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서스Q에서 크롬캐스트로 - 뇌의 다양화 / 아이뉴스 기사 박태웅 칼럼

2013. 7. 26. 09:38잡주머니

 

 

 

 



구글이 간밤에 크롬캐스트를 내놓았다. 35달러밖에 안 하는 이 물건을 TV의 HDMI 단자에 꽂으면 폰, 태블릿. 노트북에 들어 있는 콘텐츠를 바로 TV로 볼 수 있다. 안드로이드뿐 아니라 아이폰, 아이패드, 맥, 윈도PC… 어떤 기기든 가능하다.

[광파리] 4만원짜리 크롬캐스트, 모든 기기를 TV에 연결한다
[스토리파이] 크롬캐스트에 대한 여러 가지 반응들


사실은 35달러도 아니다. 북미에서는 넷플릭스 3개월치를 덤으로 준다. 그 돈 24달러를 뺀 11달러가 실제 값이다.

그러면 애플티비는? 당연히 크롬캐스트와 애플티비를 비교한 글도 나왔다.

[TheVerge] Chromecast vs. AirPlay: how do they compare?


위의 글에서 주목하고 싶은 것은 2가지다. 하나는 구글이 구글TV에서 크게 실패한 뒤 제대로 배웠다고 평가한 부분이다. 2년 전에 “너무 스마트해서 길을 잃은 구글TV”라는 요지의 글을 쓴 적이 있다. 그 결론과 비슷하다.

[parko's view]스마트TV를 이야기할 때 생각해봐야 하는 것들


또 하나는 ‘플랫폼으로서의 크롬’의 흥미로운 확장이라는 지적이다. 이런 뉴스와 함께 읽으면 더 실감이 난다.



시의적절하게 이인묵 기자가 짚었다.

[이인묵]크롬캐스트와 구름 속에서 살아가기


나는 또 하나의 측면을 이야기하고 싶다. 그것은 ‘협업하는 생태계로서의 전자기기’라는 것이다. 탁월한 개별 기기들의 시대는 이제 끝나가고 있거나, 어쩌면 우리가 알지 못한 사이에 이미 끝난 상태일지 모른다.

지금 스마트폰의 성능은 아폴로를 달로 보낼 때 NASA가 사용한 컴퓨터의 그것을 압도적으로 넘어선다. 아폴로11호를 위해 사용된 컴퓨터의 메모리는 2k, 클럭스피드는 1,024MHz였다. 이걸로도 사람을 달로 실어 보냈다.

잠깐 얘기를 돌려 2005년으로 돌아가 보자. 그때 구글은 Ajax라는 새로운 기술- 혹은 새로운 기술조합-을 선보였다. 조금 길지만 위키피디아를 인용하면 에이작스는 다음과 같은 기술(조합)이다.

“기존의 웹 애플리케이션 은 브라우저에서 폼 을 채우고 이를 웹 서버로 제출(submit)을 하면 하나의 요청으로 웹 서버는 요청된 내용에 따라서 데이터를 가공하여 새로운 웹 페이지를 작성하고 응답으로 되돌려준다.. 결과적으로 중복되는HTML  코드를 다시 한번 전송받음으로써 많은 대역폭을 낭비하게 된다. 대역폭의 낭비는 금전적 손실을 야기할 수 있으며 사용자와 대화(상호 반응)하는 서비스를 만들기 어렵게도 한다.

반면에 Ajax 애플리케이션은 필요한 데이터만을 웹서버에 요청해서 받은 후 클라이언트에서 데이터에 대한 처리를 할 수 있다… 웹 서버 에서 전적으로 처리되던 데이터 처리의 일부분이 클라이언트 쪽에서 처리 되므로 웹 브라우저와 웹 서버 사이에 교환되는 데이터량과 웹서버의 데이터 처리량도 줄어들기 때문에 애플리케이션의 응답성이 좋아진다. 또한 웹서버의 데이터 처리에 대한 부하를 줄여주는 일이 요청을 주는 수많은 컴퓨터에 대해서 일어나기 때문에 전체적인 웹 서버 처리량도 줄어들게 된다.”

