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7. 31. 09:25ㆍ잡주머니
빗줄기 사이로 비릿한 동태국 냄새가 코를 간지럽힌다. 할머니가 점심 준비를 하는가 보다. 나는 앞발을 앞으로 내밀고 어깨를 뒤로 주욱 뽑으며 기지개를 켰다. 식당 문을 들어서며 몸에 묻은 빗물을 털어내고는, 지난 장날에 5만 원 주고 사왔다는 도사견 녀석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문 앞에 앉았다. 낳은 지 삼 개월밖에 안 되었다는 녀석은 한 살인 나보다 더 컸고, 산에 갔다 와보면 내 밥그릇은 깨끗이 비워진 채 햇빛에 반짝거렸다. 식당 할머니가 과일상자로 집을 만들어 주었는데도, 밤이면 내 집에 불쑥 들어와 큰 머리통을 내 등에 올려놓고는, 입맛을 쩝쩝 다시며 눈을 감았다. 다리가 저린 통에 눈을 떠보면, 녀석이 젖 먹는 꿈을 꾸는지, 보일 듯 말 듯 한 내 젖을 큰 주둥이로 끙끙거리며 찾고 있었다. 엄마가 그리워서 그러려니 하고 참아주었지만, 녀석이 따뜻한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식당까지 들어오자 달려들어 커다란 귀를 물고는 흔들어버렸다. 덩치 큰 녀석이 엄살이 어찌나 심한지, 곧 죽을 것처럼 비명을 질러대는 통에 할머니가 국자를 든 채 뛰어나왔고, 곧바로 국자가 나를 향해 날라왔다. 이 일이 있은 후, 녀석은 나를 피해 다녔지만 이번 참에 녀석의 기를 꺾어버릴 셈으로, 녀석의 몸에 수시로 이빨을 박아 넣었다. 그러자 녀석은 나를 보기만 하여도 깨깽거렸고 물기도 전에 할머니에게 쫓겨 다녀야만 했다.
사람들이 통나무 다리를 건너 숙소로 올라오는 모습이 보였다. 우산들을 썼다지만 워낙 비바람이 거세어 물에 빠진 생쥐 꼴이다. 이내 숙소가 시끄러워졌다. 식당 할머니를 도와 식당에 밥통을 갖다놓은 헤글러는, 텐트로 가지 않고 4조 처마 밑에 들어서더니 담배에 불을 붙였다. 옷을 갈아입은 사람들이 하나 둘씩 식당으로 들어왔다.
“지금 태풍 말고 하나가 더 있다고 하잖아. 이번 달, 날 샜네. 서울이나 올라가야겠어. 저리가, 개새끼야,”
발길질을 피해 식탁 밑으로 들어갔다. 헤글러의 손이 담배꽁초를 튕겨내더니 작업화의 끈을 고쳐맨다. 검은 팔각모에서 빗물이 뚝뚝 떨어졌다. 나에게 눈길 한번 안주고 식당을 지나갔다. 심상치 않은 예감에 뒤를 좇았다. 작업화를 신고 2조 방으로 들어간 헤글러가 근수를 누운 채로 끌고나와 마당에 던졌다. 흙탕물 속에 누워 게슴츠레 눈을 뜬 녀석은 놓아두고, 헤글러는 마루에 앉아 발을 씻던 사람의 세숫대야를 빼앗아 들었다. 세숫대야의 물이 천천히 녀석의 얼굴에 쏟아졌다. 두 손으로 얼굴을 문지르며 근수가 일어섰다.
“사람들을 밤새도록 잠 한숨 못 자게 해놓고 잠이 오냐?”
근수의 얼굴이 일그러지며 주먹이 나가려는 순간, 헤글러의 머리가 번개같이 녀석의 얼굴에 꽂쳤다. 읔, 소리와 함께 손으로 얼굴을 감싼 녀석의 허리를 헤글러의 양손이 잡는다 싶더니 무릎이 녀석의 사타구니를 쳐올렸다. 그대로 주저앉는 녀석의 얼굴을 향해 헤글러의 작업화가 날아가다 멈추었다.
“사람들에게 잘못했다고 빌어, 짜식아.”
헤글러는 흙탕물 속에 떨어진 팔각모를 집어 들었다.
이틀이 지난 오후, 산봉우리의 구름이 벗겨지며 비가 그쳤다. 저녁을 먹고나자 밤하늘에 별이 가득하다. 헤글러의 텐트 옆에서 담뱃불이 반짝거린다. 4조 사람들이 모여서 시간을 죽이고 있었다.
“뱀눈, xx 놈, 지가 조장이면 조장이지. 지나 나나 공공근로 온 주제에, 여기가 군대야, 깜방이야? 드러워서. 닝기리,”
“흔들이 코고는 소리에 내가 미친다 미쳐.”
“코고는 소리는 아무 것도 아니야. 뱀눈, 이빨 가는 소리는 손톱으로 칠판 긁는 소리보다 더해.”
“근수가 보따리 싸고 올라갔기에 2조에 들어가려고 했더니 방이 좁아서 안 된다고 그러더 라구. 근수도 억지로 받았다나, 나도 텐트를 갖고 와야겠어.”
