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의 회화작품으로는 고분 내부의 벽면을 장식하는 벽화가 유일하면서도 대표적인 양식이다. 그 가운데서도 전문가들은 단연 ‘무용총 수렵도’를 ‘최고’로 꼽고 있다. 1천년을 훨씬 넘는 세월 속에서도 여전히 살아있는 색채와 화면의 운동감은 동아시아 최고의 수준이라는 게 중평이다. 국내 고분벽화 연구 전문가인 전호태 교수가 다른 작품들과의 비교 속에서 ‘무용총 수렵도’의 뛰어난 점을 짚어보았다. / 편집자주
고대사회에서 수렵은 먹거리를 얻기 위한 단순한 생산활동 이상의 의미와 기능을 지닌 행위였다. 정기적으로 열렸던 고구려의 ‘樂浪會獵’에서 미뤄 짐작할 수 있듯 수렵대회는 군사훈련이었을 뿐 아니라 종교행위이기도 했다. 수렵터의 상황에 대한 사전조사, 몰이꾼과 사냥개를 이용한 짐승몰이, 창을 쓰는 도보수렵, 활에 의존하는 기마수렵, 매를 이용한 매수렵 등이 한꺼번에 이뤄질 때의 수렵은 적진탐색과 정보수집, 전략·전술의 토의 및 수립, 수색, 기마전과 도보백병전의 효과적 배합과 전개, 전략적 전진과 후퇴, 매복, 역공, 다양한 기구를 이용한 攻城 등으로 이뤄지게 마련인 군사작전과 내용상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고대 문헌에 왕과 귀족이 참가하는 田獵기사가 수시로 등장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집안의 무용총 벽화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장면이 수렵도다. 수렵자와 짐승들 사이에 형성되는 수렵터 특유의 쫓고 쫓기는 급박한 흐름이 힘있고 간결한 필치로 잘 표현된 널방 오른벽의 수렵도는 고구려 고분벽화를 대표하는 것 중 하나다.
놀라 달아나는 호랑이와 사슴, 말을 질주시키며 정면을 향해, 혹은 몸을 돌려 활시위를 당기려는 기마인물의 자세는 굵기에 변화를 준 물결무늬 띠를 겹쳐 표현한 산줄기에 의해 한층 더 속도감과 긴장감을 부여받는다. 팽팽하게 당겨진 활시위, 불끈거리는 말 다리의 근육, 네 다리를 한껏 앞뒤로 뻗으며 내달리는 짐승들. 강약이 조절된 필치와 짜임새 있는 구성 속에서 짐승과 사람, 산야의 어울림이 크고 생생한 울림이 돼 바깥으로 터져 나오는 듯한 분위기가 화면을 가득 채운다.
현대인의 눈에 익숙한 단일 시점 중심의 원근법, 사물의 크기에 맞춘 비례표현 등이 무시됐다고 지적될 수 있으나, 중요시되는 것을 우선적으로 크게 그리던 당시 회화의 일반적 표현기법에 충실했던 결과일 따름이다. 화공의 사물묘사 능력이나 기법의 한계로 말미암은 것은 아니다. 화면 상단에 배치됐으면서도 한쌍의 자색 사슴이 호랑이보다 크게 그려지고, 두 마리의 사슴이 달아나는 방향과 엇갈리는 방향으로 말을 달리면서 몸을 돌려 활을 겨누는 인물이 다른 수렵자들과 별 차이없는 크기로 묘사된 것도 화면 안에서 이들이 지니는 의미가 유별난 까닭이다. 두 마리 사슴은 뒤이을 제의의 희생제물로 바쳐질 것이라는 점에서 이 수렵에서 얻어질 어떤 노획물보다도 귀중하며, 이들 짐승을 직접 사냥하는 인물은 머리에 쓴 절풍 위의 많은 깃털 장식에서도 드러나듯이 수렵터에서도 가장 고귀한 존재일 뿐 아니라 제의의 주관자로 예정됐을 것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활시위를 당기거나 수렵자의 활을 피해 달아나는 짐승들의 자세와 표정이 사실적이고 정확하다 못해 생생한 데에서 고구려 화공의 빼어난 묘사력을 읽어낼 수 있다. 고구려 고분벽화의 수렵도 가운데 무용총 벽화의 수렵도에 특별히 세인의 관심이 집중되는 것도 이런 까닭이다.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수렵도는 무용총 외에도 안악1호분을 비롯해 덕흥리벽화분, 약수리벽화분, 감신총, 용강대묘, 동암리벽화분, 대안리1호분, 수렵총, 장천1호분, 삼실총, 마선구1호분, 통구12호분 등 다수의 생활풍속계 고분벽화에서 발견된다. 수렵장면이 고분벽화의 제재로 선호됐음을 알 수 있다. 고분벽화 속 수렵도는 구성과 기법이 매우 다채로워 고구려에서 행해지던 수렵의 종류와 방법, 수렵 대상 등을 파악하게 할 뿐 아니라, 시기별, 지역별 회화적 동향을 짚어내는 데도 큰 도움을 준다. 장천1호분 수렵도 속의 매수렵 부분은 안악1호분 및 집안 삼실총 매수렵 장면과 함께 현재까지 전하는 매수렵의 가장 오랜 표현사례에 속한다.
