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5. 24. 08:29ㆍ야생화, 식물 & 버섯 이야기
불법채취에 신음하는‘복주머니난’
한국의 멸종위기식물 53
복주머니난은 현재의 개체군 크기로 볼 때 멸종위기식물이라 할 수 없다. 섬을 제외한 전국의 높은 산에 널리 분포하고 개체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꽃이 아름답기 때문에 발견되는 대로 무차별 채취되어 사라지는 속도가 매우 빠르다. 비교적 최근인 2012년부터 환경부가 멸종위기야생생물 II급으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다.
멸종위기에 놓인 식물들 중에는 생육지가 쉽게 훼손되어 생존을 위협 받거나, 개체수가 적어서 미래에 생존이 불투명한 종들이 많다. 이들은 한 순간에 절멸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국가 차원에서 보호할 필요가 있다. 자손을 만들지 못하거나 만들더라도 널리 퍼뜨리지 못하는 종, 과도하게 채집되어 개체수가 급격히 줄어드는 종 등도 멸종위기에 놓일 수 있는데, 이들은 급격히 멸종되기보다 서서히 멸종되는 부류에 해당한다. 서서히 멸종될 것으로 예상되는 종들은 보전 시급성에서 뒤지기 때문에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는 국가가 법정 보호종으로 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복주머니난은 예외다.
아름다운 꽃 때문에 불법 채취되어 멸종위기
복주머니난은 전국에 분포할 뿐만 아니라 비교적 흔하므로 분포영역이나 개체수로 보아 당장 멸종에 이를 식물이 아니다. 하지만 이 식물을 국가 법정 보호종으로 지정해 보호하기 시작했는데, 그 이유는 자생지에서 개체들이 사라지는 속도가 매우 빨라 멸종이 예견되었기 때문이다. 관상가치가 높아서 고가로 거래가 되고, 이 때문에 자생지에서 무차별적으로 채취가 이루어진다. 더욱이 이 식물은 씨앗으로 번식이 안 되어 어린 개체들이 거의 생기지 않으며, 살아 있는 개체들도 미생물과 특수한 공생관계를 유지해야만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 채취 압력은 높고 자손은 생기지 않으며, 살아가는 데 특별한 환경이 요구되므로 멸종될 가능성이 높다는 판정을 받을 수밖에 없었으리라.
복주머니난(Cypripedium macranthos Sw., 난초과)은 높은 산의 숲 속이나 풀밭에 자라는 여러해살이풀이다. 줄기는 곧게 서며 높이 25-50cm이다. 땅속에서 뿌리줄기가 옆으로 벋으며 번식하는데, 매년 뿌리줄기 끝에서 새로운 줄기가 나온다. 줄기 20-30개가 큰 덩어리를 지어 자라는 무리의 개체들도 땅속에서는 뿌리줄기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 잎은 3-5장이 어긋나며, 타원형으로 길이 10-20㎝, 너비 6-8㎝이다. 잎에 털이 드문드문 나고 아래쪽은 잎집이 되어 줄기를 감싼다.
꽃은 5-7월에 줄기 끝에 1송이 또는 드물게 2송이씩 달리는데, 붉은 자주색이지만 색깔 변이가 많고 드물게 흰색도 있다. 꽃자루는 씨방과 함께 길이 3-4cm이다. 꽃 아래에 잎처럼 생긴 꽃싸개잎(포잎)이 달리는데 길이 7-9㎝이다. 꽃은 꽃받침 2장과 꽃잎 3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꽃의 바깥쪽에 달린 2장이 꽃받침이고, 그 안쪽에 옆으로 달린 2장이 곁꽃잎, 아래쪽에 주머니 모양으로 달린 것이 입술꽃잎이다. 꽃받침잎은 꽃잎과 비슷하게 생겼으며, 위쪽에 등꽃받침 1장, 아래쪽에 2장이 붙어 하나가 된 밑꽃받침이 달린다. 밑꽃받침은 끝이 살짝 갈라져 있다. 꽃잎 중에서 옆쪽으로 달린 2장의 곁꽃잎은 달걀 모양 피침형으로 끝이 뾰족하다. 아래쪽 꽃잎은 곁꽃잎 2장과는 모양이 아주 다른데, 입술꽃잎이라 한다. 입술꽃잎은 길이 4-6㎝이고 주머니 모양이다. 입술꽃잎의 모양에서 복주머니난이라는 이름이 유래하였다.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의 높은 산에 분포한다. 세계적으로는 극동 러시아, 일본, 대만, 중국의 허베이, 헤이룽장, 지린, 랴오닝, 네이멍구, 산둥 등지에 생육한다.
