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현의 <공순이> - 하나

2013. 7. 31. 09:22잡주머니

 

 

 

                                                     공순이

 

 

   내 이름은 공순이다. 그렇다고 70년대 구로공단을 떠올리면 곤란하다. 주인이 숲가꾸기 공공근로를 한다고 이렇게 지었으니까. 내가 숫놈이었다면 공돌이가 되었을 게다.

   밤새 쏟아진 장대비에 엄청나게 불은 개울물이 우르릉거리며 바위를 굴린다. 한길가의 밤나무가 쓰러져 길을 막는 바람에 하루에 네 번 다니는 버스가 들어오지 못한다고 한다. 빗줄기 사이로 그린소주 상표가 반쯤 떨어진 빈 페트병이 제멋대로 구르다 4조 담벼락에 부딪쳤다. 제주도에 머물고 있던 강력한 태풍이 북상중이라고 하니 내일도 산에 올라가기는 애저녁에 틀린 일이다. 집안으로 튀어 들어오는 빗방울을 피해 다리 사이에 코를 박으며 몸을 동그랗게 말았다.

발자국 소리. 아침에 아랫마을로 안전교육을 받으러 간 사람들이 올라오나? 이렇게 일찍 끝날 리는 없는데. 고개를 조금 내밀어 보았다. 팬티만 입은 근수가 비척거리며 비닐하우스 모양의 식당을 지나 할머니네 부엌문 쪽으로 사라진다.

“술 달란 말이야, 술. 문 안 열어?” 발길질 소리.

“문 안 열어? xx 년아, 문 안 열어? 증말 안 열어? 죽여버린다.”

숙소가 텅 빈 지금, 식당 할머니는 서른여덟 살 먹은 녀석에게 봉변을 안 당하려고 여차하면 다른 문으로 도망갈 준비를 하고 있을지 모른다. 나도 날벼락을 맞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재빨리 집을 나와 4조 마루 밑으로 기어 들어갔다. 사람들은 주인과 나를 동일시한다. 주인과 말다툼을 했던 2조 조장 녀석이 산에서 담뱃불로 똥침을 놓는 바람에 한동안 응가를 하면서 눈물을 찔끔거려야 했다.

발길질 소리가 그쳤다. 한쪽 발을 쩔뚝거리며 식당을 지나는 근수의 뒷모습이 보인다. 지난 주, 조합 사무실의 봉고차에서 내린 여섯 명 중, 근수는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근육질의 큰 체격에 온통 담뱃불 자국인 왼쪽 팔뚝.

단장은 주인과 흔들이, 멍석이, 세 명으로 원위치 된 4조에 여섯 명 모두를 넣으려 했지만, 근수를 보자마자 4조 조장인 주인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고 근수만 2조방에 배치되었다.1,2조는 온채로 빌린 집에서 마루를 사이에 두고 있었는데, 젊은 사람이라고는 1조의 단장과 2조 조장뿐이었고 나머지는 육십을 바라보는 사람들이었다.

어제 아침, 비가 내리자 단장은 조장들을 불러 모았다.

“오늘, 총무랑 같이 조합일로 서울에 올라갑니다. 저는 비오는 날이 제일 싫습니다. 일 못하는 것도 억울한데 꼭 싸움이 일어납니다. 조장님들만 믿고 올라가니까 잘 부탁드립니다.”

그러나 그칠 줄 모르고 내리는 비는 술판을 벌릴 빌미를 주었고, 저녁이 되자 술에 잔뜩 취한 근수는 배에 난 칼자국을 보여주려는 듯 웃통을 벗어제치고 ‘꼰데, 이 백대가리 새끼들아.’하면서 주정을 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자리를 피한 후에도 주먹으로 마룻장을 치며 밤늦게까지 고함을 질러댔다. 이 소동을 수습할 사람은 당연히 2조 조장이었는데 녀석은 보이지 않았다. 조장이라고 거들먹거리며 방 청소도 안하고 산에서 먹을 점심 밥통도 안 들고 가는 녀석이 말이다.

무언가 마루 밑 깊숙한 곳에서 움직였다. 흑갈색 얼룩무늬. 빌어먹을, 녀석은 내가 들어올 때부터 보고 있었으리라. 내가 비록 발바리지만 먹잇감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는 가만히 있었겠지. 그러나 마루 밑, 바로 앞에 또아리를 틀었으면 내가 머리를 들이미는 순간, 독니를 내 얼굴에 박았을 게다. 나는 으르렁거리며 경고를 하는데 이 녀석들은 왜 혀만 낼름거릴까? 서둘러 마루 밑을 나와 집으로 들어갔다. 주인이 이 일을 알면 마룻장을 뜯어낼지도 모른다. 지난 수요일, 작업이 거의 끝날 즈음, 폐광 근처에서 왁자지껄한 소리가 났다.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총무의 손에는 목이 잡힌 굵은 살모사가 천천히 총무의 손목에 몸을 감고 있었다.‘15만 원은 받지 않겠냐.하는 이야기가 나왔지만 결과는 7만 원이었다. 암놈이라 값이 떨어진다고 한다. 뱀장수가 값을 후려친 것 같지는 않았다. 읍내의 뱀집 네 군데를 모두 들렸다고 하니까.