검은 팔각모를 벗어든 헤글러는 하늘을 한번 보더니 텐트에 들어가 지퍼를 내렸다. 4조에 배치된 사람들이 이곳을 떠나는 가장 큰 이유는 방에서 벌어지는 술판 때문이었다. 어두워지면 각조의 술꾼들이 약속이나 한 듯이 술병을 들고 모여 들었고, 옆에 누운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밤늦도록 술판이 이어졌다. 잠을 설치던 사람들이 견디다 못해 화장실에라도 가려고 일어나면, 기다렸다는 듯이 어이, 동생 또는 김씨, 하면서 심부름을 시켰다. 술은 식당할머니에게 사면 되었으나 담배는 통나무 다리를 건너 큰길까지 가야 했다. 엉겁결에 받아든 담뱃값을 보면서, 내가 이 나이에 이곳까지 와서 담배 심부름을 해야하나, 하는 자괴감을 곱씹기에는 충분한 거리이었다.
설잠을 자고 아침에 일어나면 아무렇게나 널려있는 술병과, 꽁초와 가래침이 범벅이 된 재떨이, 퉁퉁 불은 라면이 들어있는 그릇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침식사 후에는 산에서 먹을 점심밥과 반찬통도 챙겨야 했다. 다른 조에서도 간혹 술판이 벌어졌지만 밤 열한 시에는 어김없이 불을 껐다. 할머니네 건넌방에 있는 3조는 조장이 기독교 교인이라, 방에서 술자리는 물론 담배도 안 되었고 소등은 밤 열시이었다. 간혹 4조에서, 결원이 생긴 다른 조로 간 사람도 있었지만 정말 운이 좋은 경우이었다. 사흘이 못 되어 한 사람이 보따리를 싸면 그것을 시작으로 다른 사람들도 보따리를 꾸렸다. 그들은 숙소를 떠나면서 물어보지도 않은 말을 하였다. 집에 급한 일이 생겨서. 화장실이 푸세식이라. 목욕하기가 힘들어서...... 그중에서도 목욕하기 힘들다는 말은 정말 이해가 안 되었다. 헤글러의 텐트를 지나 조금 올라가면 한낮에도 뼈가 아릴 정도로 차가운 개울물이 흐르고 있기 때문이었다. 한번은 읍내에서 술 한잔하고 들어온 젊은 친구가, 그날도 술판을 벌이고 있는 주인 옆에 앉아 쌓였던 불만을 쏟아내었다. 주인은 끄덕이며 술잔을 건넸다.
“자, 한잔 받아. 동생이 여기서 막내라 시킨 거야, 동생이 이해해야지. 기분 풀어. 앞으로 의논해서 잘 해보자구.”
연거푸 건네지는 술잔에다 흔들이와 곰보 자국이 있는 멍석이의 술잔까지 받게되자, 젊은 친구는 취해버렸고 반말을 하는 실수를 하고 말았다. 그때만을 기다렸던 주인은 나이도 어린 놈이 주정한다며 멱살을 잡았고 그는 세 명에게 뭇매를 맞았다. 다음날, 젊은 친구는 분한 마음에 한참동안 마당을 서성거렸지만 결국 숙소를 떠났고, 그 일은 두고두고 주인에게 훌륭한 안주거리가 되었다.
“짜식이 몇 잔 처먹지도 않고 게걸거리잖아, 나이도 사십밖에 안 된 어린 놈이. 내가 아직까지는 젊은 놈 하나는 충분히 상대할 수 있다구. 그리구 내가 취해도 흩으러지는 것 본 사람 있으면 나와보라고 해.”
주인이 주정하는 것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를 제외하고는.......
6월, 현충일이 금요일인 바람에 사흘 연휴가 되자 모두 서울로 올라가고, 주인만이 텅 빈 숙소에 남아있었다. 아침부터 술을 마셨는지 주인은 비틀거리며 마당에 소변을 내갈기더니 나를 덥석 안고 방으로 들어갔다. 주인은 1.8L 페트병의 소주를 맥주 컵에 따라 마셨다. 곧 고개가 숙여지며 흔들이처럼 몸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끄윽, 공순이, 이 개새끼야. 내가 어떻게 살았는지 너는 모를 거다. 내 아들 놈이 지금 서른 살이야. 근데 이 새끼가 나를 아버지라고 부르지도 않는다. 우욱, 내가 지랑 지엄마 를 버렸다는 거야. ㅈ도, 그럼 군대 갈 나이에 애비 노릇하고 싶은 놈이 몇 놈이나 있냐? 담배 어딨어? 야, 아무도 없어? 담배 있으면 담배 좀 내놔. x새끼들아. 흔들이, 멍석이 이 새끼들, 꼴에 집구석이 있다고 즈그들만 올라가? 나이만 같다고 친구냐? xx 놈들아. 그래, 나는 나이 쉰둘에 갈 데가 없는 놈이다. 형제? 개ㅈ도 아니야. 으음. 나는 이 나라를 떠날 거야. 아름다운 강산? ㅈ 빠는 소리야. 다음 주에 대박 터뜨려 수진이 년이 있는 중국으로 갈 꺼다. ㅆ새끼들아, 끄윽, 내가 노가다 한 새끼들과 공공근로나 하면서 지내야 되냐? ㅈ 또, 쏘주 한잔 살 줄 모르고 얻어먹으려고만 하는 그지 같은 새끼들이랑 같이 지내야 되냐 구. 야. 이 똥개. 공순이, 개새끼야, 너 수진이가 누군지 모르지? 모를 꺼다. 끄윽, 개새 끼야, 내가 신림동에서 술집 할 때 데리고 있던 중국교포 년이다. 으음, 새끼야. 그년, 중 국으로 갔는데 얼마 전에 통화 한 번 했지. 음, 나보고 연변에서 단란주점을 같이 하자는 거야. 음, 어허 우후.... 쓰벌, 그년 보ㅈ 맛본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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