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건축학회논문집] 한중일 도성계획에서 주례고공기의 해석과 적용에 관한 연구

2017. 3. 22. 03:54집짓기



       [대한건축학회논문집] 한중일 도성계획에서 주례고공기의 해석과 적용에 관한 연구 도시잡지

2011.10.13. 17:59



http://blog.naver.com/sonkwangshik/100140546198


         


출처 : 한중일 도성계획에서 주례고공기의 해석과 적용에 관한 연구

                               / 이영 경원대 건축학과 교수, 한경호 경원대 건축학과 시간강사

           대한건축학회논문집 계획계 제27권 제3호(통권 269호) / 2011.03


@ 격자는 역사적으로 볼 때 도시계획에서 사용될 수 있는 가장 보편적인 패턴이며 세계 공통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1) 가장 초보적인 측량도구와 기술로 설계 가능

 2) 토지의 분배와 소유, 조세부과에 편리

 3) 군사적, 정치적 지배와 관리가 용이

 4) 도시계획의 기본적 형태를 변경하지 않은 채 시가지를 차례차례로 밖으로 확대 가능

 5) 사각형태의 건축물을 가장 조밀하게 수용할 수 있는 건축 이점

 6) 한정된 고밀도 도시공간에 주민거주지를 효율적으로 분포

 7) 대지의 자연조건을 수용하기에 거북한 형태이지만 실제로 대지의 조건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구조

 8) 자연스럽게 형성된 도시가 아니라 인위적으로 조성된 계획도시의 설계


@ 주례고공기(周禮⋅考工記)에 서술되어 있는 도시계획에 관한 내용은

    方九里 旁三門(방구리 방삼문), 九經九緯(구경구위), 左廟右社(좌묘우사), 前朝後市(전조후시)

    뿐으로 구체적인 공간의 다이어그램을 그려내기에 충분한 내용이 아니다. 따라서 역사상 학자들은 다른 의견을 보이고 있다.


@ 주례고공기 해석의 문제

 1) 내부가구 구성의 문제

  - 도성의 내부 구성에 관한 해석은 크게 16개의 가구로 구성하는 방법과 9개의 가구로 구성하는 방법으로 구분


  - 16개 가구  장점 : 정사각형은 쉽게 4등분 할 수 있는 기하학적 특징을 가지고 있으므로 기술적으로 보다 간단하게 도성 구성 가능

                    단점 : 전체 도성에서 왕궁이 차지하는 면적의 비율, 왕국과 주변 블록과의 관계 등이 명확하게 설명되지 않음


  -   9개 가구  장점 : 왕국의 위치와 주변 블록과의 관계 등이 비교적 체계적으로 표현 가능

       (井田法)  단점 : 도로체계가 명쾌하게 구성되지 않음


 2) 가로망 구성에 관한 문제

  - 도시내부에는 가로, 세로 9개씩의 도로를 배치하여야 하고, 그 너비는 각각 9궤로 하도록 하고 있어 3개의 도로로 1개의 가로를 구성


 3) 주요시설의 배치문제

  - 중국도성에서는 도성의 중심축선을 기준으로 하여 왕궁 전면의 좌우에 종묘, 사직이 배치되는 형식을 볼수 있으나 시대와 국가에 따라 상이



@ 주례고공기의 원형해석

 - 주례고공기에 서술된 내용은 텍스트로 존재할 뿐이며, 관념적인 도식이라 할 수 있고 그 이면에 담겨있는 공간적 질서는 다음과 같이 해석될 수 있다.

 1) 중심성(공간과 질서 ) : 인간의 공간은 주체를 축으로 하여 중심화되어 있다. 즉 중심이 존재함으로써 건축적 공간의 결속이 강화되고 이를 핵으로 장소가 형성되며 또한 장소성이 뚜렷이 부각된다.


 2) 영역성(공간과 형태) : 장소의 개념은 내부와 외부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영역은 이미지를 완성시키고 이미지가 하나의 긴밀한 공간이 되도록 일정한 통일화의 기능을 갖는다.


 3) 연결관계(공간과 공간) : 장소성은 보다 넓은 공간의 전후 관련에서 존재하며 개별적으로 이해될 수 없는 것이다. 일단 중심이 설정되면 이것은 바로 경계까지도 설정해 주며 동시에 중심으로 향하는 길과 중심에서 나오는 길을 형성하고, 이 길은 방향성을 제시한다.