간단히 말하면 서버가 혼자 하던 일을 PC(브라우저)가 나눠서 하게 해, 오가는 데이터량도 줄이고, 웹서버의 처리량도 줄여 효율을 크게 높였다는 것이다. 즉 조금 과장해 말해서, 우리는 2005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훨씬 좋아진 PC의 힘을 서버와 함께 쓰기 시작하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8년뒤, 구글은 구글TV로 몇 년을 낭비한 다음에야 크롬캐스트를 내놓았다. 구글은 이제사 컴퓨팅파워가 충분하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이 물건을 어디서 본 듯하다면 당신의 기억력을 칭찬해줄만 하다. 이것은 몇 년전 구글이 내놨던 넥서스Q와 아주 흡사하다. 동그랗고 기괴하게 생긴 이 물건은 결국 출시도 못한 채 사장됐다.

칫솔님이 이것에 관해 잘 정리했다.

[칫솔 초이의 IT 휴게실] 크롬캐스트, 거실 포기 안한 구글의 영리한 반전


넥서스Q와 크롬캐스트의 가장 크게 다른 부분은 아래와 같다.

CPU ■OMAP4460 (dual ARM Cortex-A9 CPUs and SGX540 GPU)
 MEMORY ■1GB LPDDR RAM ■16GB NAND flash memory

넥서스Q에서 이런 부분들을 빼고, HDMI만을 남기면 바로 크롬캐스트가 된다.

지금까지의 스마트TV 시도가 실패한 지점, 바로 그곳에서 구글은 크롬캐스트를 끄집어 냈다. 그것은 모든 기기가 다 개별적으로 강력한 뇌를 가질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이미 뇌는 너무 많고, 충분히 강력하기 때문이다. 그곳은 ‘생태계’ 혹은 소우주로서의 스마트 디바이스가 시작되는 곳이기도 하다. 디바이스가 서로 역할을 나눠서 맡는 시대, 디바이스와 디바이스가 자유롭게 대화를 하고 데이터를 주고받는 시대. 구글은 여기에 ‘플랫폼으로서의 크롬’을 덧씌운다. 그것은 구글 클라우드에 사용자의 모든 데이터가 올라 가 있는 시대다. 이로써 뇌뿐 아니라 데이터도 편재(遍在)하게 된다.

국내에도 크롬캐스트보다 먼저 짝(http://jjakjjak.co.kr/about_extended.php)이라는 제품이 나와 있었고, 해외에도 다른 비슷한 제품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그림이다.

컴퓨팅 파워는 모든 곳에 있다. 모든 기기들이 지나치게 홀로 스마트할 필요는 없다. 서로 대화를 하는 기기들의 스마트함의 총합이 비로소 사람에게 보이는 스마트함이 될 것이다.

근거없는 예측을 몇 가지 덧붙이자면,

1. 현재 시장에 나와 있는 기존의 스마트TV들은, 앞선 3DTV가 그랬듯 실제로는 사용자가 한번도 원한 적이 없던 제품이었다는 것을 확인한 채 또 다른 마케팅 용어들을 찾게 될 것이다.

2. 우리는 아직 우리가 갖고 있는 컴퓨팅 파워, 그중에서도 특히 센서들을 어떻게 써야 할지 알지 못하고 있다. 가장 폐쇄적이고 그래서 가장 자기완결형의 소우주를 갖고 있는 애플이 먼저 우리가 이 센서들을 어떻게 쓸 수 있는지, 그리고 기기들간에 대화는 어떻게 하는지를 보여줄지도 모른다. 아이와치는 그 첫 번째 시도가 될 수도 있다.

3. 만약 애플이 먼저 보여주게 된다면 구글이 곧 전형적인 방식으로, 이어서 아마존이 기괴한 방식으로 그 뒤를 따를 것이다. 어딘가는 아마도 애플과 거의 똑같아 보이지만 모든 점에서 덜 세련된 제품들을 내놓은 뒤 무시무시한 속도로 따라잡으려고 할 것이다.

4. 협업하고 대화하는 기기만이 ‘스마트 디바이스’라고 불릴 자격을 갖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