덕흥리 벽화고분에서 수렵도는 다양한 별자리 및 하늘세계의 존재들과 한 공간에 표현돼 고구려에서 수렵이 지니고 있던 종교, 신앙적 측면을 잘 드러낸다. 약수리벽화분의 수렵도는 산봉우리 사이사이에서 모습을 드러내며 짐승들을 넓은 들판으로 몰아내는 데에 열중하는 몰이꾼들을 묘사해 고구려에서 행해지던 몰이수렵의 실체를 잘 보여준다.
무용총 수렵도가 이뤄낸 독특한 미적 세계는 유사한 구성·내용을 보이는 덕흥리 벽화고분의 수렵도와 대비할 때 더 잘 드러난다. 무용총 수렵도가 벽면의 대부분을 화면으로 삼으면서 표현대상을 제한해 화면에서 일정한 역할과 효과를 자아내도록 배치함으로써 전체 구도를 간결하면서 짜임새 있게 한 것과 달리 덕흥리 벽화고분에선 천장고임 하단부의 좁고 긴 면을 화면으로 삼아 표현대상들이 천상의 존재들과 별다른 경계를 이루지 않은 상태로 등장하게 함으로써 수렵도가 천상세계 표현의 일부처럼 여겨지게 했다. 수렵터 특유의 분위기를 자아낼 여지를 극히 좁혀버린 것이다(위 그림 ).
덕흥리 벽화고분 수렵도에 묘사된 판지를 오려붙인 듯한 산줄기, 고사리순처럼 표현된 산봉우리의 나무는 산줄기 사이를 내달리는 기마수렵꾼들의 공간적 배경으로서의 의미를 충분히 살려내지 못한다. 이에 비해 보는 사람에게서 멀어짐에 따라 白-赤-黃의 차례로 채색하는 고대 設彩法의 원리를 바탕으로 가장 가까운 산은 흰색, 그 뒤의 산들은 붉은색, 먼 산은 노란색을 바탕색으로 한 데에 더해 물결무늬 띠 겹침으로 내부를 묘사한 무용총 수렵도의 산줄기는 수렵 배경으로서의 공간감에 속도감을 더하는 효과를 자아낸다. 활시위를 당기는 덕흥리의 수렵꾼의 자세는 수렵터에서의 정확한 관찰을 바탕으로 묘사됐지만 가늘고 부드러운 선 흐름은 수렵터의 긴박감을 드러내기에는 오히려 방해가 된다. 무용총 수렵도 수렵꾼과 말의 표현에 적용된 굵고 강한 필선이 수렵터 특유의 긴장된 분위기를 느끼게 하는 점과 비교된다. 수렵터의 말들도 덕흥리에서는 몸을 뒤로 틀면서 활시위를 당기는 수렵꾼의 자세를 본받아 앞으로 내달리면서 머리를 틀어 뒤를 돌아보도록 묘사됨으로써 수렵터의 실제 상황과 차이를 드러낸다. 튼튼한 다리와 발달된 근육을 지닌 것으로 그려진 무용총 벽화의 말들과 상체가 비대하고 다리가 가는 덕흥리 벽화고분 수렵도의 말들도 서로 대비가 된다.
5세기 전반으로 편년되는 무용총의 수렵도는 5세기 전반까지도 고구려에서는 새로운 예술장르로 여겨지던 고분벽화에 모습을 드러낸 고구려식 회화의 걸작 가운데 하나다. 내용과 구도, 기법상 408년경 제작된 덕흥리벽화분 수렵도에 고구려식 이해와 문화전통, 종교관념을 더해 만들어낸 고구려표 수렵도라고 할 수 있다. 무용총 벽화의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얼굴선이 깔끔하고 이목구비가 또렷한 고구려인 특유의 얼굴을 지녔으며, 왼쪽 여밈과 가장자리 을 특징으로 하는 고구려인 고유의 옷차림을 했다. 자연스러우면서도 강하게 뻗어나가는 필선, 제한된 표현대상 중심으로 화면을 짜임새 있게 구성하는 방식은 중국회화의 영향을 느끼게 하는 평양, 남포, 안악지역 고분벽화 수렵도에서는 쉽게 찾아지지 않는다. 5세기 내내 고구려의 집안과 평양지역 고분벽화에 여러 차례 모습을 드러내는 수렵도에서 무용총 벽화에서와 같은 짜임새와 기법, 분위기는 다시 발견하기 어렵다는 사실에서 무용총 수렵도가 지니는 미술사적 위치를 재확인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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