@ 본연구에서 주례고공기의 원형 다이어그램 해석

 - 첫째, 도성에 중심을 만들고자 하였다. 도성은 국토의 중심에 위치하는 것으로 중심의 위치에 따라 도성의 입지와 영역이 결정된다. 도성의 중심이며 가장 위계가 높은 시설은 왕궁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왕궁은 도성의 중심에 배치되어야 한다. 성벽을 기준으로 왕궁의 위치를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왕궁을 중심으로 도성의 영역을 파악하여야 한다.


 - 둘째, 도성의 영역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것은 도성을 주변과 분리하기 위한 행위이며, 이로 인해 도성은 주변보다 높은 위계를 갖는 공간이 된다. 성곽은 도성의 영역을 구축하는 건축적 장치이며, 대표적인 평면 형태는 사각형이다. 그러나 지형에 의해 도성의 내외부가 구분되어 영역이 결정되기도 한다.


 - 셋째, 도성 내부의 공간 사이의 연결 관계를 만든다. 이것은 도로체계를 만드는 동시에 내부의 블록을 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도성의 공간을 조직하고 연결하는 방법이다. 도성내 주요시설 사이의 연결관계는 도성 내부의 공간적 특질을 결정한다. 특히 왕궁과 종묘, 사직의 연결관계는 도성의 중심도로를 형성한다.






주례고공기(周禮考工記)| 풍수지리학Ⅰ

형산 정경연 | 조회 1157 |추천 0 | 2008.12.24. 16:00


주례고공기(周禮考工記)

 

   주공은 《주례(周禮)》라는 일종의 헌법, 행정법, 민법, 기술법 등을 총괄한 법전을 발행했다. 모두 6편으로 된 이 책은 관제를 천지춘하추동(天地春夏秋冬) 육관으로 나누었다. 천관(天官)은 치관(治官)으로 전 관료를 통제하고, 지관(地官)은 교관(敎官)으로 교육과 재정과 지방행정을 담당하고, 춘관(春官)은 예관(禮官)으로 국가의 의례와 제사를 담당하며, 하관(夏官)은 정관(政官)으로 병마와 군대를 통솔하고, 추관(秋官)은 형관(刑官)으로 국가의 일반 업무와 법을 담당하고, 동관(冬官)은 사관(事官)으로 토목과 공예를 담당한다.

 

   중국의 역대 관제는 이것을 규범으로 삼은 것이 많고 우리나라도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동관은 현존하지 않아 후대의 《고공기(考工記)》가 보충하고 있다. 이른바《주례고공기(周禮考工記)》는 도성의 건설ㆍ궁궐조영ㆍ수레ㆍ악기ㆍ병기ㆍ관개ㆍ농기구 등에 관한 기록으로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기술관련 백과사전이다. 특히 〈장인영국기(匠人營國記)〉는 도시 기술자들이 도성을 건설할 때 쓰는 제반기준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이 책은 중국뿐만 아니라 한국과 일본 등 동북아시아 지역에 널리 전파되어 근대까지 도시건설의 기준이 되었다. 다산 정약용도 수원성을 건설할 때 이를 참고한 것으로 《경세유표》에 나와 있다. 《고공기》는 음양오행(陰陽五行)과 낙서구궁도(洛書九宮圖)를 사상적 배경으로 했기 때문에 도시들 대부분은 동양의 우주관이 투영된 형태로 나타난다. 도성건설과 관련된 대표적인 한 대목만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장인영국방구리방삼문(匠人營國方九里旁三門), 국중구경구위경도구궤(國中九經九緯經涂九軌), 좌조우사면조후시(左祖右社面朝後市), 시조일부(市朝一夫)”

 

장인영국방구리방삼문(匠人營國方九里旁三門)에서 장인(匠人)은 도시건설기술자로 오늘날 도시계획자이고, 영국(營國)은 도시를 만든다는 의미이며, 나라 국(國)은 원래 성곽으로 둘러싸인 구(口)영역이라는 뜻이다. 방구리(方九里)는 한 변의 길이가 9리(약3.6km)인 정사각형의 성곽이다. 이는 천자가 없을 때이고, 진시황제 이후부터는 천자(天子)의 성은 12리, 왕(王)의 성은 9리, 공(公)의 성은 7리, 후(侯)․백(伯)의 성은 5리, 자(子)․남(男)의 성은 3리 이어야 한다고 하였다. 4개의 방위는 춘하추동 4계절을 의미한다. 방삼문(方三門)은 면마다 3개의 성문을 배치하여 12개를 통하게 하라고 했는데 이는 12개월 및 12지신을 상징한다.