그 다음날부터 주인은 나를 앞세우고 폐광 근처를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시원한 나무그늘에서 낮잠을 즐기거나 청설모를 쫓아다니던 나는, 바람 한 점 안 통하는 숲속에서 모기떼에 시달리며 가시덤불을 헤치고 다녀야 했다. 나는 뱀 냄새가 싫었고 뱀에 물리기는 더욱 싫었다. 그리고 내가 뱀을 발견하면 곧바로 명견(?) 공순이가 되어서, 혀를 내민 채 헉헉대면서, 하루 종일 산속을 헤매고 다닐 것은 뻔한 일이었다. 나는 살모사 놈을 원망하며 금요일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숲가꾸기 공공근로는 주 5일 근무였고, 금요일 저녁이면 주인은 경마를 하러 서울로 올라가 일요일 밤늦게 숙소로 내려왔다. 운 좋게 돈을 땄을 때는 술자리를 벌렸고 기수와 말들의 이름을 외어대며 자랑을 하였다.

“나는 경마책 따위는 안 봐. 쏘스가 있거든.”

쏘스라는 말은 T.V 서양요리 시간에 들은 적이 있는데......

 

    손꼽아 기다린 금요일 오후, 산을 내려가는 주인의 혁대에는 빈 양파주머니가 그대로 매달려 있었지만, 주인의 발걸음을 보며 나는 무언가 잘못되고 있음을 느꼈다. 서울에 올라가려는 사람들은 뛰다시피 산을 내려가 벌써 큰길에 들어섰다. 읍내로 나가는 마지막 버스는 저녁 여섯 시 반에 숙소 앞을 지나간다. 서둘러도 시간이 빠듯한데 주인의 발걸음은 여유롭기까지 하였다. 그럴 리가 없어. 나는 고개를 흔들었지만, 큰길의 담뱃가게에서 주인의 지갑 속에 남아있는 만 원짜리 한 장을 보는 순간, 행여나 하고 바라던 나의 희망이 사라짐을 느꼈다. 그렇다면 노임이 들어온 그 주말에 경마장에서? 혹시 주인의 농협통장에 돈이 남아 있지 않을까? 그러나 주인은 숙소에 남아, 그때까지도 끈을 놓지 않고 있었던, 나의 실낱같은 희망마저 잘라 버렸다. 노임이 들어오려면 보름은 기다려야 했고, 이곳 사람들은 돈을 빌려주지 않으니까 주인은 경마장커녕 읍내에도 못 나간다. 내일, 토요일은 물론 일요일에도 주인은 뱀사냥을 할 것이다.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었다. 차라리, 뱀을 손쉽게 잡는 방법을 주인에게 알려 줄까? 밤 서너 시쯤, 랜턴을 들고 큰길을 천천히 훑으면 된다. 따뜻한 아스팔트 위에 배를 깔고 잠들어 있는 놈들은, 서울 가면 주인이 잠을 잔다는 찜질방으로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니다. 일당 3만2천 원에 목매고 사는 이 골짜기에, 기어 다니는 7만 원을 두 눈으로 확인한 주인은 고기 맛을 본 중보다도 더 입맛을 다시리라. 그렇다면? 담뱃값도 없는 주인은 뱀사냥에만 매달릴 것이다. 절로 한숨이 나왔다. 어제, 폐광 근처에서 혓바닥을 내놓고 헐떡거리던 나에게 헤글러가 한 말이 떠올랐다.

“공순아. 너 완전히 노난거야.”

토요일 아침, 일찍 숙소를 나선 주인은 아랫마을에 사는 기계톱 조를 찾아갔다.

“예전에는 뱀이 지천에 깔려있었죠. 땅꾼들이 그물로 많이 잡기도 하고요. 그렇지만, 이제 는 산속에 뱀이 거의 없어요. 오히려 집 근처의 밭둑이나 돌무더기가 있는 곳을 찾아보는 게 빠를 거에요.”

주인은 열심히 비탈밭을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중복을 앞둔 태양에 밭둑은 훅훅 달아올랐고, 축 쳐진 나뭇잎은 그날따라 움직이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욕지기가 나며 어지러웠다. 한낮이 지나도 뱀 구경을 못하자, 실망한 주인은 나무 밑에서 쉬려는지 소나무 그늘로 들어서며 허리춤에서 수통을 꺼냈다. 나에게도 물을 줄까 싶어 쳐다보는 순간,‘으웨웩. 하는 비명과 함께 주인이 봉산탈춤 춤사위로 나에게 달려들었다. 냅다 뛰었다. 옥수수 밭을 지나 칡넝쿨 속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담배 밭을 가로질러 죽을 힘을 다해 달렸다.

한참 후, 산 밑에서 만난 주인은 팬티만 입은 채 쪼그리고 앉아, 바지 속에서 죽은 땅벌들을 끄집어내고 있었다.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에는 비지땀이 흘러내렸고, 왼쪽 뱀눈은 퉁퉁 부어올라 감겨 있었다. 입술은 윗입술만 두툼하게 부어올랐는데 주인이 입술을 움직이자, 나는 웃음을 감추려고 고개를 돌렸다.

“야, 개새끼야, 주인을 구한 명견도 있다는데 혼자 도망을 가?”

훌륭한 주인은 벌을 몰고 오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