한방에서는 잎과 줄기 전체를 가을에 캐어 말렸다가 이뇨, 소종, 류머티즘, 타박상 등에 사용하며, 꽃을 말려 분말로 만들어 지혈에 사용하기도 한다.
꽃이 아름다워 키우고 싶어 하는 이들이 많지만 재배는 쉽지 않다. 특히, 야생에서 캐온 개체를 심었을 때에는 몇 년 만에 죽고 마는데, 옮겨 심을 때에 미생물과의 공생관계가 깨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래가 암암리에 지속적으로 이루어짐으로써 멸종 원인이 되고 있다. 미국의 한 농장은 씨에서 증식한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50달러에 판매하고 있으며, 흰 꽃이 피는 것을 80-90달러에 파는 곳도 있다. 하지만 이들도 재배하기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이다.
국명 ‘개불알꽃’이 선취권 있지만 비속어
복주머니난을 개불알꽃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개불알꽃이 더 오래된 이름이지만 비속어이기 때문에 복주머니난이라는 이름이 근래에 제안되었다. 이 밖에도 요강꽃,작란화, 개불란(개불난), 개불알란(개불알난), 복주머니꽃, 복주머니난초, 까치오줌통, 오종개꽃 등 여러 이름이 있다. 개불알꽃이라는 이름이 1937년 문헌에 처음 등장하며, 1949년 요강꽃, 1976년 복주머니꽃, 1996년에 복주머니란이라는 우리말이름이 제안된 바 있다. 학명처럼 선취권을 인정한다면 개불알꽃이 정당한 이름이지만 비속어여서 사용하기에 마땅치 않으며, 시기적으로 그 다음에 제안된 이름인 요강꽃을 사용하면 될 듯한데 사용하는 이가 많지 않다. 현재 개불알꽃과 함께 널리 쓰이고 있는 복주머니란은 맞춤법에 맞지 않는 이름이므로 이 이름을 살려 쓰려면 복주머니난으로 써야 한다. 학명으로 Cypripedium macranthum Sw.를 사용하기도 하는데, 이는 잘못이다.
학명의 속명(屬名)은 ‘비너스의 신발’이라는 뜻이다. 복주머니난속에는 세계적으로 58종이 보고되어 있으며, 원예품종들이 많이 개발되어 있다. 유럽, 러시아, 중국, 중앙아시아, 캐나다, 미국, 멕시코, 중앙아메리카 등지에 분포하는데, 열대에 주로 생육하지만 한대지방에 적응한 종들도 더러 있다. 우리나라에는 복주머니난과 더불어 광릉요강꽃, 털복주머니난, 노랑복주머니난 등이 자라는데, 큰개불알꽃 또는 노랑개불알꽃이라고도 하는 노랑복주머니난은 북한에만 자란다. 남한에 자라는 복주머니난, 광릉요강꽃, 털복주머니난은 모두 법정 보호종으로 지정되어 있다.
복주머니난은 전국에 자생지가 많지만 동시다발로 개체수가 감소하고 있기 때문에 법정 보호종으로 지정해 관리하는 것이 그만큼 어렵다. 종 보전을 위해 전략적으로 보호할 자생지를 선정하고 이를 집중 관리하는 것이 좋지만, 나머지 자생지들에서 더 이상 멸종하지 않도록 하는 관심도 역시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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