 

국중구경구위(國中九經九緯)는 각 문들은 서로 직선도로로 연결하여 성안 내부는 격자형으로 도로망을 형성하라는 뜻이다. 경(經)은 세로인 남북간선도로를 위(緯)는 가로인 동서간선도로를 의미하므로 남북축으로 9개, 동서축으로 9개의 도로를 낸다. 각 문(門)에는 3도(涂, 도로)가 있어서 남자는 오른쪽 길을 경유하고, 여자는 왼쪽 길을 경유하며, 수레는 중앙으로 다니었다. 경도구궤(經涂九軌)는 세로축인 남북도로는 9량의 수레가 다닐 수 있어야 한다. 수레 1량은 8척이니 9궤는 72척이다. 6척이 1보(1.2m)이므로 길의 폭은 약 12보(步)로 지금으로 치면 14.4m 정도 된다. 이때 왕궁의 위치는 중경(中經)의 도(涂, 길)에 마주하는 곳이다.

 

좌조우사(左祖右社)는 왕궁 좌측에는 조상을 모시는 종묘(宗廟)를 배치하고, 우측에는 토지와 곡물 신에게 제사지내는 사직(社稷)을 배치하라고 하였다. 면조후시(面朝後市)는 왕궁 앞에는 신하들이 알현할 광장을 배치하고, 뒤에는 시장을 배치하라는 뜻이다.

시조일부(市朝一夫)는 시와 조의 면적은 각 1부로 하라는 뜻인데, 1부(夫)는 전답 100무(畝)이고 100무는 가로세로 각각 100보(步)의 정방형 토지를 말한다. 이를 오늘날 단위로 환산하면 왕궁 앞의 광장과 뒤의 시장은 가로 100보(약133m) 세로 100보(약133m)로 약 4,363평의 넓이에 해당된다.

 

 

 

 

<주왕성의 복원도와 주례고공기의 도성계획 원리와 구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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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학◀] 『주례고공기』| ━━━━━━☆ study   ==== 지 리 ====

ㆀ☆꼴통☆ㆀ | 조회 30 |추천 0 | 2004.02.16. 18:31


『주례고공기』


※왕도조영기법
  임금과 왕족이 거처하는 곳을 궁가(宮家), 궁방(宮房)의 뜻으로 '궁(宮)'이라 하고, 궐(闕)은 궁의 앞에 세워지는 망대(望臺) 역할의 시설을 일컫는 것이므로 궁궐의 의미는 국가의 백성의 생활을 지켜 보고 다스리는 통치권의 소재를 상징하는 것으로 파악할 수 있다.다시말하면 통치권을 행사하는 정치 장소이면서 동시에 그 권력의 주체인 왕실이 생활하는 곳이라는 두 의미를 갖는다.

고대 중국 궁궐 제도의 규범으로는 「주례고공기(周禮考工記)에 기본적인 원칙이 전해지고 있다. 예를 들면 궁성(宮城)안의 왼쪽에 종묘(宗廟)를, 오른쪽에 사직(社稷:土神과 稷(곡식의 신))을 둔다는 좌묘우사(左廟右社)라든가 도로의 개설법과 궁문의 제도와 규모에 대한 것 들이 있다. 물론 중국에서도 이 규범대로 지켜지지는 못하였으나 국가를 세울 때는 하나의 기본적인 본으로 이용되었고 중국의 문화를 받아들인 한반도에서도 그런 제도를 나름대로 본받았다. 삼국시대 이래로 조선왕조까지의 역사에는 궁궐의 제도가 계속 존속되어 왔으며 남아 있는 유적의 모습에서도 최소한의 규범이 지켜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궁의 공간을 크게 나누어 관청이 배치되는 외조(外朝)와 임금이 정치를 하는 치조(治朝), 왕실이 생활하는 연조(燕朝)와 휴식 공간인 원유(苑@)로 구분한다. 또 다른 분류 방법으로는 전각을 중심으로 하여 외조와 치조를 합해 외전(外殿)이라 하고 기타는 내전(內殿)으로 구분하고도 있다. 한편 궁궐 자체의 성격에 따라 중심되는 것을 정궁(正宮)이라 하고 위치와 용도에 따라 이궁(離宮), 행궁(行宮), 별궁(別宮)으로 구분되는데 창덕궁이 바로 이궁에 해당되지만 실제로는 정궁처럼 활용되었다.


