '다산 정약용과 추사 김정희'를 주제로 강연을 한다. 관람료는 5,000원, 전시는 내년 1월28일까지 열린다. (02)2014-6901
〈윤민용기자 vist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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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룡과 골목길 친구들』은 우리 역사 속 인물들의 삶과 고뇌를 되살려내는 탁월한
이야기꾼 설흔이 선보이는 또 하나의 우리고전이다. 이 작품은 19세기에 그림으로, 글씨로 이름났던 우봉又峰 조희룡趙熙龍(1789-1866)의
여항인 전기집인 『호산외기』에 기록된 인물들의 삶과 예술세계를 새롭게 구성한 소설이다. 『호산외기』 원전을 각 장의 서두에 제시하고, 이를
동시대 다른 기록을 풍부하게 참조하고 작가적 상상력을 가미하여 그 시대 인물상과 그들의 고뇌를 재현하였다. 조희룡이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여항인들의 삶을 전기집으로 엮어내 훗날의 정당한 평가를 기다린 데 대한 화답이라도 하듯, 설흔 작가는 『호산외기』 속 인물들의 내면의 진심을
읽어내 보여 준다. 남다른 행적 뒤에 감춰진 고뇌와 좌절, 포부 등을 다양한 관점에서 살피고 풀어냄으로써, 그들의 고민을 지금 독자가 함께
공감하고, 나의 문제로 돌이켜 볼 수 있도록 이끈다. 『호산외기』에서는 42인의 인물을 기록하였는데, 이 작품에서는 그 가운데 14명의 인물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책 말미에 더해진 조희룡 전집 번역에 참여한 이현우 박사의 해설은, 우리고전 『호산외기』의 가치뿐 아니라 이 작품의 배경이 된 19세기 여항인들의 위상과 시대적 의미 등을 찬찬히 짚어주어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한계에 갇히지 않은 사람들의 당당한 삶 이 소설 속 주인공 ‘그’는 지난날 자신의 그림에 대해 혹독한 평가를 들었던 때를 떠올린다. 다름 아닌 그의 스승 김정희의 평가였다. 스승과는 분명 다른 예술관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는 어떤 항변도 할 수 없었다. 그가 여항인인 이상 어떤 실력을 겸비해도 김정희를 넘어설 수는 없는, 그림쟁이에 불과할 뿐이었다. 그런 그가 기대한 것이라곤, 자신보다 뛰어난 재능을 가진 젊은 화가 전기田琦가 당당히 김정희를 뛰어넘어 주기를 바라는 것뿐이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전기는 요절하고, ‘그’는 이전에 끝낸 여항인의 전기인 『호산외기』에 이제 전기의 전을 덧붙여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이때 문득 ‘그’에게 ‘벗’이 찾아와 함께 『호산외기』 읽기를 청하면서, 그가 『호산외기』를 쓴 여정과 작품 속 주인공들의 삶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하루 동안 벗과 인물 한 명 한 명의 행적과 그에 대한 생각을 주고받으며, 기록에 미처 담지 못한 행간 읽기를 하는 것이다. 제 눈을 스스로 찔러버린 화가 최북, 바둑으로 한 시대를 풍미한 김종귀, 연못에 쌀뜨물을 붓고 달을 감상한 임희지, 시에 목숨을 걸었던 김양원, 필법만큼 인품도 높았던 김홍도, 나라 밖까지 소문난 역관 시인 이언진, 천재적인 재능을 펴지 못한 채 요절한 전기 등등 남다른 재주와 행적을 남긴 이들의 삶을 되짚는다. 이들은 모두 능력에 걸맞은 대우를 받은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삶을 포기한 것도 아니다. ‘쓸어 버리고 엎어 버리고, 던져 버렸다’라는 작가의 표현처럼 이들은 외적인 제약에 갇히지 않고, 당당하게 자기의 길을 갔다. 시대는 그들에게 기회를 주지 않았고, 역사는 그들을 기록하지 않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그들의 빛나는 성취마저 의미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미친 사람처럼, 때로는 모자란 사람처럼 행동하며 살 수밖에 없었던 그들의 속내를 작가는 끊임없이 묻고 답하며, 그들의 행적 뒤에 감춰진 진심을 읽고자 한다. 이것은 그들에 대한 또 하나의 전기이자, 한편으로는 그들과 같이 여항인의 삶을 살았던 조희룡의 전기이기도 한 것이다. 추사 김정희의 첫째가는 제자였으나 인정은 받지 못했던 사람 조희룡은 조선 후기에 활동한 화가이자 비평가였다. 시, 글씨, 그림, 비평에 모두 뛰어났으며, 당시 여항인들의 대표적인 시사 모임인 벽오사碧梧社의 중심 인물이었다. 그의 생애는 자세히 알려져 있지 않으나 헌종의 총애를 받았다는 것과 추사 김정희의 첫째가는 제자였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조희룡의 그림은 유독 화려하고 기교가 넘쳤으나, 김정희는 그런 조희룡의 그림을 문자향文字香과 서권기書卷氣, 즉 고아한 맛이 없다는 이유로 평가절하하였다. 조희룡은 이념미를 중시한 김정희와 달리 감각적 표현미를 중시했지만, 19세기 예술계는 바야흐로 김정희의 시대였으므로 조희룡이 제대로 된 평가를 받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조희룡은 거장 스승을 무조건 뒤쫓지 않고, 자기만의 독창적 예술세계를 정립하였다. 그림뿐 아니라 격조 높은 산문도 많이 남겼는데, 그 중에 하나가 여항인의 전기집인 『호산외기』이다. 최초의 여항인 전기집, 생동감 넘치는 인물열전 『호산외기』 “호산壺山은 그가 쓰는 호 중의 하나이며 외기外記는 정사가 아님을 뜻하는 것이니, 호산외기는 결국 그가 쓴 야사野史라는 뜻이다. 그러나 야사라고는 해도 잡스러운 이야기와는 거리가 멀다. 그가 접했거나 들었던 여항인들의 이야기이니 실은 외전外傳이라 불러야 더 어울릴 것이다.” _ 본문 중에서 『호산외기』는 조선 후기 여항인 42인의 전기집이다. 각각의 인물의 행적을 기록하고, 편마다 호산외사, 즉 조희룡이 짤막한 논평을 덧붙인 형태로 이루어져 있다. 여항閭巷은 원래 꼬불꼬불한 골목이란 뜻으로, 조선 후기 문헌에 의하면 서울의 비양반 계층의 생활공간을 의미한다. 이곳에 살았던 여항인들은 신분제 사회에서 능력이 있어도 높은 관직에는 오를 수 없었던 인물들이다. 그들은 문학과 예술 방면에 힘을 쏟았고, 그것으로써 자신들이 가진 재능을 펼치고, 자아를 구현하고자 하였다. 조희룡 역시 여항인이었고, 그런 그가 자기와 같은 처지의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록한 것이 『호산외기』이다. 당시의 역사 기록은 출세한 벼슬아치나 양반만을 대상으로 하였기에 여항인의 전기를 쓴다는 것은 대단히 선진적인 일이었다. 최초의 여항인 전기집인 『호산외기』로 인해 『이향견문록』(1862), 『희조일사』(1866), 『일사유사』(1918) 등이 등장할 수 있었다. 특히 여항의 문인, 예술가의 삶이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다는 점에서 문학사적, 예술사적 가치가 매우 크다. 뿐만 아니라 정사가 미처 보여주지 못하는,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는 이 작품은 우리 역사를 보다 입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읽어야 하는 작품이다. - 인터넷 교보문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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