* 방위와 배치관계

※오문삼조(五門三朝)

궁궐은 왕의 집이다. 궁궐을 지을때 중국 고대서 부터 전해오는 원칙적인 기준이 된 것은 << 주례(周禮)>>라고 하는 책의 <고공기(考工記)>편에 규정되어 있는 '오문삼조(五門三朝)'라는 틀이다.  그 내용은, 궁궐은 궁성으로 둘러싸여 있고, 그 내부는 몇개의 구역으로 나뉘어 있다. 각 구역에는 들어가는 문이 있게 마련인데 앞에서부터 뒤로, 곧 남에서 북으로 들어가면서 고문(皐門),고문(庫門),치문(稚門),응문(應門),노문(路門)이라는 이름이 붙은 다섯 개의 문이있다. 이 다섯개의 문에 따라 구역이 구별되는데 첫번째 고문안이 외조(外朝), 네번째 응문 안이 치조(治朝), 다섯번째 노문 안이  연조(燕朝)로 외조,치조,연조를 합쳐서 삼조(三朝)라고 부른다.
이러한 오문삼조식 공간구성은 중국이나 우리나라에서 하나의 원칙으로 받아들여져있다. 그러나 원칙이란 어디까지나 원칙이다. 구체적 궁궐구성에는 지형적 여건과 당시 사람들의 조형 의지에 따라 다양하게 드러날 수밖에 없다.

조선왕조의 왕들은 늘 법궁과 이궁 두 궁궐을 유지하면서 두 궁궐을 오가며 지냈다. 이러한 조선왕조의 궁궐경영 내지 이용방식을'법궁-이궁 양궐체제(法宮-離宮 兩闕體制)'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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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와 정전제(丁田制)|풍수지리학Ⅰ

형산 정경연 | 조회 363 |추천 0 |2008.12.24. 16:07 http://cafe.daum.net/hanyangestate/CSie/17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와 정전제(丁田制)

 

   산동에 있던 노나라의 편년사인 《춘추(春秋)》에 근거하여 BC 770년부터 BC 403년까지 367년 동안을 춘추시대라 한다. 이후 진나라 시황제가 전국을 통일한 BC 221년까지 182년 동안을 전국시대라고 한다. 주나라가 도읍을 낙양으로 옮긴 후 철기의 발달과 현(縣)체제의 등장으로 각지의 제후들의 세력이 점점 커졌다. 제후들은 서로 왕을 자처하니 이러한 세력이 1000여개에 달하였다. 이 시대를 춘추시대라 한다. 이후 세력이 강한 제후들이 약소 제후들을 통합하여 진(秦)․초(楚)․연(燕)․제(齋)․한(韓)․위(魏)․조(趙)나라들의 이른바 전국칠웅(戰國七雄)이 대립한 시기를 전국시대라 한다.

 

 

 

   전쟁은 장기화, 대규모화되었으며 주왕실의 제후국에 불과했던 나라들도 독립된 국가를 자처하며 영토 확장을 위해 경쟁하였다. 전쟁이 계속됨에 따라 각지에서 사상가, 병법가들이 생겨났으며 중국 사상계의 꽃인 제자백가도 이때에 생겨났다. 또 치열한 전쟁은 철기의 발달을 가져왔다. 철기는 무기의 발달뿐 아니라 농업 생산력에도 영향을 끼쳐 토지 정전제(丁田制)가 실시되었다.

 

   정전제는 1정(井)의 밭을 900무(畝)로 하고, 이를 정(井)자 형태로 9등분하여 중앙을 공전(公田)으로 삼고, 주위 8군데 밭을 여덟 가구에 사전(私田)으로 100무씩 분배하는 제도다. 가운데 공전은 8가구가 공동으로 경작하여 수확물을 국가에 받치도록 하였다. 이때 사전에 대한 토지 소유권은 허락하지 않고 사용권만 인정하였다. 참고로 100무는 가로 세로가 각각 100보인 정방형의 땅이다. 이때 1정의 가로세로길이 300보는 400m이고 이를 1리(里)라 하였다. 4km가 10리가 된 것은 여기서 유래한 것이다.

 

 


   철기와 농업의 발달로 지방도시가 발전하였는데 오늘날 중국의 성(省)들은 이때 많이 생긴 도시들이다. 예를 들자면 연나라의 수도 연경은 오늘날 북경이고, 제나라의 수도 임치는 오늘날 산동성 제남시다. 진나라의 수도인 장안은 오늘날 섬서성의 서안이며, 초나라의 수도 영은 오늘날 호북성 사시 서쪽 강릉이다. 조나라의 수도 한단은 오늘날 하북성 감단시이며, 한나라의 수도는 낙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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